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학교 공과대학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북한자원개발연구센터 에너지자원환경연구실에서 지속가능하고 환경친화적인 에너지자원개발과 남북 에너지자원 협력을 목표로 교육과 연구를 수행해 왔다.
공학자로서 기술과 자원의 가치를 탐구해 온 그는 총신대학교에서 선교신학을 공부하며, 지식과 신앙, 기술과 소명의 관계를 깊이 성찰해 왔다. 특히 지식과 연구가 개인의 성취에 머무르지 않고 공동체,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해 어떻게 쓰이며 이어져야 하는지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마치지 못한 수업 –무거운 짐을 지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 세대를
위하여’를 들어가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자기 ‘존재’에 대해서 고민하는 한 우리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이 말은 그동안 내가 학생들과 마
주 앉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유독 마음 깊이 남게 된 한 문장
이다. 돌이켜보면 이 말은 늘 ‘시간’ 앞에서 나를 붙들어 주었던 것 같다.
조금 지나면 나는 정년퇴임을 하게 되는 위치에 있다. 이제 학생들을 만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강의 시간을 제외한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학생들과 대화하는 데 쓰려고 했다. 그것이 내 사무실에서 공식적으로 학생들과 원하는 시간에 대화할 수 있는 대학 교수만의 특권이 아니겠는가. 사실 나는 은퇴하면서 책(자서전)을 쓸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그동안 만나 왔던 학생 중 한 학생이 나와의 대화 중에 큰 영향을 받았는지 눈물을 흘리며 자신과 다른 학생들에게 해왔던 말들을 모아서 책으로 써 주길 간곡히 부탁했다. 처음에는 나를 자랑하기 위한 글이 이 세상에 또 하나 던져지는 것 같아 망설였다. 하지만, 진심을 담아
제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전하는 글이라면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서문
나는 이 글을 통해 나의 제자이자, 동시에 나의 동지였던 학생들과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한 교육자로서의 여정을 마무리하며, 대학 입시와 취업, 그리고 끝없는 경쟁 사회 속에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제자들에게 진심으로 위로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그들이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길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남에게 인정받는 것이 최고의 명예가 아니며, 진정한 명예는 내 스스로의 삶을 헛되지 않게 살아 내는 데 있다는 깨달음, 그리고 삶이라는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아름답게 통과해야 한다는 사실은 지금 내 나이가 되어서야 깊이 이해하게 된다. 나는 젊은 학생들이 이런 생각들을 미리 성찰하고 깨달아, 나보다 훨씬 의미 있고 성숙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우리는 시간에 대해 말할 때, 크로노스(Chronos)의 시간과 카이로스(Kairos)의 시간을 구분하곤 한다. 크로노스는 시계와 달력이 가리키는 정량적이고 연속적인 시간으로, 하루하루가 축적되며 우리 삶의 일상과 책임을 이루는 흐름이다. 반면 카이로스는 질적 시간으로, 어떤 순간이 ‘그저 지나가는 한 때’가 아니라 인생의 의미와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되는 때를 가리킨다. 예를 들어 “암에 걸린 사람이 아내와 여행을 떠나 한 시간 산책을 하면서 아내와 손을 꼭 잡고 무언의 이야기를 나눴고, 그 아내는 그 기억의 힘으로 그 후 남편 없이 40년의 인생을 살아 냈다면, 그 손잡고 걸은 한 시간이 40년의 카이로스적 시간인 것이다.” 이처럼 카이로스는 길이로만 측정되는 시간이 아니라 깊이로 흐르는 시간, 다시 말해 두께를 가진 시간을 말한다(김학철, 2020).
인생은 이처럼 카이로스의 순간들로도 채워지지만, 문제는 우리가 크로노스의 바쁨 속에서 카이로스를 알아보지 못한 채 흘려보내기 쉽다는 데 있다. 삶은 단순히 시간이 지나가는 과정이 아니라, 그 시간 속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에 마음을 두며 어떻게 성장할지를 결정해 가는 여정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는, 시간을 소모시키는 습관과 관계와 환경을 정리하고 절제하며, 정말 붙들어야 할 가치에 시간을 의식적으로 재배치할 필요가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크로노스를 살아내는 가운데, 우리에게 주어지는 카이로스의
기회를 분별하고 붙드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시간을 어디에 쓰느냐는 결국 삶에서 무엇을 ‘맺어’ 내느냐를 결정한다. 그래서 우리는 ‘꽃’보다 ‘열매’가 중요하다는 말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종종 크로노스의 바쁨 속에서 눈부신 화려함에 현혹되어, 정작 중요한 본질을 놓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인생은 나무가 성장하는 것과 같으며, 나무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먼저 자라야 한다. 그리고 열매를 맺도록 성장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책임이다. 쓸데없는 일에 세월을 허비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죄를 짓는 것과 같다. 하지만 삶의 진정한 가치를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참된 의미를 깨닫는 길이다. 인생은 ‘고통’과 ‘사랑’ 속에서 성장하는 법이다.
