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 후 <뉴요커>에 취직하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보이는 뉴욕 한복판에서 치열하게 커리어를 쌓아가던 저자 패트릭 브링리. 사랑하는 친형이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깊은 무기력감과 상실감에 빠진다. 시끄러운 세상이 아닌, 아름답고 고요한 공간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 경비원이 되어 가장 단순한 일에 몰두해 보기로 한다.
이 책은 저자가 경비원으로서 보낸 10년을 회고하며 기록한 에세이지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그림, 조각, 소묘, 사진, 도자기, 퀼트, 모자이크, 판화, 장식 예술 등 넓은 스펙트럼의 작품 세계로 안내하는 한 권의 예술서로도, 사랑하는 사람을 상실한 이후 슬픔에만 갇히지 않고 서서히 앞을 향해 나아가는 한 사람의 치유서로도 읽힌다. 경비원의 ‘특권’으로 오롯이 작품을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며, 또, 각각의 사연을 지닌 동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삶과 죽음, 예술에 대해 깊이 사유해 나가는 과정이 유려하고도 지적인 문장으로 펼쳐진다. 미술관에서 보낸 시간을 통해 넓은 세상으로 다시 나아갈 힘과 용기를 얻게 된 마지막 장면을 끝으로 책장을 덮고 나면 이 책의 가치를 한 번 더 깨닫게 된다. “디테일로 가득하고, 모순적이고, 가끔은 지루하고 가끔은 숨 막히게 아름다운 일상. 우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고, 삶은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저자의 이 말이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 에세이 MD 송진경
이 책의 한 문장
아침은 늘 쥐 죽은 듯 고요하다. 더욱이 미술관 문을 열기까지 30분 정도 남겨두고 근무 자리에 도착하는 날이면 말을 걸어 나를 속세로 끌어내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나와 렘브란트, 나와 보티첼리, 나와 실제로 거의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이라 믿어질 만큼 강렬한 환영들뿐이다. 메트의 옛 거장 전시관이 마을이라면 주민은 거의 9천 명에 달한다(몇 년이 흐른 후 전시실 하나하나를 섭렵하면서 모두 세어본 결과 정확히는 8496명이었다. 전시관을 크게 확장한 다음에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숫자가 되었지만 여기에는 배경에 나오는 아기 천사, 투우장의 관객, 개미 크기의 곤돌라 사공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어떻게 그런 것들까지 모두 셀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면 그건 나에게 얼마나 시간이 많았는지를 실감하지 못해서다). 주민들은 596점의 그림 속에 살고 있는데 우연히도 거의 그 숫자에 맞먹는 햇수 이전에 붓으로 창조된 사람들이다.
_‘완벽한 고요가 건네는 위로’ 중에서
추천사
앞으로 방문할 모든 미술관에서 내 곁에 패트릭 브링리가 있으면 좋겠다. 다행히 이 책은 그 차선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 호프 자런 (《랩 걸》의 저자)
이 책은 미술관의 그림을 지킨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예술을 통해 제 마음의 소중한 부분을 경호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 곽아람 (『조선일보』 기자, 《어릴 적 그 책》 저자)
논픽션 작가들은 어떻게 쓸까. 기자였거나 현직 기자인 저자 4인이 한국의 내러티브 논픽션 전문가 12인을 인터뷰했다. <노랑의 미로> 이문영, <고기로 태어나서> 한승태,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 희정, 셜록의 박상규 등 면면이 화려한 한국의 굵직한 이야기꾼들이다.
'논픽션'이라는 용어가 고정적이지 않은 만큼이나 이들의 글쓰기 방식과 과정, 글쓰기를 대하는 태도와 생각은 다양하다. 그래서 쓰는 방법의 공통점을 찾긴 어렵지만 대신 논픽션 쓰기에 대한 다양한 철학을 엿보는 재미가 넘친다. 저마다의 쓰는 삶에서 툭툭 나오는 성찰과 통찰의 문장들이 가볍지 않게 다가온다. 작가의 쓰기를 묻는 책은 여러 종류이지만 논픽션 작가에 한정하여 파고드는 책은 흔치 않기에 논픽션 근처를 기웃거리는 독자들에겐 크게 반가울 책이다.
- 인문 MD 김경영
산문집, 시집, 번역서, 여행기로 수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류시화 시인이 산문집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의 감동을 잇는 신작 산문집으로 돌아왔다. 시인은 그동안 여러 작품을 통해 그만의 시적 언어와 감수성, 인생관을 담아왔다. 신작 산문 42편을 품은 이번 책은 보다 깊고 넓어진 사유가 돋보인다. 그의 작품을 오랫동안 기다려온 독자들에게 특별한 선물이 되어줄 책이자,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지금 이 순간에 잘 어우러지는 책이다.
