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명 단비. 봄에 마른 땅을 적시는 비처럼, 메마른 마음에 스미는 글을 쓰고 싶었다.
열세 살, 밤이 길고 아침이 두렵던 아이였다. 그해 『어린 왕자』를 읽었다. 책장을 덮으며 처음으로 생각했다. 이런 세상이라면, 살아봐도 좋겠다. 그리고 마음먹었다. 나도 누군가를 살고 싶게 만드는 책을 쓰겠다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작가를 꿈꿨다.
문예창작을 공부했지만, 오래 전공과 무관한 일로 생계를 꾸렸다. 아이를 낳고 키우다 서른 즈음에야 자유기고가로 글밥을 먹기 시작했다. 여성지에 육아와 여행, 건강을 썼다. 그러다 마흔 중반, 글에서 도망쳤다. 잘 쓰지 못하는 자신을 마주하기가 두려웠다. 그렇게 십 년을 펜을 놓고 살았다.
돌아오는 길은 쉽지 않았다. 오래 밴 나쁜 습관이 발목을 잡았다. 결국 글쓰기를 처음부터 다시 배웠다. 웹소설 장편 201화를 끝까지 밀고 나가며, 매일 마감을 견디는 법을 몸으로 익혔다. 자주 넘어졌지만 그때마다 알았다. 바닥은 끝이 아니라, 발을 딛고 다시 떠오르는 자리라는 것을.
살아오는 동안 손안에 쥔 실타래가 몇 번이나 엉켰다. 풀다 지쳐 내려놓고 싶은 밤이 길었다. 그래도 매듭 하나를 풀면, 그다음 매듭이 보였다. 그렇게 한 올씩 풀어온 시간이 이 책이 되었다.
지금은 용비어천가 이앤엠 대표이자 단비 글방을 이끌며, 자기 이야기를 글로 짓고 싶은 이들 곁에 앉는다. 글이 막히는 날엔 천변으로 나가, 꽃 한 송이를 오래 들여다본다.
열세 살의 내가 『어린 왕자』에서 받은 것을, 이제 누군가에게 건네고 싶다. 완벽한 삶에 관한 책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살아내는 힘에 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