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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 작가파일 > 알라딘이 만난 작가들 : 목수정
2009-1-13

  TV에서 연예인이 추천한 책들이 베스트셀러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요즘이다. 장동건의 <불안>, 이영은의 <너도 떠나 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 등등. 물론 단순히 연예인들의 이름값 때문은 아닐 테다. 우리 모두는 ‘불안’하고 또 ‘떠나’고 싶으니까. 그렇다면 먼저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 사랑과 직장생활에 모두 실패한 스물아홉. 불안을 딛고 프랑스로 떠나 결국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삶을 스스로 살아낸 그녀, 목수정이다. (인터뷰 | 알라딘 도서팀 금정연, 최원호)


“참 좋은 직업을 갖고 계신 것 같아요. 책을, 만지시잖아요?”

그러니까, 아마 늦은 겨울이었을 거야… 라고 이 글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 따위를 하고 있었을 거다. 숨숨이 하얀 김이 뽀얗게 대기를 채우던 추운 겨울날, 덕수궁 돌담길 한 켠에 자리한 커피숍에서… 따위의 첫머리를 떠올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실은 아직 이른 겨울, 커피숍에서 그녀를 기다리며 우리는.

경향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그녀의 인터뷰 기사를 참고하고 있었다. 기자는 그녀에게 첫 마디로 “머플러가 멋지다”라는 인사를 건넸다고 했다. 그렇지, 살짝 흘리듯 던지는 칭찬은 좋은 인터뷰어의 노트와 펜 다음가는 필수품이 아니던가! 무슨 칭찬이 좋을까, 서툰 사내아이들처럼 설레며 말없이 골똘하던 우리 앞에 불쑥 그녀가 나타났다. 예의 머플러를 한 채. 채 입을 열지 못한 우리에게 먼저 인사말을 건넨다. 그러니까, 참 좋은 직업을 갖고 있다고. 그러니까, 우리는 시작부터 한 방 먹은 셈이었다.

사내아이들이 대개 그렇듯, 애써 당황을 감추느라 뱉은 질문은 “요즘 프랑스는 어때요?”라는 바보 같은 질문. “프랑스요?” 되물은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윽고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전형적인 우문현답愚問賢答. 이 또한 좋은 인터뷰의 옵션 정도는 되지 않는가 생각하는 우리는, 그러니까 참 좋은 직업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종종 하는 이런 인터뷰야말로 이 직업의 옵션이겠지만…)

이명박과 사르코지? 에이, 설마

목수정 : 사실 프랑스가 보이지 않았어요. 처음 떠났을 때와, 다시 돌아간 내가 너무나 변했다는 사실 때문에. 가장 큰 변화라고 하면 그때는 아이가 없었지만 지금은 칼리가 있으니까. 일단 자신은 최소한으로 축소하고 아이의 조력자로서 한 달을 보냈죠. 사실 일종의 우울증세가 있기도 했어요. 프랑스에서 들리는 한국의 소식이, 자살이며 우파의 득세 같은… 몇 달 동안 무디게 괴로워하면서 보낸 것 같아요.

알라딘 : 책에서 프랑스의 우경화에 대한 우려를 표하기도 하셨는데요.

목수정 : 아! 물론 그런 건 있어요. 사람들이 “교육 파괴부 장관”(웃음)이라고 부르는데, 사르코지 정권 이후 악법들을 입안하려는 시도들이 있었죠. 프랑스에서는 고교생들이 사회 변혁의 전위에 있어요. 악법에 반대하며 준비되지 않은 피켓, 준비되지 않은 구호를 들고 거리로 나서죠. 너무 발랄해요(웃음).

