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세기 미국 단편 문학의 결산
데니스 존슨 단편집. 20세기 미국 남부 고딕 소설의 미덕을 집약했다거나, 스타일 면에서 20세기 미국 단편 문학의 결산으로 삼을 만한 작품이라는 상찬은 소설을 깊고 진하게 읽어온 눈 밝은 독자들을 위한 이정표다. 책의 만듦새 또한 눈길을 사로잡을만 한 국내 신생 출판사의 첫 번째 책.

2006년 등단 이후 한겨레문학상, 만해문학상, 이상문학상 대상 등을 연달아 수상하며 강렬한 세계관과 섬세한 감수성을 동시에 증명해온 최진영의 첫번째 소설집 『팽이』(초판 창비 2013)를 새롭게 단장해 펴낸다. 2014년 신동엽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소설집은 폭력과 결핍, 침묵과 생존의 감각을 치열하게 붙들어온 작가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간직하면서도 초창기 작품다운 패기 넘치고 강렬한 문장이 특히 매력적이다. 이러한 독보적인 색채는 단순히 이목을 끄는 것을 넘어 주류 세계 밖 약자들의 삶을 결코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담아내겠다는 간절함에 가서 닿는다. 동세대 작가 가운데도 발군이라 할 수 있는 이 감각이야말로 최진영의 서사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밝은 빛을 발하게 하는 주된 이유이다. 리마스터판에서는 문장과 작품 순서를 세심하게 다듬었지만, 서사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의 목소리는 변함없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여전히 뜨겁고, 다시 만나도 강렬한 이 이야기들은 초판 출간 당시부터 이미 많은 수를 차지했던 “이 소설가와 함께 인생을 늙어갈 거라고 자랑스러워하는 젊은 독자들”(추천사, 전성태)에게 다시 한번 ‘소설의 힘’을 증명한다.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로 방사능에 노출된 소들이 모여 사는 ‘희망 목장’을 찍은 정주하의 사진 연작 <파라-다이스>와 이에 응답한 백민석과 황모과의 소설 두 편을 묶었다. 외형상 ‘사진소설(photonovel/photo-roman)’로 볼 수 있겠지만, 단순한 결합이 아닌 경합을 바랐다. 이미지와 텍스트가 충돌하면서도 서로를 보완하며 “존중하는, 그러나 치열한 대결을 펼치는” 생생한 장으로서. 『파라-다이스』는 2023년 가을, 재일조선인 작가 고故 서경식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해 12월 전해진 갑작스러운 비보와 함께 ‘서경식 기획’으로 기록될 마지막 책으로 남았다. 2011년 천재와 인재가 겹쳐 일어난 도호쿠 지방의 사태는 서경식에게 늘 ‘지금, 여기’의 문제였다. 서경식은 정주하의 후쿠시마 사진 프로젝트를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마이너리티(재일조선인과 오키나와 주민) 문제까지 연동시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전을 기획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기획자 서경식의 글은 실을 수 없게 됐지만,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나고 일주일 후에 그가 쓴 에세이 「기묘한 평온, 공황의 다른 모습」을 재수록하고 관련 글을 발췌하여 정주하의 사진과 병치하는 지면을 마련했다. ※ 누드사철 제본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