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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2021
  • 인간은 왜 잔인해지는가
    존 M. 렉터 (지은이), 양미래 (옮긴이) | 교유서가 | 2021년 5월 "인간은 어떻게 타인을 대상화하고 멸시하는가"

    '내로남불' 네 글자가 인간사 모든 비극의 씨앗을 품고 있는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름답고 복잡한 맥락의 내 사정과 하나의 단면으로 단정 지을 수 있는 네 사정. 한 단어로 된 딱지를 붙일 수 있는 너와 한 문단으로도 설명이 부족한 나. 내면이 없(다고 여겨 지)는 납작한 상대는 이미 나와 같은 종류의 인간이 아니므로 부담 없는 처단의 대상이 된다. 인간의 차가운 파괴력, 대상화다.

    이 책은 인간의 대상화에 관한 20년 연구의 결과물이다. 심리학자인 저자는 인간이 왜 다른 인간에게 잔인해지는지, 그 이유를 대상화의 스펙트럼으로 설명한다. 가장 낮은 수준에서는 일상적 무관심부터 타인을 나의 욕망을 실현하는 유도체에 불과하다고 인지하는 유도체화,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자격도 없다고 여기는 비인간화까지. 세 가지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고 대상화의 과정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분석한다. 마사 누스바움, 데이비드 리빙스턴 스미스 등의 선행 연구를 참고하여 적절한 틀을 제시하는 깔끔한 설명은 여러 학문의 논의를 아우르면서도 확실한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현재 우리 사회의 혐오를 생각하며 읽지 않을 수가 없다. "인간이 어떻게 인간에게"라는 말을 중얼거리는 빈도가 느는 것이 기분 탓만이 아닌 요즘이다.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을 때 우리는 다 같이 2D의 지옥에서 구르게 될 것이다. 책의 마지막 장은 대상화를 탈출하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다. 짐작하겠지만, 만사형통의 해답은 없다. 각자 자신의 맹점을 돌보는 것이 서로를 지키는 길. 책의 도움으로 또 자신을 돌아보는 수밖에 없다.

  • 강원국의 어른답게 말합니다
    강원국 (지은이)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5월 "말은 듣는 사람의 것이다"

    친구나 동료들이 빠르게 부자 되는 법 혹은 오늘 산 주식을 내일 팔아 수익을 얻는 투자법 등을 종종 물어 온다. 난 항상 되묻는다. 그렇게 부자가 돼서 뭐 할 거냐고. 쉽게 번 돈은 쉽게 사라진다고 하지 않던가. 요컨대 돈을 빠르게 담는 것보다 돈을 담을 그릇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소리다. 그런 그들에게는 <돈의 속성> 같은 책이 제격이다. 말하기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말 잘하는 법, 말로 상대를 설득하는 기술이 넘쳐 난다. 배운 대로 몇 번 흉내내는 것도 어렵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진실된 마음이 담기지 않은 말은 금세 들통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말이 곧 그 사람이어야 한다"고 저자 강원국은 말한다. 그가 이번 책에서 주목하는 건 말의 기술이 아닌 '말의 속성', 그리고 말하는 사람의 태도와 자세다. 말과 글을 다뤄 온 오랜 내공으로 전하는 그의 말에 대한 담론들은 우리가 말을 하는 참된 목적이 무엇인지, 말에 무엇을 담고 무엇을 덜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가 쉰 살이 넘어 비로소 깨달은 원칙 중 하나는 "후회할 말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한다. 그간 말을 너무 쉽게 던져 온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며 그가 건네는 말을 곱씹는다. "말은 하지 않을 때까지만 내 것이다."

  • 일곱 번째 달 일곱 번째 밤
    켄 리우, 왕콴유, 홍지운, 남유하, 남세오, 후지이 다이요, 곽재식, 이영인, 윤여경, 이경희 (지은이), 박산호, 이홍이 (옮긴이) | 알마 | 2021년 5월 "켄 리우 신작 수록! 아시아 설화 SF 앤솔로지"

    한국, 중국, 일본의 고전 설화 10편과 SF 작가 10인이 만났다. 우리에게 익숙한 견우와 직녀가 등장하는 칠월칠석 이야기부터, 불로초를 찾아오라는 진시황의 명을 받고 삼천 명의 동남동녀를 데리고 제주로 간 서복 설화, 한라산 꼭대기에서 하늘을 화살로 맞혀 하늘의 분노를 산 사람의 이야기, 중국의 춘절 괴물 '새해'와 가고시마의 아마미오섬 설화까지. 수천 년간 이어진 옛이야기들이 SF의 무대로 재탄생한다.

    고전은 조상의 풍습과 지혜가 응축된 이야기의 보고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한 공동체가 가진 고정관념을 대대로 강화하여 새로운 시대의 자유를 억압하는 고루한 목소리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닫힌 가능성을 끝없이 열어젖히는 SF와 자칫 폐쇄적으로 느껴지는 설화의 만남은, 시대의 언어로 재해석되고 시대와 함께 흐르는 고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수록 단편들의 주요 소재가 한데 모인 람한 작가의 아름다운 표지 일러스트도 소설의 망망한 느낌과 어우러져 하나의 심상으로 마음에 오래 자리한다. "불멸의 존재들이 진홍색, 자주색, 붉은색을 띤 청색과 그 사이 모든 색조로 서쪽 하늘을 끝없이 수놓는 다채롭고 아름다운 구름처럼" 신비로운 소설집.

  • 곧 수영 대회가 열릴 거야!
    니콜라스 앨런 (지은이), 김세실 (옮긴이), 손경이 (감수)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5월 "손경이 추천, 우리 아이 첫 성교육 그림책"

    "이제 곧 아주 중요한 수영 대회가 열릴 거야." 브라운 아저씨의 몸 속에 사는 조그만 정자 윌리. 수학은 못 하지만, 수영은 아주 잘한다. 윌리는 열심히 수영 연습을 했고, 어느 날 아주 중요한 수영 대회가 시작되었다. 윌리와 3억 마리의 친구들은 지도를 따라 꼬물꼬물, 뽀글뽀글 즐겁게 헤엄친다. 그리고 만세! 윌리는 드디어 소피아 아주머니 몸 속의 조이와 만났다.

    아빠 몸 속의 윌리와 엄마 몸 속의 조이가 만나자,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아주 놀랍고, 신비로운 일. 그리고 작은 여자 아기 에드나가 태어났다. 수학은 못 하지만, 수영은 잘 하는 에드나. '나는 어디서 태어났어요?' 라는 아이의 질문이 시작될 때, 이 즐겁고도 신비로운 꼬맹이 윌리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겠다.

6.42021
  • 그림자의 섬
    다비드 칼리 (지은이), 클라우디아 팔마루치 (그림), 이현경 (옮긴이), 황보연 (감수) | 웅진주니어 | 2021년 5월 "다비드 칼리 “친애하는 당신은 멸종되었습니다.” "

    어느 이름 없는 숲속에 '꿈의 그늘'이라는 곳이 있다. 이곳에서 왈라비 박사는 숲속 동물들의 꿈, 악몽을 치료하는 의사이다. 동물들은 갖가지 악몽을 꾼다. 거대한 발에 짓밟히는 꿈, 밤새 누군가에게 쫓기는 꿈, 항상 들리는 이상한 소리. 숲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그런 어느 날, 태즈메이니아주머니늑대가 왈라비 박사를 찾아와 악몽을 이야기한다. 늑대의 꿈은 이상하다. 텅 비어 있는 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깊고 깊은 곳에서 가만히 웅크리고 있는 어둠만이 보이는 꿈.

