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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이름:백가흠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74년, 대한민국 전라북도 익산 (사자자리)

직업:소설가

최근작
2020년 5월 <나는 어떻게 글을 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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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는 달랐다

내가 아테네에 온 것은 두번째이다. 5년 전, 꼭 아테네에 가고 싶었던 것은 아니어서 아테네 여행에 대해 아무런 준비가 없었다. 그것은 어떤 기대감도 없었다는 말이다. 당시에 장편소설을 연재하고 있었는데 두 달 넘게 숙소에 틀어박혀 미처 마치지 못한 소설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래서 아테네의 어떤 것도 보지 못했다. 그저 장편소설을 마무리할 수 있는 곳, 처박혀서 소설만 쓸 수 있는 곳을 찾았던 것이고, 그곳이 아테네였던 것뿐이다. 한국에서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곳,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곳에서 나는 내 고향 근처를 배경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5년 전의 아테네는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국가부도사태와 2차 구제금융의 여파가 굉장했다. 시내는 주말마다 파업과 시위로 들끓었고 매캐한 최루가스가 도시를 뒤덮었다. 곳곳에서 일어난 방화로 불에 탄 은행 건물과 정부 건물이 흉물스럽게 방치된 채로 서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받은 아테네에 대한 인상은 굉장히 안정적이고 안전하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인간이 지녀야 할 어떤 기본적 권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또한 이방인에게 관대했다. 겨울이라 관광객들은 적었고 그마저도 불안정하다는 인식으로 발길이 끊겨 아테네는 휑했다. 그리스 여행은 아침이나 해질녘 아테네의 오래된 거리를 산책하는 게 전부였다. 숙소는 제우스 신전 바로 앞이었는데 아크로폴리스를 향해 걷거나 국립정원을 산책하는 게 하루 일과였다. 나는 그렇게 아주 단출하고 일상적인 두 달의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스 여행은 막상 한국에 돌아가고 시작됐다. 지난 5년간 나는 항상 그리스에 마치 뭔가를 두고 온 것처럼 그곳을 그리워했다. 5년 전의 그리스는 나에게 완전히 잊힌 존재였지만 언젠가부터 눈감으면 잠깐씩 스쳐지나가는 스틸 사진처럼 재생되었다. 다시 그곳을 찾을 수 있는 용기가 생기는 데까지 5년이 걸렸다. 나는 그사이, 데뷔하고 처음 소설을 쓰던 시절로 돌아갔다. 막막하고 막연해졌다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데뷔하고 15년 동안의 여정 한가운데 그리스가 놓여 있는 것만 같았다. 한 주에 7개씩 강의를 하던 시간강사직을 그만두고 오로지 소설에게만 절실하겠다, 마음먹었지만 막연함과 불안함은 더 커졌다. 오히려 나는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며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올여름에 나는 그리스로 돌아왔다. 그리웠던 그 길을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아테네는 그 겨울의 모습과는 달랐다. 수많은 관광객과 여름휴가로 들뜬 현지인들로 도시는 들썩였다. 한적함은 덜했지만 흥분과 들뜬 열기가 도시를 가득 채웠다. 경제적인 상황은 그리 나아졌다고 볼 수 없을 테지만 국민들은 현명하고 슬기롭게 현재의 고난을 건너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도시는 정비되고 있었고 불안정했던 요소들도 사그라지고 있었다. 넘쳐나던 난민들도 잘 관리되고 있는 듯 보였다. 여행은 아름다운 풍경만 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이나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인간에 대한 풍요로움을 발견하는 것이 여행의 더 큰 가치가 맞을 것이다. 숙소는 시내의 근대 올림픽경기장 근처에 얻었다. 맞은편에는 국립정원이 있고 정부 공관과 관료들의 집, 대통령궁이 위치해 있는 곳이다. 하늘 높이 솟은 사이프러스숲을 걸으며 나는 그간 이상한 곳을 헤매다 온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했다. 떠나왔지만 돌아왔다, 돌아왔지만 떠날 것이다, 나는 걸으면서 생각하곤 했다. 도심 한가운데의 울창한 숲을 지나면 리카비토스 언덕이 눈에 들어온다. 그 언덕은 고대 귀족들이 살던 동네였다. 수천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부촌으로 언덕 밑에는 명품 숍과 카페, 분위기 좋은 식당이 언덕을 받치며 늘어서 있다. 그 언덕과 아크로폴리스 언덕이 마주보고 서 있다. 언덕과 언덕 사이에 고대의 시간이 놓여 있다. 그 길을 걸으며 느낀 것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몇천 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세상이 바뀌고 바뀌었어도, 그 안의 사람들의 마음이나 본성은 그리 큰 변화가 없는 듯 고대의 시간이 지금도 여전히 흐른다. 가족이 주는 안정감과 평화로움이 고대의 도시에 여전하다. 그리스는 모계 중심의 사회이다. 우리가 아버지 중심의 가부장제에 가깝다면 그리스는 어머니가 삶의 중심이다. 유산 같은 것도 딸에게 물려주는 게 일반적이고, 결혼 후 남자가 여자 집에 들어가 사는 사람들 또한 많다. 그곳에서 알게 된 한 부부도 마찬가지였다. 1층엔 친정어머니가, 2층엔 여동생 가족이, 3층엔 맏이인 딸 가족이 사는 식이다. 이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우리가 IMF 구제금융으로 촉발된 경제난으로 급격한 가족의 붕괴를 겪은 것과 달리, 그리스는 우리보다 더 안 좋은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평온한 이유가 그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어떤 고대의 길을 걸으며 우리가 성급히 떨쳐버린 가장 중요한 무엇을 본 느낌이 들었다. 우리보다 가난하지만 그들이 포기하지 않은 그 어떤 것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것이 내가 걸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나프탈렌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마태복음」 6장 21?23절) 소설가가 꿈이었던 시절, 소설가가 되면 ‘무엇을 쓸 것인가’ 고민하던 시절, 했었던 다짐, ‘마음이 가난’하고 ‘낮은 자’를 위하여! 허나, 나는 마음이 가난한 것이 무엇인지 아적도 모르고, 선뜻, 낮은 자의 편에 서는 것도 주저한다. 원대했던 꿈에 대해 반성 중, 그리하여 나는, 앞으로 더욱 절실해질 것이다.

