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책 <보통의 존재>부터 <순간을 믿어요>까지, 이석원 작가의 전작 에세이들이 작가 자신에 집중한 이야기였다면, 이번 신작 에세이는 '나'에서 '타인'으로 시선을 옮겨 타인의 입장이 되어보는 일, 타인의 마음을 좀 더 살피는 일들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우리를 웃기고 울리고 화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모든 일들이 타인으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에 타인이란 존재는 거의 절대적이라고 규정한다. 책에는 같은 아파트에 거주하는 노부부, 식당의 아주머니들, 가족과 친구, 영화 관람객, 경비 아저씨, 택배원 등 일상 속에서 만난 여러 '타인'이 등장한다. 작가는 그들에게 끊임없이 시선을 돌려 내 사정이 아닌 그들의 사정을 헤아리며 세심하게 고르고 고른 문장으로 써 내려간다.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작가의 모습을 마주하는 순간순간 마음에 온기가 차오른다.
실체도, 내용도 없는 혐오 호소에 귀 기울이는 사회, 그 자체로 미소지니의 현상이자 증거다. 도무지 개선은 가능할 것 같지 않고 희망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도 막막해지는 때, 정희진의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이 출간됐다. 한국 페미니즘의 교과서라고 불러도 과하지 않을 <페미니즘의 도전> 이후 18년 만이다.
많은 변화가 있었다. 여성 내부에서 페미니즘의 이해는 높아졌고 그만큼 여러 갈래의 해석들이 생겨났다. 남성 중심 사회는 여전히 낡은 채로 거센 반격을 하고 있다. 소란한 소용돌이 속에서 정희진은 현실을 날카롭게 정리하고 새로운 담론의 장을 제안한다. 늘 그렇듯 에둘러 말하는 일 없이 직진하는 그의 문장들은 통렬하다.
페미니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다면 읽기가 쉽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저자는 이 책이 "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사고를 모색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공적 영역의 의제"를 담았음을 말하며, "많은 남성들, 특히 정책 결정자들"이 읽길 권한다. 얄팍함을 무기로 세상의 진보에 저항한다는 오명을 벗고 싶은 이들이라면 이 도전에 함께하시길. <페미니즘의 도전> 이후 또다시, 지금 한국에 가장 필요한 책이 나왔다,
배우가 꿈인 인하는 연극부에 들어간다. 뛰어난 용모로 주목을 받지만 안타깝게도 연기 실력이 늘지 않아 고민이 크다. 설상가상으로 엄마의 병환으로 가장 노릇도 겸하게 된다. 동아줄이 간절한 때에 눈앞에 시간 상점이 나타났다. 앞으로 이 이야길 끌어갈 마스터, 카이는 인하의 인생을 바꿀 제안을 한다.
어린이 창작동화의 베스트셀러 <신기한 도깨비 식당>을 쓴 김용세 작가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쓴다. 독자를 잘 아는 작가는 새로운 동화에서도 어린이들이 어떤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할지 삶의 지혜를 살짝 보여준다. 전국 초등학생 사전 평가단 101명에게도 열광적인 호평을 얻었다 하니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의 문은 활짝 열렸고 이제 잘 따라가기만 하면 될 테다.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이 저마다 목표를 세우고 굳게 다짐한다. ‘올해는 작년과 다르다. 이번만큼은 반드시 이루어 내리라.’ 그렇게 세우는 새해 목표의 단골로 ‘금연’, ‘다이어트’, ‘외국어 공부’와 더불어 ‘기록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일기, 독서 기록장 등 그 형태야 다양할 테지만, 무엇을 쓰든 새로 산 두툼하고 멋진 다이어리에 매일매일 글자를 채워 넣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2주 정도는 말이다. 취향에 맞는 마스킹테이프와 스티커의 도움을 받는다면 그 시간이 좀 더 길어질 수야 있겠지만, 결국 점점 쓸 내용은 생각이 나질 않고, 꾸준히 뭔가를 쓰기는 하는데 내 삶은 그 이전과 별반 달라진 것 같지도 않다는 느낌이 든다. 노트의 공백을 채우는 일이 점점 버거운 숙제처럼 느껴지다 보면, 어느새 새해의 다짐은 잊힌다.
전작 <거인의 노트>로 수많은 사람에게 기록의 중요성을 일깨운 김익한 교수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독자와 활발히 소통하는 와중에 같은 질문을 계속 듣는다고 한다. “매일 열심히 기록을 하는데 왜 저는 성과가 나오지 않을까요?” 김 교수의 답은 명확하다. “무작정 쓰는 기록은 낙서에 불과하다.” 그는 기록의 핵심은 ‘생각’과 ‘실행’에 있다고 말한다. ‘생각이 선행된 기록’, ‘실행으로 이어지는 기록’만이 성장과 변화를 이루는 트리거가 될 수 있으며, 기록이 트리거가 될 때, 우리는 생각하는 삶을 지속할 수 있고, 결국 생각하는 대로 살게 된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책에는 일상 기록 방법을 하루, 일주일, 한 달 기점으로 체계화해 설명하는 등 기록을 생각의 도구로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방법을 상세히 소개한다. “일상 기록만이 오늘의 경험을 내일의 지식으로 만든다.”는 저자의 말을 등대 삼아, 다시 한번 ‘기록하기’에 도전해 본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나의 출발점이자 일종의 문학적 영웅"이라 칭한 스콧 피츠제럴드. <어느 작가의 오후>에 실린 그의 후기 작품들은 <위대한 개츠비> 속의 들뜨고 흥청거리는 공기를 풍기지 않는다. 1920년대 뉴욕의 찬란한 호황기를 대표하며 절정에 달한 피츠제럴드의 명성은 대공황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서 서서히 잊혔다. 성대한 파티의 뒤안길에서 그는 "인생이 낭만적인 것이라는 믿음이야말로 너무 이른 시기에 거둔 성공의 대가이다."라고 쓸쓸히 읊조린다. 황폐한 내면은 예전처럼 "세련되고 도시적인 연애 소설" 같은 것은 쏟아낼 수 없게 되었지만, 깊은 무의 심연을 본 자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를 갖게 되었다.
'나의 잃어버린 도시'에서 피츠제럴드는 뉴욕이라는 한 도시의 흥망성쇠에 비추어 생을 돌아본다. 뉴욕의 모든 것을 동경하며 사랑에 빠졌지만 누추한 현실과의 괴리로 고통받았던 대학 시절부터, 여전히 뉴욕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음에도 갑자기 "시대의 대변자"라는 자리에 올라 얼떨결에 맛본 달콤한 전성기, 화려한 시대의 도처가 유해한 독소로 가득 찼다는 것을 알아차릴 무렵 들려온 거대한 붕괴의 소리,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도시를 잃어버렸음을 깨닫고 작별을 고하게 되기까지.
뒤이은 '망가진 3부작'에서는 오랫동안 많은 것을 실제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좋아하는 것처럼 착각하며 살았다는 깨달음의 순간이 담겼다. 그동안 세상의 욕망을 그대로 투영한 어떤 견고한 환영에 경도되어 살고 있었음을 자각하자 엄청난 충격과 함께 그 욕망은 산산이 부서져 사라진다. 그것은 무한한 자유를 선사하지만 동시에 삶의 추진력도 앗아가버린다. "이제 하고 싶은 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걸 알지만 하고 싶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뒤의 절망. 그 기나긴 우울의 끝에서, 사람은 이런 종류의 충격에서는 결코 회복될 수 없으며 그저 다른 새로운 사람이 될 뿐이라는 인식이 찾아오고 "나는 이 새로운 인식과 더불어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이다."라는 선언으로 나아간다.
