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헤더배너

MD추천 eBook

  • 인문

    모든 단어에는 이야기가 있다

    작은 단어 안에 든 큰 세계
    독일어 단어에서 출발한 글은 삶의 이야기로 확장되며 독일과 한국 사회를 돌아보게 만든다. 작은 단어 안에 든 큰 세계를 탐험하는 철학자의 단어 산책.

  • 소설

    런던 비밀 강령회

    19세기 오컬트 미스터리
    여성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는 신사들의 조직, 런던 강령술 협회. 두 여성 영매가 금기로 가득했던 19세기 유럽을 무대로 신비와 공포, 통쾌한 복수를 선보인다.

  • 역사

    무지의 역사

    왜 무지는 사라지지 않는가
    각 시대와 사회에서 무지는 형성되고 유지되었으며 특정 목적을 위해 활용됐다. 과거 천동설부터 오늘날 백신 음모론까지 알지 못하거나 알기를 거부해 온 격동의 인류사.

  • 에세이

    삶이 흐르는 대로

    죽음 앞에서 선명해지는 생의 가치
    준비 없이 다가오는 삶의 끝자락. 젊은 호스피스 간호사가 환자들과 함께한 여정을 그려낸 에세이이자, 죽음을 앞둔 이들이 전해준 삶의 지혜와 감동을 담은 책.

  • 인문

    가장 다정한 전염

    혐오에 맞서는 관대함의 힘
    타인을 향한 관심과 연민 그리고 인간의 선한 충동이 퍼질 때,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결국 선한 것이 이기고, 다정한 것이 살아남고, 인간은 서로 돕는 존재라는 믿음에 대한 증거.

  • 청소년

    달리는 강하다

    <재와 물거품> 김청귤 첫 청소년 소설
    65세 이상 노인들이 좀비가 돼 봉쇄된 도시. 그곳에 남겨진 까칠 소녀 강하다. 모두를 구하기 위한 하다의 달리기가 시작된다.