마담뺑덕

사랑은 매번 새로운 하나의 인생을 산다. 마흔을 이 소설과 함께 시작했다. 하나의 사랑이 저물었다. 하나의 인생이 마감됐다. 다음 생을 준비할 여력 없이 모든 게 소진된 기분이다. 작가로 사는 시간이 더딜수록 잘 살아보려는 의지를 버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게는 비루하고 근천스러운 것들만 남았다. 문득 바라본 서쪽 하늘은 찬란하게 허물어지고 있었다. 내일의 날씨 같은 것이 궁금할 리 없었다. 붉은빛에서 푸르다가 보랏빛으로 변해가는 하늘이 주는 교훈은 언제나 변함없었다. 소설을 여러 곳에서 집필, 탈고했다. 전주, 부안, 삼례, 익산, 제주 나는 돌아다니며, 이 소설을 썼다. 이 소설이 그렇게 여러 곳을 흘러 다녔으면 좋겠다. 특히 부안의 ‘변산바람꽃’에서 바라본 마지막 하늘을 따라가고 싶고 닮고 싶다. 서쪽으로, 서쪽으로.

조대리의 트렁크

소설은 언제나 제게 절실함을 요구합니다. 제 마음이 항상 똑같지 아니하니 속마음을 보여주지 않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이 간절해지기 시작하여 몇년의 준비와 등단 후 또 몇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감히 내가 꿈꾸고 열망하여 준비한 것의 두번째입니다. 이제 계획하고 열망하였던 것이 점점 바닥나는 기분이 들어서 착잡하기만 했습니다. 한 선배는 바닥을 지나 깊이 파고 있는 것이니 괜찮다며 위로해주었지만 여전히 찜찜한 마음은 도망갈 길 없습니다. 언제쯤이면 내 소설에 무한한 신뢰와 믿음을 부여할 수 있을지. 여전히 저는 자신을 믿지 못하겠습니다.

