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실내화를 신는다. 거실을 가로지른다. 방을 가로지른다. 다시 거실로 나온다. 흰 실내화를 신으면 소리 내지 않고 걸을 수 있다. 햇빛을 밟을 수 있다. 도망을 가지 않아도 된다. 앞집에 가본 적이 없다. 옆집에 들어간 적이 없다. 나는 그냥 실내화를 신고 이 집 안에 들어 있다.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다. 지금 집에 있어,라고 하니 그가 집에 온다고 한다. 집 구경을 하고 싶어, 나는 오지 말라고 한다. 집에 실내화가 있다고 털어놓는다. 밖에서 보자, 집을 비울 생각을 한다. 실외를 걸을 것이다. 다시 무표정한 가구들 사이를 돌아다닌다. 실내화와 나의 걸음이 일치한다. 흰 실내화를 신으면 잠이 든 채 걸을 수 있다. 잠 속에서 끝없이 떠다닐 수 있다. 거실에서 방으로 다시 거실로 나온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어떤 그림자가 얼핏 지나간다. 패턴 무늬가 희미해진 카펫 위로 빛이 조금 남아 있다. 빛이 뾰족하다. ―「실내화」 전문
정오의 총알. 이수명 지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