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의 짙은 바다 위로 내리쬐는 햇살, 열정과 낭만은 여행지로서의 이탈리아를 찬양하게 하지만 이 나라의 한 겹 외피 아래엔 망가져버린 정치와 피폐해진 사회가 있다. 강력한 가부장제, 좌우를 가리지 않는 포퓰리즘 정치, 심각한 수준의 성 불평등, 기승을 부리는 극우세력. 모든 면에서 내리막길을 걷는 이탈리아 사회를 보며 저자는 절박한 위기감을 말한다. 저것이 한국의 근미래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저출생과 포퓰리즘 정치,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등 찬찬히 뜯어본 한국 사회의 여러 지표들은 이미 이탈리아와 섬뜩할 정도로 닮아있다. 한국 사회는 어쩌다 이탈리아의 전철을 밟게 되었나. 위기는 정치로부터 시작된다. 책은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을 계기로 재구성된 한국의 정치 질서를 중심으로, 이것이 어떤 자기완결적 모순으로 작동을 멈추게 되었는지 살피고 현재 진보 정당과 보수 정당들의 패착을 짚어낸다. 여러 데이터로 분석하는 한국 정치의 위기는 예리하다.
한국 정치에 대한 비관으로 시작한 책이지만 변화가 진정 불가능하다면 이 책의 의미도 없을 것이다. 저자는 진짜 정치의 복원을 강조하며 그 방법을 집요하게 살핀다. 우리는 바뀔 수 있을까. 지치고 지긋지긋해도 눈을 부릅 떠야 한다. 뻔한 미래로 달려가지 않으려면.
아이가 태어난 직후, 16~18시간 동안 계속 잠만 자는 걸 본 나는 그 모습을 신기해했다. 2~3개월이 되고 고개를 조금씩 세우더니, 5~6개월이 되자 목을 안정적으로 가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뒤집기, 앉기, 배밀이, 서기, 걷기 등 흔히 말하는 '월령별 발달 단계'를 하나씩 거치며 온전히 스스로 이동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주변에 있을 위험과 장애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아이에게서 눈을 떼진 않았지만, 내가 관여하거나 도움을 주진 않았다. 오직 스스로 배울 수 있게 되길 기다릴 뿐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커갈수록 나는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아이가 스스로 배울 기회를 빼앗고, 기다리는 여유조차 잊게 되었는데, 이는 분명 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깨어있는 부모> 이후 2년 만에 출간된 양육 실전 편. 저자는 <깨어있는 양육>을 통해 훈육으로는 절대 부모가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며, 중요한 건 훈육을 하느냐 마느냐 혹은 어떻게 훈육하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정말로 아이들과 교감하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박사는 아이가 한 행동의 결과를 통해 아이에게 깨달음을 주어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대부분의 부모들이 '벌'과 '결과'를 혼동한 채 훈육이란 이름에 기대어 아이들을 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아이의 행동이 달라지길 원한다면 표면적인 행동을 문제 삼기보다 그 행동을 일으킨 감정과 욕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하며, 여기에서 아이들과의 교감이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고 믿는다.
부모가 자연스러운 결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고 개입해야 하는 유일한 경우는 안전과 관련하여 실제적인 위험이 예상될 때뿐이며, 부모의 역할은 아이 스스로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이 설계한 방식으로 삶의 형태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응원하는 정도면 충분하다는 저자의 생각이 이 책을 통해 한국의 부모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란다. '슬기로운 초등생활' 이은경 선생님이 강력 추천했다.
만약 내가 마법사라면 하늘을 날아 집에 빨리 가고 싶다. 아니면 마셔도 마셔도 커피가 계속 차도록 컵에 마법을 걸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쏟아붓는 비를 멈추게 하고 싶고 뜨거워지는 대지의 기온을 낮추고도 싶다. 이루어지기 힘든 일이기도 하지만 마법사가 아니기에 뱉을 수 있는 말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 길을 잃고 헤매다가 마법학교를 발견한 평범한 아이가 있다. 남들은 놓치는 아주 가느다란 실과 얇은 그림자와 거미줄, 솜털과 민들레 씨앗을 알아본 덕에 가느다란 마법사가 된다.
가느다란 마법사는 무엇이냐. 가느다란 마법을 쓴다. 버려진 종잇조각과 실밥이 뭉쳐져 어쩌다 존재하게 된 먼지 뭉치의 작은 소리를 알아듣고 얇은 실과 바늘로 가방을 꿰매고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작게 빛나는 태양의 힘을 알아볼 수 있다. 남들은 쓸모없다고 말할 수 있는 작은 것들의 귀를 기울이는 마법사는 마을의 작은 소동을 해결한다.
<일주일의 학교> 김혜진 작가의 글과 모차 작가의 그림은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를 더욱 궁금하게 한다. '가나다라마바사, 아자차카타파하' 말장난에서 시작된 이토록 사랑스러운 이야기는 아주 귀해서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마음을 간질인다. 이것이 이야기의 힘이라면 언제고 믿어볼 수 있을 것 같다.
힘들지만 중요한 일과 쉽고 재미있지만 덜 중요한 일이 있다면, 이 가운데 무엇을 먼저 처리해야 할까? 힘들지만 중요한 일을 먼저 처리해야 한다고 답변하는 사람의 비중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들에게 한 가지 더 질문을 해보자. 당신은 정말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가? 머리로는 중요한 일을 먼저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지라도, 실제로는 힘들지만 중요한 일은 뒤로 미루고, 더 쉽고 재미있는 일을 선택하기가 쉽다. 저자 스콧 앨런은 우리의 마음이 쉽고 재미있는 일을 하도록 훈련되어 있으며, 이 때문에 ‘충동적인 전환’에 의해 집중을 유지하지 못하고 쉽게 흐름이 넘어가 버린다고 말한다. 그리고 다른 모든 습관과 마찬가지로 미루기 습관은 어느 한 행동을 반복하면서 시작되며, 몇 년 뒤에는 그렇게 굳어져 버리고 만다.
저자는 하기 싫은 일을 미루는 일이 인생을 잔잔하게 불행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미뤄둔 일은 늘 머릿속을 맴돌며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매 순간 마음이 불편한 상태로 살아가는 것을 피하기 위한 방법은 결국 힘든 일을 먼저 하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충동적인 전환으로 뇌의 흐름이 넘어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에 반응하는 것은 마치 조건반사와 같은 자연스러운 행동이지만, 어떤 것이 돌연 생각났다고 해서 그것에 대해 꼭 반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일을 미루게 되는 이유에 대해 알려주고, 미루는 버릇을 끊어내기 위한 22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혹시 미루는 습관이 고민이라면, 이 책을 읽는 일은 미루지 말자.
최은영은 데뷔작 <쇼코의 미소>(2016)에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쇼코를 생각하면 그 애가 나를 더이상 좋아하지 않을까봐 두려웠었다."라고 썼다. 하필 뼈도 위도 아닌 마음이 약하게 태어난 사람들, 꼭 나 같을 최은영의 애독자는 그의 문장으로 구멍난 자리를 기워가며 자랐으리라. '함께 성장해나가는 우리 세대의 소설가' 최은영이 데뷔 10년을 맞아 세번째 소설집을 엮었다.