독자가 권하는 책

장발장의 갈등과 고뇌

5권 내용만 본다면, 6월 혁명의 마무리와 그 이후 이야기다. 혁명의 한복판에서 많은 등장인물의 삶과 죽음이 엇갈린다. 속도감 있는 전개를 보여주던 이야기는 장발장이 탈출구로 하수도를 선택하면서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샛길로 빠져나간다. 한참을 파리의 하수구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서야 그 진창길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4권까지 읽어서 단련된 상태라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 탓인지 5권 내용에 대한 집중력이 가장 좋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주요 인물들이 걸어왔던 삶에 나름 책임을 지는 순간이기도 해서다. 마리우스와 코제트에겐 죄책감과 상실감이 들러붙겠지만 함께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갈 여력이 충분해 보인다. 자비에의 선택은 나름 충격적이지만 고지식하게 앞만 바라보고 살았던 그의 성향을 생각하면 당연히 그럴 수 있지 싶다. 테나르디에는... 내 처지에서 보면 가장 뜻밖의 운명을 받아 든 인물이었다.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이란 의미를 작중 딱 한 번 설명한 곳이 있는데 그게 바로 테나르디에가 나오는 장면에서였다. 불우한 사람들, 불행한 사람들. 그런 상황에 빠진 사회 계층. 작가는 정치 사회 개혁과 교육을 통해서 이들을 교화시켜야만 그 사회가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테나르디에는 경멸과 멸시를 얻을지언정 마리우스로부터 돈을 얻어 미국으로 건너가 노예 상인이 된다. ‘민중’이란 존재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 작가지만 6월 혁명의 실패와 함께 테나르디에의 운명을 통해서도 뜻대로 할 수 없는 존재임을 명확하게 얘기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자, 애석하게도 여기까진 <레미제라블>의 주변 인물(?)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 소설의 핵심은 개인적인 생각에 두 가지다. 하나는 1790년대부터 1830년대 중반 정도까지 프랑스의 정치 사회 상황의 격변. 다른 하나는 그 시기를 관통하는 장발장의 삶. 프랑스의 몇몇 혁명과 그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여력이 되면 따로 써볼까, 생각 중이다. 대신 이 글에선 장발장의 삶, 그의 고뇌에 집중해 보려 한다.   “(1권 절망의 구렁텅이) 그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되물었다. 이 숙명적인 사건에서 과연 그 혼자서 잘못을 저질렀던가? 첫째로 그는 좋은 일꾼이었지만 추운 겨울,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열심히 살아간 그가 빵을 갖지 못한 것을 그의 잘못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다음으로 잘못된 선택이 벌어지고 그가 자백했음에도 형벌이 너무 무거웠던 것은 아닌가? 그에게 내려진 형벌은 죄의 정도와 맞았던가? 형벌은 뉘우침에 너무 치우쳐 있던 것은 아닌가? 형벌이 아무리 무거운들 이미 벌어진 범죄를 무화할 수 있던가? 무거운 형벌은 사태를 악화시키고, 죄인을 희생자로 만들고, 채무자를 채권자로 만들고, 범죄를 저지른 인간을 결국 법으로 용서해 준다고 든다. 탈옥으로 형기가 늘어난 것은 어땠는가? 강자 앞에서 약자는 얼마나 무력했는가? 사회는 개인에 대해 무죄였는가? 19년마다 매일매일 죄는 늘어나지 않았는가?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사회는 그 안의 부조리와 무자비함을 구성원에게 떠넘길 권리가 있는가? 한낱 불쌍한 영혼을 고통과 결핍 속에 몰아넣을 권리가 있는가? 우연히 이루어진 재산 분배에서 탈락한 불쌍한 사람들, 가장 동정받아 마땅한 그들을 사회가 매몰차게 대한다면 그것이 과연 정당한가? 그는 묻고 또 물었다. 그는 스스로 사회를 재판하고 유죄를 선고했다.”   미리엘 주교를 만나 교화되기 전 장발장의 관점이다.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고 그 후 몇 년 동안 혼란했던 시절, 그는 빵을 훔치고 감옥에 들어간다. 법은 가혹했으나 형량이 19년까지 늘어난 건 끊임없이 탈옥을 시도했던 그의 잘못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모든 책임을 사회로 돌린다.   “(1권 프티 제르베) '아, 나는 얼마나 불쌍한 인간인가!" 하고 소리친 순간, 그는 자신을 되찾았다. 그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처음으로 마주 대했다. 지팡이를 들고, 작업복을 입고, 훔친 물건으로 꽉 찬 배낭을 지고, 음울하고 일그러진 표정으로, 사악한 생각을 품고 서 있는 죄수 장발장의 모습 말이다. 과거의 불행들은 그를 괴이한 몽상에 빠지게 했다. 그러므로 지금 말한 모든 것도 환상처럼 여겨졌다. 그는 진실로 그 앞에 일그러진 얼굴로 서 있는 장발장을 만났다. 그는 그가 누구인지 몰라 혐오감을 느꼈다.”   사회를 악으로 돌리고 자신을 방어하던 그가 미리엘 주교를 만나 일련의 사건을 겪은 후 드디어 자신의 현재 모습을 제대로 마주하게 된다. 단순 인식으로 끝났다면 테나르디에처럼 그의 인생은 바뀔 일이 없었겠지만, 다행히 그는 현재의 자신을 혐오함으로써 변화를 선택하게 된다. 미리엘 주교의 용서가, 다짐이 그에게 갈등의 씨앗을 뿌렸고, 그 씨앗이 변화를 싹틔운 후 무럭무럭 자라 엄격한 양심, 보편적 인류애로 성장한 셈이다. 그 탓인지 장발장은 작품 내내 특정 정치 성향을 띄지 않는다. 그는 약자를 돕고, 악인을 설득하고, 악연으로 얽힌 자를 용서한다. 미리엘 주교의 하위 버전이랄까.   “(1권 머릿속의 폭풍) 드디어 진리를 찾았다. 나는 결론을 찾았다. 더 생각하려면 끝이 없는 일이다. 자, 이제는 그 결론에 따르자. 더는 갈등하지 말자. 이 모든 것은 타인을 위해서일 뿐 나 때문이 아니다. 나는 마들렌이다. 마들렌으로 살자. 장발장은 불행해질 것이다. 장발장은 나 아닌 다른 사람이다. 나는 그를 모른다. 절대 그를 모른다. 누군가 장발장이 되었다면 그건 그가 알아서 해결할 일이다. 나와는 상관없다. 장발장은 암흑 속에서 불행한 인생을 사는 자의 이름이다. 누군가 그 이름을 머리에 쓴들 그것은 그의 불행이다.”   신분을 감추고 마들렌이란 이름으로 한 도시의 시장까지 된 장발장은 자비에로부터 곧 벌어질 어떤 재판에 대해 듣게 된다. 도난 혐의로 잡힌 한 사람이 과거 죄수였던 장발장으로 의심(거의 확신)을 받아 곧 재판받게 될 거라고. 그러자 그는 갈등한다. 자신이 직접 가서 자백하고 그 무고한 자를 구해낼 것이냐, 아니면 이대로 그냥 살아갈 것이냐. 하지만 결론을 내지 못한다. 가야지 했다가도 또 아니야, 가만있어야지. 그러기를 여러 번.   “(1권 머릿속의 폭풍) 장발장! 언제고 네 주변의 목소리가 네게 말을 걸 거다. 너 아닌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는 소리. 그 소리가 너를 영원히 저주할 거다. 이 야비한 놈아! 너를 향한 모든 감사는 하늘에 닿기 전 모두 떨어져 내리고 하느님께 올라갈 때는 저주만이 함께할 것이다.”   그의 일생에 걸쳐 그를 가혹할 정도로 옥죄이는 게 바로 저 양심의 소리다. 미리엘 주교의 하위 버전이라 했던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미리엘 주교는 거의 성인에 가까운 인물이고, 장발장은 끊임없이 갈등한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지울 수 없는 원죄를 무시하고 그로부터 파생될 많은 것들에 고개를 돌릴 것인지 말 것인지.   “(1권 특별 입장) 그는 밤새도록 생각했다. 하루 종일 생각했다. 그는 그의 마음속에서 '아!'라는 소리만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15분쯤이 지났다. 이윽고 그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괴로운 한숨을 지으며, 두 팔을 늘어뜨린 채 다시 발길을 돌렸다. 기진맥진한 듯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마치 누군가 도망치는 그를 따라와 그를 끌고 가는 것 같았다.”   법정 앞에까지 갔다 돌아선 그의 발걸음을 결국 양심이 돌려세운다. 장발장의 양심은 미리엘 주교의 다른 모습일 수도 있겠다.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지켜보는 눈. 그래서 그렇게 끝까지 그에게 가혹했는지도 모른다.   “(2권 불행한 두 사람이 함께해 행복을 만들어내다) 싱싱하게 되살아난 가없은 늙은 마음이여! 다만 그는 쉰다섯 살이고 코제트는 여덟 살이었으므로 자신이 앞으로 평생 품게 될 모든 사랑은 이제 뭐라 표현할 수 없는 하나의 빛 속으로 슬그머니 녹아들었다. 흰빛이 두 번째로 나타난 것이다. 미리엘 주교는 그의 마음의 지평선에 미덕의 새벽빛을 가져다주었으며, 코제트는 사랑의 새벽빛을 가져다주었다.”   법은 또 한 번 그에게 가혹했다. 아니, 밑바닥으로 내팽개쳐진 많은 이들에게 가혹했다. 장발장은 다시 장발장이 되어 투옥되었으나 탈옥한다. 