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어떻게 찍어야 할까요? 얼추 2백 년째 내려오고 있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 그간 수많은 답변이 나왔지만,
동시대의 입문자들이 마음 속 깊이 새겨둘 만한 이야기는 극소수에 불과했죠. 사진 애호가는 늘어가지만, 여전히 사진은 어렵습니다(라고들 합니다).
머리보다 먼저 몸으로 사진을 익히고 그 몸이 반응하는 대로 움직이라고 주장하는 사진가, 조선희가 드디어 ‘사진을 찍는 법’에 대한 책을 써 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쓰는 데 3년이 걸렸다고 하더군요. 망설임 없이 인터뷰를 신청했습니다. 그녀라면 좀 다른 책을 썼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었으니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역시 시원합니다.
(인터뷰 | 알라딘 도서팀 송진경, 최원호)
조선희 : 책 어땠어요?
알라딘 : 예 좋았습니다. 테크닉 위주로 구성된 입문서와는 달리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고요. 제일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사진가의 마음가짐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더군요. 그런 지침서가 한 권쯤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인터뷰를 당하고 있는 것 같네요.
조선희: 제가 그런 거 잘 해요. 조심하세요. (웃음)
알라딘: 사실 책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부분은 아기를 낳고 나서 다른 세계관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었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
조선희: 저는 잘 모르겠는데, 주위에서 그래요. 이를테면 ‘이젠 여자 사진도 잘 찍네?’(웃음) 좀 더 자연스러워지고,
사랑이 담겨 있는 그런 거.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헤아리게 돼요. 옛날엔 안 그랬어요. 목표가 있으면 내가 원하는 대로 가면 되는 거였어요.
그런데 이젠 결과만큼 과정이 중요하단 생각도 들고. 촬영 스탭들도 다 같은 사람이 모인 거니까 배려하게 되기도 하고.
아, 차라리 그런 거 몰랐으면 더 좋았을까? (웃음)
카메라 고르기와 후보정도 '네 멋대로 해라'
알라딘: 네 그럼 가볍게 책 얘기로 들어가 볼께요. 책 초반부에 가장 좋아하는 카메라를 보여 주셨는데요. 어떤 기종인가요?
조선희: 이젠 구하기가 어렵겠던데. 야시카 T4*. 싸고 가볍고 칼 짜이즈 렌즈라서 좋아요. 바디는 별 거 없어요, 다 똑같죠. 그렇지만 렌즈는 좋아야 하거든요.
(Tip! 야시카 T4-흔히 유럽에서 T4 super, 동양권에서 T5D로 불리우는 모델. 20만원대의 가격에 유명한 칼 짜이즈 렌즈를 탑재해서 화제가 되었던 필름 카메라로써, 이 카메라를 써본 최MD 역시 강력 추천하는 기종. 사진에 나온 카메라는 역시 조선희씨가 아끼는 올림푸스의 E-Cru 한정판)
알라딘: 그렇다면 다른 분들께 부담없이 추천할 수 있는 카메라로는 뭐가 있을까요? 굉장히 많은 분들께서 늘 갖고 계신 고민인데요.
조선희: 책 앞부분에도 나와 있는데, 주위 사진가들에게 직접 전화해서 물어보니까 대강 좁혀지는 분위기예요.
캐논 G9, 리코 GR-1, 라이카 D-Lux. 저 역시 자주 쓰는 것도 있고 몇 번 만져본 것도 있는데 역시 다들 좋아요.
알라딘: 요즘의 추천 대세는 DSLR인데 그게 없네요?
조선희: 처음에 그 기능들이 다 필요하겠어요? 가볍고 쉬워서 찍기 편한 카메라들이 제일 좋아요. 카메라든 렌즈든 마찬가지죠. 아 저 기능이 필요하겠다, 그런 흥미를 느낄 때 거기로 움직여도 늦지 않아요. 자기가 원할 때 움직여야지, 아니면 금방 힘들고 어려워하게 돼요.
알라딘: 그렇군요. 기술적인 면에 대한 과도한 관심이 문제가 될 수도 있겠네요. 책에서 말씀하신 줌 렌즈에 대한 비판이라거나...
조선희: 음, 그게 무조건 줌 렌즈가 안 좋다는 얘긴 아녜요. 저도 꽤 써요. 다만 초보들이 프레임 감각을 익히지도 못한 상태에서 밀고 땡기고 하면 전혀 발전을 못해요. 줌의 혜택을 누리기 전에 기본적인 걸 느끼고 익혀야 한다는 거죠.