칼리도 이제 학교를 가니까, 세살부터 학교에 갈 수 있거든요. 일종의 유치원인데, 그때부터 의무교육이에요. 각자 소득에 따른 등급이 있고, 그 등급에 맞춰서 밥값만 내면 되거든요. 저희는 3등급, 한달에 13유로를 내요. 1등급이 가난한 건지, 10등급이 가난한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웃음). 그러면서 악법을 저지하는 학부모들의 모임 같은 곳에도 나가고, 그렇게 지냈어요. 결국 악법은 보류 되었지요.

알라딘 : 무시무시한 ‘글로벌 경제위기’에서 프랑스도 자유롭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목수정 : 그렇죠. 일단 은행에서 대출을 해주지 않기 시작했어요. 부동산 경기가 꽁꽁 얼어붙었죠. 대출 받아서 무리 없이 집을 구하던 사람들은 그럴 수 없게 되었고. 뉴스에서 보니까 삼천 개 식당이 문을 닫았다고 하기도 하고. 하지만 우리나라 보다는 훨씬 더 자본에 자유로워요. 일단 사회적인 안전장치들이 의료보험이나 장학금, 학비가 무료인데도!, 같은 제도들이 잘 되어 있으니까요.

노회찬 대표가 파리의 저희 집에 오신 적이 있는데, 국회의원을 하고 계셨을 때 프랑스-한국 의원 친선 회장을 맡아 활동했던 이야기를 하세요. 대사관에 근무하는, 그쪽 기준으로 보자면 우파 정치인들과 종종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럼에도 그 사람들의 정치적인 의견이 본인과 거의 같더라는 거예요. 한쪽은 우파고, 한쪽은 좌판데. (웃음)

사람들이 종종 이명박과 사르코지를 비교하는데, 사실 그럴 순 없는 것 같아요. 기준이 다르니까요.

몸은 프랑스에, 정신은 한국에

알라딘 : 아까 잠깐 한국 사회 이야기를 하셨는데, ‘밖에서 본’ 한국은 어떤 느낌이었나요? (내부에서 우리끼리 부대끼며 살다보니 보지 못했을 수도 있는 ‘무언가’에 질문이었는데, 목수정 씨는 이 ‘밖’이란 말에 크게 반발했다)

목수정 : 밖이요? 그렇진 않아요. 몸은 프랑스에 있었지만 정신은 언제나 여기 있었어요. 다 같이 느꼈어요. 인터넷이 있잖아요. 제가 명언을 하나 만들었는데. “내가 검색어를 정하지 않으면 인터넷이 검색어를 정한다”라고(웃음). 특별히 해야 할 일을 정해두지 접속하지 않으면, 설령 그렇다고 해도 자꾸 이것저것이 나오잖아요. 푹 빠져있다 보면 “내가 왜 인터넷에 접속했지?” 이러고. 그렇게 한국 인터넷을 보며 살았어요.

제가 한국에 있다 프랑스로 간 게 ‘촛불 100일 기념 시즌’이었어요. 그런데 떠나오고 나니 다른 말들이 들리는 거예요. 소위 말하는 운동권에서도 냉정히 정산해보자 뭐 하고. 하지만 촛불에서 제가 본 것은 여성의 정치성이거든요. 유모차를 끌고 촛불을 들던, 남편과 아들을 꼬드겨서(웃음) 시청 앞 광장에 나온 여성들, 교복을 입고 어른들은 상상도 못했던 구호를 외치던 여고생들. 그런데 아무리 언론에서 이러니저러니 해도 여성 커뮤니티들에서 여전히 지지 않는 목소리들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안재환 씨 자살이 한참 이슈가 되었었잖아요. 정선희 씨를 둘러싼 이런저런 말들도. 안재환 씨 유서 마지막에 “사랑한다”는 말이 있었다면서요. 전 그게 참 부럽더라고요. 혹자는 잘나가는 부인한테 눌리지 않으려고, 자기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던데. 그렇다면 자기 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자본주의의 타살이 아닐까, 같은 생각도 들고. 자기에게 주어진 부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더 큰 부를 위해서. 망할 때까지.