이 두 에세이를 두고 하루키는 "긴 에세이를 쓸 때 나는 언제나 이 작품들을 염두에 둔다."고 말하며 피츠제럴드의 작품에서 글쓰기의 구체적인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한다. 그렇게 하루키가 직접 기획과 편집, 해설과 일본어판 번역을 맡아 세상에 나온 <어느 작가의 오후>가 알라딘 북펀드를 통한 수많은 독자들의 뜨거운 성원 속에서 드디어 출간되었다. "피츠제럴드가 가장 암울했던 시기에 쓴 작품에서 나는 절망을 헤치고 나아가려는, 어떻게든 희미한 광명을 움켜쥐려는 긍정적인 의지와 작가로서의 강인한 본능을 보았다."라는 편집 후기가 수록작과 공명하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권력과 발언권을 가진 이들이 자신이 가진 것들을 유지하기 위해 약자를 탄압하는 모습을 최근 너무 자주 목격했다. 책의 방향과 결을 예상하고 읽었음에도 왠지 낯설고 새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지금 한국 사회라는 현실적 배경 때문인 것 같다. 공부의 목적에 인간을 두고, 인간이 소외되는 학문의 한계를 정확히 인지하는 김승섭의 이 책엔 문장마다 합리와 정의가 흐르고 있어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이후 6년, 김승섭의 연구는 여전히 고통의 곁에 머문다.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보이지 않는 고통, 수치, 차별을 그는 수치화하고 가시화하여 세상에 던진다. 지식이, 학문이 돈과 시간을 가진 자들을 위해 복무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는 지식의 책임을, 공부의 목적을, 공동체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끈질기게 묻는다.
책은 데이터와 논리로 촘촘한 근거를 갖췄지만 대중 교양서로서 어려움 없이 읽힌다. 타인의 삶과 고통에 관한 학문적 지식이 최대한 널리 퍼지길 원하는 저자의 의도이리라 짐작한다. 따뜻하고 정확하고 곧은 책, 우리의 더 인간다운 삶에 대한 염원을 담은 연말 선물로 제격일 것 같다.
공자의 제자이자 유가의 도통을 이었다는 증자는 “스승의 도는 충(忠)과 서(恕)일 따름입니다.”라고 이른 바 있다. 충(忠)은 중심을 뜻하는 중(中)과 마음을 뜻하는 심(心)이 합쳐진 글자이며, 서(恕)는 같을 여(如)자와 마음 심(心)자가 합쳐진 글자이다. 충(忠)은 나를 주체로 하여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세우는 것이며, 서(恕)는 나의 마음을 다른 타인의 마음과 같이하여 남을 바르게 대하는 것이다. 나를 바로 세우지 않고는 다른 사람을 바르게 대할 수 없으며, 다른 사람을 바르게 대하는 사람은 스스로 중심이 바로 선 사람일 수밖에 없다. 나에게서 비롯한 충(忠)이 발현되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서(恕)로 완성한다. 나와 타인,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는 지혜는 따로 있지 않으며, 이를 꿰는 원리는 오직 하나에 있다(一以貫之).
2,500여 년 전 공자가 살던 당대의 중국은 주나라 천자의 권위가 훼손되고 나라와 나라 사이, 왕과 신하 사이, 백성과 백성 사이에 끊임없는 다툼과 분쟁이 일어나고 사람 간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위기의 시대였다. 이러한 시기에 공자는 지위 여하를 막론하고 자신과 뜻을 함께하기로 한 제자들을 모아 ‘사람다움’에 대한 가르침을 전했다. 그리고 그가 사람들과 만나며 남긴 대화는 <논어>라는 위대한 고전으로 남아 지금까지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다. ‘다산의 마지막’ 시리즈로 동양고전 읽기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저자 조윤제가 그동안 수없이 언급되고 또 해석되어 왔음에도 <논어>를 다시 꺼내든 이유는, 사람으로 인해 불안하고 사람 때문에 고민인 이들에게 공자처럼 매일 성찰하며 배우는 삶이야말로 사람답게 살기 위한 첩경임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이다.
크리스마스는 일 년 중 설레는 날로 다섯 손가락에 꼽힐 것이다. 아마 설날과 어린이날, 방학식이 그러지 않을까. 소풍 가기 전날 잠을 뒤척이는 것처럼 12월 24일에는 산타가 어떤 선물을 줄지 기대하며 잠이 든다. 이때의 설렘은 변치 않을 감정 중 하나다. 하지만 산타의 유래가 기독교 성인인 성 니콜라오스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다양한 종교가 존재하는 현재에 12월만 되면 크리스마스와 산타를 당연히 여기는 건 그가 주변 가난한 자와 어린이들에게 베푼 선행을 기억하기 위해서 일 테다.
공교롭게도 크리스마스가 생일인 산타의 아들 실버는 늘 외로운 생일을 보내야 했다. 부모님이 전 세계의 아이들을 위한 선물을 준비하고 배달하는 사이, 실버의 외로움은 점점 커졌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산타가 아닌 케이팝을 부르는 아이돌 스타를 꿈꾸는 실버. 대형 기획사의 오디션을 보기 위해 서울에 온 실버는 자신이 저지른 사건으로 산타 마을을 없애 버릴 위기에 빠트린다. 악으로 가득 차버린 세상, 믿음과 사랑, 희망이 사라진 산타 마을과 세상을 지켜낼 수 있을까? 크리스마스를 사랑하는 여러분 만이 알 수 있다. 2023 황금도깨비상 대상 수상작.
프랑스의 세계적인 철학자 브뤼노 라투르는 서구 근대성이 오늘날의 거대한 문제들을 만들었다고 주장해왔다. 그에 따르면 서구 근대인은 자연과 사회, 자신과 타자, 객체와 주체를 나누는 잘못된 이분법의 좌표계로 세상을 재단해왔고 그 결과 정치는 극한 갈등의 상황으로, 전 지구적 생태는 위기의 상태로 치달았다. 근대성은 잘못된 설계였을 뿐 아니라 애초에 우리 스스로도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었다는 도발적 비판이 그를 세계에 알린 문제의식이다.
이 책에서는 그의 전작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근대의 이분법적 세계관을 벗어나 세계의 다원성을 복원하려는 시도를 한다. 그는 '과학'과 '경제' 앞에 다른 가치들이 무릎 꿇게 되는 범주 오류에 주목하고 근대적 가치와 제도들을 탐구해나간다. 부차적으로 치부되어온 비근대적 가치들의 본래적 가치를 어떻게 복원할 것이며, 근대성의 작위적 이분법으로 인해 끊어졌던 연결들은 어떻게 소통할 수 있는가. 그리하여 지속 불가능성이 입증된 서구 근대성의 삶의 형태는 어떤 방식으로 재설계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이 책을 꿰뚫는 핵심 주제다. 서구 근대성이 낳은 온갖 문제의 근본 원인을 파헤치고 그 해법과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브뤼노 라투르의 사상을 집대성한 대작이다.