때론 어떤 관계는 연애보다 로맨틱하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의 희원은 직장을 그만두고 늦은 나이에 간 대학에서 시간강사인 '그녀'를 알게 되었다. 영어 에세이 작문 수업을 들으며 '그녀처럼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28쪽) 생각하기도 하고, 그녀의 작고 왜소한 모습을 보며 '이상하게도 슬프고 그리운 마음'을 느끼기도 한 희원. 이 관계는 꼭 연애처럼, 서로에 대한 기대가 상처가 되어 불현듯 끝난다. 매듭이 남은 자리에서 인물들은 그렇게 사랑하고 싶었던 사람들에게 편지를 쓴다. <몫>의, 교지 편집부에서 만났다 헤어지게 된 정윤에게 희영이 쓴 메일처럼. ("그렇게 사랑하고 싶었으면서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던 거, 편지들에 답하지 않았던 거 미안해."(82쪽)) <일 년>의 정규직 심사를 앞둔 비정규직 직원 다희에게 내가 하지 못한 말 ("내가 왜 그 사람들에게 우리 이야기를 해요."(118쪽)) 처럼.
권여선은 '비슷한 것 같지만 읽을 때마다 생판 다른, 최은영은 그런 작가다.'라고 이야기했다. 우리와 함께 성장한 이 작가는 관대하지 못했던 나를, 잔인했던 나를, 제대로 소리치지 못했던 나를, 벌을 주듯 폭음하던 나를, 타인을 마음의 법정에 세운 나를 직시함과 동시에 용산 참사가 지나간 자리를, 민족 주권과 빈곤의 문제가 아닌 여성 문제를 말하는 사람을, 문간방 '식모'이던 노년의 한국여성이 홍콩의 외국인 가정부들이 머무는 창고방을 바라볼 때의 마음을 짐작해 본다. 깊은 애정에 마음을 긁힐 때의 통증을 알면서도 누추한 채로, 마음이 여린 채로, 너무 다정한 채로 살아가기로 결정한 사람들. 최은영의 소설에 의지하노라면 그 작고 연약한 사람들의 싸움을 더는 너무 슬퍼하지 않으며 바라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렸을 적 사회 시간에 배운 미국이라는 나라는 다양한 인종과 민족의 사람들이 모인 '용광로'였다. 시간이 지난 후엔 모든 것이 하나로 녹아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용광로 대신 '샐러드 볼'로 사회의 특성을 칭했는데 개개인들의 특성과 인종을 존중해주면서 잘 어울리기 때문이라고 배웠다. 교과서에서 배운 이 지식은 시간이 흐른 후 이데아임을 깨달았는데, 타인에 대한 개인의 특성과 인종을 존중해주는 사회는 아주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부푼 꿈을 안고 미국으로 이민을 간 1세대 중국인의 자손인 메이지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운영하시는 식당 '황금성'에 방학 동안 머물며 중국계 미국인의 역사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서류상 미국 국적 중국인의 아들 혹은 딸로 위장해 미국으로 오게 된 수많은 종이 아들과 종이 딸들에게 도움을 준 곳이 바로 조부모의 식당인 것을 알게 된 후 자신이 부정했던 중국인 정체성을 받아들인다. 더불어 낯선 곳에서 서로를 돕는 의미가 무엇인지도 이해하게 된다.
온 세상에 혐오가 넘쳐난다. 어린이 혐오, 노인 혐오, 인종 차별, 동성애 혐오, 여성 혐오, 종 차별... 이런 혐오 속에서도 우리가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 다정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2023년 뉴베리 아너상 수상작.
카렌 암스트롱을 세계적인 종교학자의 자리에 올려놓은 책, <신의 역사>가 25년 만에 전면개역판으로 출간됐다. 30여 년간 아마존 종교 분야의 베스트셀러에서 빠지지 않은 이 시대의 고전으로, 한국어판 절판 이후 복간만을 기다려온 독자들에겐 여름날의 선물 같은 소식이다. 이번 개역판에선 놓쳤던 오역과 유려한 글맛을 모두 잡아 기존의 번역본에서 확연한 탈바꿈을 했다.
인간 역사는 곧 신의 역사다. "인간은 언제나 자기 시대에 유용한 신을 창조해 왔다." 인간의 정신은 왜 신을 갈구하는가? 책은 고대 바빌로니아의 창조 신화에서부터 19세기 포이어바흐, 니체, 프로이트의 무신론에 이르기까지 인류사의 굵직한 신에 관한 사유들을 살핀다. 삶의 고통, 불행, 불안, 세상의 악과 종교의 관계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지금의 시대에 걸맞은 신은 어떤 모습인지, 카렌 암스트롱이 통찰 있는 탐구를 통해 강렬한 대답을 내어 놓는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는 말이 있다.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선생님, 부모님 등 대부분의 어른들은 학생의 본분을 공부라고 단언하였다. 난 별로 수긍이 가진 않았지만 반대로 의문을 가지지도 않았다. '왜?'라는 의문을 가지지도, '때문에'라는 대답도 듣지 못한 채 어른이 됐다. 그리고 내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고 나서야 다시 이 말을 떠올리게 됐다. 몇 년 전, 아이는 나에게 물었다. "공부는 왜 해야 하나요? 아빠는 회사를 다니면서 일을 하고 저는 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를 하는 건 잘 알아요. 그런데 아빠는 월급이라는 걸 받는데 전 얻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요" 난 그 질문에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의 첫 공부법 책. 이 책은 공부를 잘하기 위한 방법론에 관한 책은 아니다. 저자의 관록에 더해 그가 관찰한 리더들의 공통된 공부 방식을 토대로 공부를 위한 마음가짐, 공부에 필요한 지식과 역량이 차곡차곡 담겨 있다. 30가지 공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읽다 보면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공부가 필요하며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탐색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리고 진짜 공부란 평생에 걸쳐 일어나기에 성장이 학문 영역에 국한되어서는 안된다고 조언하며, 결국에 나중에 가서는 공부의 범위가 삶으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부가 무엇인지, 나의 공부 목적은 무엇인지, 그 결과 궁극적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등 학창 시절에 정작 필요한 고민을 했으면 좋겠다는 저자의 생각이 책 곳곳에 담겨 있다. 또 자기 자신을 키우는 공부, 내일의 성장이 기대되는 공부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진짜' 공부를 하게 된 것 같다고 말한다. 작가의 말을 빌려 아이에게 답한다. "내가 모르는 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 그 짜릿하고 달콤한 탐험을 지금 당장 시작해 보기 바랍니다."
저출생이 문제지만 동성 부부가 아이를 가지면 논란이 되고 결혼하지 않은 커플의 아이를 위한 제도적 여건은 녹록지 않다. 저출생을 걱정하는 긴박한 어조와 정치권에서 내놓는 대책의 간극은 너무 커서 자주 의아하다. 당장의 인구 절벽 앞에서도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해서' 낳는 아이만 사회적 승인을 받을 수 있는 현실. 사회가 이미 정해둔 가족 구성에 개인은 그저 끼워 맞춰져 의도된 대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현재의 제도에 대해 김지혜 교수는 '가족각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책은 가족각본의 현실과 문제를 살핀다. 한국 사회가 '며느리'에 기대하는 역할은 무엇인지, 결혼과 출산의 절대공식은 깨어져서는 안 되는 것인지, '정상가족'이 아닌 가족 구성에 대한 염려에 숨겨진 성별 분업 관념과 정상가족에 대한 집착에 숨겨진 국가권력은 무엇인지 질문하고 분석한다. 깨닫는 이에게만 오는 해방과 희망. 각본이 깨어져야 미래로 갈 수 있다. 저자의 전작 <선량한 차별주의자>에 이어 우리가 "온정적인 얼굴"로 행하는 "강력한 차별"에 대해 하나하나 짚어주는 책이다.
