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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강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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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AI에게 다 맡기지 마라>

강민철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면 창밖 풍경만큼이나 스마트폰 화면 속 문장에 눈길이 간다. 신문기사, 광고 문구, 안내문, SNS 글을 읽다가 어색한 표현이나 오문, 비문을 발견하면 자연스럽게 ‘어떻게 고치면 더 쉽고 정확하게 읽힐까’를 고민한다. 오랫동안 글을 다뤄온 사람에게는 익숙한 직업병이다.
신문·잡지 기자로 일하다 2002년부터 지금까지 홍보회사이자 출판사인 ㈜컬처플러스 대표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단행본과 백서, 잡지, 홍보물 등 수백 종의 출판물을 제작하며 기획자와 편집자, 카피라이터, 제작자의 경험을 두루 쌓았다. 또한 정부 부처와 문화예술 단체, 중소기업의 홍보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터득한 내용을 토대로 언론 홍보 분야 글쓰기를 강의해 왔다.
지금은 AI 글쓰기를 연구하며 사람과 AI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AI를 잘 쓰는 법보다 자신의 생각을 잘 쓰는 법을 아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좋은 글은 AI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방향을 정하고 AI가 보강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AI가 글을 대신 써주는 시대일수록 사람의 생각과 판단은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저서로는 『회사 바로 들어가기 돌아 들어가기』, 『올레 감수광』, 『김광종 곤밥하르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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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올레 감수광> - 2010년 7월  더보기

제주의 속살을 보고 싶은 당신에게 고향 제주는 내게 아픔이다. 누구의 고향인들 다 좋기만 하겠는가마는 유독 내게 고향은 붕대 하나 감지 못한 상처다. 나에게 제주는 느닷없이 들이닥친 병마에 누이 둘을 하루아침에 잃어 언 땅에 묻은 곳이고, 아들 못 낳은 어머니가 구박받던 곳이고, 유년 시절 바다에 둘러싸여 유배지처럼 갑갑하게 느껴졌던 곳이다. 그런 연유였을까. 서울로 떠난 이후 1년에 한 번씩 추석 명절에 오고가다 아예 발길을 끊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나 역시 고향을 탓할 주제가 못 된다. 성산포에 유채꽃이 피었느니, 한라산에 첫눈이 내렸느니 하는 고향 제주의 소식들에 무심히 지내다 보니 어느덧 제주에서 보낸 시간과 서울에서 보낸 세월이 거의 비슷해졌다. 이제야 제주 바다에서 적당한 거리로 헤엄쳐 나온 느낌이다. 어느 날 열세 살 난 초등학생 아들놈의 등짝을 장롱에 붙여 놓고 키를 재다가 문득, 내 고향 제주가 생각났다. 생각하면 뭔가 흙탕물 같은 것이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느낌인데 산들산들 봄바람 부는 날 한바탕 해원굿을 벌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고향 제주에 내려가 한라산을 오르고 바닷가를 거닐다 우연히 열세 살의 나와 해후하고 싶었다. 그리고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에 앉아 있는 그 소년의 눈물을 닦아 주고 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때 마침 올레가 새로운 문화 코드로 만들어져 세간에서 한참 주목을 받고 있었다. 쾌재를 불렀다. 집에 이야기할 좋은 핑곗거리가 생겼다. 제주국제공항에 내렸다. 하루에 한 코스씩 올레를 걸었다. 올레의 본뜻은 마을길과 집을 이어 주는 돌담길이다. 이런 의미를 바탕으로 사단법인 제주올레가 마을과 오름과 바다를 이어 새로운 문화 코드로서의 올레를 만든 것이다. 올레는 제주의 속살을 만져 볼 수 있는 지름길이라 할 수 있다. 배낭을 메고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 내게 제주사람들은 물었다. “어디서 와수광?”어디에서 오셨나요? 나는 무장간첩처럼 말했다. “서울에서 왔습니다.” 제주와 일정한 거리를 둔 채 객관적으로 고향을 바라보고 싶었기 때문에 죄를 짓는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쌀밥 먹은 말투로 고향 사람들을 대했다. 나는 그렇게 제주를 돌아다녔다. 우연히 올레꾼들을 만나 길동무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들은 제주를 볼 뿐 듣지는 못하는 듯했다. 