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넘게 아이들의 글을 다듬는 일을 해왔습니다. 남의 언어를 채워 넣는 작업을 오래 하다 보니, 정작 자신의 감정을 기록하는 것은 한참 뒤의 일이 됐습니다. 어느 날 아무 주제 없이 끄적이기 시작했습니다다. 볼펜이 가는 대로, 손이 이끄는 대로. 그런데 이상하게도, 끄적이고 나면 조금 가벼워졌습니다. 그렇게 쌓인 낙서들을 어느 날 다시 들여다봤습니다. 선이 거칠게 눌린 날이 있었습니다. 동그라미만 반복해서 그린 날이 있었습니다. 그것들이 모두 그날의 감정이었습니다. 말로는 꺼내지 못했던 것들이 선 안에 담겨 있었습니다. 스마트폰이 불쑥 알림을 보내오는 날도 있었습니다. "3년 전 오늘의 추억이에요." 사진 속의 나는 웃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내가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 기억이 났다. 3년이 지나서야 그 사실이 보였다. 그때도 어떻게든 살아냈구나. 그 생각이 이상하게 위로가 됐습니다. 60을 바라보는 지금도 그 습관은 여전합니다. 끄적임은 오랫동안 저자의 친구였다. 이 책은 그 친구를 독자에게도 소개하기 위해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