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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이름:최은영

성별:여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84년, 대한민국 경기도 광명

직업: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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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스무 낮 읽고 스무 밤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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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여름,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으로 뜨거운 지지를 받고 있는 최은영 작가를 만났습니다. 소설처럼 정성스러운 목소리로 이야기를 전하던 작가의 말을 소개합니다. | 알라딘 도서팀 김효선










최은영이 오다


두번째 책이 나왔습니다. 서점에서는 예약판매로 사인본을 구매하고 싶어하는 고객의 열기에 새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실감했는데요. 신간 출간 이후 달라진 부분이 있을까요?


예약판매를 진행할 때, 사실은 신기했어요. 아마 첫 번째 소설집 읽으신 독자분들이 다시 재구매를 해주신 거겠죠? 다시 이어졌구나 생각을 하니 신기했어요. 신간이 나온 뒤엔 인터뷰를 하기도 하고, 책을 보내드려야 하는 친구들, 아는 사람들 주소록도 정리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이번 학기 강의를 해서 성적을 매기는 기간이라 최근에는 성적 매기고, 그렇게 지냈습니다.




이어지는 질문입니다. 평소 최은영 작가의 하루, 하루를 보내는 순서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요. 열시쯤 일어나서 운동을 가기도 하고, 운동을 안 가는 날엔 잠을 더 자고, 두시쯤 작업실에 가요. 글을 쓸 때는 밤까지 작업실에 있어요. 밤 열 시, 열한 시까지 글을 쓰고, 다시 집에 돌아와서 놀면서 인터넷도 하고 그래요. (웃음)




인터뷰를 진행한 오늘(7/4일 낮 최고 기온은 32도였습니다)도 날씨가 굉장히 더운데요, 전작 <쇼코의 미소>의 여름, 산책의 이미지가 근래의 날씨와 특히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계절에 대해 여쭙고 싶어요. 


저는 여름을 좋아하고 겨울을 너무 힘들어하는 그런 사람이에요. 여름이 되면 살아있다는 게 느껴지고 기분도 좋아지는데,  슬슬 추워지면 정말 우울해지고 힘들고 몸이 아파요. 더위도 별로 안 타고, 겨울엔 좀 아프기도 해서 여름이 훨씬 좋고 기운이 납니다.




최은영 작가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 전의 일, 나의 첫 기억이 궁금합니다.


저의 첫 기억은, 조금 이상한 얘기일 수도 있는데요.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는데. 전두환 대통령이 계단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있었어요. 정말 아기 때 본 장면인데 좀 ‘저 사람 뭐지?’ 했던 기억이 있어요.




<쇼코의 미소>가 출간되기 전 김연수 작가의 기획으로 낭독회를 진행핬뎐 걸로 알고  있어요. 그 낭독회에 대한 기억, 그리고 최은영 작가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찾아온 독자와의 낭독회의 기억에 관한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주 : <쇼코의 미소>라는 책을 소개하는 글에 이 일화가 등장합니다. 2016년 2월, 소설가 김연수의 기획으로 <우리가 처음 듣는 소설의 밤>이라는 이름의 행사가 진행되었다. 한 신인 작가가 어디에서도 공개한 적 없는 단편소설을 그날, 낭독의 형식으로 처음 발표하기로 한 것. 평소 이 작가의 작품을 좋아해 그가 계속해서 소설을 써나갈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행사를 기획했다는 김연수의 소개가 끝나고, 곧바로 작가의 낭독이 이어졌다. 그날 공개된 작품의 제목은 「씬짜오, 씬짜오」, 신인 작가의 이름은 최은영이다.)


제 작품을 통으로 읽었던 낭독회는 두 번이었던 것 같아요. 김연수 선생님께서 기획하신 낭독회는 그중 첫 낭독회였어요. 그땐 책도 나오기 전이고, 소설을 어떻게 쓰는지 물론 지금도 잘 모르지만 정말 모르던 때고, 그러던 중 선생님께 부탁들 받아서 사실 부담이 되더라고요. 거기 오신 60여명은 저를 아는 사람이 아니고, 선생님을 보러 오신 분들인데, 눈 오는 추운 겨울날, 사람들을 불러서 이상한 소설을 읽어서 미안해지게 될까봐 사실 걱정을 했어요. 이후 행사는 혼자 하는 행사여서 괜찮았어요. 못해도 저만 욕먹으면 되는 거니까. 그렇지만 첫 행사는 선배 작가님께서 추천해주셨는데, 선배 작가님께 피해가 될까봐 걱정했던 기억이 있어요.


(주 : 2년 전 일인데 그 날의 날씨, 모인 사람들, 그 사람들을 대하던 내 마음을 상세하고 정확하게 말씀해주시는 부분을 저는 타인에 대한 배려로 읽었습니다.)