그리고 팡틴의 딸인 코제트를 테나르디에 부부의 손아귀에서 빼낸다. 소설은 따로 설명하지 않았지만(내가 제대로 기억 못하고 있는 걸 수도 있지만), 장발장의 이번 탈옥은 사회 밑바닥 계층을 돌볼 줄 모르는 가혹한 법에 대한 반대급부 정도로 그 정당함과 불가피함을 부여하는 듯하다.   “(2권 수도원 생활) 그는 자주 한밤중에 일어나 결백하면서도 엄혹함 아래 짓눌린 수녀들이 부르는 감사의 찬양 소리를 감동하며 들을 때가 있었다. 그리고 정당하게 벌을 받는 사람들이 하늘을 향해 고함을 지르는 것은 오직 저주하기 위해서였음을 생각하고 지난날 자신 또한 하느님을 향해 삿대질을 했던 일을 생각하면서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자비에의 추격을 피해 수도원으로 숨어 들어간 장발장과 코제트. 그는 그곳에서 또다시 자신의 과거를 뉘우치고 미리엘 주교의 숨결을 의식하게 된다. 동시에 모든 것으로부터 차단된 수도원 안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그리고 코제트를 보며 느끼는 한없는 기쁨까지.   “(4권 비밀의 집) 이 행복은 오롯이 나의 것일까? 사실은 남의 행복, 이 아이의 행복을 나 같은 늙은이가 빼앗아 내 것으로 만들려는 욕심이 아닐까?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것은 도둑질과 같은 것 아닐까? 사실 이 애는 인생이 뭐라는 것을 알 권리를 갖고 있지 않은가! 처음부터 본인의 생각은 듣지도 않고 고통에서 구한다는 단 한 가지 이유로 삶이 주는 모든 기쁨을 이 애에게서 강제로 뺏는 것, 이 애가 세상물정을 모르고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이용해 순수성만을 강요하는 것은 오히려 한 인간의 본성을 해치는 것이고 신을 모독하는 것이 아닐까. 언젠가 뒤늦게 그 모든 것을 깨닫고 수녀가 된 것을 후회하는 날, 코제트가 나를 원망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 이 마지막 생각은 매우 이기적이고 다른 무엇보다 남자답지 못한 생각이었지만, 코제트가 자신을 원망할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그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그는 수도원에서 나오기로 결심했다.”   마리우스 중심으로 서술되는 3권에서 분명 장발장과 코제트로 보이는 인물이 공원에 등장해 마리우스의 시선과 마음을 빼앗는다. 수도원에 있어야 할 그들이 어째서 속세에 나와 있을까? 그 이유를 4권에서 알게 된다. 장발장은 이제 철저히 코제트를 위한 삶을 산다. 물론 여전히 어려운 자들을 돕지만 코제트가 그의 삶의 목표이자 행복이자 모든 것이다.   “(4권 다시 그것을 넘어선 슬픔) 그래 맞아. 그럼 놈은 대체 뭘 찾으러 오는가? 사랑의 모험을 하려 하는가! 무엇을 탐내고 있는가? 사랑의 유희를 탐내는 것인가. 그럼 나는 어떻게 되는가? 나는 더없이 비참하고 불행한 인간이고, 인생 60년을 남에게 복종만 하며 보내왔고 참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참아 왔고 젊은 시절도 가 버렸고 가족도 친구도 아내도 자식도 없이 살아왔으며, 온갖 돌 위에 들판 위에 벽 위에 피 흘리며 살아왔다. 갖은 수모를 받고도 참았고 어떤 심술궂은 일을 당해도 착하게 살아왔다. 모든 것을 극복하고 정직한 사람으로 살아왔는데, 저지른 죄를 참회하고 남이 나에게 한 나쁜 짓을 용서하고 이제야 겨우 그 보답을 받고 행복해하고 있는 이때, 바라던 것을 손에 넣은 지금, 대가를 치르고 내 것으로 만든 지금. 그 모든 것이 사라지려 하는가? 나는 결국 코제트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건가? 생명을, 기쁨을, 영혼을 잃어버리는 건가? 그것도 저 바보 같은 녀석 하나가 뤽상부르 공원에 와서 얼쩡거리는 것 때문에!"   마리우스와 코제트의 사랑이 무르익어가자, 그것을 알아챈 장발장은 심하게 갈등을 겪는다. 애지중지 키운 딸을 빼앗기는 듯한 아버지의 심정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코제트는 장발장의 삶 그 자체다. 코제트를 위해 탈옥을 한 순간부터 그의 인생은 두 가지가 지배했다. 미리엘 주교로 대변되는 양심과 코제트. 양심이 삶의 방향을 정해준다면 코제트는 행복의 척도다. 행복이 없다면 그의 삶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5권 가방 속에 든 물건) 코제트와 둘이서 그 숲을 지났었다. 그때의 날씨, 낙엽진 나무들, 새들이 떠나 버린 나무들, 햇빛이 비치지 않는 하늘을 그는 기억해 냈다. 그래도 즐거웠던 한때였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장발장은 침대 위에 늘어놓은 작은 옷가지들을 하나씩 눈여겨보았다. 