숲의 어린 나무들을 키우는 어머니 나무가 있다면 어떨까. 이 따뜻한 동화 같은 이야기를 실증적으로 밝혀낸 이가 있다. 하나의 숲을 구성하는 모든 나무들이 땅속 경로 체계로 연결되어, 화학적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인지하고, 서로 소통하고, 서로에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마치 인간이 아이를 기르는 것처럼 오래된 나무들은 어린 나무들을 양육하고 음식과 물을 주며, 어떤 묘목이 자신의 친족인지 아닌지 구별한다. 이러한 숲속 상호작용의 중심에는 '어머니 나무'가 자리한다. 숲에서 가장 큰 나무가 보인다면 그 나무가 바로 어머니 나무이다.
어머니 나무는 생의 마지막 날을 예감하면, 급변하는 환경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생존해야 할지, 무엇이 득이 되고 해가 되는지 등 그간 축적한 방대한 지혜를 친족과 후손 나무들에게 대대로 이어지도록 전파한다. 게다가 나무들은 인간의 신경 전달 물질과 같은 화학 물질을 사용하여 이런 비밀스러운 대화를 이어간다. '우드 와이드 웹'이라 불리는 이 생명의 네트워크를 발견한 삼림 과학자 수잔 시마드의 연구는 "찰스 다윈의 발견에 비견되는 혁명적인 연구"라 불리며 과학계는 물론 문화와 사상 측면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고, 특히 영화 '아바타'의 세계관에 핵심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인간의 짧은 인식으로 미처 다 알지 못했던 숲의 아름답고 경이로운 세계를 만나보자.
스프레드시트의 빈 셀에 ‘0’으로 시작하는 숫자를 넣는 작업을 하다 보면 맨 앞자리 숫자 0이 입력되지 않은 것을 뒤늦게 발견하고 귀찮은 수정작업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대한민국 휴대전화 번호는 왜 하필 010으로 시작하는가에 대해 특정할 수 없는 누군가에게 불평불만을 토하며 수정작업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제 더 긴장이 필요한 시대가 오고 있다. 바야흐로 주민등록 번호가 00으로 시작하는 2000년대 출생자들이 사회에 진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은 정부 취업 보조금을 지급하기 위해 인턴사원들의 주민등록번호를 엑셀에 기재하다가 오류를 의심하는 한 스타트업 대표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렇다. 이제 2000년생이 온다.
<90년생이 온다>에서 ‘공무원을 갈망하고, 호구가 되기를 거부하는 낯선 존재’인 90년생들에 대한 위트 있는 통찰로 주목받았던 임홍택이 ‘초합리, 초개인, 초자율의 탈회사형 AI 인간’ 2000년생에 대해 말한다. 저자는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세대론을 ‘세대 팔이’라며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우려하는 입장, 그리고 새로운 세대에 대한 제대로 된 관심 없이 ‘요즘 것들’을 그럴듯하게 표현하기 위해 ‘MZ’를 무분별하게 남발하는 부류 양쪽에게 말한다. “측정하지 않으면 관리할 수 없으며, 관리할 수 없으면 개선시킬 수도 없다.”는 피터 드러커의 말처럼, 지금 한국의 2020년대를 설명하고, 그 사회에 진출하는 사람들 앞에 놓인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세대를 나눠서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가 유용 할 수 있다고. 그리고 중요한 것은 한 세대의 범위나 이름이 아니고 제대로 된 관심이라고. 어느 시대에, 어떤 세대라도, 혼자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전문 번역가로서뿐만 아니라, 에세이스트로서도 사랑받고 있는 권남희 작가가 새 작품으로 다시 돌아왔다. 반려견 '나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딸 정하마저 독립하게 되면서 우울증을 앓게 된 작가. 집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않는 생활이 계속되자 작가는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어서 노트북을 들고 스타벅스를 찾았다. 그렇게 시작된 스타벅스에서의 특별한 날들이 모여 한 권의 일기로 완성되었다.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에만 몰두해오던 작가에게 스타벅스란 곳은 어느 때고 쉽게 찾을 수 있는 평범한 카페가 아닌, 약간의 용기와 의지를 장착해야 찾을 수 있는, 사람과 세상을 만나는 공간이다. 그 공간에서 번역과 글쓰기 작업을 하기도 하고, 우연히 곁에 앉게 된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관찰하기도 하면서 보고 듣고 경험한 일들을 작가만의 경쾌한 필치로 썼다. 생활밀착형 작가답게 우리네 삶의 풍경을 정감 넘치게 풀어내는데, 마음 놓고 읽다가 곳곳에서 웃음 터지게 만드는 매력의 글쓰기를 이 책에서도 어김없이 보여준다.
“왜 인간은 서로에게 때로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하게 굴고, 또 때로는 더할 나위 없이 너그러워지는가?” 올리버 색스가 “우리 시대 최고의 과학 저술가”라 칭한 신경과학자 로버트 M. 새폴스키가 10년 이상 집필에 매진한 대표작 <행동>의 출간에 학계와 대중은 뜨겁게 열광했다. 인간 본성의 "특별한 잔인함"과 "희소한 이타성". 그 이상하고 독특한 양면성에 대해 답하기 위해 이 책은 신경생물학부터 뇌과학과 유전학, 사회생물학과 심리학까지 다양한 학문 분야를 넘나드는 대장정을 펼친다.
인간 행동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저자의 접근은 다음과 같다. 어떤 행동이 막 벌어졌다. 그 행동이 벌어지기 1초 전에 그 사람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전 몇 초에서 몇 분 사이 어떤 감각적 신호가 신경계를 자극했을까? 이전 몇 시간에서 며칠 사이 어떤 호르몬들이 작용하여 신경계로 하여금 그 행동을 일으키게 했을까? 이전 몇 주에서 몇 년 사이에 환경의 어떤 속성들이 그 사람의 뇌 구조와 기능을 바꾸고 호르몬들과 환경 자극에 대한 뇌의 반응성을 바꾸었을까? 뒤이어 그 사람의 유년기와 유전자 조성까지 거슬러 올라가 본 후, 개인을 뛰어넘는 요인들로 시야를 넓힌다. 문화는 그 사람이 속한 집단 사람들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을까? 어떤 생태학적 요인이 그 문화에 영향을 미쳤을까? 이렇게 계속 질문을 넓혀가며, 하나의 학문 분과로 모든 행동을 설명하려는 시도 대신 여러 분과를 함께 고려하여 범주적 사고의 고정성과 한계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그렇게 도출된 폭넓은 이해를 기반으로, 책은 인간의 폭력과 연민, 혐오와 사랑, 공격성과 감정 이입, 경쟁과 협동, 도덕성과 자유의지에 관한 가장 모순적이고도 근원적인 질문들에 하나하나 답한다. 과학 저널 <스켑틱>의 창간자 마이클 셔머가 "모든 책꽂이와 많은 강의계획서에 들어가야 할, 인간 행동에 대한 과학적 이해에 기념비적인 공헌을 한 책"이라 추천했고, <통섭>의 저자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이야기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라 극찬한 역작이다.