    다비드 칼리와 클라우디아 팔마루치가 함께 한 이번 작품은 이미 멸종된, 또는 멸종 위기에 놓인 동물들이 꾸는 꿈을 매개로 생명과 존중, 환경과 공존의 메시지를 전한다. 현실과 환상이 기묘하게 얽힌 이야기와 초현실주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은 환상적인 일러스트는 우리를 '꿈의 그늘' 한가운데로 초대한다. 마치 같은 꿈을 꾸고 있는 듯, 아득한 여행을 하는 듯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제는 사라져 다시 볼 수 없는 동물 128마리의 초상을 만난다.

  • 와인이 있는 100가지 장면
    엄정선, 배두환 (지은이), 박이수(박수정) (그림) | 보틀프레스 | 2021년 6월 "당신의 일상을 멋지게 채워줄 와인, 그리고 영화 이야기"

    알라딘 북펀드를 통해 이미 많은 독자들이 기대하고, 기다렸던 책이 드디어 출간되었다. 소믈리에와 와인 저널리스트, 그리고 일러스트레이터 이렇게 세 명의 작가가 100편의 영화와 그 영화 속 다양한 모습으로 연출된 와인 이야기를 딱 알맞은 밀도로 말하는 책이다. 와인이 좋아졌을 때 볼 만한 '와인 무비'와 저 장면 속 와인의 진짜 이름을 알려주고, 지금 저 자리에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하기도 하는 다용도 와인 책인 셈이다.

    평소에 와인과 커피 얘기를 이 세상에서 자기만 혼자 아는 듯 말하는 사람들에게서 지쳤다면, 아마 이 책의 농도가 딱 알맞을 것이다. 짧은 영화 줄거리 소개와 향긋한 와인 이야기, 그리고 비하인드 스토리까지의 구성이 매우 단순하면서도 알차다. 이번 여름, 이 책 한 권과 넷플릭스, 그리고 와인 한 병만 있다면 충분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 우당탕탕 야옹이와 바다 끝 괴물
    구도 노리코 (지은이), 윤수정 (옮긴이) | 책읽는곰 | 2021년 5월 "말썽도, 반성도, 모험도 블록버스터급!"

    여덟 마리의 말썽꾸러기 야옹이들이 바다 나라로 끌려갔다. 무지갯빛 마법의 조개껍데기 덕분에 바닷속을 마음대로 돌아 다니게 되었고 물고기를 마구잡이로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물고기를 소중히 여기지 않은 죄로 죽을 위기에 처했으나 바다 끝 괴물에게 잡혀간 바다 나라 공주를 구한 여덟 마리 야옹이들은 다시 지상으로 돌아와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200만 독자를 매료시킨 그림책 속에서 화끈하게 말썽 피우고 빠르게 사과하던 천연덕스러운 야옹이들은 읽기책 속에서도 변함이 없다. 작가 구도 노리코는 그림책을 사랑했던 어린이 독자들을 위해 새로운 읽기물을 펴내며 사려 깊은 설명을 덧붙인다. "글이 많아서 혼자 읽기 어려워 보일 수도 있"지만 "그냥 내버려 두고 쭉쭉 읽어 나가"도 괜찮다고. 어차피 "커 가는 동안 저절로 알게 될"거라 말한다. 단순히 읽기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읽기를 통한 세계의 확장을 염두에 둔 이 시리즈의 시작이 기쁘다.

  • 궤도의 밖에서, 나의 룸메이트에게
    전삼혜 (지은이) | 문학동네 | 2021년 4월 "너는 나의 세계였으니, 나도 너에게 세계를 줄 거야."

    보호자가 없는 우수한 아이들을 선발해 우주공학 연구원으로 육성하는 학교 '제네시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제네시스에 입학한 이들에게, 달은 저마다의 꿈으로 마음 속에 자리한다. 머리를 기르는 것을 좋아하는 소년에게 달은 남의 시선 따윈 신경쓰지 않고 빨간 구두를 신고 맘껏 춤을 출 수 있는 곳이다. 두 다리 대신 의족을 가진 소년에게 저중력의 달은 자신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아도 되는 곳이다. 달에 파견된 소녀에게 달은 지워지지 않는 글씨를 새겨 지구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공간이고, 비밀을 알게 된 한 소녀에게 달은 소중한 사람을 피신시킬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아득한 우주 어딘가로부터 지구를 파괴할 소행성이 날아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언제나 궤도의 바깥에 자리하고 있던 제네시스의 아이들은 '우리'가 되어 서로를 지키려 한다. "몰랐더라면, 아니 이 모든 걸 미리 알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에야 알게 된 것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내가, 그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라고 되뇌며 온 힘을 다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이들의 용기가 기어코 만들어 내는 것들. 한 줌의 온기와도 같은 비망록의 마지막 장을 덮고 생각한다. 폭력과 혐오로 점철된 시대 속에서 조금은 세계를, 인간의 마음을 믿어보고 싶다고.

6.82021
  • 피케티의 사회주의 시급하다
    토마 피케티 (지은이), 이민주 (옮긴이) | 은행나무 | 2021년 6월 "자본주의 이후, 세계의 방향"

    자본주의를 멈춰 세우지 않고서는 인류 앞에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겠다는 데에 공감하는 지식인들이 늘고 있다. 자본주의를 정지시킨다면, 체제의 빈자리엔 무엇을 채울 것인가? 토마 피케티는 사회주의를 주장한다. 정확히는 "사회주의라는 말을 재활용"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그는 이미 30여 년 전 끝나버린 사회주의의 실패한 지점으로 가부장제와 식민주의를 꼽으며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은 여성차별, 인종 차별이 해소된 평등한 사회주의임을 강조한다.

    책은 2016년-2021년 피케티가 르몽드에 연재한 경제 논평 모음집이다. 여러 해에 걸쳐 쓰인 이 글들은 세계의 현 상황과 경제 체제의 대전환을 위해 고려해야 할 지점들을 여러모로 살핀다. 길지 않은 글의 모음인 만큼 완전히 정리된 해답을 내놓은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담은 화두를 주제별로 던지고, 하나하나 함께 논의하며 세밀한 결을 다듬어보자고 제안한다. 피케티의 앞선 벽돌 책들에 비하면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는 책이니, 책임 있는 많은 이들이 함께 읽고 세계의 내일을 다듬는 과정에 함께하길 바란다.

  • 눈으로 만든 사람
    최은미 (지은이) | 문학동네 | 2021년 6월 "최은미라는 세계의 눈부신 분기점"

    강윤희는 강중식의 아들 강민서를 보고 있다. 소아림프종 진단을 받았던 강민서는 암이 재발해 보살핌이 필요해 잠시 강윤희의 집에 왔다. 강윤희의 삼촌인 강중식의 아들인 강민서와 강윤희의 딸 백아영의 촌수는 오촌. 백아영은 강민서와 살갑게 지내며 정을 쌓는다. 강윤희가 강민서를 위해 차린 음식에 대한 묘사는 두 페이지에 걸쳐 자세히 서술된다. 손질한 무, 겨울 미역, 피꼬막, 알배기 배추, 꽈리고추, 불린 귀리. 강민서는 강윤희가 요리한 것들을 "꽈리고추를 꼭지까지 말끔히 비틀어 먹고, 배추굴전을 한입씩 아삭아삭 씹어 먹고, 피꼬막을 껍데기에 고인 양념 한 방울까지 알뜰히 훑어"(99쪽) 먹는다. 강윤희와 강민서의 입맛은 놀랍도록 같다. 그것은 그들이 친족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같음'은 곧 끔찍한 진실과 함께 충격이 되어 다가온다. 강윤희는 자신의 삼촌, 강중식이 가해자인 친족 성폭력의 생존자였던 것. 표제작 <눈으로 만든 사람>의 이야기이다. 성조숙증을 앓는 딸 백아영의 신체에 왜 강윤희가 '과민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는지, 최은미는 신경증 같은 고통을 그저 세밀하게 '보여줄' 뿐이다.

