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에서 나고 인천에서 자랐다. 1987년 『문예중앙』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삼천리호 자전거』 『미미의 집』 『황천반점』 『사랑을 놓치다』 『그는 걸어서 온다』 『새의 얼굴』 『편지에는 그냥 잘 지낸다고 쓴다』, 시선집 『강가에서』, 동시집 『거북이는 오늘도 지각이다』, 산문집 『걸어서 돌아왔지요』 등이 있다. 지훈문학상, 권태응문학상, 영랑시문학상 등을 받았다.
헌 기계는 가게로 가게에 있던 기계는
옆에 새로 난 쌀가게로 타락해가고
어제는 카시미롱이 들은 새 이불이
어젯밤에는 새 책이
오늘 오후에는 새 라디오가 승격해 들어왔다
-김수영 「금성라디오」
이것이 저것을 저만치 밀치고,
오래지 않아 또다른 무엇이 와서
저 자리의 주인이 된다.
점입가경, 타락과 승격이 순식간이다.
폭포의 전율과 급류의 공포가 마을로 내려오고
꽃과 나무들조차 성실 근면의 미덕을 버렸다.
산신령이 집을 잃고
물귀신이 거처를 구걸하리라.
위태로워라, 사람의 자리.
멀리서 횔덜린이 말한다.
“근심하고 섬기는 일,
시인들에게 맡겨진 일이로다.”
만신(萬神)과 손을 잡아야겠다.
시인과 무당은 이쪽저쪽 두루 통하는
우주의 엔터테이너.
할 일이 더 늘 것 같다.
2026년 입춘 즈음
남산 시옹암(是翁庵)에서
윤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