코제트는 이 옷들과 똑같이 조그마했었다. 커다란 인형을 팔에 안고 루이 금화를 앞치마 주머니에 넣은 채 웃고 있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손을 잡고 걸었다. 그녀에게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었다. 장발장밖에는. 그렇게 생각했을 때 그의 숭엄한 백발이 맥없이 침대 위로 떨어졌다. 그 강인한 늙은 가슴은 날카롭게 찢어졌다. 그의 얼굴은 코제트의 옷 속에 파묻히고 말았다. 만약 그때 계단을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다면 무섭게 흐느껴 우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장발장은 보편적인 잣대로 개인적인 삶을 살려 했지만, 주변 상황은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그런 게 정치고 혁명이다. 많은 걸 휩쓸 듯 쓸어가 버리는 것. 그것이 목숨이라 할지라도. 6월 혁명의 한복판에서 장발장은 마리우스의 목숨을 구해내고 그렇게 함으로써 마리우스와 코제트는 결혼할 수 있었다. 그게 코제트의 행복을 위한 길이라 여겼음에 분명하다. 결혼식을 마치고 피로연에서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온 장발장은 흐느낀다. 모든 것을 잃었으니까. 왜냐하면...   “(5권 지옥과 천국) 잠자코 있는 게 아무것도 아닌 일일까. 침묵을 지키는 게 간단한 일이겠소? 아니오, 간단하지 않소. 침묵이 거짓말이 되는 수도 있소. 그리고 나의 거짓말을, 허위를, 비열함을, 비겁함을, 배신을, 죄를, 나는 한 방울 한 방울 마시고 토해 냈다가, 다시 삼키고, 한밤중에 끝냈다가는 한낮에 다시 시작할 것이고, 또 나의 아침 인사도 거짓말이 되고, 밤 인사도 거짓말이 되어, 나는 그 거짓말 위에서 자고 그 거짓말을 빵에 발라 먹고, 그리고 코제트와 얼굴을 맞대고, 천사의 미소에 지옥에 떨어진 자의 미소로 대답하는, 가증스러운 사기꾼이 되는거요!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소?”   장발장의 양심은 가혹하게도 자신의 과거를 숨기도록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과거가 마리우스와 코제트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생각한다. 한 번 죄인은 영원한 죄인이라는, 낙인에 가까운 그런 인식은 발각되었을 경우 코제트에게 큰 짐이 될 것이고, 발각되지 않는다 해도 코제트와 그의 남편인 마리우스와 매일 집에서 마주치며 살 의도가, 용기가 그에겐 없다. 코제트가 마리우스와 결혼을 하면서 양지로 나서자 더 이상 감출 수가 없게 된 셈이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든다. 책에 대한 평가 중에 ‘장발장의 구원’이란 단어가 여기저기 등장하곤 한다. 정말 장발장은 구원받은 걸까? 사회와 법률은 끝내 그에게 가혹했고(그를 제대로 알기 전까진 마리우스조차 장발장을 멀리하려 했다), 그 자신마저도 스스로에게 가혹했다. 지극히 인간적인 인물이 숱한 고뇌와 갈등을 이겨내고 종교적 성인의 느낌을 줄 정도의 삶을 살았다. 마지막에 다가온 좌절은 그의 삶을 거의 망가뜨렸지만 최후의 순간 선물같이 도착한 코제트와 마리우스로 인해 그 좌절을 극복할 수 있었다. 해피엔딩. 그래도 ‘구원’이란 단어가 여기에 맞는 건가? 한참을 생각하다 ‘구원’이란 단어에 사회성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그 말이 맞겠구나 싶더라. 그리고 그제야, 그러니까 구원이란 단어의 속박에서 벗어나서야 <레미제라블>이 사회개혁 소설이란 말도 명확하게 이해가 됐다. 한 개인이 변화를 통해 구원을 얻는 이야기는 물론 감동적이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난 각종 불합리한 것들을 지적하고 상기시키면서 독자들에게 알리고 변화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려 4개월이 넘게 붙잡고 있던 소설이었다. 번역이 얼마나 정확하게, 작가의 문체를 얼마나 살려서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어서 단정지을 순 없겠지만 앞으로 책을 고를 때 작가 이름에 ‘빅토르 위고’란 글자를 본 순간, 멈칫할 거라 본다. 그렇다고 아예 손절할 거 같진 않다. 뮤지컬 쪽에 이 작가 소설을 원작으로 한 유명한 작품들이 꽤 있어서 궁금한 거 또한 사실이라. 하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빅토르 위고 이 양반은 안 볼란다.  