    관계 속에 놓인 여성들이 있다. 팬데믹 이후 사회에서 고립된 유자녀 기혼 여성들. 과거의 폭력 이후 생존자로 세상에 놓인 여성들. "강윤희는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세상 한가운데서 혼자서만 노를 젓고 혼자서만 책임지며 혼자서만 비난받는 것 같았다." (115쪽) (<눈으로 만든 사람>), "유정은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하지 않았다는 건 납득할 수 있었지만 자신이 잘못된 존재가 아니라는 건 여전히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259쪽) (<내게 내가 나일 그때>) 내가 나와 유리되는 것을 경험해본 적이 있는 여성이라면, 최은미의 이 감각적인 문장들이 묘사하는 고통의 세계를 아는 독자라면, 그의 소설 앞에서 떨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최은미가 묘사하는 소설 <보내는 이>의 태풍의 밤처럼, 어떤 소설은 우리를 뒤흔들고, 그 소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한다. 소설가 황정은은 최은미가 묘사하는 이 여자들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그를 만나 당신의 소설이 나를 어떻게 흔들었는지를 말하게 될까봐 말할 기회가 영영 없을까봐 초조했다."고 말하는 독자 황정은의 떨림을, 최은미의 애독자인 나는 안다. 당신을 알고 있다고, 그 '찢어지는 여자들의 얼굴'을 안다고, 최은미라는 소설가의 눈부신 분기점을 보며 말한다.

  • 캐럴
    이장욱 (지은이)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6월 "여기서부터 미래의 밤"

    이 픽션은(픽셔널fictional한 것은 리얼한 것의 반대편에 있다. 실제 무한이라는 상징을 만든 이는 존 월리스이다.) 17세기의 수학자이자 성직자인 '존 홀리스'라는 인물의 일화로 문을 연다. 밤하늘의 별이 무한하다면, 밤하늘은 어떻게 저토록 어두울 수 있지. 존 홀리스는 "어이없게도 자신이 던진 농담 같은 질문에 사로잡혀"(11쪽) 밤하늘에게서 도망치려다 무한∞을 발견한다.

    질문은 2019년 서울의 밤하늘로 건너온다. 무한에 1을 더하면 무한은 무엇이 되고, 다시 그 무한에서 1을 빼면 1이 빠진 무한은 무엇이 되지. 선우정의 질문 이후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 캐럴.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2019년 겨울, 윤호연은 자신의 아내 선우정의 남자친구라는 한 사내의 전화를 받는다. 그는 1999년의 밤하늘 아래에 있는 도현도. 지금 도현도, 자신을 만나지 못하면 당신이 죽는다는 도현도의 말에 윤호연은 호기심을 품은 채 도현도를 만나러 간다.

    정교한 모순이 이야기의 구조를 만들어낸다. 윤은 교회를 다니지만 신을 믿지 않고 (24쪽) 해파리는 죽기 직전에 다시 어린 개체가 되어 생멸을 반복하며 아이덴티티를 이어나가며, (100쪽) 진정한 공산주의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만들어갈 (137쪽) 것이다. "모든 것이 연결돼 있고 이어져 있다는 것", "고고한 개인이나 단독자 따위는 애초부터 존재 자체가 불가능"(236쪽) 하다는 것을 말하면서도 소설 속에 주기적으로 흐르는 음악은 바흐의 '평균율'과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다. 규칙적으로 중첩되는 구조적인 음악처럼, 밤하늘 위의 두 개의 원은 교차하며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이장욱의 시집 제목 중) 감각의 연주를 이어나간다. "뭐 그냥 소설일 뿐이지"(249쪽)라고 소설 속 인물은 이야기하지만, 이장욱이 설계한 이 '거의 밤 같은 무엇'을 읽는 지적인 체험은 확실히 희귀하고 즐겁다. '미래 비슷한 무엇'을 짐작하는 시간, 그 시간이 흐르는 동안도 별은 우리의 머리 위에서 무한히 빛을 내고 있으니까.

  • 영매탐정 조즈카
    아이자와 사코 (지은이), 김수지 (옮긴이) | 비채 | 2021년 5월 "일본 미스터리 랭킹 1위를 석권한 화제작!"

    오컬트 추리 작가 구로고시의 산장에서 열린 바비큐 파티. 유령이 나오기로 유명한 그의 별장은 흑마술에 심취한 외국인 마술사가 지었다는 집으로, 앤티크 가구들과 곳곳에 걸린 거울 장식이 왠지 불길한 분위기를 풍긴다. 아니나 다를까 살인 사건이 벌어져 사람들은 혼비백산하고, 파티에 참석한 영매탐정 조즈카는 희생자의 혼에 접속하여 바로 범인을 색출하는데...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오는 능력을 가진 영매 조즈카와 논리로 무장한 추리소설가 고게쓰. 조즈카가 죽음의 냄새를 맡거나 원혼에 빙의하여 범인을 특정하면, 고게쓰는 그 답을 바탕으로 추론을 이끌어내어 경찰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사건을 풀어낸다. 2020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본격미스터리 베스트10' 1위를 비롯해 각종 일본 미스터리 랭킹 1위를 휩쓸어 국내 출간 전부터 큰 화제를 모은 <영매탐정 조즈카>. 이 책에 대해서는 아무리 중간에 '에이 뭐야, 이거 뻔하잖아'라는 생각이 들며 책을 놓고 싶더라도 끝까지 읽어야만 한다는 말 외에 어떠한 말도 쉽사리 보태기가 어렵다. 그저 원서 띠지 카피를 인용해본다. "한 문장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마라! 모든 것이 복선이다!"

6.112021
  • 완전한 행복
    정유정 (지은이) | 은행나무 | 2021년 6월 "정유정의 스릴러를 읽는 여름밤"

    지유의 엄마는 오리 먹이를 잘 만든다. 오리 먹이는 돼지고기를 갈아 만든다. 친구들은 '고기를 먹는 오리'라는 지유의 말을 잘 믿어주지 않지만, 지유는 자세히 해명할 수가 없다. 되강오리와 반달늪에 관한 이야기라면 비밀을 지켜야 한다. '엄마는 규칙을 정하는 사람.' 비밀을 지키지 않으면 '고아가 되는 벌'(31쪽)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은호와 유나는 러시아 여행에서 만났다. 바이칼 호수에 홀로 선 유나는 자꾸만 궁금해지는 여자다. 각자 아이가 한 명 있었고 이혼 경력이 한 번 있는 은호와 유나, 결혼 후 은호는 자꾸만 유나의 결정대로 행동하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이혼은 '완전함'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이혼하는 걸 원하진 않는 은호. 유나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여자라고, 은호는 유나를 감지한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간단한 사회실험 선택지를 받은 적이 있다. 눈앞의 버튼을 누르면 내가 10억을(금액은 얼마가 됐든 좋다) 받을 수 있고, 이 지구상의 내가 모르는, 누군가는 반드시 사망한다면 우리는 그 버튼을 누를 수 있을까. 어떤 사람에게 '10억'이 <완전한 행복>의 충분조건이라면. 유나는 행복은 덧셈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112쪽)라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은 이야기를 읽는 내내 영화처럼 선명해진다. (소설을 읽는 동안 영화 <콜> 전종서의 광기 어린 연기가 떠오르기도 했다.) 500쪽이 넘는 묵직한 이야기. 꼭 맞는 옷을 입고 독자를 찾은 정유정의 2021년 최신작. '우리는 타인의 행복에도 책임이 있다'는 작가의 말을 함께 기억하게 된다. <7년의 밤>에서 <종의 기원>까지 악의 3부작을 넘어, 시작되는 정유정의 '욕망 3부작' 그 첫번째 이야기가 찾아왔다.