최진실 씨도 그렇고, 옥소리 씨 집행유예 사건도 있었죠. 전 옥소리 씨가 정말 올해의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수많은 담론들을 본의와 다르게 생성한. 예전 같으면 옥소리 여자 연예인이 이제 쪽 다 팔았네, 역시 맞바람은 안 돼, 이런 얘기만 하고 말았을 텐데 그런 것들을 정치적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목소리들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옥소리 씨와 정선희 씨, 최진실 씨 각각의 경우에 대한.

그래서 저는 한국은 여전히 희망적이라고 생각해요. 2008년을 돌아보자면, 여자들이 심하게 ‘개겨 보는’ 경험을 얻었다고 할까(웃음). 프랑스 사회는 너무 노령화되고 정체된 느낌인 반면 한국은 여전히 많은 변화의 여지가 있다고 봐요. 그래서 저는, 지금은 추운 겨울이라 다들 웅크리고 있지만 따뜻한 봄날이 오면 다시 삼삼오오 손에는 촛불을 들고 거리로 모이지 않을까… (웃음) 이렇게 지켜보면서 마음은 한국에 있었던 거예요.

예술하세요?

알라딘 : ‘자유’와 ‘정치’가 책의 커다란 두 줄기라고 보았습니다. 지금 해주신 이야기들은 주로 ‘정치’쪽에 밀접한 부분이라고 여겨지는데요. 그렇다면 좀 더. ‘정치적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목수정 :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 정치가 박혀있어요. 이런저런 정치적 선동은 물론이고 소비자, 여자, 엄마로서의 선택에 모두 정치적 행위가 담겨있는 거죠. 사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 모두는 이용당하는 대상이에요.

자유로 이야기를 돌려 보면, 우리는 모두 주어진 질서 속에서 살잖아요. 하지만 예술을 한다는 건 내가 질서를 부여한 한 세계를 만들고 그것 내에서 주체가 되는 거예요. 대상이 아니라. 그런 경험을 계속하는 것이 자유를 획득하는 방법이죠. 결국 이건 누가 누구에게 더 자유를 부여하고, 누가 주체로 서는 가의 싸움이에요. 그런 점에서 정치와 자유는 (그리고 예술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어요.

서점에 가면 입구에 보기 좋게 깔려있는 책들이 있죠. 각 분야 별로 또 깔려 있는 책들이 있고, 책장에 가야지 볼 수 있는 꽂혀있는 책들도 있어요. 그렇다면 서점의 진열에 휘둘리지 않고 나만의 책을 찾는 것, 검색기에서 주어진 키워드가 아니라 나만의 키워드를 찾는 것. 개겨 보는 정신을 강화하는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 그게 자유고 또 정치적으로 사는 게 아닐까 해요.

사람들이 가끔씩 보통 사람하고 다른 것 같은 얼굴을 보면 이런 말하잖아요. “예술 하세요?” 그게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예술과 주어진 질서에 얽매이지 않는 것을 함께 놓고 보는 증거가 아닐까요? 저는 모든 사람들이 그런 얼굴이었으면 좋겠어요.


목수정 혹은 어떻게 근심을 멈추고 자유를 사랑할 것인가?

알라딘 : 그렇다면 이번엔 저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할 질문을 던져 보겠습니다. 그러니까, 스물아홉에. 어떻게 그렇게 훌훌 털고 떠날 결심을 할 수 있었나요?

목수정 : (웃음) 그러니까,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떠나고 싶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했지만. 결정적인 건 연애사건이었죠. 저를 소진시킨 그 연애가 결국 절 그렇게 만들어 주었어요.

