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검색
헤더배너

이 책의 한 문장

노동은 삶의 본질인가? 그런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노동이 없는 인생도 충분히 근사하며, 노동이 없는 인생이 차라리 더 근사할지도 모르겠다. 노동이 삶의 본질은 아닐지 몰라도, 그것이 삶의 현실이라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어쨌든 우린 먹고살아야 하지 않나.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그 하고 싶은 일이 달성 가능한 목표이며, 게다가 그 일이 먹고사는 문제까지 해결해 준다면 그 사람에게는 고민 같은 건 더 없을 것 같다. 잘 깔아 놓은 레일 위에 얹어 놓은 고속 열차처럼 달려갈 일이 남아 있을 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생은 사실 그러하지 못하다. 정작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며 해결해야 할 궁극적인 과제는 ‘하고 싶은 일을 찾는 일’과 동시에 ‘하고 싶은 일이 아닌 일을 견뎌 내며 그럭저럭 살아가는 일’, 두 가지인 것은 아닐까?

인생여전. 양성민 지음

첫날, 업무를 마치고 다 같이 퇴근하는 길에 실무사인 혜진이 내게 “아이들이 예쁘지 않냐”라고 물었다. 아이들이 예쁘냐고? 나는 어리둥절하며 “애들이요? 전 오늘 양배추만 봤는데요?”라고 대답하자 같이 퇴근하던 조리사, 조리실무사들이 내 말에 푸핫 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것이 내가 처음 급식실에서 일한 소감이자 기억이다. 허리를 펼 새도 없이 양배추 주기 바빴고, 청소하기 바빴는데 어떻게 아이들을 볼 수 있었겠는가? 고백하자면, 나는 급식실에서 일하는 두 달이라는 기간 동안에도 업무에 익숙해지기 급급했지, 아이들을 볼 여유는 생기지 않았다. 동료들처럼 아이들에게 먼저 말을 걸거나, 인사를 해주는 등의 일은 나로서는 사치였다. 새삼 배식도 해주며, 아이들을 챙기는 동료들의 모습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밥 짓는 여자들. 정다정 지음

한국와이퍼분회의 시간은 엮은 팔짱을 하나씩 차례로 늘려간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가까운 곳에 주의 깊게 듣는 귀가 있었고, 어려운 숫자와 법률을 풀어 설명하는 도처의 목소리가 있었다. 누군가는 기다렸고, 누군가는 돌아보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원래의 자리를 다만 믿고 지켰다. 그렇게 이어진 시간 속에서 싸움은 점점 더 넓고 따뜻한 자리를 만들어갔다. 공장이 사라진 뒤에도 관계가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이미 그 이전의 시간 속에 체온 섞인 실천이 두껍게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부의 이야기는 노조가 생기기도 전의, 한참을 거슬러 올라간 어느 시기에서 시작한다. (1부)

공장이 사라지고 남은 얼굴들. 희음 지음, 재단법인 노동존중 세상을 향한 우직한 걸음 뚜벅이 기획

시를 본격적으로 써 보겠다고 처음 마음을 먹었을 때, 나는 아무리 재능이 없는 사람이라도 열심히 노력한다면 시집 한 권 정도를 내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고, 늦더라도 대략 10년 정도를 투자하면 그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렇게 투자를 하고 나면 10년 후의 내 삶이 몹시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당시의 나는 10년 후의 나도 아니었고, 그 힘들다는 게 어떤 모습일지 상상할 능력도 없었다. 그 생각을 처음 한 지 벌써 10년이 조금 넘게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당시의 나는 우리의 삶과 생활을 이루는 데 필요한 많은 요소들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고, 문학과 예술에 대해 많은 것들을 오해하고 있었으며, 그중 일부는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를 정도로 얼토당토않은 것들도 있었다. 사실은 그런 생각들이 너무 많아서 마음이 아플 정도다.

지나가기 혹은 영원히 남아 있기. 강보원 지음

우리는 분화가 결코 완전히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특정화되지는 않는 신체, 그러나 각 세포가 다른 세포들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특정화하려 하는 장소인 신체, 많은 기관organs이 프로그램의 핵심부가 되기 위해 영구적으로 쟁투하는 곳인 신체를 상상해본다. 그러한 괴물을 상상한다면, 우리는 성장하는 것을 눈앞에서 언제든지 볼 수 있는 리바이어던의 신체에 대해 상당히 명확한 관념을 갖게 되는 셈이다.

거대한 리바이어던을 분해하기. 브뤼노 라투르·미셸 칼롱·셜리 스트럼 지음, 이희우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