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전 침대에 누워 하루를 되새기다 보면 오른쪽 모서리로 소리 없이 올라오는 이가 있다. 우리는 태평하게 서로를 관찰하고 나는 집게손가락으로 그녀의 관자놀이를 문질러 보기도 한다. 숱 없는 맨들한 살이 부드럽게 느껴진다. 마사지에 기분 좋은 손님은 골골대며 노래를 부른다.
방문자는 공손하게 두 발을 포개고 앉아 나를 보거나 고개를 돌려 어지러진 협탁 위를 구경한다. 반구의 유리 구슬 같은 눈동자가 움직일 때마다 황금색으로 빛나고 우리는 한껏 포근한 이불을 누리며 서로를 보거나 공상에 빠져든다. 졸음이 몰려오면 그녀는 내 오른 소매에 털을 잔뜩 남기고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각자의 침대에서 잠에 든다.
6년 전 독립 출판물 《Cat's Melody》가 나왔던 시절에 그녀는 홀로 작업실에서 살았다.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은 아침 열 시부터 퇴근 시간 전까지였다. 혼자 밤을 보내야 하는 룸메이트가 늘 걱정스러웠다. 어떤 사고로 갑자기 아프거나 다치게 되는 건 아닐까. 수염 몇 가닥만큼의 긴장과 불안이 항상 따라다녔다. 작업실에서 우리는 서로를 느긋하게 바라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
나는 출근하자마자 그림을 그리거나 부산스럽게 뭔가를 만들었고, 룸메이트는 늘 낮잠을 잤다. 그리다 싫증이 나거나 한숨 돌릴 때마다 바닥에 엎드려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귀찮게 굴었다. 찹쌀떡처럼 늘어진 배를 주물거리기도 했다. 룸메이트는 매사에 침착한 편이었고 작업실의 그림이나 도구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보일러를 켜면 바닥에 누워서 물개 발 모양을 했다. 고양이는 아주 어렸을 적 구조된 후 작업실에서 혼자 살기 시작해 거의 5년 넘게 그곳에 머물렀다.
시간이 흘러 우리가 함께 살게 되면서, 나는 그제서야 내가 없는 작업실에서 그녀가 홀로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 알게 되었다. 사계절 내내 털 날리는 친구는 예상보다 말이 많았고, 혼자서도 잘 놀았다. 늦은 밤 어디선가 찾아낸 빵 끈을 던지며 호들갑을 떨거나 갑자기 부엌과 방을 내달리거나, 영화를 보는 내 옆에서 허공에 주먹을 날리기도 했다. 자기 전 침대에 올라와 나를 보다 갈 때는 작업실에서 한번도 본 적 없는 인자한 얼굴로 골골거렸다. 마주 보는 내 마음이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털북숭이 친구를 가까이에서 관찰하며 그림에도 변화가 생겼다. 처음에는 정면의 초상을 그리다가 이제는 가까이서 본 앞발이나 뒷모습, 그들이 좋아하는 장소를 그려 보기도 했다.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 나의 공간과 일상도, 마음에 들어오는 풍경도 달라졌다. 나는 우리 고양이의 삶에서 발견한 것을 조금씩 가져다가 내 삶에서 본 아름다운 것들과 버무려 6년 전에 그린 고양이 그림과 짝을 지어줬다. 느리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변하는 것들이었다. 유한하고 반복되지만 늘 움직이는 것들. 금세 사라지거나 우연히 숨겨진 것들을 떠올렸다. 정면을 바라보던 고양이들은 이제 각자의 세계에 몰두하며 깊은 숲과 구름 위, 담벼락 틈새와 익숙한 의자에 누워 무언가를 바라본다. 매일 밤 나를 돌보는 고양이가 그런 것처럼.
할아버지 댁이 있던 동네는 온통 회색빛인 담벼락과 낡은 집이 많았습니다.
화단에는 정성스럽게 가꾼 백일홍이 있고, 불래라는 이름의 개도 살았습니다.
이제 그 동네는 사라졌고 같은 자리에 높은 건물이 세워지고 있습니다.
다시 그 오래된 동네를 보고 싶은 마음에 편지를 쓰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매서운 겨울날, 이층 창가 앞 커다란 나무 속에서 웅크린 참새 떼를 발견했을 때 마음이 크게 울렁였습니다. 칼바람에 솜털이 흔들리고 눈조차 뜨지 못하는 새들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강하게 느껴졌어요. 생명의 모양은 때로 연약하고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굳센 힘을 가져서, 생의 아름다운 모양을 떠올리며 이 그림책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토토라는 이름의 까만개를 키워요. 이제 나이가 들어서 허리도 굽고 눈도 침침한 할아버지가 되었지요. 《이불개》 속 까만 개는 토토를 모델로 그렸어요. 토토는 털이 잘 빠지지 않는 대신 주기적으로 털을 깎아 주어야 했는데 그때마다 추워서 벌벌 떠는 모습이 안쓰럽고 미안했어요. 뜨거운 한여름에도 털을 깎은 토토는 이불 속에 파고들어 곤한 잠을 잤습니다.
털이 밀려 버린 이불개처럼 삶에 찾아오는 갑작스러운 한파에 누군가 빌려주는 이불 한 자락에 대해 생각했어요. 주는 마음은 한번 태어나면 사라지지 않고 이곳에서 저곳으로,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지구 어딘가로 바람처럼 움직일 거라는 믿음으로 이 그림책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화가입니다.
매일 계란프라이와 간장, 들기름을 넣은 점심 도시락을 싸서 작업실에 갑니다. 이른 점심을 먹고 그리다 보면 오후 세네 시쯤 배가 고프고 그리는 속도는 느려집니다. 혼자 작업하다 찾아오는 걱정과 불안은 허기질 때 더 강해져서 영혼을 위로하는 음식은 어떤 걸까 늘 궁금했어요.
작업실 주변 거리를 걷던 어느날, 동네에 새로 생긴 식당에서 제철 재료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를 만났어요. 허기진 오후 네 시에 저는 가끔 그곳에서 속을 든든히 채웠고, 우리는 우정도 키워 갔습니다. 시간이 흘러 각자의 일과 생활에는 크고 작은 변화가 생겼지만, 우리는 여전히 만나서 계절을 닮은 음식을 나눠 먹고 뿌듯해하곤 합니다.
제철 재료는 선명한 색과 모양을 가져서 저는 그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고 싶었어요. 화가인 제가 엽서에 그림을 그려 건네면 요리사인 언니는 답장처럼 한 편의 레시피를 적었습니다. 봄이 막 시작하는 달에는 샛노란 제주 레몬, 뜨거운 계절에는 수박으로 만든 요리, 가을빛을 닮은 땅콩호박, 겨울의 눈처럼 하얀 대파가 엽서의 주인공이 되었어요.
제철마다 부지런히 재료를 찾아서 먹고 만들며 갈무리한 스물네 장의 편지는 일 년이 지나 계절의 이야기를 담은 한 권의 책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