대굴대굴님

아프면 미안한 것 맞습니다

지난해 암 수술을 받고 추적관찰 중입니다. 두 사람이 하던 일을 혼자서 맡아 하고 있던 탓에 수술 후 보름 만에 불편한 몸으로 출근해서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기억 때문에 읽게 된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였는지도 모릅니다. 수술을 받았을 때는 저 역시 아파서 미안하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책을 모두 읽고 난 뒤에 역시 ‘아파서 미안’한 것이 옳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인 가구이자 페미니스트로서 ‘철인 3종 경기’를 준비할 만큼 튼튼한 몸을 자랑하던 저자가 어느 날 암 진단을 받은 뒤 ‘아픈 나’를 긍정하기 위해 분투했던 치열한 기록”이라고 출판사에서는 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만, “아픈 나를 잘 봐주세요.”라고 징징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비혼을 추구하다보니 아픈 몸을 의지할 사람이 없는 상황이라서 ‘잘 아플 권리’를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후기에 “질병을 통해 변화된 몸과 삶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아득함이 글을 쓰게 했다”라고 적어놓았습니다만, 글의 줄기를 제대로 붙들었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좌충우돌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두 매체에 썼던 글을 통합하고 새 글을 더하여 책을 꾸몄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먼저 30대에 팔레스타인에 3개월 현장 활동을 다녀온 뒤로 피로감, 현기증, 출혈, 전신 통증 등이 생겨 1년 동안 여러 병원을 돌아다녔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다는 대목에서 느낀 점입니다. 병원에서 진찰을 하고 검사를 해보면 환자의 증상을 설명할 수 있는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자도 그런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 건강검진에서 1.2cm크기의 갑상선암이 의심되므로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권고를 받고도 병원을 전전하고도 모자로 한의사와 대체요법사를 만나 식이요법을 받았고 합니다. 이 대목을 읽고서는 이 분은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의문을 모두 해소해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은 수술을 받기는 했습니다만, 대체요법사가 추천하는 식이요법을 한참동안 해본 뒤였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일본의 전문병원을 찾아 확진검사를 반복하면서 우리나라 병원의 진단절차와 비교한 것도 그리 잘한 것 같지 않습니다. 갑상선암이 예후가 좋은 편이기는 합니다만 환자에 따라서는 조기에 전이를 하는 경우도 있어서 진단이 되면 수술을 통하여 절제를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 역시 예후가 좋은 편이라는 전립선암이 의심된다는 검진결과를 받자마자 조직검사을 통해 확진하였고 병기를 정하기 위한 영상검사를 하고 수술을 받았습니다. 운이 좋아서 한 달여 만에 수술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진행이 느린 암이라고 해도 환자마다 다른 양상을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인 치료를 최대한 빨리 받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했던 것입니다.주변에서 ‘이래라 저래라’라면서 건네는 조언이 불편해서 질병을 숨기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병환은 소문을 내야 좋은 방도를 찾을 수 있다는 우리네 옛말이 틀리지 않습니다. 다만 누리망에 넘쳐나는 건강정보들 가운데 전문가가 아닌 사람의 정보는 오히려 치료에 방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입니다. ‘어느 페미니스트의 질병 관통기’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것처럼 여성의 관점에서 질병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간병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이 여성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얼마 전에 아내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보니 남편으로 보이는 보호자들이 간병하는 병실이 적지 않은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친구가 간병을 맡아 해줄 수도 있습니다만, 병원에서 요구하는 행정적 절차를 직계가족이 아니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관행을 비판하는 것도 비혼주의를 주장하는 저자의 편견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결혼을 하고도 출산을 하지 않는 젊은이들이 많아지고 있는 세태입니다. 우리나라가 몇 십 년 뒤에는 소멸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는 형편입니다. 나이든 사람은 많아지는데 젊은이들은 거꾸로 줄어들다보니 젊은이들의 사회적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기만 합니다. 그런 부담을 감당할 수 없어 결혼을 회피하는 것은 자신이 나이 들었을 때 돌봐줄 사람이 없어줄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은 내가 할 몫을 다하고 나서야 할 주장이라는 생각입니다.결론을 말씀드리면 아프면 가족에게 그리고 직장에서도 역시 미안한 것 맞습니다.

처음처럼님

지금 많이 읽고 있는 eBook
2024. 10. 11 05:16

알라딘 오디오북

무료 eBook

이달의
전자책 이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