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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한 문장

세상에 저항해야 할 이유를 꾸준히 상기시키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 프랑스에서는 모디랫이 그렇다. 그는 말한다. “오늘날 우리가 저항적이어야 할 이유는 무수히 많다. 연금 개혁, 노동법 해체, 한도 끝도 없는 임금 삭감, 수많은 간접세 신설, 부자 감세….” 그는 한편으로는 가장 첨예한 현대 사회 문제를 다루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단 하나의 충동으로 우리 문명의 기원에 대한 가장 학문적인 질문들을 다룬다. 그런 점에서도 그는 특이한 작가이다. 모디랫은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명실공히 노동자다. 프랑스 철도청(SNCF)의 자물쇠 수리공이었던 아버지와 영어 교사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빈민가인 파리 20구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때부터 문학과 역사에 관심이 컸던 그는 일찌감치 제도권 교육에서 벗어나 독학했고, 인쇄소 노동자로 사회에 발을 내디뎠지만, 곧 다양한 분야에서 화려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시집 출간에 이어 로베르토 로셀리니와 영화를 만들고, 고용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리베라시옹』 문예란을 담당했다. 1981년 첫 소설 『사회주의 공화국 만세!Vive la sociale!』를 출간한 뒤 신문사를 떠나 소설, 수필, 텔레비전 및 영화용 픽션과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였다. 그 소설은 1984년에 작가 자신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얼마나 화려한 경력을 쌓았는가가 아니다. 그가 그 다양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끝내 노동자의 세계를 떠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모디랫은 노동자를 주제로 삼는 작가가 아니라, 노동자의 세계에서 출발해 그 세계를 한 번도 배반하지 않은 작가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_<제라르 모디랫> 중

표준어 바깥에서. 박홍규 지음

밈에 대해 곱씹다 보면 찰나적으로 반짝거리는 스파크 패턴이 뇌에서 뇌로 뛰어다니며 “저요, 저요!” 하고 외치는 장면이 떠오른다. 월턴과 고잉의 편지는 이 이미지를 흥미롭게 강화했다. 이를테면 월턴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바이러스성 문장 — “저를 읽어 줘요!”와 “저를 복제해줘요!” — 으로 시작하여 금세 복잡한 변이로 이동하는데, 어르든(“저를 복제해 주면 세 가지 소원을 들어 드릴게요!”) 으르든(“저를 읽어 주지 않으면 저주를 내릴 거예요!”) 어느 쪽도 약속을 지킬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물론 월턴이 지적하듯 이것은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생존 가능성의 유일한 최종 판단 기준은 밈 풀에서의 생존이니 말이다. 사랑과 전쟁에서는 모든 것이 정당화되며 전쟁에는 생존을 위한 영원한 전투도 포함된다. 관념권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생물권 못지않게 치열하다. - <3 바이러스성 문장과 자기복제 구조에 대하여>

사고의 유희.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지음, 노승영 옮김

그들은 이를 소설이 아닌 에세이에 넣어 디테일을 보존한다. 에세이는 어떻게 그런 보존이 가능한가? 그 디테일의 보존이 에세이의 목적이며 이를 방해할 어떤 규칙도 없기 때문이다. 즉 에세이는 문학으로 취급되고 있는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경험의 문학화를 제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만일 운 좋게도 작가가 어떤 경험을 디테일 손상 없이 소설에 집어넣는 데 성공했다고 하자.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 등장인물의 경험으로 묘사된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본래의 경험과는 다른 맥락을 갖게 된다.

편집자의 책읽기. 김영준 지음

인간은 멸종해 버린 다른 종을 애도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멸종에는 누가 애도를 보낼 것인가? 우리의 장례식에는 찾아올 이가 없다. 그저 우연히 지켜보고 있던 나무들과 벌레, 무심한 하늘만이 있을 뿐이다. AI 역사가가 찾아오기라도 할까? 그가 애도의 감정을 느낄지는 알 수 없지만, 제법 그럴듯한 가능성이기는 하다. 인간의 멸종은 다른 어떤 생명체도 다가와서 슬퍼하지 않는 아주 독특한 형태의 멸종이 될 것이다. 물론 애초에 인간의 멸종이 애도의 대상이 되기라도 한다면 말이다.

슬픈 행성. 도미닉 페트먼.유진 새커 지음, 해도연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