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에 발을 들인 지도 어언 삼십 년이 넘었다. 그동안 나름대로는 열정도 가지고 참 부단히 시를 써 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젊은 시절에는 시에 빠져서 허우적대기도 했었다. 요즘은 좀 덤덤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시를 쓰는 것은 습관처럼 굳어져 있어서 오늘도 여전히 시를 쓴다.
오랜 동반자처럼 시는 언제나 곁에 있고 시가 없는 나를 상상하기 어렵다. 시는 내게 무엇인가 명확히 규정지을 수는 없지만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것.
그래서 또 시집을 낸다. 부질없는 몸짓일지라도 어쨌든 모두 내 영혼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것들이다. 읽으시는 분들이 조금이라도 공감을 하실 수 있다면 그것으로 감사한 일이라 생각한다.
2026년 여름
세 번째 시집을 낸다. 첫 시집을 낼 때는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시집을 낼 때마다 더 큰 부끄러움과 자책감이 앞선다.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할 무렵에는 의욕이 앞서기도 했다. 그러나 시는 쓰면 쓸수록 더 힘들고, 좋은 시를 쓴다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어떻게 하면 기존의 시와 다르게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실험적인 시를 쓰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결국 시는 독자를 전제로 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시는 ‘비유와 상징’의 언어를 사용하여 형상화 하는 것인 만큼 산문처럼 쉽게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난해함이 되고 그런 시들이 보편화되면 결국 시를 ‘시인들만의 것’으로 고착화시키고 만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지만 지금은 시인 이외에는 시를 읽지 않는다. 시에 관한 한 생산자와 소비자가 정확하게 일치하는 이상한 시대에 살고 있다. 결국 시인은 자기들만이 가진 언어로 자기들끼리만 이야기하고 독자들은 ‘시는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철저하게 외면해 버린다.
부끄럽게도 지금 시단에서 주목한다는 시들의 상당수는 솔직히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더욱이 비평가들의 해설은 시보다 더 난해한 경우도 있다.
그래서 나 자신만이라도 읽힐 수 있는 시를 쓰고자 하는 것이 요즘의 생각이다. 비록 잘 쓴 시로 시단의 주목을 받지 못하더라도 술집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며 낭송을 할 수 있고 거기에 대해 보통의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시를 꿈꾼다.
세 번째 시집 이후 5년 만에 다시 시집을 낸다
시가 나에게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속 시원히 답을 할 수는 없지만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또 한 권의 가당찮은 시집이 어떤 의미로 남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부질없는 일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많은 시인들이 죽은 듯이 지내고 있는 내게 안부처럼 시집을 보내주었고 늘 고맙게 받아 읽었다
이 책은 내가 여전히 죽지 않고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작은 신호이기도 하고 염치없이 공짜로 받아 읽은 시집들에 대한 부끄러운 답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변변찮은 시를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미리 감사를 드린다
2021년 가을
김윤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