  •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정세랑 (지은이)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6월 "정세랑, 여행의 순간들에 관한 다정한 기록"

    에세이는 작가가 내미는 손을 잡고 그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과 같다. 그래서, 에세이를 읽는 동안 소설에서 경험할 수 없는 다른 시간이 펼쳐진다. 좋은 소설로 독자들과 소통해온 정세랑 작가가 처음으로 자신의 일상을 담은 에세이를 펴냈다. 뉴욕, 아헨, 오사카, 타이베이, 런던 다섯 도시의 여행에 관한 에세이를 쓰다가 멈추고 쓰다가 지우고 쓰다가 고치며 9년이란 긴 시간을 보내고 난 후에 내놓은 이 한 권의 책을 독자들에게 권한다.

    작가는 어린 시절 몸이 아팠기 때문에 낯선 상황에 놓이게 되는 여행을 즐기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러 뉴욕으로 가고, 유럽으로 교환 실습을 가는 남자친구의 제안으로 아헨에도 가고, 예매 이벤트 1등에 당첨되어 런던에도 가게 되었다. 작가는 각 도시의 여행기뿐 아니라, 작가가 되고 소설이 탄생하게 된 이야기, 여행하며 맞닥뜨린 특별한 순간들, 그때의 다정한 시선과 마음들을 들려준다. 힘든 일이 생겨 마음이 꺾였을 때 꺼내보며 힘을 얻을 수 있는 반짝이는 여행의 기억들이 이 책을 가득 채운다.

  • 부의 시나리오
    오건영 (지은이) | 페이지2(page2) | 2021년 6월 "투자자를 위한 필수 금융 교양"

    투자자들은 신경쓸 것들이 너무 많다. 어제오늘의 주가와 매수 주체를 확인하고, 종목 토론방의 분위기를 읽고, 애널리스트들의 시황방송을 시청하고, 유명 카페나 블로그의 추천 종목을 점검하고, 경제 뉴스에서 건질 만한 것은 없는지 새로운 공모주 청약 건은 없는지 탐색하고, 내게 딱 맞는 매수매도의 기술을 찾거나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책장을 넘긴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부터다. 경제 성장률과 물가 상승률, 각국의 기준금리와 환율에 대한 전망, 게다가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의 마음까지 살펴야 한다니, 이쯤 되면 그냥 다 잊고 묵혀 두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그러나 신경 끄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투자란 '이익을 얻기 위하여 어떤 일이나 사업에 자본을 대거나 시간이나 정성을 쏟는 일'이다. 재산이 걸려 있다면 응당 정성을 쏟아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것은 금융 공부다. 들어도 들어도 헷갈리는 게 금융이기 때문이다. 채권 시장은 왜 중요한지, 금리 인하의 부작용은 무엇이며 돈을 풀어도 물가가 오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연준의 통화정책이 어째서 내가 산 주식에 영향을 주는지 궁금하다면, 나아가 코로나 이후의 성장과 물가에 대한 전망과 그에 따른 포트폴리오가 궁금하다면 이 책이 안성맞춤이다. 친절한 금융맨 오건영이 곁에 있어 정말 다행이다.

  • 해방자 신데렐라
    리베카 솔닛 (지은이), 아서 래컴 (그림), 홍한별 (옮긴이) | 반비 | 2021년 5월 "모든 존재가 해방되는 이야기"

    <다정한 무관심>에서 한승혜 작가는 개인주의를 이렇게 말한다. "개인주의는 다른 사람들 역시 자신과 동등한 존재, 똑같은 욕구를 지니고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는 한 명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자신의 권리가 소중하기에 그만큼 타인의 권리도 존중한다." 이 설명에 기대어 소개하자면 <해방자 신데렐라>는 개인주의자들이 단단하고 선하게 자기 삶을 일구어나가는 이야기다.

    신데렐라가 구박받는 초반의 이야기를 제외하면 리베카 솔닛이 다시 쓴 이 동화에선 누구도 착취 당하지 않는다. 대모 요정과 말로 변신한 동물들은 선의에 의한 자발적 의지로 신데렐라를 돕고, 신데렐라를 구박하며 허영을 부리던 언니들은 타인의 시선이라는 영원히 도달하지 못할 목표에서 벗어나 자신을 만족시키는 일을 찾는다. 구두의 주인을 찾은 왕자는 신데렐라에게 뜬금없는 청혼이 아닌, 친구가 되자는 수줍은 제안을 건넨다. 타인의 삶에 편승하는 대가로 자유를 잃는 대신 신데렐라는 자신이 원하는 의미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간다. 리베카 솔닛의 신데렐라 이야기에 나오는 이들은 모두 건강한 자기 자신이 됨으로써 빛이 난다.

    우리가 책을 사랑하는 이유. 책 속에서 만난 에너지는 책 밖의 현실로 따라 나온다. 이 책의 자장 안에서 한동안 나는 씩씩하고, 내 몫의 노동 앞에 망설임이 없고, 내 잘못에 대해 진심 어린 용서를 구할 수 있을 만큼, 그리고 타인을 주저 없이 도울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이 신데렐라 스토리의 디폴트가 되면 세상이 개인주의자들의 공동체에 한 발짝 가까워질 수 있을까? 기분 좋은 상상이다.

6.152021
  • 흰머리 휘날리며, 예순 이후 페미니즘
    김영옥 (지은이) | 교양인 | 2021년 6월 "페미니스트의 눈으로 본 노년의 시간"

    억척스럽되 헌신적이고 배움은 짧을지언정 생활의 지혜는 넘치는 애정 많은 할머니. 말고, 노년 여성에 관한 다른 상상을 이 사회는 허하는가? 여성에 관한 사회, 문화적 맥락은 30-40대부터 급격히 좁아지기 시작하다 노년에 이르러서는 더할 나위 없이 평평해진다. 그 평평함 위에서 자기 삶을 연결 지어 해석할 길 없는 이들은 위축되고 바깥에서 향하는 시선은 무례하다. 김영옥 작가의 이번 책을 읽으며 새롭다는 느낌을 받은 이유는 그간 여성의 노년 경험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묻어나는 콘텐츠가 거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김영옥은 이 책에서 갱년기의 구체적 경험과 의미, 노년의 성애, 돌봄 노동의 치열함에 대한 성찰 및 아픈 몸에 대한 고찰 등 노년의 다양한 실존적 현실에 대해 날카로운 글쓰기를 보여준다. 그의 사유는 두루뭉술한 노년 여성의 상에 압정을 꽂아 우리가 살펴야 할 곳을 직시하도록 한다. 날 선 시선과 지적인 문장들은 아직 해석되지 못한 경험들의 가능성을 들여다본다. 앞으로 더 넓혀갈 노년 여성의 삶에 대한 이해, 그 서두에 이 책이 서있다.