그들은 밭 가운데 무덤이 들어서 있는 모습을 왕왕 목격해도 왜 그렇게 묘를 쓰는지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고 마땅히 물어 볼 데도 없어 궁금증을 참고 그냥 걷기만 했다. 나는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이 어떤 길인지 알고 걸어야만 제대로 길을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주의 오름과 바다는 첫사랑 여인처럼 아름다웠다. 모진 바람과 거친 파도에 깎인 갯깍은 날카롭고 거칠게도 보이지만 옆에서 보면 아름다운 턱선을 드러내 놓고 있다. 제주 섬은 무릉도원의 절경이 한 폭 한 폭 펼쳐지는 부채와 같다. 오름에 올라서면 섬들이 그림처럼 바다에 떠 있고 조각보 같은 밭과 형형색색의 지붕들이 조화를 이루며 삶을 노래하고 있다. 혼자서 길을 가다 신기루처럼 목격하는 풍광의 아름다움에 취하다 보면 때론 한 코스마저 다 가지 못한 채 인적 없는 밭길이나 바닷가 숲길 한가운데에서 해가 떨어져 당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형님뻘 되는 동네 아저씨가 도와주었고 민박집 아주머니가 트럭을 몰고 나타났다. 귤밭에서 만난 제주 할망들도 두손 가득 햇귤을 나에게 내밀고는 배낭에 귤을 다 넣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돌아섰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제주에 대한 아픔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그런 와중에 내가 발견한 것은 제주 역시 아픈 상처가 많다는 것이었다. 제주는 상흔의 땅이다. 세상의 칼에 베여 목숨만을 부지한 채 성난 바다를 건너오던 먼 유배의 땅이고, 민초들이 몽골의 말발굽에 짓밟혔던 통한의 땅이고, 부모 형제들이 총탄과 죽창에 서로 죽임을 당했던 ‘4·3’의 땅이고, 일본군이 제국주의 망령에 휩싸여 오름과 바닷가에 동굴을 숭숭 파놓았던 식민의 땅이고, 미국과 일본이 세력을 확장하는 교두보로 삼기 위해 혀를 날름거리며 욕망을 표출했던 보석의 땅이다. 아닌 게 아니라 제주 섬에는 보석과 같은 문화가 존재한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할망바당’과 같이 더불어 살기를 꾀하는 공존의 문화가 내재하고 있고, 인간과 인간을 비교하지 않고 인간과 식물을 비교하는 친자연주의 문화가 남아 있다. 또한 전 재산을 내놓아 어려운 이웃을 돕는 김만덕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문화가 흘러오고 있고, 고부간의 배턴 터치가 신속 명확하게 이루어지는 가족 민주주의의 문화가 있고, 손님은 주인이 있는지 없는지 정낭에 걸쳐진 통나무 개수만 봐도 정보를 알 수 있는 디지로그의 문화가 존재한다. 이처럼 제주가 간직한 문화를 속살까지 잘 보여주는 것이 올레다. 번잡한 관광지에서 벗어나 마을과 오름과 바다를 이어 만든 올레는 자동차로 다닐 수 없는 길이다. 좁다란 밭담길, 울퉁불퉁한 바당길, 구불구불한 오름길, 한적한 마을길은 도보 여행자를 위한 좁은 길이다. 아름다움과 상처를 동전의 양면처럼 간직한 제주 올레는 도보 여행자로 하여금 잠시나마 아픔과 고통을 잊게 하면서 다시 새로운 희망과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는 신비스런 힘을 가졌다. 그런 점에서 제주어로 ‘올레 가세요?’를 뜻하는 은 그들에게 건네는 인사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은 제주의 올레에 한발자국 더 다가가 자연을 느끼고(感) 문화를 배움으로써(修) 올레의 진정한 가치에 더욱 미치게 되는(狂) 일련의 과정을 통해 변화와 희망을 꿈꾸는 이들에게 자신을 발견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좋은 말벗이 될 것으로 자못 기대해 본다. 그런데 이러한 기대도 길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누군가는 길을 내고 누군가는 길을 걷는다. 한여름날의 땡볕 같은 열정으로 잊혀진 길을 되살리고 끊긴 길을 다시 이어 올레길을 내고 있는 사단법인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님을 비롯한 임직원과 자원봉사자 여러분에게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또한 이 책이 나오기까지 부족한 필자를 위해 도움을 주었던 배규호 편집장·염아영 주임, 홍석문·장은미 디자이너, 그리고 부록 자료 조사를 거들어 준 김명희 씨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나의 사랑하는 세 여인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전화 통화만 하면 당신의 서러움과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복받쳐 눈물만 흘리는 제주의 어머니와, 나를 사위라 부르지 않고 아들이라 불러 주시는 고마운 서울의 어머니와, 늘 일에 치여 사느라 가정은 뒷전인 무심한 나를 그래도 지아비라고 아침 저녁으로 계란프라이를 해 주는 사랑스럽고 현명한 아내 고혜란에게 이 책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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