한때 권력의 중심부에 섰던 남자는 돌연 모든 것을 버리고 은둔 생활에 들어간다. 그의 새로운 거처는 핵 전쟁의 공포가 절정일 때 지어진 후 방치된 '핵셸터'로 늪지대에 자리하여 사회와 완벽히 차단되어 있다. 인류 멸망을 예감한 그는 여생을 "이 세상에서 가장 선량한 것"인 고래와 나무를 위한 대변자로서 살아가기로 한다. 이들과 교감하고 그 혼에 호소하며 마침내 인간 최후의 속죄를 전하기 위하여. 지적장애 진단을 받았지만 깊은 눈을 가진 그의 아들도 이곳에서 무수한 들새 소리를 듣고 생전 처음 자발적으로 말을 내뱉으며 활기를 찾는다.
명상과 자라나는 나무 관찰, 고요한 습지 풍경, 새소리로 채워진 단조롭고도 평화로운 가족의 일상은 갑작스러운 외부의 소란으로 깨어진다. 핵셸터 근처에서 경찰과 군이 보유한 총기 탈취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를 기획한 청년들은 곧 대지진이 일어나 시대가 붕괴할 것이라 예측하고 그날을 대비해 모종의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기존 질서를 일탈해 사회의 주변부에서 스스로 '자유항해단'이라 명명한 청년들의 기치와 행동은 정적과 단념뿐이던 남자의 삶을 뒤흔든다. 인류의 종말을 예감한 이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출간 당시 오에 겐자부로가 "이번 작품이 지금까지 나의 총결산"라고 한 소설을 초판 표지 그대로 다시 만난다.
연이은 폭염에 잠 못 드는 밤, 입맛은 사라진 지 오래다. 건강한 여름을 나기 위한 나의 비책이 있으니, 바로 '냉면'이다. "비냉 하나, 물냉 둘 포장이요. 혹시 견과류가 있으면 다 빼주세요." 땅콩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를 위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집에 있는 날이면 배달보다는 포장을 선호한다. 포장이 저렴하거니와 시간적으로도 더 빠른 이유다. 식물과 드라이브, 그리고 냉면을 좋아하는 작가 김지안이 한여름 무더위를 시원하게 날려 줄 냉면 잔치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노는 거라면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 아홉 살 동갑내기 세 친구, 오늘만큼은 무더위에 지쳤는지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 세 친구는 우연히 신비한 얼음의 존재를 알게 되고 이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난다. 세 아이들이 먼 길에 지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쯤, 절벽 울고 있는 고양이를 구하려다 동굴 속으로 굴러떨어지고 만다. 정신을 차린 그들 눈앞에 펼쳐진 것은 바로 냉면 폭포! 허겁지겁 냉면을 먹던 그때, 아이들 머리 위로 냉면의 주인이인 호랑이가 나타난다. 과연 세 아이들은 호랑이로부터 벗어나 신비한 얼음을 찾아 돌아갈 수 있을까?
<튤립 호텔> 김지안 작가의 신작. 작가 특유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와 중간중간 만화 형식의 컷, 기발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이야기 전개는 독자로 하여금 재미, 궁금증을 유발한다. 특히 세 아이들이 냉면을 먹고 내뱉는 내레이션은 마치 냉면을 먹는 듯한 느낌을 독자들에게 생생히 전달하는 듯하다.
'구수한 메밀 향 가득한 면발, 새콤하고 아삭한 오이절임과 무 절임, 슴슴하고 입에 촥 붙는 국물까지.
세상에 이런 맛이 또 있을까. 머리가 쨍! 턱이 덜덜! 지금이 여름이 아니라 겨울인가 싶을 만큼 시원했단다.'
<소설 만세>라는 선언(!)을 할 정도로 소설에 진심인 소설가 정용준의 짧고 작은 이야기 책. 소설집의 제목으로 선택된 작품 <저스트 키딩>의 문제의식은 그야말로 시기적절하다. 비 내리는 새벽의 편의점. 점원은 카운터 저쪽의 사람들이 손님이 아닌 강도라는 '모자'의 말을 듣는다. '주머니에 뭐 있을 것 같아요? 칼, 아닐까?'(96쪽) 이 수상한 말을 믿어야 할까? 한차례 소동 후 점원은 '모자'에게 언젠가 자신이 했던 말을 그대로 듣는 상황에 처한다. '한국은 이래서 안 돼. 몰래카메라잖아. 저스트 키딩. 외국처럼 여유 있게 웃고 넘기면 되는데.'(105쪽) 골목길에서, 쇼핑몰에서, 교회 앞에서, 주머니에 손을 넣은 사람들의 '수상함'을 경계하는 시대를 지금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라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정용준의 소설은 이런 방식으로 내 삶에 겹쳐볼 수 있는 선택지를 내놓는다.
'소설을 쓰기 어려운 게 바로 그거야. 아무리 노력해도 괴상한 삶을 따라잡을 수가 없거든.'(203쪽) 이 문장처럼 소설은 불가능하기에 겸손해진다. 도저히 들여다볼 수 없는 사람의 마음,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의 이치, 알 수 없기에 이야기는 묵묵히 계속된다. 알 수 없어 읽는 사람들의 삶에 함께 놓이면 좋을 작은 이야기와 함께 밤을 맞이할 땐 이런 문장을 기억하면 좋겠다. '이야기를 소리 내어 두 번 읽고 눈을 감으세요. 이야기가 감은 눈 위에 떠 있다고 생각하며 고요히 잠을 청하세요...' (43쪽)
"에세이를 좋아한다"고 말할 때는 조심스럽다. 이 문장은 함부로 발설되지 않아야 한다. 상대가 어떤 결의 책을 읽는 사람인지 파악을 완료한 후에, 그가 나와 비슷한 류의 에세이를 즐긴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야 슬그머니 던져볼 수 있는 말이다. 내가 고려의 대상으로 올린 적도 없는 작가의 이름들을 줄줄 읊으며 반가운 동의를 구하는 표정을 마주하지 않으려면. 에세이는 모든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방면으로 나아가는 글이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의 비평가이자 에세이스트인 저자 브라이언 딜런은 에세이가 무엇인지, 무엇까지 될 수 있는지, 걸출한 에세이스트들이 그들의 글에 무엇을 담아왔는지 말한다. 그는 에세이가 취하는 형식에 대하여, 잘 쓴 에세이들에 내재하는 원칙에 대하여, 그 자신이 사랑하는 에세이의 특징들에 대하여 쿨한 분석을 내어 놓는다. 롤랑 바르트와 수전 손택과 존 디디온을 오가는, 에세이에 관한 독특하고 흥미로운 에세이가 이어진다.
폄하되거나 오독되어 왔던 에세이라는 장르의 진가를 짚어내는 이 글들엔 어딘가 시원하고 통쾌하고 또 달달한 맛이 있다. 정확한 옹호, 뻔하지 않은 칭찬의 달달한 맛. 글쓰기에 관한 책은 잘 써야만 설득력이 있고 에세이에 관한 에세이 또한 마찬가지다. 어려운 주제를 저자만의 방식으로 잘 살려낸 책이다.