책의 얼굴과도 같은 서문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리고 이어지는 목차들은 한 줄 한 줄의 시처럼 느껴진다.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여행을 안내하고 있다, 당신도 누군가를 꽃 피어나게 할 수 있다... 류시화 시인의 글이 빛을 발하는 지점은,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 한 편 한 편이 쉽고 재밌게 읽히면서도 깊은 깨달음을 선사하는 데 있다. 이 책에 수록된 42편의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먼저 시선을 잡아끌고, 그 뒤를 이어 마음을 진동하게 하는 문장들이 곳곳에서 등장하여 몇 번이고 밑줄 긋게 만든다.
- 에세이 MD 송진경
이 책의 한 문장
삶은 발견하는 것이다. 자신이 기대한 것이 아니라 기대하지 않았던 것을. 인생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다른 인생'이다. 그 다른 인생의 기쁨은 부스러기로 즐기는 것이 아니다.
"2025년 3월 7일,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할 것입니다." 지구가 멸망하기까지 남은 시간이 단 두 달이라면 무엇을 할 것인가. 여기 자신만의 작은 꿈을 위해 운전면허를 따려고 교습소를 찾은 이가 있다. 또 홀로 성실히 출근해 그에게 운전을 가르쳐 주게 된 이가 있다. 수도와 전기가 끊긴 후 급증한 약탈과 자살로 아비규환이 된 세계에서 운전 레슨을 시작한 두 사람. 어느 날, 이들은 교습소에 주차된 연수 차량 트렁크에서 잔혹한 흔적이 남은 시신을 발견한다. "왜 이런 짓을 하지? 어차피 두 달 뒤면 온 인류가 죽을 텐데..."
이미 업무가 마비된 경찰은 적극적인 협조를 주저하고, 두 사람은 사건을 파헤칠수록 깊고도 치밀한 악의에 경악한다. 지구가 멸망하는 마당에, 사람들은 더 이상 사악한 본성을 숨기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인가. 두 사람은 남은 기간 전력을 다해 함께 범인을 찾아내기로 결심한다. 작가 아라키 아카네가 23세에 역대 최연소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해 화제를 모은 작품. 교고쿠 나츠히코가 “같은 설정으로 앞서 나온 소설들은 국내외에 많이 있지만 본작을 읽으며 ‘새로운 미스터리’를 낳으려는 기개를 느꼈다."고 추천했고, 아야츠지 유키토가 "인류 멸망을 그리는 솜씨도, 본격 미스터리로서도, 훌륭하다. 에도가와 란포 상 사상 최연소―이 작품의 주인공과 같은 23세의 새로운 재능의 등장을 기뻐하고 싶다.” 말하며 함께 읽은 소설이다.
- 소설 MD 권벼리
이 책의 첫 문장
밤이 물러간 뒤에도 한동안 날리던 눈발이 8시가 지나서 구름 틈새로 창공이 드러나는 순간 뚝 그쳤다.
추천의 글
“아라키 아카네 작가는 23세 여성을 화자=주인공으로 이 작품만의 어프로치를 시도해 성공을 거두었다. 종말로 향하는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연속살인과 그 수사의 전개가 다이나믹하고 스피디해 질리지 않는다. 인류 멸망을 그리는 솜씨도, 본격 미스터리로서도, 훌륭하다. 에도가와 란포 상 사상 최연소―이 작품의 주인공과 같은 23세의 새로운 재능의 등장을 기뻐하고 싶다.” - 아야츠지 유키토
“같은 설정으로 앞서 나온 소설들은 국내외에 많이 있지만 본작을 읽으며 ‘새로운 미스터리’를 낳으려는 기개를 느꼈다. 『세상 끝의 살인』은 극한 상황을 비일상으로 그리지 않고, 어디까지나 시점 인물의 일상으로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종말물’이지만 읽은 뒤의 기분이 훈훈해지는 것도, 좋다.” - 교고쿠 나츠히코
“소행성 격돌로 지구 멸망이 정해져 있는 세계에서 어째선지 운전교습을 계속하고 있는 강사와 학생 주인공 2인조. 두 사람은 교습 차량에서 시체를 발견하고 전력으로 범인을 추적한다. 이것만 하더라도, 엄청나게 매혹적이다. 게다가 조사해 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가끔씩 휴대전화가 통하기 때문에 사람이 모이는 병원’이라든지, ‘사정이 있어 숨어 있는 형제’라든지, ‘미처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을 모아 만든 마을’이라든지…… 극한 상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랑스러워지는 매우 멋진 이야기였다.” - 아라이 모코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