힌트는 도련님

일흔을 앞둔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제야 널찍한 집을 갖게 되었다. 아니 갖게 될 것이다. 지난겨울 시작한 두 분의 집짓기는 여름이 된 지금도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았다. 집을 짓는다는 것이 어떤 철저한 계획 아래, 준비된 설계 도면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내 부모가 짓고 있는 시골집은 그런 것과는 무관해 보인다. 그들이 짓고 있는 집이란, 생활이고, 삶이며,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인생의 한 부분 같다. 그들은 돈이 생길 때마다 황토 벽돌을 사다가 방을 만들고, 돈이 떨어지면 공사를 멈추었다가, 다시 여유가 생기면 창에 새시를 달고 화장실에 타일을 까는 식이니, 어떤 근사한 집에서의 안위를 염두에 둔 집짓기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분명한 것은 그 과정에 즐거움과 사명감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드디어 올 장마가 시작되기 전 1층이 완공되었다). 무심한 큰아들이 아버지의 예순아홉번째 생일을 맞아 잠깐 집을 찾았을 때, 아버지는 스케치북 하나를 보여주었다. 그곳엔 빼곡하게 스케치와 메모가 되어 있었다. ‘장독대’에 대한 도면에는 ‘무릎이 편치 않은 어머니가 최대한 무리하지 않고 한번에 올라설 수 있는 높이로 맞출 것’이라는 메모가, ‘마당’ 도면에는 ‘두 개의 화단을 만들 것, 어머니의 채소밭과 아버지의 꽃밭을 마주 보게 조성, 화분들은 마당 한가운데 모아 또 하나의 꽃밭’이라는 메모가 적힌, 우리가 아는 설계도와는 다른 그것을 보면서, 그간 자연스럽게 터득한 그들만의 미와 앞으로의 꿈 같은 것을 얼핏 짐작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스케치북을 보며 나는 무심한 아들이자 조금 그저 그런 인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어머니는 2층에 내 작업실을 만들 거라며, 방학 때마다 창작 공간을 찾아다니는 나를 그때만이라도 집에 붙들어놓을 수 있는 묘책을 궁리해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버지의 소박한 서재였다. 평생 처음으로 갖게 된 아버지의 서재는(서재가 따로 없어서 아버지의 책 때문에 우리 집은 언제나 비좁았다) 안방 안, 가장 은밀한 곳에 숨어 있었다. 봄엔가, 아버지가 전화를 걸어서는 집에 있는 자신의 책을 버려도 좋은지 물은 적이 있었다. 가서 보니 작은 서재를 꾸미는 데 많은 책들이 버거웠던 모양이다. 내가 물려받게 될 책들은 창고에 잘 정리되어 있었다. 어머니 말로는 그 은밀한 방에 들어가면 몇 시간씩이고 나오질 않는다고 하니, 말년에 아버지가 또 다른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 어머니가 짓고 있는 집을 위해 내가 한 일이라곤, 용돈을 조금 쥐여주고, 모든 창에 우드블라인드를 달아준 정도다. 돈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것, 그게 내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 얍삽함의 극치인 셈이다. 소설도 하나의 집을 짓는 것과 같다. 터를 잡고, 기초 공사를 하고, 무너지지 않게 기둥을 튼튼히 박고, 원하는 방향으로 창을 내기도 하고, 취향에 따라 인테리어도 하는 집짓기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작업이다. 4년여 지어온, 세번째 소설집을 바라본다. 집이란 모름지기 내 아버지의 스케치북 도면에 그려진 것처럼 자연스러운 배려가 가득해야 하는데, 곰곰 살펴보니 그런 면면이 보이지 않는다. 마치 어렸을 때, 뽑기 같은 것을 하면 나오는 ‘다음 기회에’나 ‘꽝’을 뽑아든 느낌이다. 부모가 짓고 있는 집과 내가 지은 집의 차이에 대해 골똘해진다. 집을 짓는 데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에는 간절함과 절실함, 가장 자연스러운 인테리어, 분수에 맞는 장식들, 실용성 등 여러 가지가 있을 테지만, 무엇보다 집 안에서 살아야 할 사람에 대한 사랑이 제일이다. 생각이 거기에 이르니, 내가 지은 집에 무엇 하나 자신이 없다. 내 인물들에 대한 사랑에 자신 없어지는 순간이다. 그러니 내가 지은 집 같지 않고 낯설기만 하다. 다음 기회에, 내 부모가 지은 시골집 같은 사랑으로 가득한 소설을 꼭 짓겠다고 다짐만 해본다. 해설을 써준 이광호 선생께 한없는 고마움을 전한다. 원고를 맡아준 후배 김필균에게는 위로와 축복. 마지막으로 내 소설을 기억해주고, 참아주고, 읽어주는 소중한 독자들에게 오래 참았던 인사를 남긴다. 2011년 여름 원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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