귀여운 그림체와 담백한 에세이로 두터운 팬층을 보유하고 있는 마스다 미리의 이번 신작은 도쿄에서 시작한 혼자 살이에 관한 이야기다. 스물여섯에 오사카에서 도쿄로 상경해 혼자 살이 한 지 벌써 28년째. 도쿄에서 처음 혼자 살 집을 구하던 시절부터 팬데믹 시절을 거쳐 가장 최근의 일상까지, 마스다 미리만의 위트가 돋보이는 에세이가 담겨 있다.
1인 여성 가구의 방범 대책으로 남성용 트렁크를 사서 1년 내내 베란다에 널어뒀더니 최후에는 바짝 말라 종잇장처럼 변해버린 일, 소음 문제로 윗집 사람에게 직접 불평을 말하기보다 선물 작전을 펼쳐 티타임을 가진 후 원만하게 해결된 일, 카페 아르바이트 동료와 친해져서 휴일을 맞춰 함께 놀러 다닌 일… 대체로 혼자, 때로는 누군가와 함께 하루하루를 채운 도쿄의 아기자기한 일상들이 그려진다.
라면을 먹고, 간식으로 달콤한 빵을 사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 후 집으로 향하면서 '좋은 날이다, 완벽하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 미모사 빛 저녁놀과 같은 아름다운 것을 보고 싶어하는 마음을 좋아하는 것. 무리하지 않는 어른이 되는 것. 작가가 자기만의 속도로 좋아하는 것을 찾아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흐뭇하고 즐겁다. 작가처럼 슬렁슬렁 무리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채우고 싶다는 마음도 차오른다.
연두와 푸름이는 다섯 살 차이의 남매이다. 누나 연두는 몸이 약해 어른들의 보살핌이 더 필요한 푸름이 때문에 속상하다. 엄마와 아빠는 푸름이를 잘 보살펴야 한다고만 말하지 정작 연두가 원하는 건 알지 못한다. 반면, 푸름이는 해맑은 웃음과 장난으로 무장해 온갖 곳에 정신이 팔려 있다. 여름방학 일주일 동안 시골 체험을 하러 낯선 곳에 왔으나 경로를 이탈해 수상한 마을에 들어선 연두와 푸름이는 핸드폰 없이 유유자적 시골을 즐긴다. 그 마을의 비밀을 모른 체.
<한밤중 달빛 식당> 이분희 작가의 신작 <연두와 푸름이의 기묘한 여름 캠프>는 제목 자체에서도 알 수 있듯 한여름 산골 마을에서 일어난 일들을 담았다. 동생을 미워하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면 안 되기에 부푸는 죄책감 그리고 서러운 마음 등 이 세상 첫째 아이라면 공감할 이야기가 가득하다. "먼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지 않은 모든 첫째들을 위한 시원하고 서늘한 여름날의 판타지.
운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코어 운동’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허리, 복부, 등과 같은 몸의 중심 근육, 코어 근육을 단련하는 운동을 말하는 것으로, 코어 근육은 척추 주위의 허리, 골반, 엉덩이를 연결하며 몸을 지지하고 균형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코어 강화를 위해서는 플랭크나 데드리프트, 스쿼트 같은 단순한 운동을 주로 하기 때문에 지루하고 성과가 눈에 띄지 않아 소홀히 하기 쉽다. 하지만 잘 단련된 코어 근육은 허리의 부담을 크게 줄여주어 이를 바탕으로 상·하체의 여타 근육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단련하는 기본이 된다. 특히 앉아서 보내는 시간이 많거나 자세가 좋지 않은 사람들은 코어근육이 약할 경우 크고 작은 통증이나 질환을 겪을 위험이 높아 주의해야 한다.
몸을 건강하게 다지려면 코어 근육이 단단해야 하듯 인생의 어려움과 굴곡을 잘 이겨내고 제대로 살아가려면 내 마음의 중심에 있는 ‘코어 마인드’가 단단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미국에서 정신과 의사이자 교수로 승승장구하던 지나영 교수는 한순간 찾아온 난치병으로 삶이 멈추는 듯한 큰 좌절을 겪었다. 하지만 극심한 고통과 불안 속에서도 그는 좌절을 실패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큰 어려움을 겪은 후 오히려 성장하는 외상 후 성장을 체험하였다. 그는 우리 안에 있는 뿌리 깊은 믿음인 ‘핵심 신념’을 건강하게 개선하여 심리적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의사로서 다양한 환자를 치료해 온 경험과 스스로 난치병 환자로 살면서 체득한 삶의 통찰이 담긴, ‘마음의 중심’을 단련하기 위한 데드리프트 같은 책이다.
"원자폭탄은 두려움에서 시작되었다." 나치 독일은 '우라늄 클럽'이라는 이름으로 당대 최고 석학인 하이젠베르크를 비롯한 자국의 과학자를 소집해 원자폭탄 개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고, 미국은 그에 맞서 오펜하이머와 아인슈타인, 보어를 필두로 '맨해튼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맞불을 놓았다. 공포에 사로잡힌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연합국은 나치 독일의 핵무기 개발을 어떻게든 저지하기 위해 기밀 작전을 세웠다.
이 비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과학자와 스파이로 구성된 과학 특공대인 '알소스 부대'가 조직되었다. 그 구성원은 메이저리그 야구 포수 출신 모 버그, 동생 존 F. 케네디보다 더 나은 공을 세우기 위해 애쓴 조 케네디 주니어, 작전 도중 유대인 부모를 강제 수용소에서 구출하려고 한 물리학자 새뮤얼 가우드스밋 등 실제 첩보원부터 과학자, 군인, 할리우드 신인 배우까지 매우 다양했다.
이들은 유럽 대륙 깊숙이 침투하여 정보 수집과 파괴 공작, 심지어 '우라늄 클럽' 회원 암살 작전까지 펼쳤다. <사라진 스푼>으로 주기율표에 얽힌 과학사를 재미있게 들려줬던 과학 저술가 샘 킨이 이번에는 원자폭탄을 둘러싼 방대한 사료와 연구를 토대로 그동안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이들의 활동을 발굴해 한 편의 대서사시로 소개한다. '네이처'에서 "역사상 가장 스릴 넘치는 과학사"라고 추천한 책.
전근대 동아시아 사회에 ‘거울 감(鑑)’자는 ‘역사’를 뜻하는 글자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물그릇(皿)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을 뜻하는 ‘볼 감(監)’자에 쇠 금(金)자를 합하여 청동 거울의 모습과 용도를 설명한 글자인데,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듯 역사에 현재를 비추어 교훈을 얻기를 바라는 의도가 담겨있다. 이처럼 역사를 바라보는 인간은 그 안에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지혜를 얻고, 미지의 내일을 대비하기 위한 통찰을 얻기를 기대한다. 역사를 공부하는 데에 저마다 수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으나, 그 가운데 포폄과 감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여 늘 보편적으로 기대되는 역사의 쓰임이다.