전 어렸을 때부터 사이드였어요. 부천에 있는 학교를 다니다가 구로구 오류동에 있는 학교로 5학년 때 전학. 오류동 이모집으로 엄마가 위장전입을 시켜 주셨죠. 오류동으로(웃음). 사실 엄마가 소위 사이비 종교라 불리는 종교를 믿으셨고, 그 신앙촌에서 제가 태어났어요. 그러니 얼마나 마이너해요. 하지만 커가면서 종교라는 것은, 중세의 귀족 보다 오히려 중세의 교회가 더 많은 사람들을 악랄하게 착취했던 것처럼, 치졸한 지배논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래서 벗어날 수 있었죠. 하지만 그 마이너리티의 경험만은, 잊혀 지지 않는 거예요.

그러다 전학을 갔는데,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시각이 변하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단지 경기도의 변두리에서 서울의 변두리로 이사, 아니 저 혼자 위장전입하고 전학을 갔을 뿐인데. 그래서 그런 공간적인 경험을 넓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더 많이 이동하면, 더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데 집에서 긁어낼 건 없고(웃음).

그렇게 커서 그런 연애를 했어요. 굉장히 이상한 관계라고 지금은 말할 수 있는데, 누가 봐도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아닌, 당시의 제 주변 사람들의 말을 빌자면 정말 지옥 같은 얼굴로 살았어요. 그러다 결국 뛰쳐나왔죠. 그 당시에는 정말 모든 것을 놓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때 제가 하던 일이 공연기획 쪽의 일이었는데, 이미 계약이 끝나고 무대에 올리기 직전에 저희 쪽에서 공연을 취소하자는 말들이 많았어요. IMF가 왔고, 사실 공연을 올리면 그대로 적자가 나는 상황이었거든요. 하지만 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사람들은 그 공연을 올리기 위해 몇 달이나 피땀을 흘리며 연습했는데, 단지 저희의 경제논리만으로 그걸 취소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모든 사람들이 반대했죠. 그런데 대표는 제 생각에 동의했어요. 그래서 결국 강행했고, 손해를 봤죠. 그 화살이 저한테 돌아 온 거예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쫓겨나다시피 회사를 떠났어요. 갑자기 존재의 이유를 상실한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소통할 사람이 없다는 느낌도. 내가 믿었던 문화의 가치가 땅으로 떨어진 것 같았고, 나와 같은 것을 믿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자기들 월급이 깎일까봐 앞장서서 그 가치를 짓밟고. 그땐 정말 유리로 된 캡슐을 쓰고 있는 것 같았어요. 지하철을 타도, 가득한 사람들이 전부 나랑은 다른 사람 같고. 마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없는 외계인이 된 것 같은 기분.

그런데 비행기를 타고 가니까, 잃어버렸던 20대를 되돌려 받은 거예요. 사람들이 저를 19살로 보고. (웃음) 진짜 19살이냐고 물어보고, 나이를 말하면 놀라고 그랬어요. 사랑과 공연에 배반당하고, 퇴직금과 국민연금 돌려받은 것과 보험을 깬 돈으로 무작정 간 프랑스에서 훨훨 날았죠. 사람이 입고 있던 옷에 따라 얼마나 얼굴이 달라지는지 모르시죠? 20대에 감옥에 가서 노인이 되어 밖으로 나온 장기수들은, 다시 사복을 입는 순간 20대의 얼굴이 되요. 그렇게 새로운 옷을 입고 비로소 마음껏 숨 쉴 수 있었던 거죠, 저도.

나에게 “너는 몇 살이야”라고 규정짓는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참 신기한 게, 그저 비행기를 타고 지리적인 이동을 했는데 시간 이동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파리는 물론 대도시지만, 서울과 비교하면 시골 같은 느낌이 있어요. 자본주의의 작동 속도가 달라요. “미안하지만 우리는 거스름돈이 없어서 물건을 팔수가 없어”라고 말하는 가게를 상상할 수 있어요?

알라딘 : 그렇다면 역시, 일단 연애에 실패하고 회사에서 짤려야 하는 건가요? (웃음)

고칠 수 없다면 견뎌내야만 한다? 왜?

