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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한 문장

모든 공동체에는 ‘평균을 웃도는 성과를 내는 사람’과 ‘평균에 못 미치는 성과를 내는 사람’이 있다. 반드시 있다. 구성원 모두가 균일한 성과를 내는 집단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만들고 싶다’고 해서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실 그런 집단은 존재할 의미도 없다. 어떤 집단이든 ‘마이너 멤버’를 포함한다. 영유아, 노인, 병든 사람, 장애인 같은 이들은 집단 내에서 도움을 주기보다는 받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마이너 멤버’를 돌보는 일을 두고 ‘손해 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공동체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 모든 인간은 한때 유아였고 나중에는 노인이 된다. 언젠가는 병이 들거나 정신적 또는 육체적으로 힘들어질 확률이 높다. 따라서 집단의 모든 구성원은 시차를 두고 나타나는 ‘나의 또 다른 형태’이다. 집단에서 타인을 돕는다는 것은 ‘그랬을 나, 앞으로 그렇게 될 나, 그렇게 됐을 수도 있는 나’를 돕는 일이나 다름없기에 ‘과거의 나, 미래의 나, 평행우주 속의 나’를 기쁜 마음으로 도와야 한다. 이런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는 사람은 공동체를 이룰 수 없다.

커먼즈의 재생. 우치다 다쓰루 지음, 박동섭 옮김

“우리는 여전히, 또다시 살인적인 시대를 버티고 있습니다.” 이 짧고 부족한 서문이 작성된 시점과 실제로 한국어판이 출판될 날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무엇이 펼쳐질지는 저도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알듯이 우생학이나 국가주의는 미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제노사이드, 극우 정당의 부상, 전 세계 이주민들을 향한 악의에 찬 경멸을 우리 모두 목도하고 있습니다. 어디에 살고 있든 우리는 여전히, 또다시 살인적인 시대를 버티고 있습니다. 제가 거주하는 도시의 거리에서는 숨 막힐 듯 생생한 공포감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는 철저하게 의도된 것이지요. 사유하는 한 사람으로서, 저는 두렵습니다. 하지만 절망하지는 않습니다. 지금은 역사학자에게 분명 위안이 되는 순간은 아니지만, 저는 평생 저항을 배우며 살아온 사람입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반드시 돌아갈 것이고, 우리가 그렇게 할 것입니다. (한국어판 서문)

미국의 우생학. N. 오르도버 지음, 김현지 옮김

젊은 스토리텔러들은 세대 간 상처의 깊은 유산을 치유의 이야기 형태로 번역함으로써 과거에 미래를 선사하기로 선택했다. 요컨대, 게스트북의 목표는 젊은이들이 “담대하게 시도하도록”, 평화의 불가능한 가능성들을 향해 상상력의 과감한 도약을 하도록 힘을 실어주는 것이었다. ― 2장 이야기 환대

급진적 환대. 리처드 카니 지음, 강지하 외 옮김

아르토에게 환각의 연극은 연극 내의 한 형상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연극의 열림, 파열, 심연이었습니다. 그것은 문학의 파롤 내부에서 문학이 무엇인지를 아이러니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폭력을 통해 문학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가장 적나라한 존재로, 문학보다 훨씬 더 밑바닥에 있는 무언가로 되돌려놓는 것이었습니다. 요컨대 문학의 지고한 분신인 광기의 단순한 비명으로 되돌려놓는 것이었습니다.

광기, 언어, 문학. 미셸 푸코 지음, 오트르망 외 옮김

“사회적 성공과 승화를 권유받은 남성보다 여성들은 더 몸이다. 더 몸이기에 더욱 글쓰기이다. [……] 입을 열기 전에 만 번에 일곱 번을 곱한 만큼 입안에서 혀를 돌리고, 결국 말을 하지 않는 여자, 그 여자는 그래서 죽었든지 아니면 자기 혀와 입을 어느 누구보다 잘 안다. 지금, 나·여성은 법을 폭파할 것이다. 이제 폭발이 가능하고 불가피하다. 그리고 폭발은, 당장, 언어 안에서 일어나야 한다.”

메두사의 웃음. 엘렌 식수 지음, 이혜인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