이코노미스트 홍춘욱은 “투자를 잘하려면 어떻게 공부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첫 번째는 기초적인 거시 경제 이론이며, 두 번째는 투자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답한다. 지난 세월 한국은 굵직굵직한 경제 위기를 빈번하게 겪어왔는데,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한국의 주요 자산은 경제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무너졌고, 또 어떨 때는 영영 회복되지 못할 것 같은 충격을 경험하기도 했다. 따라서 경제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며, 우리 경제가 어떤 요인에 큰 영향을 받는지 이해하는 것이 위험관리의 첫걸음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주장하는 저자는, 반세기 넘게 이어진 버블의 형성과 붕괴의 반복 속에서 역사의 사이클을 읽어낼 수 있는 통찰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남북 분단과 농지개혁에서부터 2020년 코로나 팬데믹까지, 한국 경제와 주식, 부동산의 흐름을 바꾼 주요 사건들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돈의 역사를 모두 담았다.
동물원은 굉장히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산업 혁명 이후 동물원의 규모가 커지면서 이에 따라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대중적인 동물원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동물원의 존재 의미와 가치에 대한 고민보다는 그저 야생동물을 가까이 보기 위한 인간 중심적이고 오락적인 형태로 발전해 왔다. 인간 중심적인 가치관에서 동물은 언제나 목적이 아닌 도구였고, 주체가 아닌 객체의 자리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2018년, 대전의 한 사육장에서 탈출한 퓨마 '뽀롱이' 사건을 모티브로 해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을 이야기하는 그림책. 저자는 동물원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를 '인간'과 '동물'의 처지가 역전되는 역발상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그림이 굉장히 인상적인데, 동물은 파스텔톤으로, 인간은 스케치 상태인 흰색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관람자와 피관람자의라는 역전된 관계의 위상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동물들 앞에서 '인간'을 벌거벗은 존재로 눈요깃거리이자 유희의 대상으로 그려내고 있는 듯하다. 저자는 인간은 동물들에게 분명 행복을 빚을 지고 있다며 인간과 동물의 행복한 공생을 위해 행동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동물의 입장에서 성찰한다면 가능한 일이라면서.
전작 <우리의 둥지>를 통해 지속가능한 개발과 주거 문제를 감각적으로 다뤄 호평을 받았던 작가 서유진이 이번엔 자연과 인간의 공생을 꿈꾸는 두 번째 이야기 <네가 되는 꿈>을 선보였다. 뒤바뀐 상황에서 알게 된 동물들의 고통을 한 소년의 기이한 모험을 통해 그려냄으로써 인간과 동물, 나아가 자연과 공생하는 사랑의 메시지를 전한다. 작가의 말로 끝을 맺는다. "어느 날 우연히 철창 밖으로 나왔다가 세상을 떠난 퓨마 뽀롱이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아팠고,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던 걸까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그 이야기가 이 책의 출발점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혼자 고민하기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나주에 대하여>로 인상적인 출발점에 선 김화진의 연작소설. 5월인데 열대야처럼 무더웠던 어느 봄밤 어쩌다 한 테이블에 앉게 된 친구들, 주희, 솔아, 지원, 현우는 (나중에 합류한 공룡 피망이까지) 그 자리에서 오가는 서로의 마음 씀씀이가 좋아 친구가 되었다. 각자 되고 싶은 게 되기 전까지 필요한 노력들을 알아서 하는, '되기 전 모임'을 만들어 자신이 쓴 글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던 사람들. 주희는 '그 사람들이 전부 나 같았고 그래서 좋았다'(18쪽)고 그 밤에 대해 적었다. 인과 없이 시작된 우정은 인과 없이 끝나기도 하는 법. 파들파들 물장구를 치던 지느러미가 멈추고, 움직임이 멈춘 자리에 이제 마음만 남았다. '나는 그 친구를 잃지 않으리라고 과신했다. 잃어버리지 않는 친구, 그런 건 어디에도 없는데.'(49쪽) 김화진의 친구들은 이렇게 마음을 더듬으며 마음이 있었던 자리 안쪽을 자꾸만 들여다 본다.
지원의 이야기 <나 여기 있어>는 MBTI 테마소설집 <혹시 MBTI가 어떻게 되세요?>에 INFP가 주인공인 세계를 주제로 실린 소설이었다. 나는 종종 마음이 물러지는, 그래서 종종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는 나의 INFP 친구를 떠올리며 이 소설을 읽었다. 꼭 내 친구들이 했던 말들 같아서 이 친구들의 뒷모습에 자꾸만 마음이 쓰인다.
눈치가 없는 나는 그들이 진작 떠나버렸고 이제 내 친구가 아니라는 걸 계절이 몇 번은 지나야 알았다. 꼭 나 같은 친구들에게, 우는소리 하는 사람이 되기 싫어서 혼자 우는 친구들에게, "친구들은 자꾸만 떠나가고 그때마다 처음인 것처럼 속상하네요." (136쪽)라고 말하는 친구들에게, "야 나는 뭐 좋아서 니 마음에 대고 매번 노크하고 그 마음 앞에 찾아가고 기웃거리는 줄 아니."(189쪽)라고 투덜대면서도 기어이 다시 마음을 두드리는 친구들에게, "좋은 걸 보면 회복된다. 그러니까 좋은 걸 자꾸 보면 되는 거야."(170쪽) 다시 용기내는 친구들에게, 그러니까 '사랑의 신'인 나의 친구들에게 권하고 함께 읽고 싶어지는 소설이다.
혹독했던 2023년의 여름도 느리게 떠나가고 있다. 1877년 태어나 1953년에 사망한 프랑스인 화가 라울 뒤피의 그림은 2023년 예술의전당, 더현대서울 등의 미술관에서 2023년 여름 한국 관객을 만났다. 르아브르 해변에서 만난 삶의 기쁨을 악보에 놓인 음표처럼 그린 화가 라울 뒤피의 그림에서 우리에게 이 여름이 어떤 의미일지를 다시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최신작 <하루 한 장, 인생 그림>을 통해 한 화가를 발견해 자신의 삶의 풍경에 작품을 놓는 것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 '아트메신저' 이소영이 라울 뒤피의 삶에 대해 들려준다. 리듬감이 느껴지는 감각적인 표지를 열면 인상파, 야수파, 입체파를 넘나들며 회화와 도서 삽화(아폴리네르의 <동물시집>의 삽화를 뒤피가 그렸다.), 태피스트리와 패션을 오가며 경계를 벗어나 아름다움을 추구한 한 화가의 열정을 200여 점의 도판과 함께 만날 수 있다. 라울 뒤피가 활동한 20세기 초 역시 혹독한 시대였다. 화가가 그토록 사랑한 바다, 노르망디 해변이 세계대전으로 파괴되는 아픔을 겪고서도 화가는 자신의 마음에 놓인 아름다움을 향해 눈을 돌렸다. 음악과 바다를 사랑한 화가가 칠한 파란 캔버스를 보며 다음 여름의 파랑을 기대해보는 것은 어떨까.
에도의 주머니 가게 '미시마야'는 손님을 초대하여 그가 직접 겪은 기이한 이야기를 청취하는 '괴담 자리'로 명성이 높다. 너무도 괴이하여 타인에게 쉽게 털어놓기 어려운 사연을 풀어내고 마음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도록 하는 자리다. 듣는 이는 미시마야의 차남 도미지로. 그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후 떠오르는 단상을 그림으로 그려 오동나무 상자에 봉해 넣는 의식을 통해 이야기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도록 예방하고 있다.