목수정 : 연애에서 빠져나오면서 제가 한 일이 있어요. 그 관계를 철저하게 곱씹은 거죠. 저는 그 관계가 고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가 한 건, 물론 그가 정신적으로 좀 아팠다고도 할 수 있지만, 결국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자라면서 배운 것들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이런 경험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많은 여성들이 어느 순간엔 하게 된다는 것도.

제가 요즘 읽고 있는 책에 이런 말이 나와요. 여자는 누구나 “삶-죽음-삶”을 경험해야 한다. 처음의 삶은 태어나는 것이고 죽음은 정신적인 타살이죠. 하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다시 살아나야만 하는 거예요. 그때야 비로소 진정한 여성으로서의 삶이 시작된다고 해요. 전 그 부분이 너무 감명 깊었어요.

그게 바로 여성들의 강점이 아닐까요? 삶에서 시작되는 정치적인 것을 온몸으로 겪어내고, 그것을 다시 다른 계층들에게 전해줄 수 있고, 또 운동권들에게도(웃음). 그래서 그게 질투 나서 아마 운동권들이 촛불에 대해 나중에 그렇게 신랄하게 말했나 봐요(웃음*2).

결국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

목수정 : 제가 희완하고 다툴 때면 항상 하는 말이 있어요. “이 프랑스 남자야!”(웃음) 제가 그래요. 프랑스 남자라고 하면, 이성과 합리만 남은 존재거든요. 이성과 합리를 위해 직관과 본능은 싹둑 잘라 버린 거죠. 그게 얼마나 풍요로운지 모르고.

여성성의 회복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한국사회는 분명히 추하잖아요. 그건 역사적으로 이루어진 남성성과 여성성의 극단적 불균형 때문이에요. 그 균형을 맞추면 아마도 아름다음에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거죠.

일상적인 삶 속에서, 모든 부분에 정치적인 것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은 여성들이 더 뛰어나요. 한국 사회의 남성성이 거대 노조, 거대 담론들을 이끌었지만 그게 결국 ‘정치’라는 말이 우리에게 추하게 들리는 이유가 아닐까요. 결국 모든 것은 삶에서 시작하는 건데.

모두가 권력을 잡은 이후에 우향우를 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삶에 그것을 실험하고 실천하지 않은 채 “권력을 잡은 후에 다 하자!”라고만 하기 때문이에요. 자신의 삶에서 실천하지 않았던 것들을 권력을 잡았다고 제대로 실천할 수 있겠어요? 한 큐에 바꾼다는 모든 말은 거짓말이에요. 믿으면 안 돼요.

그녀의 소소한 일상

알라딘 : 어느덧 시간이 많이 길어졌네요. 아직 준비한 질문들이 많이 있는데… 소소하지만 독자들이 정말 궁금해 할 질문들을 할게요. 남는 시간은 주로 어떻게 보내세요?

목수정 : 남는 시간요? 사실 요즘엔 남는 시간이 별로 없는데(웃음). 주로 책을 읽으면서 보내요. 책을 낸 후에 인터넷 서점의 리뷰라는 것을 챙겨보게 되었는데, 사실 그 전까지는 별로 관심이 없었거든요(웃음), 제 책을 보고 제가 의도한 것보다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을 읽어내는 독자들을 보고 자숙의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웃음)

알라딘 : 요즘엔 어떤 책을 읽으세요? 감명 깊은 책이나, 추천하고 싶은 책이?

목수정 : (주섬주섬 가방에서 책을 꺼낸다) 아, 정말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어요. 그런데 이 책이 지금은 절판된 것 같은데…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이란 책이에요. (생소한 표지에 출판사를 살펴보니 고려원 책이다) 아까 말씀드렸던 ‘삶-죽음-삶’도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이거든요.

