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적 자율성과 기계 지능에 대한 신화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산업화 시대 이래로, 이런 신화는 노동자와 하층계급의 역할을 신비화하기 위해 존재해왔다. 섀퍼가 배비지 시대의 자동장치 숭배를 기술하며 언급했듯이, “기계를 지능적으로 보이게 하려면 그 동력의 원천, 즉 기계를 둘러싸고 가동시키는 노동력이 비가시화되어야 했다”. (서론)
위태로운 건 과거만이 아니다. 미래를 조종하는 힘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할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 무슨 교육 같은 것에 참석하라든가. 언제까지 돈 얼마를 어느 은행으로 부치라든가. 때가 됐으니 병원에 가서 검사대 위에 누우라든가. 문자로, 전화로, 메일로 날아드는 모든 메시지는 나의 다음 일정을 나보다 먼저 알고 있다. 가끔 나는 완전히 덫에 걸린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