내게 무해한 사람


제목의 의미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곱씹어 보셨을 듯해요. 작가의 말에서도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다는 말씀을 해주시기도 했고요.


(진희가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을 때,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어갈 때, 볼펜을 이리저리 돌릴 때 미주는 자신이 진희를 안다고 생각했다. 넌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려 하지. 그리고 그럴 수도 없을 거야. 진희와 함께할 때면 미주의 마음에는 그런 식의 안도가 천천히 퍼져나갔다. 넌 내게 무해한 사람이구나. <고백> 中)


누군가에게 무해한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이라면, ‘저 사람은 나를 편하게 해주는 사람, 내게 상처를 주지 않는 사람.’이라고 받아들여지는 사람이라면, 실은 대부분 그 사람이 뭔가를 참고 있을 거라고, 힘든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상대가 편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요. 다른 이에 대해 ‘저 사람은 무해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실은 다른 사람한테 관심이 없고 잘 모르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요.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다른 사람을 무해하다고 판단하는 그러 위치에 있어봤을 것 같아요. 상대방에 대해 이해하지 않으려 하는 순간 상처를 줄 수밖에 없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상처를 주는 사람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번 소설집 속 일곱 편의 소설에도 대부분 다른 사람한테 해를 끼치고,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것 같았어요. 악해서도 아니고, 악한 의도를 가진 것도 아닌데 결과적으로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 작품들을 엮다보니 제목을 <내게 무해한 사람>으로 정하게 됐습니다.




정말 모르던 신기한 이야기를 해주는 소설이 있고, 이미 우리가 알고 있던 것들을 잘 들여다보며 이야기해주는 소설이 있을 텐데요. 이 소설은 후자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소설이 묘사하는 감정들은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지만 잘 알아채지 못한, 알아채지 않으려 하는 감정들인 듯해요.


세상에 재밌는 게 정말 많잖아요. 드라마도 정말 재미있고 유튜브도 재밌고. 그런데 왜 굳이 소설을, 제 소설 같은 평범한 소설을 읽을까, 하는 생각을 저도 하는데요. 개인의 내면을 묘사하는 소설을, 저는 사실 재밌어서 읽어요. 예를 들면 영화 같은 다른 매체는 너무 환상적이고 아름답고 특이한걸 보여줄 순 있지만, 소설만큼 사람의 내면을 묘사하긴 어렵다고 저는 생각해요. 내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어떤 지점을 알아채도록 하는 소설의 역할이 독자로서 제게 재미있는 것 같아요.




자신이 가장 아프다고 생각했던 부분, 기억 속에 묻어둔 어떤 부분들에 대해 특히 더 아프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모래로 지은 집>이 가장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우리가 어떤 감정을 충분히 느끼지 못하고 지나갔다고 하면, 그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우리 안에 남아있는 것 같아요. 화를 냈어야 하는데 화를 못 낸 상황이 지나갔다고 하면, 물론 내가 계속 화가 난 상태는 아니지만, 그 화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내 안에 남아 있는 것 같았어요. 어떤 걸 잃어버렸던 상황, 슬픈 상황에도 충분히 슬퍼하지 않으면 그 감정은 제 안에 남아서, 제가 비록 느끼지 못하더라도 사는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을 해요.

그런 의미에서 소설 작품을 읽은 후 우리가 어떤 구체적인 감정을 다시 느낀다면 풀어지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그때 그런 일이 있었고, 이런 감정을 느꼈었지.’하며, 그 감정이 존재한다는 걸 받아들이는 게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야 슬프고 화가 나는 경험을 했던 과거의 나와 더불어 살 수 있으니까요. 일상을 살다보면 너무 바쁘고 시간이 없으니까, 자기감정을 들여다볼 시간이 별로 없잖아요. 묻고 잊어버리고 살아야 할 때가 있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면 사람의 마음이 병드는 게 아닌가 해요. 그 마음을 돌봐주고 풀어주는 게 소설의 역할이 아닌가 생각하고요.

글쓰는 사람으로서 내가 소설을 왜 쓰는지, 아직 다는 모르겠지만, <쇼코의 미소>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 다시 봤을 때 내가 나를 되게, 위로해주려고 썼구나. 나를 위해서 썼구나 생각했어요. 나를 위해서 썼구나. 내가 한 인간관계에서의 실패라든지, 많은 걸 애도하려고 썼구나. 




손길이라는 작품 속 등장인물 혜인에 대해 "혜인이 쟤는 참 유난해. 약하고 예민하고."라고 어른들이 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소설이 이야기하는 사람들, 혹은 그 사람들의 시절이 이런 시절들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작에서도 '선천적으로 눈이나 위가 약한 사람이 있듯이 마음이 특별히 약해서 쉽게 부서지는 사람도 있는 법'이는 작가의 말을 보며 위로를 받은 독자가 많을 듯해요.


