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언급한 주디스 버틀러의 2014년 연설 〈분노와 슬픔에 관하여On Rage and Grief〉는 『영원히 계속되다가 끝이 난다』와 더없이 잘 어우러진다. (주디스 버틀러의 아름다운 낭독 영상과 전문은 온라인에 무료로 공개되어 있으니 검색해 읽어보는 것 또한 추천한다). 이 연설에서 주디스 버틀러는 누군가를 또는 무언가를 상실했을 때 우리가 처음부터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우리를 일으켜 세우고 동시에 무너뜨릴 수도 있는 그 관계에 꼼짝없이 묶여 있다는 사실이 비로소 현현한다고 말한다. 상실을 겪었을 때 애도하는 것을 넘어 내가 발 딛고 있는 기반이 사라지고 나라는 존재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은 그래서다. 『영원히 계속되다가 끝이 난다』에서도 여러 번 반복되는 표현처럼, 그런 삶은 “견딜 수 없는 일”이 된다. 주디스 버틀러는 이런 멋진 말도 한다.
만일 내가 너 없이 살 수 있고 그렇게 살고 있다고 한다면, 그 이유는 오직 하나, 말하자면 내가 나에게 말을 건네는 대상으로서 너의 자리를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이 문장이 마치 『영원히 계속되다가 끝이 난다』의 주인공이 하는 말처럼 느껴진다. “나와 나 사이에 있는 공간은 너다. 이것은 미스터리다”라는 마지막 문장으로 되풀이되는 듯도 싶다. 주인공을 따라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빈자리를 어루만지며 슬퍼하는 것이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체험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비폭력으로 나아가는, 슬프고 아름다운 애도의 기록으로 다가온다. 고백하자면 처음 번역할 때는 자연스럽게 서간체를 썼다가 다듬는 과정에서 수정했다. 조심스러움 때문이기도 했고, 어떤 문체를 고르든지 ‘너’에게 전달된다는 사실은 흐려지지 않으리라는 합리화도 작용했다. 여하간 처음부터 끝까지 너를 향한 이야기다. 정확히는 그 빈자리에 건네는 말들이다. 이야기는 나와 나 사이에 너라는 공간이 있노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계속된다. 묘하고 모호하게, 그러나 선명한 언어와 강렬한 감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