<칵테일, 러브, 좀비> 조예은의 첫 연작소설. 세 편의 소설과 한 편의 작가 에세이를 더해 작가-작품-독자의 시차 없는 만남을 시도하는 '트리플' 시리즈로 새 소설이 찾아왔다. 이야기의 배경은 새빨간 달이 뜬 멸망한 세계. 2066년 6월 6일 도시가 물에 잠기며 인류는 둠스데이(doomsday)를 선포했다. '저주병'을 피해 방주 같은 '타운'에 숨어든 사람들은 저주병에 걸려 아무데나 눈이며 입이 생겨난 사람들을 흉측하게 여기고, 전염을 걱정하며 신고해 마을 밖으로 쫓아낸다. 뒤통수에 입이 생긴 순간 램은 마을에서 축출되었고, 아이들은 타운 제1규칙을 외치면서 조례를 마친다.
"얼굴이 아닌 곳에 난 이목구비를 보면 신고하라!"
이교의 친구의 램의 뒤통수에 돋아난 입과 이교가 숨긴 것에 관한 <꿰맨 눈의 마을>, 마을 바깥으로 쫓겨나는 이들에게 마을이 선물하는 독이 든 미트파이의 기원에 관한 <히노의 파이>, 죽음을 결심하고 마을 바깥에서 미트파이를 베어문 램이 마주한 새로운 세계 <램>. 세 편의 이야기에 '어떤 가짜는 진짜보다 영원하다'(178쪽)는 조예은의 에세이 속 한 문장을 더해 읽으면 다르다는 이유로 선을 긋는 이 세상의 현실보다 소설 속의 용기가 오히려 진실되게 느껴질 것이다. 우리 세상의 모든 '괴물'들을 향해 손을 내미는 조예은식 모험담으로 초대한다.
'오래된 악몽에서 깨어나면 강철과 같은 굳건한 팬티가 왕국을 구해 내리라.'라는 옛 예언으로 인해 팬티를 신성시하는 드로즈 왕국. 알 수 없는 이유로 겨울이 길어지자 백성들은 시름에 잠기고 왕자 로키도 고민에 빠진다. 이 겨울을 무슨 수로 끝낼 수 있을 것인가? 작열하는 여름 태양 아래, 팬티만 걸치고 물에 풍덩 뛰어들고 싶은데 말이다. 겨울 마녀가 겨울잠에 들지 못해 봄이 오지 않음을 알게 된 로키는 겨울 마녀를 찾아가기로 한다. 왕국과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예기치 못한 소동에 휘말리고 원치 않는 동료들과 먼 길을 떠나는데... .
<코드네임> 시리즈를 통해 첩보 판타지를 펼쳐 낸 강경수 작가가 이번엔 실크거미 팬티 세 장을 입은 버릇없고 이기적인 왕자 로키와 친구들 이야기로 돌아왔다. 겨울 마녀부터 다크/하이 엘프까지... 낯선 이야기의 대륙으로 독자들을 초대할 것이다. 너 내 동료가 되라!
2022년 11월 출간 직후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된 단행본 <망그러진 만화>가 더 탄탄해진 이야기로 돌아왔다. 뿐만 아니라, 귀여운 망그러진 곰과 매일매일을 기록할 수 있는 데일리 북 <망그러진 하루>가 함께 출간되어 '읽는 즐거움, 기록하는 즐거움'을 동시에 선사한다.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2편은 1편보다 좀 더 긴 호흡의 장편 만화 비중이 늘어났다. 또한, 미공개 장편 만화와 비하인드 스토리를 수록했다. 순수하게 우정을 나누는 망그러진 곰과 햄터, 친구들의 에피소드를 보다 보면 절로 웃음 짓게 되고, 어느 페이지를 열어도 귀여운 장면이 끊임없이 등장해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든다. 선물하기 좋은 책, 가볍게 웃으며 읽기 좋은 책을 찾고 있다면, 편안한 그림체와 유쾌한 스토리, 귀여움에 귀여움을 더한 <망그러진 만화>를 건네고 싶다.
<공중그네>의 이상하고 유쾌한 정신과 의사 이라부가 17년 만에 돌아왔다. 저마다의 스트레스로 고심하는 환자들이 여전히 그의 진료실을 두드리고 있다. 시청률에 목을 매다 자신도 알지 못한 사이 괴물이 되어버린 공중파 PD, 도를 넘는 타인의 행동을 보고 화가 나지만 제대로 화를 내는 법을 알지 못해 속병을 앓다 공황발작이 온 세일즈맨, 히키코모리로 살면서 초단기 주식 단타 매매로 100억 원대 자산을 소유하게 되었지만 허망함을 느끼는 청년, 평범하고 착실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갑작스런 광장공포증을 앓게 된 피아니스트, 비대면 수업 후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대학생. 각기 다른 마음의 병을 앓는 이들은 이라부의 황당무계하면서도 기발한 처방을 따르다 치유된 자신을 발견한다.
“괜찮아, 괜찮아. 적당히 해도 돼.” 범상치 않은 개성과 아이 같은 천진함으로 무장한 이라부는 입버릇처럼 말한다. 오쿠다 히데오는 세계를 휩쓴 팬데믹 이후 계속되는 사람들의 혼란과 불안을 느끼며 "닥터 이라부라면 어떻게 반응할까?" 하는 생각으로 신작을 쓰게 되었다고 밝혔다.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의 전홍진 저자가 "코로나 이후 사람들이 느끼는 우울감, 불안감 등 정신 건강의 혼란으로 다시 이라부의 등장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고 추천했고, 이기호 소설가가 "우리 사회가 병들어 있을 때 우리는 너나없이 한 명의 희극배우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 이라부와 마유미는 그 사실을 그저 정직하게 드러내주는 연출과 조연출인 셈이다."라고 말하며 함께 읽은 책.
인간은 세상을 이야기로 이해한다. 인간의 스토리텔링 본성에 대해 분석한 학자 조너선 갓셜은 "인간의 마음이 이야기의 공백을 혐오한다"고 말했다. 아마 그래서 우리는 타인의 고통과 삶마저도 모두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공백없는 이야기로 만들어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러나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이, 그가 처한 상황과 마음의 작용을 이해하는 것이 정말로 가능한 일일까?
저자 마리아 투마킨은 고통스러운 사건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이들과 대화하고 이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자살 생존자, 마약 중독자, 나치 집단 수용소 생존자, 홈리스, 가정 폭력 피해자... 이들의 실제 상황은 모두 이들을 향한 통념과 다르다. 책이 진행되는 동안 통념을 배반하는 고유한 서사, 혹은 실상을 배반하는 통념의 사례가 반복해서 쌓인다. 이 과정을 통해 드러나는 한 가지의 진실은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의 독창성은 이 진실을 이론으로 설명하거나 설명으로 설득하지 않고 말 그대로 '보여준다'는 데에서 나온다. 에피소드들은 친절하게 나열되지 않고 뒤죽박죽 섞여 있으며 투박하고 낯선 방식으로 서술된다. 타인의 내면을 이해하는 일의 난망함을 글의 구조로 표현했다. 손쉬운 해석을 거칠게 거부하는 책, 그렇다면 우리는 읽기를 포기해야 할까? 투마킨이 말하는 불가능엔 체념이 뒤따르지 않는다. 영원한 실패가 약속된 도전을 기어코 시도하는 것, 연대의 조건이다.
