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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마자키 도손(島崎藤村)시, 소설, 수필, 동화 등 문학의 전 분야에서 역량을 발휘해 일본문학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작가다. 1872년에 나가노현(長野縣) 니시지쿠마군(西筑摩郡) 미사카(神坂)에서 아버지 마사키(正樹)와 어머니 누이(縫)의 막내로 태어났다. 도손의 가문은 1513년에 선조가 기소(木曾)로 이주해 와서 대대로 촌장과 역참과 숙박업을 가업으로 이어 왔는데 바로 아버지 마사키가 본 소설 주인공 한조의 모델이다.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로부터 《천자문》과 《권학편》 등을 배웠고 열 살 때 도쿄로 유학을 가서 매형 집에서 기숙하며 다이메이(泰明)소학교를 다니게 된다. 그 후 여러 곳으로 전전하며 15세 되던 해에 시바(芝)에 있는 영어학교에 입학한다. 그리고 정신적 스승인 기무라 구마지(木村熊二)에게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이해 11월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이듬해 본격적으로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 메이지(明治) 학원 본과에 입학한다. 한때 정치에 뜻을 두고 있었으나 18세 되던 해에 동경대 교양학부의 전신인 제1고등학교 입학시험에 실패를 계기로 문학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21세인 1892년부터 잡지 《여학(女學)》에 습작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문학의 길에 들어선다. 22세에는 《문학계(文學界)》 창간 동인으로 참가하고 거기에 작품을 발표하며 필명인 도손(藤村)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다. 26세 되던 해에 발표한 《새싹집(若菜集)》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일약 무명에서 스타덤에 오른다. 특히 그 안에 수록된 〈첫사랑(初戀)〉이라는 7·5조의 정형시가 독자들을 단숨에 매료한다. 이 시는 중학교 교과서에 실리며 국민적 시인이라는 명성을 얻는 계기가 된다. 그는 연이어 네 번째 시집 《낙매집(落梅集)》까지 간행하지만 시로는 만족을 하지 못하고 산문으로의 전향을 염두에 두고 습작 삼아 수필 《지쿠마가와강 스케치(千曲川のスケッチ)》를 발표한다. 이 작품도 명작으로 명성을 얻는다. 31세에는 〈옛 주인(舊主人)〉이라는 첫 단편소설을 발표하는데 풍기 문란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발매를 금지당하고 만다. 33세에는 결연한 각오로 자비 출판을 계획하고 장인에게 자금 원조를 부탁하는데 이 작품이 1906년 35세에 출간되는 《파계(破戒)》다. 천민 계급의 차별 문제를 픽션으로 다룬 것으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출세작이며 일본 자연주의 작품의 기념비적 작품이라 일컬어진다. 1908년, 과거 22세 때 제자를 사랑한 나머지 학교를 사직하고 여행을 떠났던 자신의 사건을 소설로 《아사히 신문》에 연재하고 간행한 것이 바로 《봄(春)》(1908)이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이른바 사소설 글쓰기가 유행하며 이 흐름이 일본 자연주의의 주류가 되었다. 39세에는 《집(家)》(1910)을 《요미우리 신문》에 연재하는데 출가한 누이의 가문과 친정의 두 가문의 가부장제하의 퇴폐와 붕괴의 과정을 그린 누이의 생애를 그린 자전적 소설이다. 47세에는 상처하고 혼자 지내던 중 집안일을 돌보러 온 조카를 임신시킨 사실을 소설로 써서 발표하게 된다. 《신생(新生)》(1918)은 작가 자신의 치부 고백의 완결편이지만 “노회한 자기변명에 불과하다”라는 작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의 혹평을 듣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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