  • 여자력
    AJS, 골왕&자룡, 고사리박사, 김이랑, 뼈와피와살 (지은이) | 문학동네 | 2021년 6월 "전통의 방식으로 그려낸 가장 전복적인 이야기"

    지금 가장 주목받는 작가 5명이 '초능력'이라는 공통의 주제를 가지고 저마다의 색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아주 오랜만에 선보이는 만화 단편집이자, 책으로 엮이기 전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소개된 바가 없어 처음부터 '지면'의 연출만을 염두에 둔 종이 만화이다.

    증조할머니의 땅문서를 찾으러 과거로 간 손녀, 자신의 기억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믿지 못하는 무사, 어느 날 모든 사람에게 생겨난 초능력으로 인해 디스토피아가 된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등 과거나 미래의, 혹은 동시대의 다양한 사건들이 하나의 주제를 관통하며 힘 있게 그려진다. 짧은 이야기 속에서도 선명하게 살아있는 갈등과 해결 과정 속의 카타르시스가 흑백만으로 이뤄진 만화 컷을 뚫고 나와 일상 속 권태를 이겨나갈 힘을 주는 듯하다.

  • 스파크
    엘 맥니콜 (지은이), 심연희 (옮긴이) | 요요 | 2021년 5월 "이 세상에 혼자 크는 사람은 없다"

    2021년 BBC 블루피터 북 어워드 수상작. 영국의 작은 마을에 사는 주인공 애디는 수 세기 전 마녀로 몰려 처형당한 사람들을 위한 추모비 건립 캠페인을 벌이지만 이에 공감하는 이는 많지 않다. 다르다는 이유로 억압받은 마녀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다름'과 '틀림'이 동의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타인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애디. 그 모습은 피상적으로 이해하던 타인과 나의 차이를 다시 한번 곱씹게 한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장애 당사자인 작가 엘 맥니콜은 그간 자신이 읽은 책에서 묘사된 자폐의 문제점을 이야기한다. 자폐는 주인공이 극복해야 하는 장해물 또는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소재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 단지 '정상'인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매도하는 일은 얼마나 많은가. 작가의 말처럼, 인간은 혼자 크지 않는다. 자신을 지지해주는 가족과 멸시하지 않는 친구들, 그리고 마땅한 교육을 제공해야 할 학교와 국가의 의무까지 이야기하는 애디의 시점은 날카롭고, '다양성이 공존하는 세상'이야말로 사회의 지향점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한다.

  • 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
    하현 (지은이) | 비에이블 | 2021년 6월 "하현 신작, 평범한 삶으로부터 빚어낸 이야기들"

    첫 책 <달의 조각>으로 큰 사랑을 받은 하현 작가는 이후 <이것이 나의 다정입니다> <어쩌다 보니 스페인어였습니다>를 추가로 펴내며 고유한 문장 세계를 차분히 확장시켜 왔다.

    달걀 프라이 옆에서도 기죽지 않는, 명랑하고 씩씩한 달래양념장이 되고 싶은 사람, 약속이 취소되면 기쁘게 혼자가 되는 사람, 늘 간절하게 고요를 꿈꾸는 사람. 스스로를 '명랑하고 씩씩한 달래양념장'이 되고 싶다고 소개하는 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층간 및 벽간 소음으로 고통받는 하루하루에서 탈주하고자 이사에 깊이 골몰하고, 어렵게 입사한 회사로부터 부당한 일을 당하고, 스몰토크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용한 미용실을 찾아다니고, 열 중 아홉과 맞지 않아도 마음 터놓고 지낼 수 있는 한 사람으로부터 버틸 힘을 얻곤 하는, 누구나 겪는 평범한 일상이 작가에게도 흐른다. 작가는 그런 평범한 일상의 조각들을 모아 마음속 품고 있는 특별한 이야기로 빚어낸다. 그 특별한 이야기를 하나 둘 읽어내려가다 보면 '이런 나여도 되는구나, 내가 나여서 좋은 순간들도 있구나' 마음을 일으켜 세울 힘을 얻는다.

6.182021
  •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
    천선란 (지은이) | 안전가옥 | 2021년 6월 "<천 개의 파랑> 천선란의 뱀파이어 로맨스"

    <천 개의 파랑>으로 한국과학문학상을 수상한 천선란의 신작 장편소설이 출간되었다. 말과 로봇과 인간의 우정을 꿈꾸는 아름다운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에게는 '천선란이 쓴 뱀파이어 로맨스'라는 정보 외의 설명이 더 필요하지 않을 듯하다. 그럼에도 아직 천선란을 만나지 못한 독자를 위해 조금 더 말을 덧붙여 보자면.

    인천 구시가지에 위치한 철마재활병원. 형사 수연은 이 병원 환자들의 연쇄 자살을 수사하기 위해 병원을 찾는다. 수연은 자신보다 먼저 병원을 '찾아온' 완다와 마주치고, 그는 이 사건은 단순한 자살이 아니며, 범인은 인간이 아닌 뱀파이어일 것이라고 수연에게 정보를 준다. 그리고 이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간호사 난주가 있다. 마약성 진통제를 훔쳐다 몰래 팔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외로움이 자신을 잠식한 수연, 타국에 입양된 후 고독한 이방인으로 자란 완다. 가족에게 착취당하고 그들의 빚을 대신 갚으며 삶을 견디는 '착한 딸' 난주. 이 세 여자에겐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모두 외로운 사람들이라는 것. 그리고 뱀파이어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취약한 부분"(59쪽)인 외로움을 찾아온다.

    이 소설의 첫 문장을 본 순간부터 나는 이 이야기에 일찌감치 사로잡혔다. 완다를 보는 수연은 "이 미친 여자의 말을 듣게 된 경위를 따지려면" (9쪽) 하고 완다의 이야기속으로 뛰어든다. 스스로가 '미친 여자'가 아닐까 의심하게 되는 이들. 미치지 않고서야 이렇게 외롭고 괴롭고 화가 날 수 있는지 자기 자신을 의심하게 되는 이들을 위한 '미친 여자'들의 이야기. 구원이라도 필요한 이들의 여름밤을 위해, 구원처럼 이 소설이 찾아왔다.

  •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
    리단 (지은이), 하주원 (감수) | 반비 | 2021년 6월 "정신병의 나라에서 온 베테랑 안내자"

    저자는 10여 년간 정신 질환을 앓아왔다. 그가 병으로 겪은 다양한 일들이 책에 적혀있다. 그 투병의 기간 동안 병에 눌리고, 빠져나오고, 분석하고, 느끼고, 생각하고, 이해하고, 대책을 세우고, 해석하며 눌러 쌓아온 것들을 이 책에 폭발하듯 펼쳐놓았다. 단순하게 나온 경험담과 가벼운 안내가 아니다. 몸속에서 몇 바퀴는 구르다 발효되어 나온 문장들이라는 것을 책을 펼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정신 질환을 앓는 모든 이들에게 필독서가 되어야 한다. 저자는 정신 질환자들이 "간단한, 직접적인, 그리고 자조적일지언정 유머러스한 당사자의 말이 필요"했다고 말한다. "정병", "정병러"라는 단어를 가리키며 쓴 문장이지만, 이 책에도 적용 가능한 말이다. 겪어 봤기 때문에, 당사자이기 때문에 닿을 수 있는 영역에서 끌어온 직설적이고 실용적인 안내가 빼곡하다. 정희진 작가는 "호소, 분노, 자기 연민을 넘어선 글쓰기는 정신질환에 관한 글쓰기의 도약, 이정표라 할 만하다."라는 말로 추천했다. 동의한다.

  • 낮술
    하라다 히카 (지은이), 김영주 (옮긴이) | 문학동네 | 2021년 6월 "지친 하루를 위로하는 맛있는 한 끼, 시원한 한 잔!"