여기 한 만화 출판사의 중년 편집자가 있다. 담당하던 만화 잡지의 실패 이후 간단하지 않은 이유로 퇴사를 결심하면서 이 만화는 시작된다. 주인공인 시오자와는 퇴사 이후 필사적으로 만화와 멀어지려고 한다. 집안을 가득 채운 만화책을 몽땅 팔아치우려고 사람을 불렀지만 결국 팔지 못한 시오자와는 이전에 자신과 함께 책을 만들었던 만화가들을 하나씩 찾아가기 시작한다. 한때는 반짝반짝 빛이 났지만 이제는 퇴물이 된 사람, 만화가를 진작에 관두고 경비일을 하는 사람, 생계를 위해 그리고 싶지 않은 그림을 그리며 작가로서의 삶을 근근이 유지해가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 바로 새로운 만화 잡지를 만드는 일.
<핑퐁> <철콘 근크리트>의 작가, 만화가들의 만화가 마츠모토 타이요가 이제 만화계 대선배가 되어 그려낸 이 만화는 가히 명작이라 부를만하다. 사소한 대사 하나에도 담겨 있는 캐릭터의 생동감과 한 장면도 허투루 쓰지 않은 대가의 연출력은 정말 압도적이다. 이 만화가 대단한 건 그렇지만 만화적 기술과 완성도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 안에 깊이 담긴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 어쩌면 죽을 때까지 찾아야 할 개개인의 꿈과 열정에 대한 이상을 시답잖은 일상 속에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녹여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 앞에 서면 보다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어진다고들 한다. 그리고 이 만화를 읽으며 나는 보다 더 꿈꾸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다양한 곳에서 각자의 만화를 그려나가는 모든 작가, 편집자, 그리고 독자를 위한 책. 2023년의 막바지에 이 만화를 만난 건 정말 행운이라 할 수밖에.
큐레이션이라는 개념은 이제 미술관에만 머물지는 않는다. 130만 명의 구독자가 벅스가 큐레이션한 '에센셜essential;'의 플레이리스트를 신뢰하고, 개성있는 독립서점에 가면 눈밝은 운영자가 큐레이션한 도서 목록을 따라 눈동자가 이동한다.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운영자가 편집한 영상을 신뢰해 그의 취향을 '손민수'(웹툰 <치즈 인더 트랩>에서 유래한, 다른 이의 패션 스타일 등을 따라한다는 뜻)한다. 편집은 인플루언서만의 일이 아니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의 첫 장을 선택하고 카카오톡 프로필 레이아웃을 배치하면서도 우리는 편집을 수행한다. 잡지 에디터로 경력을 시작해 미술관, 그림책을 주제로 한 예술서를 출간했고 기업 브랜딩 영역에서도 '에디토리얼 씽킹'을 실천중인, 20년째 편집하는 사람 최혜진이 '모든 것이 다 있는 시대의 창조적 사고법'을 주제로 한 책을 펴냈다.
의미화되기 전의 '잡음' 속에서 특정 정보에 주목해서 '신호', 다시 말해 의미의 맥락을 만들어가는 작업(29쪽)이라고 저자는 에디팅을 정의한다. 재료 수집부터 연상, 범주화, 레퍼런스, 요점, 프레임, 생략 등 정보를 담고 묶고 헤아리고 쏟는 목차의 각 단계만 살펴도 일이 손에 잡히는 듯하다. 잡지, 미술, 그림책 같은 저자의 활동 분야의 구체적인 예시가 각 단계마다 제시되는데, 니키 리와 노순택 같은 취향의 바다를 오가며 영감이 솟는다. 새해엔 저자가 제시하는 단계를 따라 함께 '에디토리얼 씽킹'을 연습해보자. 구슬이 서 말이라도 편집해야 보배. 당신이 품고 있을 당신만의 보배를 기대한다.
인류 최초의 핵폭탄 개발을 위한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과학자 아버지를 둔 남매가 있다. <스텔라 마리스>는 남매 중 여동생 얼리샤의 이야기이다. 천재적인 지능을 타고난 그는 수학의 경이로움에 매혹되어 명문대 수학과 박사과정에 진학하며 공부를 계속하지만 기이한 환각을 겪으며 조현병을 진단받고 정신의학 시설에 입원한다. 그와 의사가 나눈 상담치료의 녹취록처럼 구성된 소설은 그의 내면에 숨겨진 어둠을 파헤친다. <패신저>는 그로부터 약 10년 후, 얼리샤의 오빠 보비의 이야기를 다룬다. 해저에 잠긴 유실물을 탐사하고 건져내는 인양 잠수부로 일하는 그의 삶을 뒤흔든 것은 바닷속 비행기의 잔해였다. 승객과 조종사의 시체가 함께 발견된 비행기 내부에는 블랙박스가 사라져 있었다. 그는 비행기 추락 사건 배후에 뭔가가 있다는 느낌을 받지만, 곧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쫓기게 된다.
코맥 매카시가 1980년대부터 구상해왔다고 알려지며 무성한 소문만 가득했던 이 두 작품의 정체는 2015년 한 출간 행사에서 작가의 입으로 직접 밝혀진다. 평생 노출을 극도로 꺼리며 은둔 생활을 해온 그가 작품의 등장인물을 직접 소개했다는 사실은 독자들을 흥분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2022년 연작 형식의 두 장편소설 <패신저>와 <스텔라 마리스>가 현지 출간되며 “이미 걸출한 작품 목록에 더해지는 훌륭한 신작이자 살아 있는 가장 위대한 작가로 손꼽히는 매카시의 정신이 어느 때보다 예리하다는 증거”(NPR) 등의 극찬과 함께 오랜 시간 기다려온 독자들의 기대를 완벽히 충족시키는 대작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매카시가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긴 소설이자, 그가 늘 관심을 가져온 수학과 양자역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삶과 죽음, 세계의 절대적 진리와 유한한 인간 존재 등 작가 인생 60년에 걸쳐 쌓아온 작품세계를 집대성한 작품이다.
컴퓨터는 탄생 반세기 만에 인류의 삶을 완전히 점령하여 우리가 살던 아날로그 세상을 디지털 세상으로 바꾸어놓았다. 미치오 카쿠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변화 그 이상의 혁명이 양자 세상으로의 전환에서 일어날 것이며, 우리가 디지털 시대의 종말을 목격하고 양자 시대의 서막을 현장에서 관람하는 첫 세대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 대변환의 중심에 양자컴퓨터가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 주요 테크기업과 국가 연구소들이 양자컴퓨터 개발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으며 전력을 다하고 있다. 대체 양자컴퓨터란 무엇일까. 저명한 이론물리학자이자 복잡한 과학 개념을 흥미진진하게 서술하는 과학 엔터테이너 미치오 카쿠가 양자컴퓨터의 원리와 현황부터 그 구체적인 힘과 가능성까지 명쾌하게 풀어낸다.