보슬비가 거리를 적시는 가을, 웃는 방법을 잃어버린 이야기꾼이 괴담 자리를 찾아온다. 그간 누구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 여겨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그의 이야기는 유년기로 향한다. 무시무시한 저주에 씌어 고통받는 소중한 사람을 위해 그 저주를 대신 받고자 했던 아이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오직 신들만이 출입할 수 있는 도박장에 불시착한다. 인간계의 시간과는 다른 시간이 흐르는 그곳에서 고용살이를 하며 보낸 세월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꾸어 놓는다. "이야기하고 버리고, 듣고 버린다."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명심해야 할 이곳의 가장 중요한 규칙을 지키며 괴담 자리는 계속된다.
간혹 길고 자세한 진단을 해주는 의사를 만나면 일순간 놀랐다가, 퉁명한 대답이 돌아올까 봐 지레 삼켜뒀던 질문들을 부랴부랴 꺼낸다. 잘 오지 않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긴긴 대기와 무엇인지도 모를 검사, 지나치게 단순한 진단. 한국의 병원에선 대체로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일반인 환자의 입장에서는 늘 불유쾌한 경험이긴 하나 정확히 무엇이 문제인지 꼽아 말하긴 어렵다. 내과 교수인 저자가 쓴 이 책은 지금 한국의 의료 체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요소별로 나누어 살핀다.
책은 병원에 간 환자가 겪는 상황, 그리고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의 상황을 각각 짧은 소설처럼 묘사하여 각자의 고충을 밝히는 것으로 시작한다. 자세한 진단은 듣지도 못하고 의미 없는 검사를 계속하는 환자와 3분마다 다른 환자를 받아야 하는 의사. 이 문제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왜 해결되지 못하고 있나? 저자는 낮은 진찰료, 이를 메꾸기 위한 과도한 검사, 자본에 종속된 병원, 수익만 좇는 제약회사와 의료기업, 전문성을 잃어가는 의사 등 의료 체계를 둘러싼 모든 주체를 돌아보며 하나하나 문제를 따져보고 해결 방안까지 내어 놓는다. 무엇이 어떻게 문제인지도 알기 어려운 의료 환경에 대한 개괄적 이해에 도움이 되는 책이다.
얼 나이팅게일은 192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의 아버지는 가족을 버리고 떠났고, 두 형과 책을 사랑하는 어머니와 함께 롱비치의 ‘텐트 시티’에서 궁핍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는 12세 때부터 “왜 어떤 사람들은 부유하고 어떤 사람들은 가난하지?”라는 물음을 품었고, 공공도서관의 책 속에서 그 비밀을 찾고자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독서광이 되었다. 17세가 되던 해 학교를 그만두고 해병대에 입대하였고, 잭슨빌 방송국에서 아나운서로 일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유년 시절 품었던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독서를 계속하였는데, 29세가 된 어느 날 나폴레온 힐의 <생각하라 그리고 부자가 되어라>를 읽던 중 자신이 오랜 세월 똑같은 진실을 계속 읽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것은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된다(We become what we think about)'는 여섯 단어였다.
그는 자신이 깨달았다고 여긴 진리를 라디오, 오디오, 비디오, 강연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전달했다. 그는 연설을 통해 긍정적 사고, 동기부여, 잠재력 등에 대해 말하며 수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가운데에는 자기계발의 대가로 일컬어지는 웨인 다이어나 밥 프록터, 존 소포릭 같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는 사망하기 2년 전인 1987년 이 책을 집필하여 자기 생각을 집대성하였다. 그에 따르면, 성공한 사람은 문제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배운 사람이라고 한다. 성공한 사람들은 생각을 집중하고 마음을 쏟는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며, 그들은 그 목표를 향해 움직이고, 포기하지 않고 버티고 도전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원하는 것을 결국 얻는다. 그래서 성공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생각하며. 그 생각이 성공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빼어난 완성도의 단편소설에 풍성한 일러스트를 더한 새로운 소설 읽기 시리즈. 2017년 출간한 이래 많은 독자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어 온 소설의 첫 만남 시리즈 '마주침 편'이 출간되었다. 미래에 대한 흥미로운 상상력을 바탕으로 구병모, 남유하, 천선란 세 작가가 낯선 세상과의 만남을 이야기한다.
구병모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 <이야기 따위 없어져 버려라>.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은 지 오래된 어느 미래, 책은 사라지고 이야기들은 전산화되어 보관된다. 어느 날 데이터가 훼손되고,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이 깨어나 도시를 배회하게 되며 사서 Q에게 임무가 주어진다. 남유하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이야기' <봄의 목소리>. 인공지능 프로그램으로 만든 음성 목소리 '봄', 같은 목소리를 내는 전학생 '여름', 소이가 인공지능 프로그램으로 자기 취향에 맞추어 만들어 낸 '봄'의 목소리가 전학생에게서 흘러나오고 있다. 이런 것을 운명이라고 하는 걸까? 천선란 '나의 아픔과 손잡고 함께 조각난 노을을 건너는 이야기' <노을 건너기>. 우주 비행사인 공효는 자신의 무의식 세계로 들어가 어린 '나'와 동행하는 자아 안정 훈련을 시작하고, 잊고 있던 상처들을 떠올린다. 가장 외로웠던 어린 '나'를 만나러 간 공효는 과연 훈련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아름다운 문고 '소설의 첫 만남'이 성장하는 청소년 그리고 이야기가 낯설어진 이들에게 책과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마중물 역할을 하면서 우리의 독서 문화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길 바라본다. 작가의 말을 전한다. '기연미연 속에서 언제까지나.' (구병모), '바로 지금, 주변을 살펴보세요. 작은 기적이 숨어 있을 거예요.' (남유하), '모두가 각자 품고 있는 그 노을을, 무사히 건너 어른이 되길 바랍니다.' (천선란)
일본의 전쟁 범죄들은 알려질 만큼 알려졌음에도 들을 때마다 몸서리치게 잔혹하다. 그리고 피비린내 나는 범죄들 앞에서, 그들은 여전히 떳떳하다. 그들은 왜 반성하지 않는가. 왜 인간을 도륙하고도 정신적으로 평온한가.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이 질문을 잡고 군국주의 전범들을 연구한다.
저자가 인터뷰한 전범들은 전쟁이 종료된 이후 자신의 범죄를 고백하고 반전 운동을 하는 등 양심적인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지만, 그들이 고백한 과거의 모습은 살육 기계나 다름없다. 비무장 상태의 민간인들을 향한 끔찍한 학살, 잔인한 고문. 그러나 그들은 마치 무언가에 씐 것처럼 의아하리만치 감정의 동요가 없었다. 이들의 감정을 마비시키는 '무언가'를 저자는 수직적 위계질서 속에서 인간을 도구화하는 일본 사회와 문화로 분석한다.
전범의 정신분석에서 시작한 책은 일본 사회의 정신분석으로까지 나아간다. 그가 담담한 어투로 통찰력 있게 분석하는 일본 사회는,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사회의 일면과 매우 닮아있다.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음, 시대에 대한 부인과 망각. 원인-과정-결과에 대한 분석을 떼어와 한국에 대입하니 위화감이 없다. 이 책은 전쟁과 전쟁 후 일본 사회에 대한 통렬한 분석이지만 오직 일본 사회만에 대한 분석은 아니다. 전쟁, 집단범죄, 범 사회적 공격성에 대한 보편적 통찰이다.