    밤부터 아침까지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돌보고 낮에 퇴근하는 쇼코에게 시원한 술 한 잔을 곁들인 점심은 하루 중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공들여 식당과 메뉴를 고르는 마음, 날생선과 밥과 술이 "입속에서 삼위일체"가 될 때의 쾌감, 채워진 새 잔을 보면서 "마음이 춤추는" 순간. 모든 걱정은 잠시 뒤로 하고 눈앞의 달콤함에 몸과 마음을 실어 보내게 되는 순간들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누군가의 반려동물, 아픈 아이, 노모를 밤새 돌봐주면서 정작 자신의 아픔을 대면할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지만, 하루하루 자신만의 방식으로 작은 기쁨을 쌓아가며 쇼코는 무너지지 않는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커피를 마시고, 최고네."라고 말하며 미소짓는 순간의 온전한 행복. 맛있는 한 끼라는 원초적인 기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떠올려본다. 고단한 하루의 끝에서, 힘을 내어 다시 뚜벅뚜벅 내일을 살아갈 기운을 얻을 수 있는 책.

  • 황금나무숲
    이은 (지은이), 이가라시 미키오 (그림) | 한솔수북 | 2021년 6월 ""어린 곰들은 그래. 항상 좋은 생각만 하거든.""

    아주 옛날 황금색 별똥별이 언덕에 떨어진 후 추운 계절 하나를 보낸 뒤 그 위로 황금색 싹이 텄다. 그 싹은 곧 무럭무럭 자라 나무가 되었고 황금나무가 되었다. 숲속에 사는 반달곰 달곰이와 곰곰이, 꼬찌, 부기, 두지, 산토, 돌돌이, 왼손잡이 양들, 다미와 라미가 시끌벅적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노라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산딸기, 뱀딸기 노래를 부르며 개망초 꽃밭을 뛰어노는 모습은 자연과 멀어진 어린이 독자들에게 간접 체험을 제공한다. 시골에서 자라 자연을 마음껏 즐겼던 나로서는 추억이 떠올랐다. 개망초꽃을 꺾어 노란색 진액을 손톱에 바르고 놀고 뱀딸기를 따먹고 흙 놀이를 했던 어린 시절. 달곰이는 친구들과 훨씬 더 재밌게 놀기 때문에 부러움이 생길 정도다.

    작은 마을에서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도록 신경 쓰는 달곰이를 보면 우정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알 수 있다. <보노보노>의 작가 이가라시 미키오와 글 작가 이은 시인의 우정으로 탄생한 따뜻한 동화는 독자를 황금나무숲으로 초대한다.

6.222021
  • 우리가 쓴 것
    조남주 (지은이) | 민음사 | 2021년 6월 "80대에서 10대까지, 여전히 우리 모두의 김지영"

    <82년생 김지영>은 2016년 출간되어 백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27개국에서 25개 언어로 번역되어 중국, 일본 등의 국가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이 소설이 우리에게 던진 질문이 조남주의 첫 소설집에서 계속된다. 먼저 80대 여성의 이야기. 금주, 은주 언니와는 이름자가 하나도 같지 않은 나, 막내 '말녀'는 남편의 장례가 끝난 후 '동주'로 개명한다. (<매화나무 아래> 中) 그리고 10대 여성의 이야기. 남자애들을 학폭위에 신고한 딸 주하는 엄마의 '예쁘다'는 말에 이렇게 대꾸한다. "그러니까 어쨌든 예쁘기는 해야 할 것 같잖아. 예쁘지 않아도 된다고 해 줄 순 없어?" (<여자아이는 자라서>, 290쪽 中)

    김지영들이 각자의 이름으로, 각자의 세대에서, 각자의 투쟁을 하며 2020년대를 산다. '미스 김'으로, 며느리로, 여자 친구로, 자신이되 자신이 아닌 이름으로 사는 여성들. 조남주를 통과한 시간들을 짐작하며 소설을 읽는다. <오기>속 '여고생' 초아는 국어 담당 김혜원 선생님에게 소설 <새의 선물>을 선물받고, 자라서 여성의 이야기를 하는 소설가가 된다. <82년생 김지영>을 선물하고, 선물받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이 에피소드를 읽었다. 어떤 이들은 앞으로도 <82년생 김지영>이라는 한 편의 소설이 만들어낸 것들과 함께 2010년대의 후반부를 기억할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쓴 것'이 앞으로 우리가 갈 길을 비출 것이다.

  • 플롯 강화
    노아 루크먼 (지은이), 신소희 (옮긴이) | 복복서가 | 2021년 6월 "김영하 작가가 한예종 수업에 쓴 글쓰기 책"

    이 책의 1,2장에 쓰인 물음표는 총 몇 개일까? 미국 문학계의 유능한 에이전트인 저자는 작품의 등장인물에 관한 세세한 질문들을 첫 40여 장에 걸쳐 쉴 틈 없이 쏟아낸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몰아치는 질문에 대답하려면 진이 빠진다. 그러나 당신이 만든 작중 인물이 찰흙 한 덩이 뚝 떼낸 것처럼 투박하다면, 그래서 인물이 이야기를 스스로 만들어낼 능력이 없다면, 이 세밀한 빗금 같은 질문들을 통과해보는 것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최근 5년 동안에만 5만 건 이상의 원고를 읽었다는 그가 제시하는 창작 훈련 방식은 숙련된 조교답게 날카롭고 단정하다. 1,2장의 수많은 질문들을 넘어 3장에 이르면 그때부턴 인물과 갈등, 개개인의 여정, 서스펜스 등에 대한 설득력 있는 통찰들이 이어진다. 여러 질문과 답들을 읽어내리다 보면 인물과 플롯에 대해 입체적으로 사고하는 방식을 연습하게 된다. 창작의 정석, 두고두고 읽을 교과서 같은 책이다.

  • 퀀텀 마케팅
    라자 라자만나르 (지은이), 김인수 (옮긴이) | 리더스북 | 2021년 6월 "마케팅 대결 AI vs 인간"

    "광고는 죽었다." 경영 구루 세스 고딘이 마케터들을 도발한지도 20년 가까이 지났다. 그러나 여전히 마케터들은 마케팅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이 주된 일이다. 마케팅에 정답이 있다면 진즉에 사업을 차렸지 이러고 있겠냐며 한탄하면서도 잘 팔리는 상품을 보면 어떤 마케팅을 했는지부터 살피느라 여념이 없다. 게다가 인공지능 시대가 다가오면서 마케팅은 더 큰 위기에 처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마케터의 기여도와 가치에 의심을 보내는 눈길이 많아졌다." 마케팅은 여전하더라도 마케터는 필요 없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인공지능의 시대에 마케터로 살아남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글로벌 금융기업 마스터카드의 CMO이자 세계적 마케팅 리더인 저자는 중대한 변곡점에 놓인 현장의 고민을 함께 나누고 새로운 마케팅에 대한 커다란 담론을 제시한다. 물론 이 책에도 정답은 없다. 관점과 방향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우승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치열한 예선을 통과할 수 있는 힘이 된다. 그렇다. 마케팅은 일종의 경연대회다. 심사위원이 로봇이어도 놀라지는 말자. 좋든 싫든 알고리즘에도 마케팅을 해야 하는 시대인 것만은 분명하니까.