제가 어릴 때 왜 이렇게 예민하냐고 야단맞고 그런 애였기 때문에 예민한 게 안 좋다고 생각했어요. 예민하다는 말을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적도 있어요. 그렇지만 제가 요즘 생각하기엔 예민하다는 건 감정이 많다는 뜻인 것 같아요. 감정을 많이 느끼는 건 일종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게 부정적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는 사회는 잔인한 사회, 비인간적인 사회가 아닌가 싶어요. 인간이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느끼는 건데, ‘왜 느끼니.’라고 타박하는 건 잔인한 사회라고 생각해요. 한국사회는 학교를 다닐 때부터 권위주의적인 분위기가 이미 스며들어 있잖아요. 그 안에서 정말 인간적인 사람들이, 단순히 잔인한 문화적인 맥락 안에 놓여있다는 이유만으로 예민하다고 멸시받지 않았을까, 저는 생각했고요. 더 슬픈 건 그렇게 자신이 예민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약하고, 나약하고, 바보 같은 사람들이고, 루저고 그렇게 해석되는 게 슬프다고 생각했어요. 사회가 잔인한 건 비판하지 않으면서 잔인함에 상처받는 사람들을 왜 탓하는 거지? 이런 생각을 해요.




이야기의 바깥에서 주인공을 보는 인물들의 자리가 눈에 띄었습니다. 공무와 모래를 지켜보는 나비의 자리(<모래로 지은 집>), 미주와 진희의 이야기 바깥의 수사 종은의 자리(<고백>) 등이 그렇게 보였어요.


소설은 현실이 아닌 소설이지만, 저는 항상 무서운 느낌이 있어요. 제가 만들어낸 인물들이긴 하지만 그 인물이 저는 아닌 거잖아요. 함부로 재현해서, 함부로 내가 아는 것처럼 써도 되는 걸까? 하는 부분이 항상 걱정이 돼요. 그래서 작품 안에 사람들을 지켜보는 누군가를 항상 넣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의 위치에서 이 인물을 보는 거니까 어쩔 수 없이 한계가 생기잖아요. 한계를 설정해줌으로써 결과적으로 ‘우리는 이것밖에 못 본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다 안다고 생각하는 건 위험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손길 속 정희와 혜인, 공무에게 가족보다 더 힘이 되어주었을 나비와 모래처럼, 때론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람들의 연대에 기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족이라는 말을 정말 협소한 의미로 따지면 남녀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가족을 이루는, 이런 ‘정상가족’이라고 일컬어지는 관계를 말할 수 있겠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느슨한 개념의 가족도 있다고 생각을 해요. 정말 가까운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아는 언니가 될 수도 있겠죠. 정말 끝까지 지지해주고 편을 들어주고 할 수 있는 그런 공동체가 저는 존재한다고 생각을 하고, 그런 게 평가 절하되는 것 같아서 아쉬워요. 정상가족이 항상 우선이고, 정상가족을 이루지 않는 사람들은 루저고 그런 가치관이 답답하다고 느껴져서, 정상가족을 이루지 않아도 가족이 될 수 있다고 얘기하고 싶었어요.




소설집에 대한 강지희 평론가의 해설 중 "자신이 누군가를 배반하고 그에게 상처 주었던 순간을 끝내 잊지 않겠다는 의연함" 이라는 문장이 시선을 끌었습니다. <그 여름> 속 이경은 제가 수이에게 상처를 주었던 순간을, 그럼에도 수이가 자신에게 자신의 감정을 과시하지 않았던 순간을 분명하게 기억합니다.


사람이 미안한 걸 알아야 한다고 저는 항상 생각해요. 되게 뻔뻔한 사람들이 있잖아요. 제가 봤을 때는 상처를 줬던 상황보다도 더 많이 상대방을 상처 입히는 건 상처를 준 사람이 자기가 한 행동이 계속 옳다고 생각하면서 피해자를 탓하거나, 아니면 자기는 상처주려는 의도가 아니었다고 얘기한다거나, 나는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거나 이런 태도들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생각할 때는 정치인들이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대하는 방식도 그런 방식이었던 것 같고요. 힘 있는 사람이 약한 사람을 대하는 방식들, 뻔뻔한 사람들이 당당한 사회에서 살다보니 우리도 더 강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더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상황들에 상처를 많이 받는 것 같아요.




<모래로 지은 집>에서 모래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니. 너무 나쁜 사람들을 너무 나쁘다고 하지 그럼 뭐라고 얘기해?” (126쪽) “가해자들도 변할 수 있어? 달라질 수 있어?” (136)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길을 열어두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사람들은 쉽게 용서받아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이 소설 속엔 등장합니다.