“언제쯤 이 지긋지긋한 돈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서 7년을 일하는 와중에, 자신보다 늦게 입사한 직원의 직급과 연봉이 자신보다 높아지는 걸 보고 화가 나는 동시에, 비로소 자신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게 되었을 때, 희망이 없다고 느꼈다. 나이도 찼는데 할 줄 아는 것도 잘하는 것도 모아놓은 돈도 없으니 코너로 몰린 기분이었다. 그러던 2007년, 우연한 기회에 2천 만 원의 돈으로 부동산 투자에 발을 들였고, 2천 만 원이 4천 만 원이 되는 마법을 경험하고 나서,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2012년 본격적으로 경매 투자에 뛰어들어 14년 동안 200여 건의 거래에서 단 한 번도 손해를 보지 않으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다양한 방법으로 부동산을 매입하는 투자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바른자산(주) 대표이사 정민우 대표의 이야기이다.
정민우 대표의 투자 원칙은 단 하나, 바로 ‘싸게 사는 것’이다. 가치 있는 부동산을 알아보고, 남들이 관심을 안 가지거나 두려워할 때, 경쟁이 줄고 가격이 내려갔을 때,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안전마진을 극대화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아파트, 오피스텔, 지식산업센터, 상가, 공장, 숙박시설, 토지 등 다양한 종류의 부동산을 청약, 분양권, 경매, 공매, 급매, NPL 등 온갖 방법으로 투자해 왔고, 투자자들로부터 ‘대한민국에서 가장 다양한 방법으로 부동산을 매입하는 투자자’로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에서 자신만큼 많은 경험을 해본 사람은 없을 거라고 자신하는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경험과 원칙, 기술,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자의 마인드를 ‘레버리지’ 할 것을 권한다.
마지막 장에 도달한 후 얼떨떨한 기분으로 다시 처음부터 단서를 읽어나갈 수밖에 없는 반전 미스터리 소설 <홍학의 자리>의 정해연이 서스펜스 소설로 이번 여름의 끝을 알린다. 음식을 먹으면 타인의 죽음을 보는 제영은 죽음을 보지 않기 위해 섭식을 제한하고 아는 사람을 줄였다. 식사를 거의 하지 않아 수시로 응급실에 실려가는 삶을 사는 제영에게 예지는 힘이 아닌 저주일 뿐이다.
첫 번째, 죽음이 보이는 건 얼굴을 아는 사람뿐이다.
두 번째, 생의 운명은 바꿔도 사의 운명은 바꿀 수 없다.
죽어 마땅한 사람이 죽는 대신 같은 방식으로 다른 사람이 죽은 후 제영은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발견한 법칙을 벗어난 이 사례를 쫓기 시작한다. 그런 제영에게 '그'가 말했다. "너도 보이는구나?" 속도감 있게 전환되는 장면을 따라 제영은 운명을 거스르기 위해 달리기 시작한다. 허약한 주인공의 평범한 삶을 향한 간절함을 응원하게 되는 호쾌한 스릴러물이 영화처럼 펼쳐진다.
이꽃님의 첫 번째 연애소설. 청소년 문학 최고의 페이지터너 이꽃님이 가슴 설레는 이야기로 돌아왔다. 가족에 관한 아픔을 가진 두 아이 하지오, 유찬의 열일곱 여름, 고통스러울 것만 같았던 계절이 눈부시게 찬란한 둘의 계절로 변해간다.
5년 전 화재사건으로 인해 듣고 싶지 않은 다른 사람들의 속마음이 들리는 유찬, 우연히 같은 동네로 전학 온 하지오와 가까이 있기만 하면 고요가 찾아오는 경험을 한다. '어떤 속마음도 들리지 않는다.' 스스로 태어나선 안 되었다고 생각하는 하지오, 엄마를 지키기 위해 유도를 시작했을 만큼 엄마를 향한 애정이 각별하다. 엄마의 병환으로 존재조차 몰랐던 아빠를 찾아가야 하는 상황에 처하고, 떠밀리듯 번영으로 오게 되는데, 우연히 마주친 유찬이 어딘가 이상하다. 필연인지 우연인지 두 아이는 같은 반이 되고 유찬은 자신에게 일어난 이상한 일이 하지오와 관련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몰라, 왜 그런 건지. 그냥 너는 특별해."(81쪽)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이자 작은 희망으로 하지오에게 다가선 유찬, 갈수록 그 이유만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데...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는 하지오, 유찬 두 아이의 시선을 번갈아가며 서술된다. 열일곱의 소용돌이치는 감정들과 첫사랑의 두근거림, 뜨거운 여름이 청량한 여름으로 번지는 첫사랑 이야기, 이꽃님 작가의 말을 전한다. "이 소설은 내가 쓴 이야기 중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이다."
이 책을 소개하고자 하는 모든 시도는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 소개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무언가를 정돈하여 한 방향으로 가지런히 놓는 속성을 가지는데, 나아가고 좁아지는 완결성이야말로 이 책이 대항하고자 하는 핵심 개념이기 때문이다. 실패가 예정된 이 소개글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 이유는, 진보적 낙관과 안정성의 공동(空洞)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 또한 이 책의 목표이자 태도이기 때문이다.
진보는 자본주의 세계에서 모두에게 약속되었던 절대 룰이었다. 지금 그 세계의 룰은 기망으로 밝혀졌다. 향할 곳도 머물 곳도 잃은 우리는 죽창을 들 수도 있고 멸망을 끝까지 외면할 수도 있지만, 애나 칭은 버섯을 관찰하기를 선택한다. 오해 마시길. 버섯은 허무주의적 낭만의 은유가 아니다. 그가 주목한 버섯은 인간이 망친 세계의 언저리에서 자라난 새로운 생태, 시스템에서 벗어나지도 완전히 통합되지도 않은 자생적 세계, 디스토피아에서 발견된 현실적 희망이다.
시대의 맹점에서 자라난 희망을 더듬어 파악하는 일은 쉽지 않다. 완전히 새로운 정의, 관점, 관계, 분석과 이해가 필요하다. 애나 칭, 이 멋진 사상가는 버섯과 버섯을 둘러싼 세계에 대해 그가 창발적으로 탐구한 것을 "넘쳐날 만큼 풍부하"게 써두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읽는 첫 세 문장은,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여러분은 무엇을 하는가? 나는 산책을 한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버섯을 발견한다."
대한민국 정부 출범 이후 195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십 년 단위로 각 시대의 주요 역사 사건을 어린이의 시각으로 풀어낸 장편 동화 시리즈인 <생생 현대사 동화>의 첫 번째 권. 1950년대, 한국 전쟁 시기의 피난민의 이야기를 강이의 시각으로 담았다. 교과서 한 챕터로 배우는 지식이 아닌 마치 그 시대를 직접 겪는 듯한 생생한 이야기가 마음을 두드린다.
바로 오늘, 내가 사는 이 순간을 생각해 본다.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에 많은 방해물은 없다.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가족이 보고 싶을 땐 전화를 건다. 손에 잡히는 자유가 언제부터 주어진 걸까. 올해 한국 전쟁 종전 70년, 급변한 한국 사회를 곱씹게 된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기억하는 일뿐이다.
