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다른 종류의 안식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미적 형식 그 자체나 친숙함, 알고 있는 운율, 알려진 문구, 익숙한 형태의 이야기, 선율, 우리가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린 한참 뒤에도 매번 우리에게 주어지는 문구나 구절이나 문장이 주는 불변의 확신이라는 형태일 것이다. 거친 바람은 5월의 사랑스러운 새싹을 분명히 흔들어놓는다. 바람은 항상 그럴 것이다.
아트풀. 앨리 스미스 지음, 이상아 옮김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나는 혼란을 좋아하는 것 같다. 혼란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혼란밖에 모르는 것 같다. 혼란 속에서 가느다란 이해가 균열처럼 솟아나는 순간을 좋아한다. 글쎄, 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든 혼란을 가중시키는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세계를 직조하고, 세계를 포기한다. 포기라는 게 단순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혼란을 가중시키는 방식으로 포기를 첩첩이 쌓아나가는 일은 일종의 기술이 필요한 영역이기도 하다는 걸 말하고 싶다. 따라서…… 나에게 있어 글쓰기란 당연히 혼란을 가지고 노는 작업 중 하나이다. 혼란을 가지고 논다고 생각하다가 혼란에게 잡아먹히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런 작업에서 성공과 실패는 큰 의미가 없다. 실낱같은 웃음과 시시한 이해만 가끔씩 배어 나온다면 말이다.
단어 극장. 김유림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