양자컴퓨터의 폭발적 위력은 강력한 연산 능력에서 나온다. 구글이 개발한 양자컴퓨터 '시카모어'의 메모리 처리 속도에 비하면 "기존의 컴퓨터는 거의 주판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건초더미에서 바늘 찾기'가 주특기인 양자컴퓨터는 현재 수천 건의 화학실험을 일일이 수행해야만 알 수 있는 결과들을 실시간으로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그렇게 자연재해를 예측하고 기후변화가 미칠 영향을 미리 계산하는 것은 물론, 인간의 면역체계를 통째로 해독해 암세포 등 각종 불치병의 원인을 규명할 수 있고, 비료와 광합성의 효율을 높여 식량난을 해결하거나 태양에너지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며, 나아가 우주와 생명 탄생의 비밀을 밝혀낼 수 있다고 한다. 한편 현존하는 모든 보안 코드를 뚫을 수 있어 암호 체계를 무력화시키는 등 그 명암에 대하여도 균형감 있게 서술한다. 미치오 카쿠는 “대중을 위한 책을 쓰는 목적은 사람들이 기술의 미래에 대해 제대로 알고, 합리적이며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며 "기술이 일반인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지면 도덕적 나침반이 없는 사람들이 그 기술의 방향을 결정하게 되므로 큰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한다. 이 믿음직한 안내자와 함께 가능성으로 충만한 매혹적인 양자 시대를 미리 여행해 보자.
2024년의 첫 문학상 수상자가 다가올 새해를 기대하게 한다. 시부문을<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로 김복희가, 소설 부문을 <미래의 조각>으로 정영수가 수상했다. 소설 속 목소리의 주인공, '나'는 자신이 아는 사람 중 가장 낙천적인 사람인 어머니의 자살 시도를 겪는다. 어머니는 자의로 아버지를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형을 낳고 동거를, 자신을 낳고 결혼을 한 어머니는 나무꾼에게 붙들린 선녀처럼 이곳에 붙들린 채로, 자신이 붙들리지 않은 미래를 계속해 꿈꾸었다. 자살시도에 실패한 어머니를 돌보며 '나'는 시도 전 어머니가 남긴 메모를 들추게 되는데, 이 메모에는 대학에 간 엄마, 취직을 한 엄마, 출장을 가고 세계여행을 간 엄마 등 실제로 벌어지지 않은 일이, 미래의 조각이 흩뿌려져 있다.
새해라는 미래를 기다리는 2023년의 마지막 열흘을 보내며, 정영수의 소설과 함께 우리 자신의 세계에 흩뿌려진 미래의 조각을 주워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애석하게도 대부분의 한국적인 가정들은 정영수의 소설 속 '나'와 비슷한 사연 한두개쯤은 갖고 있을 것인데 이 보편적인 이야기를 소설로 옮긴 정영수의 방식은 정영수만의 것이라, 이 소설을 읽으며 사연이 아닌 소설을 읽는 기쁨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2020년 출간한 소설집 <내일의 연인들>이후 이어질 작가의 미래의 소설을 기대하게 하는 멋진 소설이었다. 김지연, 문진영, 박지영, 백온유, 이주혜, 정선임, 정용준의 견실한 수상후보작이 함께 실렸다.
수능에서 영어 영역이 절대평가로 전환된 지 올해로 7년째를 맞았다. 절대평가 첫해는 예상대로 전년과 비교해 부쩍 쉬워지면서 변별력을 상실했고, 수능에서 '영어 영역'은 수험생의 관심에서 약간 멀어지는 듯했다. 그러다 몇 년 후 치러진 수능에서 1등급 비율의 추락은, 다시금 수험들에게 '영어 영역'의 중요성을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절대 평가 이후 영어 영역 1등급 비율 추이를 살펴보면, 난이도가 유독 들쭉날쭉했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이는 우리에게 '영어 영역' 역시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1등급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가 영어 영역을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다.
명문 대학으로 가장 빠르게 가는 영어 공부 전략 <영어 1등급, 초등 4학년에 결정된다>가 출간되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15년 동안 영어를 가르치면서 겪은 수많은 사례를 바탕으로 영어 공부 최적화 로드맵을 제시하고, 초등 영어 공부에 대한 오해들에 대해 현실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는 한편, 영어 학원을 보내지 않고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지속가능한 솔루션을 제공한다. 또 대학을 목표로 한다면 학년이 올라갈수록 영어 공부의 목표 역시 '언어 유창성'에서 '점수 획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을 만나는 순간, 여러분은 입시에서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를 전한다. "로드맵이 수능 영어 점수를 바꾼다."
왜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때 맛있는 음식을 먹을까? 왜 선물을 주고받을까? 산타가 나에게 선물을 줄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어린이들에겐 비밀이지만) 산타가 밤사이 나에게 선물을 주고 간 적은 꼭 한 번인데 정체가 누구인지는 너무나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작은 걸 갖고 싶다고 말했던 것 같다. 늘어진 양말을 머리맡에 두고 잠든 척을 하면 선물이 담겨있길 몹시도 고대했다.
크리스마스에 프라이드치킨도 아닌 눈꽃펑펑 치킨을 먹고 싶어 하는 동생을 위해 큰마음 먹고 쿠폰을 쓰려고 했지만 야멸차게도 평일에만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다운이는 혼자 섭섭함을 참아 내고 동생을 위로 한다. 시각장애인은 더 자주 넘어진다며 백만 번 넘어져도 상관없으니 썰매장에 가고 싶었던 마운이가 결국 썰매장에 못 갔을 때에도 오히려 자기 때문에 엄마가 울까봐 설움을 삼켰다.
상처 없이 성장할 수 있을까? 그것은 욕심이고 불가능한 일이다. 어린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슬픔을 자기가 대신 삼키며 앞으로 걸어간다. <오늘부터 배프! 베프!>에서 따뜻한 시선으로 동화 다운 동화가 무엇인지 알려준 지안 작가의 이 동화집에서 마주하는 어린이들은 몹시도 크다. 유난히도 추운 올해 겨울, 모든 어린이들이 따뜻하게 계절을 보낼 수 있기를.
먼 미래, 넓은 우주로 영역을 확장해 나가던 인류는 척박한 얼음 행성 '니플하임'을 개척하려 하지만 공격적인 토종 생명체 '크리퍼'들로 인해 난항을 겪는다. 행성으로 파견된 개척단에서 '미키'는 얼마든지 복제인간으로 재생시킬 수 있는 소모품 취급을 받으며 생명이 위태로운 가장 위험한 일에만 투입된다. 일곱 번째 환생한 '미키7'은 임무 중 깊은 구덩이에 빠져 상처를 입었음에도 상부는 미키8을 만드는 것이 더 편하다는 이유로 미키7의 구조를 거부한다. 미키7은 혼자 힘으로 겨우 기지로 돌아오지만, 자신의 방에서 이미 미키8이 태어난 것을 목격하고 만다.
자칫 미키7과 미키8 모두 목숨을 잃게 될 위기 속에서 둘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그리고 인류 개척단과 토종 생명체 크리퍼들 간의 대립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까. "모험 소설을 가장한 세련된 철학적 풍자다. 경박하고 우울한 유머와 교묘한 전제로 독자를 유인한 뒤 견딜 수 없는 진실을 억압하는 인간의 재능에 대한 파괴적인 통찰로 허를 찌른다."고 뉴욕 저널 오브 북스에서 추천한 소설. <미키7: 반물질의 블루스>는 2024년 개봉 예정된 봉준호 감독의 차기 영화 '미키17'의 원작 <미키7>의 뒷이야기를 그린다. 브래드 피트 제작, 워너 브러더스 지원과 로버트 패틴슨, 마크 러팔로, 틸다 스윈튼, 스티븐 연 등의 출연진이 확정되어 소설과 영화 모두 세계적 화제를 모으고 있다.