‘사랑’은 단순히 달콤한 감정이나 낭만을 넘어, 때로는 피 흘리는 순교처럼 아프고 힘든 ‘희생’을 요구하기도 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만큼 배우고, 배우는 만큼 성장해 나갈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성장은 언젠가 찾아올 ‘때’를 맞이할 준비를 갖추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무가 계절을 통과하며 결실을 준비하듯, 험난한 인생의 여정 속에서도 누구에게나 반드시 기회는 찾아온다. 그 기회는 언제,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예측할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그때를 맞이할 준비된 사람이 되어 있는가이다. 기회는 늘 공평하게 문을 두드리지만, 준비되지 않은 마음은 그 두드림을 두려움이나 혼란으로 받아들이고, 준비된 마음만이 그것을 ‘소명’으로 알아본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금 이 순간, 눈앞의 일상 속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것이다. 작은 일에도 성실히 임하고, 배움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며, 실패 속에서도 교훈을 찾는 태도야말로 인생의 진정한 준비다. 조급해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인내와, 자신이 가야 할 길을 흔들림 없이 걷는
꾸준함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상이 말하는 ‘성공’의 잣대에 자신을 끼워 맞추려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세상은 흔히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을 성공이라 부르지만, 그런 성공은 쉽게 사라지는 모래성과 같아서, 우리에게 참된 ‘생명’도, 믿을 만한 ‘안전’도 제공하지 못한다. 우리는 그보다 자신의‘존재’가 지닌 가치를 통해 ‘승리’하는 삶을 추구해야 한다. ‘존재의 승리’란 완벽한 삶을 뜻하지 않는다. 넘어지고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그 때마다 매 순간 거짓이 아니라 진실한 쪽으로, 비겁하게 남을 밟고 올라가는 길이 아니라 손해를 보더라도 사람을 살리는 길 쪽으로, 결과가 실패
로 보이더라도 끝까지 사랑하려 애쓰는 쪽으로 방향을 다시 돌리는 삶이다. 그렇기에 이런 승리는 화려한 스펙이나 지위 같은 소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길러지는 내면의 진실함과 성실함, 정직함, 그리고 사랑의 깊이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는 얼마나 성공했는가?”라는 질문과 “나는 어떤 존재로 남을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쉽게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그 순간마다 우리의 선택은 단단하고 분명해야 한다. 성공의 ‘크기’보다 존재의 ‘깊이’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인생은 남보다 빨리 달려 결승선을 통과하는 경주가 아니라, 더불어 같이 가는 긴 여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 선택이 우리 삶을 보다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이끌어 줄 것이다.
프랑스 사상가 폴 발레리(Paul Valey)는 어떤 정신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이 용기를 다해서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머지않아 당신은 사는 대로 생각할 것이다.” 우리가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만 살아가면 결국 그 삶의 방식이 우리의 사고를 규정하게 된다. 사기꾼은 사기꾼의 논리를 정당하게 여기고, 교만한 사람은 교만한 시선으로 세상을 해석한다. 돈을사랑하는 사람은 모든 가치의 기준을 돈으로 환산하게 되고,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은 세상을 언제나 자기중심적으로만 바라본다. 이처럼 삶의
태도는 생각을 만들고, 그 생각은 다시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간다.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살면 결국 그 방식대로 생각하게 되고, 시간이 흘러 어느날, 자기가 기대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모습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삶의 방향을 ‘지금’ 점검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자기 성찰은 개인의 인생 관리에만 머물지 않는다.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의 시대일수록, 한 사람 한 사람의 선택이 쌓여 공동체의 분위기와 흐름을 만들고, 그렇게 형성된 공동체의 분위기는 다시 개인의 판단과 행동을 ‘압박’한다. 그래서 우리는 ‘나의 삶의 태도’가 어떤 사회를 만들어 가는지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내가 오늘 선택하는 삶의 태도 하나가, 내일 우리 공동체가 서 있게 될 가치의 지형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는 어지러운 시대 속에서도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지 분별하게 해 줄, 단단한 기준과 정직한 성찰
이 필요하다.
아무쪼록 이 책이 캄캄한 어둠 속에서 비록 희미할지라도 여러분의 ‘발등’을 비추어 주는 작은 등불이라도 되어,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데 조그만 길잡이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여러분 마음 깊은 곳에 의미 있는 ‘씨앗’으로 떨어져 있다가, 언젠가 삶의 어느 순간에 싹트고 자라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끝으로, 지금까지 나의 삶에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인내로 참아 주시고 인도해 주신 나의 하나님, 평생 아들을 위해 기도해 오신 김수진 권사님과 나의 평생 동지이자 친구로 살아온 아내 김희수에게 감사와 사랑을 담아 이 책을 바친다. 또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으로서 저마다의 고민을 품고 살아가면서도, 내 삶의 든든한 힘이 되어 준 두 아들에게도 고마움과 사랑을 전한다. 부족한 이 책의 출판을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애써주신 상상아이엔씨 김대석 대표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아울러 지난 30년 동안 부족한 나와 인연을 맺고 사랑을 나눠주신 학과의 선·후배 동료 교수님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리고 이 캠퍼스에서 내가 기쁨으로 가르치고 연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해 준 제자들에게, 마음을 다한 사랑과 고마움을 전한다.
2025년 여름
미국 아틀란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