용서가 되게 좋은 말인 것처럼 우리는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아마 정희진 선생님 글에서 읽은 것 같은데요, 용서가 좋은 것이 아니고 누가 용서를 하는지, 누구에게 용서가 강요되는지를 생각해봐야한다는 글이 있었어요. 용서를 하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은 대부분 좀 약한 사람들인 것 같아요. 자신에겐 힘이 없어서 용서를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에게 용서가 강요된다고 생각해요. 당사자가 용서를 마음먹기 전에 “그래도 네가 용서를 좀 해줘야지.” 이렇게 용서를 강요하는 문화도 있다고 생각하고요. 잘못을 하고서도 스스로를 너무 쉽게 용서해주는 사람들의 모습에 대해서도 생각했어요. 


저는 용서라는 게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내가 용서를 할 수 있으려면 나에게 나쁘게 대한 사람이 먼저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있었던 일은 있었다고 인정을 해야 하는데 대부분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을 해요. 잘못한 사람이 용서를 구하지도 않는데 용서를 해라, 잊어라, 기억해서 뭐하느냐 이러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마음이 머무르는 문장이 많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 작가가 독자에게 읽어주고 싶은 문장이 있다면,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지금 눈에 들어오는 문장은 이 부분이에요.


예전 일들을 잊고, 지워버리고, 연연하지 않으려 하고, 내 안에 갇힌 그애가 추워하면 더 외면해서 얼어죽기를 바라고, 배고파하면 그대로 굶어 죽기를 바라면서 겉으로는 평온한 사람이 된 것처럼 연기했지. 그게 다 뭐였을까. 그 애는 나였는데. (<모래로 지은 집> 178쪽)


(주 : 저는 이 문장이 좋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이 아팠다. 삶이 자기가 원치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가버리고 말았을 때, 남은 것이라고는 자신에 대한 미움뿐일 때, 자기 마음을 위로조차 하지 못할 때의 속수무책을 나도 알고 있어서. (<아치디에서 中)>) 







소설가로 말하기


소설 속 인물들은 상황에 대해 쉽게 말하지 않습니다. 빠른 가치판단은 때론 폭력적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말을 미루는 사람들의 태도가 인상적이었어요. 최은영 작가에게 최근 가장 말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면 어떤 문제일까요.


작가들이 되게 위험해질 수 있는 부분이, 자기가 어떤 일에 대해 되게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글을 읽고 쓰다보면 부정의한 것에 반대하는 글을 쓸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래, 나는 이 글대로 이렇게 정의로운 사람이야. 너무 쉽게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고 생각을 해서 항상 조심해야겠다, 확신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해요. 대부분의 경우 저는 단호하게 ‘저는 이래요’ 말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많아요. 많은 것들이 말하기 어려워요.



언제 소설가가 되고 싶었는지, 또는 언제 소설가가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소설가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못했지만, 꿈으로서 하고 싶다고 생각을 하게 된 건 이십대 후반이었어요.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제가 소설을 좋아하고, 문학을 좋아하니까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공부를 하다보니 제가 하고 싶은 건 창작이라는 걸 나중에 알겠더라고요. 고등학교 때부터 원래 있었던 마음인데 계속 무시하고 살았는데 나이가 들어서 불현듯이 너무 구체적으로 하고 싶어져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소설이 아닌 책 중 좋아하는 책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지금 생각나는 책은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예요. 이후에 쓴 다른 책에도 아우슈비츠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이 글은 특히 직후에 쓴 글이라 구체적인 상황들이 잘 나와 있는 것 같아요. 저에겐 되게 많은, 새로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 드는 책이었어요.
















최은영과 결이 같은, 최은영이 지나온 시절을 지나고 있을, 이 소설의 주인공들과 같은 상황의 독자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있다면 어떤 책일까요.


아마도 이십대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겠죠? 지금 떠오르는 책은 <엄마는 페미니스트>라는 책이에요. 이 책을 읽고 마음에 남았던 게, 사랑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얘기가 나와요. 여자애들은 항상 사랑을 주고, 이해하는 것이 좋다고 교육을 받잖아요. 정작 사랑받는 게 자연스러운 거라는 건 배우지 못하는 것 같아요. 당신은 당연히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가치가 있는 사람이고, 사랑을 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책이라 공감이 갔어요. 이 책을 이십대 때 읽었다면 당당하게 사랑받을 수 있었을 텐데 생각했어요. 저는 항상 주눅 들어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떤 조건이 있어야 사랑받을 수 있고 그런 게 아니었는데, 그래서 이 책을 어릴 때 읽었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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