아이는 태어나고 차츰 성장하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난다.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하며 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날수록 부모의 역할은 줄어들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우리 집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양치의 경우 아이 스스로 할 줄 안다고 하더라도 하루에 한 번 정도는 아직 부모의 손을 거치고 있다. 부모와 함께 꾸준히 반복하여 단계적으로 연습된 양치 습관이 아이의 평생 구강 건강을 좌우한다는 믿음으로.
대한민국 대표 공부 멘토 이병훈의 <SKY 로드맵>이 출간되었다. 자녀를 공부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은 부모들을 위해 시기에 따라 부모가 해야 할 일을 이병훈 소장의 15년 멘토링 경험을 살려 최대한 자세하게 담았다. 예전에는 '때 되면 알아서 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지금 아이들에게는 무엇이 중요하고 왜 해야 하는지 가르쳐 줘야 한다. 아이가 15년 공부의 길에서 헤매지 않게 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효율적인 공부법과 부모의 전폭적인 지지이다. 그리고 부모가 공부 로드맵을 갖고 전체를 조망하는 것! 끝으로 저자의 말을 전한다. "공부는 아이가 하지만, 성적이 오르게 하는 환경 설정과 공부법 제시는 오로지 '부모'의 몫입니다."
궁지에 몰린 사람은 도피처를 찾는다. 도망칠 곳이 현실에 없다면 환상 속으로라도 숨어야 한다. '만 년 동안 살았다'라는 환상은 8살부터 조현병 엄마를 돌봐야 했던 저자가 만들어낸 도피처다. 조현병 엄마의 '미친' 세계와 현실의 '보통' 세계 사이를 오가는 일상을 견뎌내느라 유년기에 이미 거대한 삶의 피로를 감당해야 했던 저자는 스스로를 만 년 동안 살아온 존재로 여겼다. 나약한 사람 아이가 아니라 만 년을 산 신이기에 이런 고통쯤은 모두 견딜 수 있다고 자신을 다독였다.
그러나 그는 어쩔 수 없이 8살 아이였고, 만 년 동안 살아온 존재로 지내는 동안 유년기를 모두 잃었다. 아이가 아이로 살아야만 하는 기간을 건너 뛰어 버리면 반드시 후유증이 온다. '만 년의 아이'이기를 그만둔 뒤, 저자에겐 신체적, 정신적 문제들이 덮쳐온다.
어린 돌봄자에 관한 사회적 인식은 기특하거나 안쓰럽다는 '인상' 정도에 머무른다. 부모를 돌보는 아이가 몇 명인지, 정확한 수치조차 집계되어 있지 않다. 대책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 책은 돌봄 당사자인 저자가 직접 살아낸 삶을 선명히 보여준다. 산뜻한 문체로 덤덤히 풀어내는 도망칠 곳 없는 삶의 풍경 속에서 그는 "누구라도 좋으니 도와줘"라고 외치지만 현실에선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아빠의 아빠가 됐다>의 저자 조기현은 추천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돌봄이 한 사람의 삶을 통째로 우그러뜨리는 압력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사람으로 취급받기 위해 필요한 자격을 촘촘하게 따지는 세계에 정당성 없는 목소리들이 크게 울려 퍼진다. 그 목소리에 휩쓸려 자신도 모르는 새에 인간의 도리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앎이 있다. 이 책은 그 앎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고병권은 이 책의 글들을 모아놓고 보니 '온통 사람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가 보는 사람의 이야기는 곧 이 세계의 경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의 시선을 부지런히 따라가면 이런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내부인 지도 몰랐던 내부의 이야기, 존재하는 줄 미처 몰랐던 외부의 이야기, 특권인 줄 몰랐던 특권에 관한 이야기, 부끄러운 줄 모른 채 자행되는 잔혹행위에 관한 이야기. 그래서 읽다 보면 세계가 자꾸 뒤집힌다. 뒤집혀보니 사실 당연한 이야기다. 모두 인간을 인간으로 봐야 한다는 정언명령의 변주이기 때문이다.
고병권이 스스로를 '싸구려' 앰프라 칭하는 이유는 당사자가 아닌 자 특유의 스스로에 대한 의심, 과장과 축소에 대한 일상적 두려움, 그리고 미안함 때문이겠지만 그의 글들은 기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자가 갖춰야 할 모든 자질을 갖췄다. 거대한 세계와 오랫동안 싸워온 자가, 그 싸움의 지리멸렬함과 낮은 승률을 모두 아는 자가 싸움이 질 때마다 한 귀퉁이씩 꾸준히 벼린 날카로움, 합리성, 절절함, 우아함이 모두 이 책에 들었다. 알려주는 쪽에선 최선의 것을 준비했다. 이제 남은 일은 함께 듣고 읽고 알아가는 것이다.
"나와 함께 빅뱅 이론을 연구해주었으면 합니다. 다중우주에서 파생된 문제를 해결해야 하거든요." 스티븐 호킹의 제안으로 그의 연구실에 들어가 20년간 공동 연구를 진행한 저자 토마스 헤르토흐가 "우주에 관한 호킹의 최종 이론"을 세상에 공식적으로 발표한다. 호킹은 전작 <시간의 역사>에서 수학과 물리 법칙으로 우주의 본질을 돌파하고자 했으나 한계를 느꼈고, 이후 시간의 시작점이자 모든 물리법칙의 기원인 '빅뱅'으로 되돌아가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새로운 물리학 이론을 처음부터 다시 구축하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양자이론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된 호킹은 다중우주의 개념을 포기하고,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 모든 가능한 역사가 중첩된 채로 존재하는 양자우주론을 수용하며 우리 우주의 기원에 대한 다윈주의적 시각을 담은 새로운 우주관을 발전시켰다. 이는 물리학 법칙이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그 법칙이 지배하고 만들어간 우주와 함께 탄생한 뒤 서로 진화했다는 이론이다. 물리학 법칙이 우주를 진화시키고 다시 우주는 물리학 법칙을 진화시켰으며, 우주가 우리를 창조했듯이 우리도 우주를 창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책의 원제가 <종의 기원>의 영문 제목을 따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호킹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탐구했던 인간과 생명의 기원. 우주론의 지도를 송두리째 바꿨다고 평가받는 그의 마지막 유산을 만나보자.
이야기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 누구든 만나면 아는 이야기 조금이라도 반드시 꺼내 놓아야 한다. 화나는 이야기, 감동적인 이야기, 재밌는 이야기 뭐든 좋아 전국 팔도 돌아다니던 아이는 어느 날, 보따리에 이야기를 모으고 다니는 영감을 만난다. 영감이 어찌나 욕심이 많은지 보따리에 들어간 이야기는 절대 밖으로 내놓지 않는다. 훗날 영감이 꿍쳐 놓은 이야기들은 모양을 잃어 몇 단어만 남는다. 너덜너덜해진 이야기가 가여워 궁리하던 아이는 아예 새로 지어내기로 한다. 그 여섯 편의 새로운 이야기가 책에 담겼다.
동화작가 천효정과 화가 최미란이 <삼백이의 칠일장> 이후 10년 만에 창작 옛이야기로 또 한 번 뭉쳤다. 천효정 작가의 맛깔스러운 문장과 상상력을 넘나드는 이야기, 그리고 최미란 작가의 익살맞은 그림을 따라가다 보면 그 옛날 전기수의 입담으로 깔깔깔 웃었을 사람들의 풍경이 눈앞에 그려진다. 이야기는 재미 그 자체로 힘이 세다는 걸 다시 한 번 알려주는 동화.
