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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한 문장

인간이 지닌 지식의 한계에서 보았을 때, 저 뼈 안에 생명의 여정 말고 다른 의미는 또 없다. 그 여정은 생명이 품은 기회를 바꾸었고, 우연의 연속이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나름 괜찮은 여행이었다. 좀 길긴 했어도 상냥한 태양과 함께한 더없이 좋은 여행이었다. 굳이 목적을 찾으려 하지 말라. 그리고 지나온 길에 일말의 자부심을 느낄 것. 이 손을 바라보며 최초로 물에서 올라와 조약돌이 깔린 해변으로 모험을 떠났을 때의 뼈아픈 고통을 떠올려보라. _ 「1장 갈라진 틈」

광대한 여정. 로렌 아이슬리 지음, 조은영 옮김

수이 씨, 저는 수이 씨 편이에요. 골라야 한다면 저를 골라주세요, 발신해보았다. 사각형의 방 허공 어딘가를 바라보며, 마음을 보내면 그쪽에서 답장이 올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중얼거리는 나.(김화진, 「편 고르기」)

유령들 4. 최미래 외 지음

우린 밤의 도처에서 끄집어냈다, 근사한 평화 시대, 이젠 믿을 수 없는 것이 되고 만, 모든 것이 온화했던, 실상 그 어떤 것도 중요한 결과로 귀착되지 않는 대신 숱하게 많은 다른 일이 실행되고, 그럼으로써 그것들 모두가 놀랍게도 기적처럼 유쾌하게 변모하던 그때 그 시절과 제법 닮은 시간의 조각을. 그 평화롭던 시절이라니, 살아 있는 벨벳 같은….

밤 끝으로의 여행. 루이페르디낭 셀린 지음, 김예령 옮김

나는 늘 춥다. 한여름 해변의 타들어가는 햇볕 아래에서도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오한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마도 내가 한겨울 숲속에서 태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태어나 첫 몇 달을 엄마의 모피 코트에서 뜯어낸 소매 속에서 보냈다. 나는 살아남지 못했을 수 있다. 누군가에게 삶이 선물이라면 바로 내게 그렇다. 다만 과연 이 선물이 나에게 필요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통역사 다니엘 슈타인.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음, 차지원 옮김

아케르만은 언젠가 사람들이 어떤(아마도 오락적인) 영화를 보고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고 칭찬하는 것을 두고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 또는 관객이 시간의 경과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만드는 건 일종의 절도라고 말했다. “저는 사람들이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저는 그들의 삶에서 두 시간을 앗아가지 않습니다. 저는 그들이 그 시간을 온전히 경험하게 합니다.” _“갇힌 여인” 중에서

샹탈 아케르만, 갇힌 여인. 크리스틴 스몰우드 지음, 백지윤 옮김, 조혜영 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