  • 세금 내는 아이들
    옥효진 (지은이), 김미연 (그림) | 한국경제신문 | 2021년 6월 "돈으로 움직이는 교실로 초대합니다"

    6학년 '활명수' 반은 '미소'라는 화폐를 이용하는 작은 나라다. 직업을 선택해 그에 따른 월급을 받고 세금도 낸다. 또 저축도 하고 사업자 등록을 내 자영업자가 될 수도 있다. 성인이 되면 할 수 있는 경제 활동을 초등학교에서 미리 해보는 것이다. 시우는 월급을 제일 많이 주는 청소부가 되지만 세후 월급에 격분하고 저축은커녕 일기 면제권과 급식우선권 쿠폰을 사느라 월급을 탕진한다. 비단 시우만의 일이랴. 경제 활동을 하는 성인이라고 해서 모두 똑 부러지는 소비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며 '학급 화폐'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저자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인 이 책은 피상적인 경제 개념 위주의 학습은 지양한다. 직접 겪어 보며 배우는 경제 활동은 가까운 미래에 자신을 지키기 위한 큰 자산이 될 것이다.

6.252021
  • 친구의 전설
    이지은 (지은이) | 웅진주니어 | 2021년 6월 "이지은 신작, 호랑이와 꼬리 꽃의 운명적인 만남!"

    "맛있는 거 주면 안 잡아먹지!"를 외치며 다른 동물들을 겁주고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호랑이. 호랑이가 나타나면 동물들은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고, 호랑이는 아쉬운 눈으로 그들의 뒷모습만 바라보는 일상이다. 그런 어느 날, 잠에서 깬 호랑이의 꼬리에 노란 꽃 하나가 달려 있지 않은가! 이날부터 한가롭던 호랑이의 일상은 엄청나게 수다스러워진다. "맛있는 거 주면, 고맙겠다!" 호랑이의 엄포는 친근한 인사로 바뀌고, 호랑이가 가는 곳에는 "안녕" "안녕" 만나는 이마다 반갑게 인사하는 꼬리 꽃과 호랑이와 붙어버린 꼬리 꽃의 운명을 슬퍼하는 동물들의 대화가 끝없이 이어진다. 게다가 도움이 필요한 동물에겐 어느 순간 짜잔, 호랑이와 꼬리 꽃 콤비가 나타난다.

    동네 말썽꾸러기 외톨이 호랑이와 시크하고도 다정한 꼬리 꽃의 만남과 야단법석인 이들의 일상은 한없이 유쾌하고 평화롭다. 하지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 하얗게 변한 꼬리 꽃의 꽃씨들이 하늘로 하늘로 날아오를 때면 어쩔 수 없이 콧날이 시큰해진다. 호랑이의 등을 토닥여주고 친구가 되어주는 다른 동물들, 그리고 따뜻한 날에 꽃 눈이 내리면 나타나는 눈 호랑이. 이지은 작가는 일상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에 무한한 상상력을 입혀 재미와 감동, 반전이 가득한 이야기, 또 하나의 '전설'을 만들어냈다.

  • 타인의 집
    손원평 (지은이) | 창비 | 2021년 6월 "<아몬드> 손원평의 프리즘을 통과하면"

    한 소설가의 세계가 추구하는 경향성을 짐작하려면 단편소설을 읽는 것이 좋다. 소설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기어이 시선이 향하는 주제 같은 것이 그 소설가만의 개성을 만들기 때문이다. 장편소설 <아몬드>로 한국의 80만 독자의 사랑을 받고, 일본서점대상을 받기도 한 소설가 손원평의 첫 소설집. 짧고 대담하고 강렬하게, 손원평이라는 프리즘을 투과한 빛이 내려 앉는다.

    표제작 <타인의 집>에 모여사는 네 명의 사람들. 쾌조씨와 재화언니와 희진과 나는 서로를 잘 모른다. 아파트의 원래 주인은 알지 못하는 불법 쉐어하우스이지만, (나 역시 하우스메이트로 이런 식의 집에 살아본 적이 있는데, 불법적인 계약이라 그 집에 주소를 둘 순 없었다.) 지하철역, 스타벅스, 멀티플렉스에 도보로 이동 가능한 어엿한 아파트를 적은 비용으로 누리려면 '자본주의'의 법칙에 동의해야 한다. 비용을 더 지불하지 않았다면 방에 딸린 개별 화장실은 쓸 수 없고, 전 세입자가 자살한 적이 있는 방이면 값이 내려가는 법칙. 우리의 삶의 요소를 너무나 크게 좌우하는 '집'의 문제는 이렇게 많은 우연과 법칙으로 정해진다. 자신의 집을 에어비엔비로 내놓은 사이가 나쁜 부부의 집이든 (<사월의 눈>), 영화의 남편을 불구로 만든 공사를 하다 만 아파트 단지의 흉물스러운 집이든 (<zip>) 공간과 사람을 보는 손원평의 서늘한 시선엔 공통적인 요소가 있고, 그 공통점을 찾아내는 것 역시 단편소설 읽는 재미를 더한다. <아몬드>의 그 소년들의 뒷 이야기 <상자 속의 남자>를 만나는 것 역시 손원평을 아끼는 독자에게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

  • 있지만 없는 아이들
    은유 (지은이),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 창비 | 2021년 6월 "은유 신작, 우리의 존재는 불법입니까?"

    지난주에 휴대폰을 잃어버렸다. 당장 식당에서 QR 체크인을 할 수 없었고, 본인 인증이 안 되어 뱅킹 서비스도 쓸 수 없었다. 퇴근길엔 따릉이를 못 타서 한참 걸었다. 생각지 못했던 불편함이었다. 본인인증을 하지 못해 당황스러운 상황이 자꾸 발생해서 3일을 참지 못하고 바로 휴대폰을 샀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이들에겐 일상인 일이다. 존재하지만 서류상으론 세상에 없는 아이들, 미등록 이주 아동들은 본인을 인증할 방법이 없다. 통장 개설도, 휴대폰 개통, 병원 이용, 보험 가입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존재 자체가 불법으로 규정되기 때문에 경찰차가 옆을 지나가면 눈치를 본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란 이들은 법적 보장 기간이 끝나고 성인이 되면 언어도 문화도 통하지 않는 부모의 나라, '본국'으로 강제 송환된다. 정해진 미래를 알기에 자라는 내내 그 불안감에 붙들려 산다.

    혐오에 대해서는, 촘촘한 논리로 쌓아올린 웅장한 글보다 당사자의 인생 이야기 한 토막 듣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 생각한다. 애초에 인간이 인간이라는 사실엔 논리가 개입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은유 작가는 이번 책에서 미등록 이주아동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거두어서 잘 펼쳐 놓았다. 평소 난민 이슈에 큰 관심이 없었다면 새롭게 알게 되는 내용이 태반일 텐데,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쓰릴 것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감정보다는 이들이 삶에서 품어온 묵직한 질문에 더 집중했으면 한다. 책에 등장한 아이들도 모두 사정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상황에서 보는 제각각의 질문과 고민을 던진다. 하지만 인간이 인간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인간이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라는 것은 모두 동일하다. 이에 대해 답하지 않고서는 인권 문제에서 단 한 걸음도 진보할 수 없을 것이다.

  • [세트] 영혼의 미로 1~2 - 전2권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은이), 엄지영 (옮긴이) | 문학동네 | 2021년 6월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잊힌 책들의 묘지' 완간"

    <바람의 그림자>를 처음 만났을 때의 충격을 기억한다. 이야기의 급류에 속절없이 휩쓸려 가고 있다는 감각. 고서점과 세상에 단 한 권 남은 책과 미스터리와 몰락한 귀족의 저택과 고풍스러운 바르셀로나의 거리가 주술처럼 뒤엉킨 이야기의 소용돌이 속에 그저 몸을 맡긴 채 밤낮으로 책장을 넘길 뿐이었다. 그런 마력을 가진 책을 만나는 일은 아주 드물다. 읽힌 활자는 흩어지고 어느새 이미지만이 남아 사방에서 끝없이 재생되는 매혹의 경험.