딱딱하거나 어렵지 않고 정말 재미있어요! 페이지가 넘어가는 게 아까워서 아껴 읽고 있어요. 제목부터 신나지 않아요? 아마 도서관에 가면 있을 거예요. 저는 중고로 샀어요. (융 학파의 저자가 쓴 책으로, 아마도 조셉 캠벨의 여성주의 버전이 아닐까, 잠깐 생각)

제가 이 책을 알게 된 건 프랑스에서였어요. 서점에 갔는데, 잘 나가는 책인가, 한 쪽 서가가 온통 이 책으로 꽂혀 있더라고요. 프랑스판 표지가 더 예쁜데. 하얀색에…

알라딘 : 프랑스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읽나요?

목수정 : 음, 잘 모르겠어요. 지하철에서도 보면, 책이 항상 다 달라요. 그만큼 다양한 것 같아요. 그런데 ‘자기계발서’는 못 봤어요. 프랑스 사람들은 자기계발을 안하나 봐요(웃음).

알라딘 : 다음 책을 쓰실 계획은…?

목수정 : 원래 후속작 계획이 있었어요. 근데 사라졌어요. 부족함을 깨닫고, 리뷰나 뭐 이런 평들을 통해서(웃음). 좀 읽고 자신을 채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사실 쓰고 싶은 건 있어요. 책에도 잠깐 나오지만 박재동 선생이 제안한 사랑학. 사실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정신분석학과 여성학을 아우르는, 그리고 성과 정치도 다뤄줘야 할 것 같고… 오랫동안 안고 갈 화두가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 공부도 하고 있어요(웃음).

알라딘 : 책을 낸 이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목수정 : 무엇보다 저를 백수의 찰나에 구해준 것, 그게 정말 고마워요. 직업을 묻는 난에 작가라고 쓸 수도 있고(웃음). 저는 그냥 돌멩이 하나를 연못에 던진 것뿐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게 자꾸만 파문을 일으키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공감해주고, 그리고 그게 다시 저를 풍요롭게 하고. 참 고마운 일이죠.

알라딘 : 칼리가 이렇게 자랐으면 좋겠다, 하는 엄마로서의 바람은 무엇일까요?

목수정 : 음… 예지원 씨처럼 되었으면 좋겠어요. 열정적이고, 자유롭고 하고 싶은 것 하고 그렇게. (알고 보니 목수정 씨는 한때 예지원 씨의 불어 선생님이었다고 한다. 모 방송에 나온 예지원 씨가 샹송 ‘빠로레(Parole)’를 부르던 모습이 문득…)

그런데 칼리는 아직 어린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자유를 갖고 있어요. 참 다행이죠. 항상 웃고, 즐겁고. 칼리가 웃는 걸 보면 정말 얘가 지금 즐거워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요. 어떤 상황에서도. 어른이 되어도 그렇게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뼈를 깎고, 자신을 극복하고, 일인자가 되고… 이런 고난 없이(웃음).

알라딘 : 이제 슬슬 인터뷰를 마칠 시간입니다. 알라딘의 공식 질문을 던지겠습니다. 목수정 씨에게 ‘아름다운 것’ 이란?

목수정 : 음… 아기의 몸? 이렇게 말할게요. 부끄러움을 모르는 아기의 몸. 벗고 있어도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예상하지 못했던 답에 잠시 곱씹던 우리는 이렇게 되물었다. “그럼 언제까지가 아기의 몸일까요?”) 하하. 글쎄요, 부끄럽지 않다고 말해야 하고, 아직 개길 수 있는 그런 나이? 우리는 유치원에서부터 그런 부끄러움을 배우잖아요. 자기의 몸이 소중하다는 것을 미처 알기도 전에 부끄러움부터. 그렇지 않았으면 해요.

알라딘 : 정말 마지막 질문입니다. (“설마, 알라딘 독자들에게 한 마디?” 그녀가 웃으며 물었고 우리는 뜨끔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우울해 하잖아요. 한두 명의 문제가 아니라, 일종의 ‘시대적 질병’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데. ‘시대적 질병’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 한 마디?

