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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한 문장

자신의 욕망이 자신을 가장 광활한 땅에서도 벗어나게 할 수 있음을 아는 그런 시인의 시를 읽고 싶은 겁니다. (…) 하지만 오로지 시(詩)만이 고동치는 별들로 가득 찬 하늘 아래 그 뜨겁고 무더운 도시에서 우리가 진짜로 하고 있었던 일을 설명할 수 있을 겁니다.

평원. 제럴드 머네인 지음, 박찬원 옮김

나는 문학계에 존재하는 바틀비증후군의 다양한 예를 이미 오래전부터 연구하고 있다. 일부 작가들이 대단한 문학 의식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정확히 말해 그런 문학 의식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결코 글쓰기를 하지 못하거나, 책 한두 권을 쓰게 된다 할지라도 결국에는 글쓰기를 포기하거나, 작품 한 편을 아무 문제 없이 쓰기 시작해 어느 정도 진척시킨 뒤, 어느 날, 느닷없이, 문학적으로 영원히 마비 상태에 빠지게 되는 부정적否定的인 충동 또는 무舞에 대한 이끌림에 관해 연구하고 있는 것이다.

바틀비와 바틀비들. 엔리께 빌라―마따스 지음, 조구호 옮김

S 기계 공장에서는 어떤 물건을 생산하는 것일까? 「쇠구슬요.」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보름에 한 번씩 거무튀튀한 물건 수십 상자가 공장 안에서 운반되어 나왔다. 이 쇠구슬은 어디에 쓰는 것일까?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억지로 대답해 보라고 을러대면 사람들은 놀란 표정으로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되물었다. 「상부에서 파견되어 온 분이신가요?」 얼른 자리를 뜨지 않으면 그들은 계속 물어 댔다. 「합리화 관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오래된 혁명 근거지의 전통을 계속 계승하고 전파해야 하는 건가요?」 그러면 상대방은 머리가 당혹감으로 가득 차버렸다. 몸을 돌려 등을 보이며 얼른 그곳을 빠져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황니가. 찬쉐 지음, 김태성 옮김

나는 늘 춥다. 한여름 해변의 타들어가는 햇볕 아래에서도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오한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마도 내가 한겨울 숲속에서 태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태어나 첫 몇 달을 엄마의 모피 코트에서 뜯어낸 소매 속에서 보냈다. 나는 살아남지 못했을 수 있다. 누군가에게 삶이 선물이라면 바로 내게 그렇다. 다만 과연 이 선물이 나에게 필요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통역사 다니엘 슈타인.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음, 차지원 옮김

현실의 제약이 최소한으로 줄어들어, 실현된-것과 실현되지-않은-것이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뒤섞인 예술, 유령이 나타나지 않으면서 한순간 현실 그 자체가 되는 예술 역시 떠올려볼 수 있을 것이다. 정말로 그런 예술이 존재한다면, 그건 바로 문학이리라.

유령들. 세사르 아이라 지음, 엄지영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