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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한 문장

까마귀는 태양에서 나오면서 다 타 버려 까맣게 되었다고도 이야기한다. 중국에서는 검은색을 진중하다고도 여긴다. 아침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고 지는 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까마귀의 행동양식을 보면서 까마귀가 태양이나 신과 연결되었다고 보는 것 같다.

까마귀학으로의 초대. 스기타 쇼에이 지음, 이은옥 옮김

흰 실내화를 신는다. 거실을 가로지른다. 방을 가로지른다. 다시 거실로 나온다. 흰 실내화를 신으면 소리 내지 않고 걸을 수 있다. 햇빛을 밟을 수 있다. 도망을 가지 않아도 된다. 앞집에 가본 적이 없다. 옆집에 들어간 적이 없다. 나는 그냥 실내화를 신고 이 집 안에 들어 있다.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다. 지금 집에 있어,라고 하니 그가 집에 온다고 한다. 집 구경을 하고 싶어, 나는 오지 말라고 한다. 집에 실내화가 있다고 털어놓는다. 밖에서 보자, 집을 비울 생각을 한다. 실외를 걸을 것이다. 다시 무표정한 가구들 사이를 돌아다닌다. 실내화와 나의 걸음이 일치한다. 흰 실내화를 신으면 잠이 든 채 걸을 수 있다. 잠 속에서 끝없이 떠다닐 수 있다. 거실에서 방으로 다시 거실로 나온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어떤 그림자가 얼핏 지나간다. 패턴 무늬가 희미해진 카펫 위로 빛이 조금 남아 있다. 빛이 뾰족하다. ―「실내화」 전문

정오의 총알. 이수명 지음

우리가 사실은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믿어야’ 하는 이유는, 그렇지 않으면 자꾸 더 채우려고 들기 때문이다. 집 안을 잠식한 책 때문에 비명을 지르면서도 계속해서 책을 사는 내가 그렇듯. 일단 믿은 다음에야 내가 무엇을 가졌는지 파악할 수 있다는 뜻으로 그 문장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나는 일단 믿고, 그런 다음 내가 무엇을 가졌는지 헤아려 보았다. _나와 글쓰기의 관계를 둘러싼 고찰: 조지 손더스,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글쓰기 싫을 때 읽는 책. 금정연 지음

짐 크로 눈총이 상대에게 배척과 굴욕을 가할 때 그 과정이 늘 소란스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정사정없기로는 소란스럽지 않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공감의 여지는 전혀 없다. 경감의 여지도, 방면의 여지도, 주저의 여지도 없다. 당신에게 공감하기를 거부하는 눈, 또는 당신이 인간이라고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눈으로 당신을 노려보는 사람 앞에 서 있다고 상상해보라. 신체적 상해를 입는 것이나 기본권을 박탈당하는 것도 굴욕적이지만, 나에게 호감을 갖기를 거부하고 나를 중요한, 동등한 주체로 보기를 거부하겠다는 의사가 가해자의 눈에 분명히 드러나 있을 때도 굴욕적이기는 마찬가지다.

굴욕. 웨인 케스텐바움 지음, 김정아 옮김

구세계는 일정한 보호책을 전제로 했다. 그 세계에는 특정 기관들의 독립성에 대한 존중, 인권, 소수 집단의 권리, 국제적 파급 효과에 대한 고려가 있었다. 이 모든 것이 포식자들의 시대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 이 새로운 세계에서는 진행 중인 모든 과정이 끝까지, 극단적인 결과를 볼 때까지 가고야 말 것이다. 그중 어떤 과정도 어떤 방식으로든 억제되거나 통제되지 않을 것이다.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기’ 말고는 선택지가 없다. _ ‘도널드 트럼프의 귀환’

포식자들의 시간. 줄리아노 다 엠폴리 지음, 이세진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