젊은작가상, 현대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최은미의 장편소설. 2020년에 발표한 단편 <여기 우리 마주>의, 2020년 팬데믹을 통과하며 캔들 공방을 운영하던 나리와 공방 손님 '수미'의 날이 선 이야기를 장편소설로 깊이 들여다 본다. 면역과 잠복과 격리와 확진 같은 단어들. 서로의 행적을 감시하며 강박적인 사람들이 되어갔던 그 시간처럼 소설은 읽는 이를 옥죄어온다.
'여자여자'한 순한 외모의 나리는 여성 집단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어떤 여성들은 나리를 '마치 타도해야 할 여성성의 재현물 그 자체인 것처럼 대했다. (51쪽)고 나리는 기억한다.) 나리는 수미와의 관계에서도 긴장하고, 미워하고, 눈치를 본다. 도저히 스스로의 어머니됨에 적응하지 못하는 여자들, 자신이 이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을 증오하는 나리와 수미는 자신을 미워하는 꼭 그 가혹한 시선으로 상대방을 마주보고, 이들은 감염과 공황을 겪으며 이 시간과 불화한다.
긴 겨울을 우리 역시 움츠리고 살았다. '내가 숨을 쉬고, 머물고, 먹고, 얘기를 나눈 어느 곳에서도 나는 감염될 수가 있었다.'(41쪽)는 걸 모두가 인지했고, 인지하지 못하는 이의 부족함은 도덕적 지탄을 받았다. 익히 통계로 알려진 대로 이 기간 동안 정신질환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은 이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세 명 중 한 명은 장애인이었다. 한센병 환자가, 결핵 환자가 배제되었던 것처럼 우리가 서로를 배제하던 시간들이 지나가고 있다. "좋은 소설이 대개 그렇듯 최은미의 『마주』 역시 개인의 불안과 외로움을 펼쳐 보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몫에 대한 질문을 아우른다."는 소설가 조해진의 추천처럼 소설로 개인과 사회의 생채기를 들여다보는 것, 이것은 문학의 일이고, 최은미의 소설이 해내는 일이다.
뉴스에 기상이변이 심해서 작물 수확량이 줄어들었다는 기사가 나왔다고 하자. 투자자의 입장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곡물 가격이 오르겠구나’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생각이 멈춘다면 수익을 올리기 쉽지 않다.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정도의 접근법은 큰 무기가 되기 힘든 법이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간다면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다. 곡물 가격이 올라가면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심한 나라 중에 곡물 수입 비중이 높은 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그 영향이 클 것이다. 예를 들면 이집트다. 이집트는 곡물 수입을 많이 하고 있고, 현재도 인플레이션으로 큰 고충을 겪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심한 나라에서는 가치 보존 수단으로 금을 많이 활용한다. ‘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서 금값을 자극할 수 있겠구나’까지 생각할 수 있으면, 투자의 세계에 조금 더 다가선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세상은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다. 세상을 연결해서 보면, 지금까지와 다른 세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삼성그룹, GE 등 글로벌 기업에서 금융기관과 기업체, 펀드 등의 각종 금융 위험을 예측 및 측정하여 대비책을 강구하는 위험관리 전문가로 활동하였던 저자는, 정보의 질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정보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정리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그물처럼 연결된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관점’에 입각한 인사이트를 매일 0시 10분, 하루에 하나씩 필명으로 블로그에 올리자 1년여 만에 약 10만 명의 구독자가 모여들었다.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사건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흥미로운 해석을 따라가다 보면, 정보들의 행간에 숨어 있는 1%가 눈에 들어오면서 읽는 이로 하여금 즐거움마저 느끼게 한다. 물론 투자자라면 즐거움을 넘어 이를 통해 투자의 숨은 기회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는 현대물리학이 등장하며 과학의 영토를 넓혀나간 시대이기도 했다.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 마리 퀴리, 막스 플랑크를 비롯한 세계의 과학자들이 인류의 지평을 바꿔놓은 그때 우리 조상들도 이들을 알았을까? 사료를 통해 본 실상은 놀랍다. 조선의 주요 매체는 연이어 새로운 과학의 탄생을 지면에 올렸으며, 아인슈타인이 노벨상을 받기 전부터 조선에서는 이미 상대성이론이 화제가 되었고, 1919년 2·8 독립선언을 이끌었던 조선유학생학우회는 전국을 돌며 상대성이론의 순회강연을 했다.
식민지 조선 사회는 해외 소식을 통해 과학이 세상을 움직이는 영향력을 가졌다는 데 고무되었다. 조선인에게 과학은 곧 자립이었고 폭넓은 국제적 행보를 보이며 시대의 변화와 발맞추려 했으나 이러한 기록은 제대로 전해지지 못했다. 그 배후에는 상처로 얼룩진 근현대사가 있다. 저자는 사력을 다해 어두운 시대를 건너온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다음 세대에게 전하고자 한다. “우리의 근대사는 절망의 시대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향한 역동성으로 꿈틀대고 있었다.”고 말하며 한국사 대표 강사 최태성이, “어둠에 싸인 시대의 숨겨진 과학사, 놀라운 우리 과학 이야기”라고 말하며 물리학자 김상욱이 추천했다.
조용한 성격의 현아는 친구 관계의 고민 때문에 종일 땅바닥만 본다. 어느 날, 자신을 ‘도도 언니’라고 소개하는 예쁜 언니가 현아 앞에 나타난다. 신비한 은빛 머리에 목에는 붉은 스카프를 두르고 늘 하얀 우산을 들고 다니는 도도 언니는 현아를 ‘도깨비 공부방’으로 데려간다. 도도 언니는 도깨비 공부방 뒤뜰에 돈과 핸드폰을 심어보자는 엉뚱한 제안을 하는데….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고민이나 간절히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는 어린이 앞에만 나타나는 도깨비를 모티브로 한 판타지 동화. 도깨비 도도 언니의 비밀스러운 과거와 현재 어린이의 고민이 적절히 안배되어 있어 장편 동화를 읽기 어려워 하는 어린이 독자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이중섭 백년의 신화> 등의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김인혜의 칼럼 <살롱 드 경성>이 단행본으로 독자를 만난다. '한국에서 가장 비싼' 그림을 그린 작가 김환기의 작품을 비롯, 200여 편의 도판과 사진이 풍성하게 수록되었다. 한국작가들의 편지, 일기, 사진, 노트 등을 수집하는 업무를 주로 진행한 저자는 작품과 자료를 바탕으로 한 논리적인 글쓰기로 구본웅,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유영국, 나혜석, 이쾌대, 이인성, 이성자, 장욱진, 권진규, 문신 등의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웅숭깊게 들려준다.
회화 작품 등을 상단에 배치하는 특유의 디자인으로 잘 알려진 민음사판 <이상 소설 전집> 표지에는 구본웅이 그린 이상의 자화상이 채택되었다. 구본웅이 그린 <친구의 초상>에 엮인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까치집 머리를 한 '불령선인' 이상과 척추 장애인 구본웅이 '곡마단 행차'라는 비아냥을 들으며 누비던 경성 거리를 만난다. '현실 조선을 과학적으로 파악하는 예술가'(57쪽)가 되기를 꿈꾼 이여성, 김광섭의 시 <저녁에>에 헌정하듯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점화를 그린 김환기, BTS의 리더 RM의 전시 관람이 화제가 되기도 한 추상화가 유영국의 이야기 등을 통해 자부심을 갖고 시대와 대결한 예술가들의 의지를 만난다. "우리 근대문화사의 소중한 증언록이라는 찬사"와 함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이 추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