인플루언서의 시대다. 사전적인 의미로 ‘영향’을 뜻하는 ‘influence’에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er'이 붙어 만들어진 이 단어는 문자 그대로 ’영향력 있는 사람’을 지칭한다. 그들은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한 인터넷 공간에서 수천에서 수만, 혹은 수십만이 넘는 많은 팔로워를 보유하며, 그들이 입는 옷, 방문한 식당, 먹는 음식, 듣는 음악, 심지어 읽는 책까지도 대중의 입에 오르며 관심을 끈다. 이들의 영향력은 한적한 골목길의 조용한 로컬 식당에 수백 미터가 넘는 대기 줄을 만들어 내고, 출판된 지 십수 년이 넘게 지난 책을 단숨에 베스트셀러로 만들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영향력은 힘이고, 행복과 성공에 이르는 길이 될 때도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영향력에 대한 전문가들은 ‘영향력의 무기’를 사용해 ‘상대를 쓰러뜨리라’고 권고한다. 비즈니스의 영역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일은 종종 교활하고 강압적인 수단, 전략과 전술을 활용해 남을 조종하는 일로 여겨진다. 하지만 대학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결정을 내리고 실제로 무엇이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한 저자는 이처럼 거래를 하려는 수법들은 일상생활에서는 대체로 효과가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그래요’라는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야 한다. 저자는 비즈니스의 영역에서 눈을 돌려 더 좋은 친구, 더 믿음직한 조언자, 더 헌신적인 배우자나 부모가 되기 위해 주고받는 영향력에 대해 말한다. 부드러운 태도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여 결국 원하는 것을 얻는 사람들은 위력으로 남을 바꾸지 않는다. influence의 어원은 라틴어 ‘influere’로, ‘흘러들다’라는 의미다. 흐르는 강물처럼 말이다.
대학 졸업 후 <뉴요커>에 취직하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보이는 뉴욕 한복판에서 치열하게 커리어를 쌓아가던 저자 패트릭 브링리. 사랑하는 친형이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깊은 무기력감과 상실감에 빠진다. 시끄러운 세상이 아닌, 아름답고 고요한 공간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 경비원이 되어 가장 단순한 일에 몰두해 보기로 한다.
이 책은 저자가 경비원으로서 보낸 10년을 회고하며 기록한 에세이지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그림, 조각, 소묘, 사진, 도자기, 퀼트, 모자이크, 판화, 장식 예술 등 넓은 스펙트럼의 작품 세계로 안내하는 한 권의 예술서로도, 사랑하는 사람을 상실한 이후 슬픔에만 갇히지 않고 서서히 앞을 향해 나아가는 한 사람의 치유서로도 읽힌다. 경비원의 ‘특권’으로 오롯이 작품을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며, 또, 각각의 사연을 지닌 동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삶과 죽음, 예술에 대해 깊이 사유해 나가는 과정이 유려하고도 지적인 문장으로 펼쳐진다. 미술관에서 보낸 시간을 통해 넓은 세상으로 다시 나아갈 힘과 용기를 얻게 된 마지막 장면을 끝으로 책장을 덮고 나면 이 책의 가치를 한 번 더 깨닫게 된다. “디테일로 가득하고, 모순적이고, 가끔은 지루하고 가끔은 숨 막히게 아름다운 일상. 우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고, 삶은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저자의 이 말이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논픽션 작가들은 어떻게 쓸까. 기자였거나 현직 기자인 저자 4인이 한국의 내러티브 논픽션 전문가 12인을 인터뷰했다. <노랑의 미로> 이문영, <고기로 태어나서> 한승태,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 희정, 셜록의 박상규 등 면면이 화려한 한국의 굵직한 이야기꾼들이다.
'논픽션'이라는 용어가 고정적이지 않은 만큼이나 이들의 글쓰기 방식과 과정, 글쓰기를 대하는 태도와 생각은 다양하다. 그래서 쓰는 방법의 공통점을 찾긴 어렵지만 대신 논픽션 쓰기에 대한 다양한 철학을 엿보는 재미가 넘친다. 저마다의 쓰는 삶에서 툭툭 나오는 성찰과 통찰의 문장들이 가볍지 않게 다가온다. 작가의 쓰기를 묻는 책은 여러 종류이지만 논픽션 작가에 한정하여 파고드는 책은 흔치 않기에 논픽션 근처를 기웃거리는 독자들에겐 크게 반가울 책이다.
산문집, 시집, 번역서, 여행기로 수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류시화 시인이 산문집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의 감동을 잇는 신작 산문집으로 돌아왔다. 시인은 그동안 여러 작품을 통해 그만의 시적 언어와 감수성, 인생관을 담아왔다. 신작 산문 42편을 품은 이번 책은 보다 깊고 넓어진 사유가 돋보인다. 그의 작품을 오랫동안 기다려온 독자들에게 특별한 선물이 되어줄 책이자,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지금 이 순간에 잘 어우러지는 책이다.
책의 얼굴과도 같은 서문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리고 이어지는 목차들은 한 줄 한 줄의 시처럼 느껴진다.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여행을 안내하고 있다, 당신도 누군가를 꽃 피어나게 할 수 있다... 류시화 시인의 글이 빛을 발하는 지점은,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 한 편 한 편이 쉽고 재밌게 읽히면서도 깊은 깨달음을 선사하는 데 있다. 이 책에 수록된 42편의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먼저 시선을 잡아끌고, 그 뒤를 이어 마음을 진동하게 하는 문장들이 곳곳에서 등장하여 몇 번이고 밑줄 긋게 만든다.
"2025년 3월 7일,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할 것입니다." 지구가 멸망하기까지 남은 시간이 단 두 달이라면 무엇을 할 것인가. 여기 자신만의 작은 꿈을 위해 운전면허를 따려고 교습소를 찾은 이가 있다. 또 홀로 성실히 출근해 그에게 운전을 가르쳐 주게 된 이가 있다. 수도와 전기가 끊긴 후 급증한 약탈과 자살로 아비규환이 된 세계에서 운전 레슨을 시작한 두 사람. 어느 날, 이들은 교습소에 주차된 연수 차량 트렁크에서 잔혹한 흔적이 남은 시신을 발견한다. "왜 이런 짓을 하지? 어차피 두 달 뒤면 온 인류가 죽을 텐데..."
이미 업무가 마비된 경찰은 적극적인 협조를 주저하고, 두 사람은 사건을 파헤칠수록 깊고도 치밀한 악의에 경악한다. 지구가 멸망하는 마당에, 사람들은 더 이상 사악한 본성을 숨기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인가. 두 사람은 남은 기간 전력을 다해 함께 범인을 찾아내기로 결심한다. 작가 아라키 아카네가 23세에 역대 최연소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해 화제를 모은 작품. 교고쿠 나츠히코가 “같은 설정으로 앞서 나온 소설들은 국내외에 많이 있지만 본작을 읽으며 ‘새로운 미스터리’를 낳으려는 기개를 느꼈다."고 추천했고, 아야츠지 유키토가 "인류 멸망을 그리는 솜씨도, 본격 미스터리로서도, 훌륭하다. 에도가와 란포 상 사상 최연소―이 작품의 주인공과 같은 23세의 새로운 재능의 등장을 기뻐하고 싶다.” 말하며 함께 읽은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