알라딘: 그럼 디지털 후보정 작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조선희: 사진은 묵혀두는 게 아니에요. 컴퓨터 작업이 아날로그에 비해서는 훨씬 유용하죠. 다만 어디까지냐가 문제인데, 요즘은 후보정을 너무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아요. 심지어 프로페셔널 사진가 중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것 같고.
후보정 때 손 보면 되니까 촬영에 집중하지 않고 나태해지는 느낌. 게을러지고요. 사진가는 사진 찍는 걸 즐겨야지!
사진과 삶, <네 멋대로 찍어라>
알라딘: 무척 공감하는 바입니다. 그럼 가장 촬영을 즐겼던, 좋아하는 모델이나 사진은 뭐가 있나요?
조선희: 이거 가장 식상한 질문인데(웃음). 정말 극소수를 제외하면 물론 다 생각나요. 굳이 따지자면 힘들었던 시절에 찍은 것들이 더 생각나고.
(잠시 생각) 서정주 시인 인터뷰 사진을 찍으러 간 적이 있었는데, 다 하고 나서 부인이랑 기념사진을 찍어 달래요. 그래서 그냥 담벼락에 서서 찍었는데 느낌이 너무 좋은 거예요.
인터뷰 와중에도 일곱 번인가를 사랑한다고 얘기하고, 꼭 소년소녀 같고. 그 사진 너무 좋아해요. 이정재 씨 담배 피는 사진도 좋았고...
그땐 모델이랑 나, 담배연기, 세상에 이 셋 밖에 없는 것 같았어요. 그거 딱 세 컷만 찍었던 건데. 빛 때문에 눈이 너무 아파서요.
알라딘: 디지털 카메라도 아니었을 텐데 운도 좋았다고 봐야 할까요?
조선희: 그래요. 사진의 우연성. 그게 참 매력적이죠. 행운은 늘 감사하는 것이고.
알라딘: 다시 책 얘기를 해 보겠습니다. 혹시 책을 쓰면서 영감을 받은 다른 입문서나 사진 책이 있나요?
조선희: 없어요. (웃음) 아니 진짜 없어요. 인터넷에 널린 똑같은 소리, 아니면 너~~무 어렵거나. (웃음) 그래서 이 책을 더 쓰고 싶어진 거라니깐.
3년이 걸렸어요. 그런데 쓰겠다고 마음은 먹었는데 뭘 써야 할지 모르겠고, 엄청 답답했어요. 그러다가 주위에서 하나둘 물어오는 것들을 생각하면서 풀어나가게 된 거죠.
알라딘: 그럼 각오 같은 게 있었나요? 책을 쓰면서의 목표라던가.
조선희: 머리 속에 든 거 말고 몸으로 쌓아온 감각을 보여주자는 거. 느낌이나 삘(feel) 같은 것들. 테리 리차드슨은 자동 카메라로 작업해서 유명세를 탔잖아요. 어떤 조건이나 상황보다는 자기 느낌이 제일 중요한 거거든요. 어쨌든, 사진 책들 진짜 너무 어렵더라. (웃음)
알라딘: 네, 책에서도 자기 느낌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셨었죠. 그렇다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서 자신만의 느낌을 갖기 위해선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조선희: 다른 사람들의 사진을 너무 많이 안 봤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자기도 모르게 어떤 타입을 만들게 되거든요. 이건 좀 다른 얘기지만,
어떤 모임에서 누가 인물 사진을 무슨 렌즈로 찍냐고 묻더라고요. 100mm 렌즈로 찍는다니까 엄청 놀라는 거예요. 백미리 렌즈는 안 쓰는 게 그 쪽 상식이라나?
아니 세상에 그런 게 어딨어요. 백미리 렌즈가 얼마나 좋은데. 접사도 되고(웃음). 세상에 불문율 같은 건 없어요. 다른 사람이 뭐라든 신경 쓰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알라딘: 책에 실린 ‘목 위로는 다 잘라버린 사진’도 그런 식이겠네요.
조선희: 그렇죠. 보통 처음에 사진 배울 때 불문율이잖아요. 팔목, 발목, 하여튼 목이란 목은 자르지 말라. 근데 어떡해요. 저는 이 사진이 너무 좋았거든요. 그럼 어쩔 수 없는 거죠. 끌리는 대로 가야죠.