목수정 : 마음껏 달리시면서 당신 속에 있는 야성과 만나세요. 당신의 야성이 해답을 줄 거예요.

알라딘 : 감사합니다.

목수정 : 별 말씀을요.


*** 참 긴 인터뷰였다. 눈을 반짝이며 대답하는 그녀는 열정적이었고,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그만큼의 애정이 묻어남을 느낄 수 있었다. 예정된 시간을 훨씬 넘겨 끝난 인터뷰에도 불편한 기색을 요만큼도 보이지 않았던 목수정씨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인터뷰 직후에는 알라딘 독자들과 함께 ‘저자와의 만남’ 행사를 가졌다. 넓은 카페가 좁아 보일 정도로, 많은 분들이 자리를 함께 해주셨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함께 해주신 알라딘 독자들에게도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화기애애했던 ‘저자와의 만남’ 현장을 느끼고 싶으신 분들은 ‘여기’를 눌러주세요. 멋진 후기를 남겨주신 ‘이루’ 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이번 인터뷰는 참 감사드릴 분이 많네요. 한번 더, 감사합니다.

대학에서 러시아문학을 공부했다. 20세기 러시아 시 수업시간, 시인 예세닌이 이사도라 던컨과 결혼했단 얘길 듣고 이사도라 던컨을 만난다. 그 뒤로 쭉 무용하는 여신을 한 명씩 가슴 속에 섬겨왔다. 첫 직장은 관광공사. 문화축제 기획, 지원하는 일을 주로했다. 4년 뒤, 대학로 동숭아트센터에서 연극 기획자로 일했다.

외환위기 때, 문 닫는 극장들을 보면서, 문화의 가치를 지닌 자신과 세상에게 설득하고 싶어 공부하러 떠났다. 파리 8대학에서 문화정책을 공부하고 2003년 다시 한국에 돌아와 국립발레단을 거쳐 민주노동당에 들어가서 정책연구원으로 일하다 2008년 초, 당을 나왔다. 2009년 현재 문화정책 연구를 꾸준히 하면서 건축공부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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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총 7건의 글이 있습니다.

 
서재바로가기야옹  2009-02-19 22:15
작년에 목수정님의 책을 보고, 자유로운 영혼에 느끼는 바가 많았습니다.
케이블 티비에서 방송되던 것도 잘 보았구요.
어디에서든 행복하시고 겅강하시길!
 
서재바로가기king  2009-02-13 14:20
이책은 한참전에 읽고 아직도 사무실 쇼파에 있어요,,보고보고 또보고하는데
작가님의 인터뷰 넘 반가워요,,,보고싶은 여성이고 존경하고픈 여성이고,,,
암튼 반갑습니다,,,,,다음 후작도 기대할꺼예요 저는,,,,거제도에서....
멋진 여성입니다,,,,
 
서재바로가기활자유랑자  2009-02-11 00:13
아프락사스 님 / 저희가 인터뷰가 주업이 아니라서 ㅜㅜ 아프락사스님도 반가웠어요 :)
 
서재바로가기마늘빵  2009-02-09 09:12
인터뷰한지 너무 오래 있다 올라온거 아니에요? ^^ 그때 모습이 다시 떠오르는군요. :) 인문엠디님, 예술엠디님 수고하셨습니다.
 
서재바로가기이쁜나무  2009-02-06 23:11
날씨로 치자면
여전히 서늘한 바람 속에서 따뜻한 봄기운을 읽을 수 있는...
그런 느낌의 작가였습니다.
다음 글을 기대하고 있어요. 말씀대로 금방 내실 것 같지는 않지만~ ^^
 
서재바로가기복숭아  2009-02-04 13:03
이 분의 책을 읽고 너무 좋아서.. 아는 분께 선물을 드리기 위해..또 구입을 했네요..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서재바로가기외국소설/예술MD  2009-02-04 10:50
비록 사진 찍느라 왔다갔다 했지만, 저는 행복했어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