    시간이 흘러 <바람의 그림자>에서 소년이었던 다니엘은 아버지가 운영하던 고서점을 이어받았고 그를 꼭 닮은 아들을 그가 애타게 찾던 작가, '훌리안'으로 이름지었다. 그리고 또다른 한 권의 희귀본 <영혼의 미로>는 다시 모두를 잊힌 책들의 묘지로 이끌며 운명의 그림자를 드리워온다. 기억과 비밀, 겹겹의 안개에 가려진 스페인의 근대사가 남긴 어둠.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속에 스며든 인물들에겐 어떤 운명이 당도해 있을까.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이 남긴 마지막 소설로 '잊힌 책들의 묘지'의 세계가 막을 내린다. “이야기에는 들어가는 문만 있을 뿐 시작도 끝도 없다”는 소설 속 문장을 기억하며, 문학에 바치는 그의 마지막 헌사에 경의를 보낸다.

6.292021
  • 손미나의 나의 첫 외국어 수업
    손미나 (지은이) | 토네이도 | 2021년 7월 "열정의 불씨를 유지하는 법"

    막연히 제2외국어를 공부하고 싶을 때가 있다. 영어권이 아닌 국가로 여행을 계획했다거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갑자기 순례를 떠나고 싶었거나, 아니면 단순한 지적 호기심 혹은 영어의 대안, 나만의 무기로서 제2외국어를 떠올렸을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그러한 우리의 생각은 금세 회의적으로 돌변한다. 영어부터 완벽히 익힌 다음에 해야겠다고 유보하거나, 지금 시작해서 언제 제대로 써먹겠냐며 접어 버리기 일쑤인 것.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를 찾는 시간에 공부를 했더라면 벌써 제2외국어 하나쯤은 마스터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5개 국어를 구사하는 저자 손미나는 그것은 대개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힘들다는 편견도 마찬가지다. 30대 중반에 프랑스어를, 40대에 이탈리아어를 시작했다는 저자 앞에서 나이탓은 그저 핑계에 불과하다. 우리 뇌의 언어 능력이 70대에 비로소 최고조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나는 여기에 조바심을 덧붙이고 싶다. 언어 공부는 시간과의 싸움인데 시작부터 반을 원하는 것이 우리다. 뭐 좋다, 시작이 반이다. 나머지 반을 버틸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 인내와 습관의 힘이 이 책 안에 있다.

  • 나는 오늘 나에게 ADHD라는 이름을 주었다
    신지수 (지은이) | 휴머니스트 | 2021년 6월 "정신 질환 분야에서의 젠더 데이터 공백"

    미래는 균일하지 않다. 과학은 언제나 힘 있는 곳에 먼저 도달한다. 기술의 시계로 봤을 때, 중산층 백인 남성과 빈민가의 흑인 여성은 몇 십 년, 혹은 몇 백 년을 떨어져 살고 있을 것이다. 정신 질환에 대한 연구와 치료 또한 마찬가지다. 임상 심리학의 세계에서 여성은 몇 년도에 위치하고 있을까?

    저자는 여성 임상심리학자다. 대학 병원에서 환자들을 보던 중 무언가를 느껴 스스로 검사를 했고, 본인이 ADHD라는 사실을 알았다. 대개 ADHD는 유년기에 발견된다. 저자는 왜 이렇게 늦게 발견했을까?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간명한 사실을 말하자면, 여성이어서다. 남성 중심의 진단 검사와 진단 도구, ADHD는 보통 남자아이에게만 집중적으로 나타난다는 학계의 편견, 이에 더한 개별 의사들의 선입견, 성별에 따라 다른 사회적 역할 기대 때문에 남아와 다르게 발현되는 여아의 증상... 이 모든 것들이 합쳐져서 실제로 여성의 ADHD는 진단도 치료도 확연히 지연된다고 한다. 책은 ADHD를 포함한 정신건강 분야에서 젠더 편향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여러 실험과 연구를 근거로 들어 설명한다. 2021년 현재, ADHD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법은 있지만 그 혜택을 누리는 성별은 편향되어 있다. ADHD 연구의 시계에서 여성은 몇 년도를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보이지 않는 여자들>에서 인간의 디폴트 값이 남성으로 설정되어 있는 세계에 대해 실증적으로 알게 되었다면, 이 책에선 ADHD를 포함한 정신 질환의 분야에서 성별이 진단과 치료에 얼마나 본격적으로 개입하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도 인간이다'라는 구호를 언제까지 외쳐야 우리는 같은 '현재'를 살아갈 수 있을까? 저자는 서문에서 ADHD라는 진단이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비로소 시야가 밝아지는 안도감을 줬다고 했다. 정확한 진단이 주는 힘, 이 책 또한 많은 독자들에게 같은 감정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니까
    문지애 (지은이) | 한빛라이프 | 2021년 6월 "문지애, 나를 위로해준 그림책 수업"

    민들레는 민들레
    꽃이 져도 민들레
    씨가 맺혀도 민들레
    휘익 바람 불어 하늘하늘 날아가도
    민들레는 민들레

    출산 이후 힘든 시간을 보내던 중 우연히 집어 든 그림책 <민들레는 민들레>를 읽다가 펑펑 눈물을 쏟았다. '문지애'는 사라지고 한 아이의 '엄마'만이 겨우겨우 버티고 있던 날들에, 그 그림책은 '문지애는 문지애'라고 가만히 말해주며 위로를 건넸다.

    프리랜서 방송인, 그림책학교 원장으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문지애가 처음 펴내는 이 책은, 좋은 엄마가 돼보려고 애쓰다 만난 그림책 한 권이 자신의 삶에 얼마나 큰 변화와 위로를 주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촘촘하게 기록한 에세이다. 작가는 그림책을 읽는 동안 자신과 아들의 마음을 잘 돌볼 수 있게 되었고, 그림책 수업에서 아이들, 부모들과 그림책을 함께 읽으며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런 귀한 경험의 순간순간에 스며든 다채로운 그림책을 소개하면서 따뜻한 이야기들을 풍성하게 풀어낸다. 마지막 부분에는 그림책 고르는 안목부터 아이와 함께 읽는 방법, 추천리스트 등을 수록하여 그림책 세상으로 친절하게 안내한다.

  • 내가 모르는 사이에
    김화요 (지은이), 오윤화 (그림) | 웅진주니어 | 2021년 6월 "2021 웅진주니어 문학상 대상 수상작"

    자신을 이해하기도 어려운 법인데 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각자 다른 환경에 놓여 외따로이 자라나는 어린이들이라면 더 그럴 테다. 책 속에 등장하는 세 아이는 각자가 가진 결핍이 다르다. 남을 배려할 줄 알고 따뜻하지만,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고효민, 어려워진 집안 환경으로 인해 마음에 그늘이 생겨버린 임수현, 부족한 것 하나 없어 보이지만 주목받지 않으면 불안한 강주목. 너무 다른 이 세 아이는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서로 얽히고 만다.

    언제고 타인을 이해의 영역으로 데리고 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세 아이의 시점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친구 관계와 어린이 당사자들의 심리 변화를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우리는 과연 편견과 선입견을 넘어" 내가 아닌 다른 이를 이해할 수 있을까. 너무 어려운 질문일지도 모른다. 2021년 웅진주니어 문학상 장편 부문 대상 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