알라딘: 조금 관점을 바꿔서, 그럼 세간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고정관념 같은 것도 느끼시겠어요. 조선희 하면 으레 언급되는...
조선희: 연예인 프로필 전문 사진가. 저는 이것저것 다 찍는데, 사진에 별로 관심 없는 사람들이 인터넷 같은 데 뜨는 것들만 보면서 그렇게 말하는 거죠. 그렇게 이미지가 고정되는 게 싫어요. 저는 ‘그 냥 사 진 가’예요.
알라딘: 고정관념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최근에는 자기 내면을 솔직하게 찍는다고 주장하는 수많은 사진가들, 특히 사진을 배우는 학생들이 오히려 서로 엇비슷하고 스테레오타입화 된 사진들을 찍는 것 같아요.
자신의 느낌을 따라 찍었다고들 하는데 결과물이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는 뭐가 문제일까요?
조선희: 그 경우에는 너무 남의 사진을 많이 봐서라고 생각해요. 저도 저와 비슷한 주제로 비슷한 느낌의 사진을 만난 적이 있어요. 그렇지만 각자의 컬러랄까, 스타일에서는 분명한 차이가 있으니까 괜찮거든요. 그게 중요해요. 스타일은 닮을 수가 없는 거예요. 무비판적으로 남의 사진들을 구경하기만 하면 자신만의 스타일이란 걸 잃어버리게 돼요. 매우 중요한건데도 말이죠.
저는 그래서 다른 사진들을 너무 많이 보지 않으려고 해요. 나도 모르게 닮을까봐.
알라딘: 좀 더 간략하게 말씀해 주시면?
조선희: 솔직해지라는 거죠. 스테레오타입 사진은 자기 스타일이 없거나 게으른 사람한테서 나와요. 그게 자기 자신을 나타내는 건 아니죠.
알라딘: 그렇다면 자신의 촬영 스타일은 어떤가요?
조선희: 엄청나게 몰입하거나, 아니면 머리를 싹 비우고 찍는 거죠. 틈틈이 인터넷 고스톱도 치고(웃음). 어중간하면 애매한 사진이 나오거든요. 다만 릴랙스를 하더라도 모델은 꼼꼼히 관찰해요. 사람마다 몸짓이 있는데, 그 사람만의 몸짓을 담을 수 있으면 성공이죠. 그걸 기다리고 또 담는 거죠.
알라딘: (조선희 씨의 다음 스케쥴 시간이 다가옴) 와.. 짧은 시간인 것 같은데 엄청 많은 얘길 했네요. 마지막으로 질문 드리겠습니다. 책을 꾸준히 쓰고 계신데, 다음 책에 대한 구상도 있으신가요?
조선희: 책을 쓰는 게 좋아요. 제 자신부터가 정리되는 기분이죠.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인도를 정말 좋아하는데, 그 이야기를 꼭 해 보고 싶어요.
알라딘: 네 감사합니다. 정말 재미있는 인터뷰였어요. 그럼 마지막으로 포즈 잡고 사진 한 번...
조선희: 어떻게 할까요?
알라딘: 팔을 벽에 짚고 이렇게, 좀 카리스마 있게요.
조선희: 하나도 안 카리스마 있는데?
알라딘: 아하하;;;
*여담으로 나온 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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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봐. 일단 플래시는 절대 쓰면 안돼. 그리고 원래 주위에 있는 조명을 최대한 쓰는 거야. 옆에 초가 있으면 초를 들고 이리저리 좋은 각도를 찾는 거지. 조명이 있으면 그 조명이 들어오는 쪽과 그림자 지는 쪽을 잘 살펴서 어디가 제일 예쁠지를 살펴보고. 거기 있는 것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게 제일 예쁜 음식 사진이 나와. 어두워서 셔터 속도가 안 나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고정시켜야지 뭐." (이후 담배를 쌓아서 카메라를 고정시키는 비법을 알려주심)
1971년 경북 왜관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의생활학과 재학 중 써클에서 시작한 사진 활동에 매력을 느껴, 졸업 후 김중만을 사사했다. 이후 유명 패션지와 광고 사진, 앨범 재킷이나 영화 포스터 등 다방면에서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저서로 <왜관 촌년 조선희, 카메라와 질기게 사랑하기>, <조선희의 힐링 포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