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강원도 철원에서 실향민(황해도 아버지와 평안도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났다. 1999년 《실천문학》에 「지뢰꽃」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지뢰꽃 마을, 대마리』, 『수류탄 고기잡이』, 『황해』, 『반국 노래자랑』 등이 있다. 현재 고향인 철원에서 글쓰기 지도 및 문맹 퇴치 봉사 운동을 하고 있다.
“강원도 촌놈, 글을 쓰는 작부가 될래, 아니면 시인이 될래.”
첫 시집을 내고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던 시절이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들이 다 참가한 바닷가 문학 행사에 강원도를 대표해서 시 낭송 초청을 받았었다. 한껏 기세를 올리며 시 낭송을 하고 뒤풀이를 끝내고 숙소에 누워있던 나를 찾아온 생면부지 원로급 시인이 내뱉은 말이었다. 그는 이미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술에 취해 있었다. 발음마저 꼬일 정도로 정신이 혼미한 것처럼 보였다.
“문학은 이런 거창한 행사에 있지 않고, 네가 사는 사람들 속에 있다. 작가 되려면 당장 돌아가서 문단에 기웃거리지 말고 분단의 상징인 철원에 처박혀 너만의 글을 써라.”
그 대성일갈(大聲一喝)에 나는 원로 시인의 눈을 바라봤다. 단호한 그의 눈빛에는 진심이 어려 있었고 문학 초년생을 진정으로 걱정하는 선배의 간절함이 배어 있었다. 원로 시인은 할 말을 다 했다는 듯이 돌아갔지만 나는 쉬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바늘 끝처럼 가슴을 찌르는 말이 귓전을 떠나지 않았다. 무작정 숙소를 나와 바닷가 백사장을 밤새도록 걸으면서 원로 시인의 말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마침 백사장에 놓여 있었던 벤치에 앉아 현대문학에 비해 볼품없어 보이는 내 시에 대해서 고민하고 또 고민을 했다. 도회지 풍의 글을 흉내 낼 수는 있겠지만 내 글은 아니라는 결론이었다. 그것이 원로 시인이 나 같은 철부지에게 바랐던 간절한 기대였다는 것을 알았고 그 깊은 사랑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었다.
그날 이후 나는 문학 행사에는 발길을 끊고 우리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있다. 대부분 실향민인 이웃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가만히 옆에서 들어 주고 있다. 문학은 힘없는 사람들 눈물을 닦아주는 손수건이라는 생각이다. 지금도 가끔 힘이 들면 강원도 촌놈인 나에게 문학의 길을 인도해준 대 원로 시인의 말을 떠올려본다.
“강원도 촌놈, 글을 쓰는 작부가 될래, 아니면 시인이 될래.”
2023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