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힘을 나는 믿는다. 그것이 한 사람을 사랑하고 염려하는 여러 사람들의 마음의 힘이라면, 어떻든 지금까지 내가 이곳에 살아남아 있는 것도 그와 같이 여러 사람들의 마음의 힘이 그치지 않고 움직여온 결과가 아닐가. 더욱이 내가 넘어질 때 애써 붙들어주고 쓰다듬어주는, 그 이름을 생각만 해도 가슴 뭉클한 이들의 눈물겨운 마음의 힘.
거기에 손끝이라도 닿아보려는 심정으로 지난 3년여 동안에 틈틈이 써 모은 것이 여기에 실린 나의 시편들이다. 그것도 요즘 흔히들 그렇게 하듯이 시류에 재빠르게 얹혀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스르는 듯한 시쓰기를 고집하면서. 그러면서 나는 나의 모든 말들이 시가 되고 노래가 된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내 삶 속에서는 그럴 수 없으니 서글퍼하면서도, 그것보다 먼저 내가 쓴 시편들이 읽는 이들에게 작은 기쁨이라도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앞서서 이렇게 주섬주섬 묶어보는 것이리라.
내가 문단에 나온 지 어언 50년이 넘었다. 처음의 생각과는 달리, 이 땅에서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그다지 녹록지만은 않았다. 유달리 나에게만 그랬는지는 몰라도, 내가 걷는 시인의 길은 굴곡이 많고 비탈지고 거칠었다.
그래서 중간중간에 나는 몇 번이나 시에서 떠나려고 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몸을 사로잡은 시의 팔심이 너무도 강하여 나는 꼼짝도 하지 못하고 주저앉곤 했으니, 이 어찌 시 쓰기를 내 운명이라고 자처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이렇게 나는 한평생을 시에 묶여서 살아왔다. 차라리 일찍부터 풀무질하고 쇠를 두들겼더라면, 지금쯤은 노련한 대장장이로 가족을 편안히 먹여 살릴 수도 있었을 터인데, 나는 차마 그러지도 못한 채, 오늘도 여전히 문학소년 시절과 같이 밤잠을 설치며 시에 매달리는 나의 고행은, 남이 보기에는 이것이 아무리 허망한 일일지라도 내가 죽는 날까지 그치지 않을 것이다. 시지프스처럼. - 작가 에필로그
사람 안에 '시의 샘'이 있다면, 시인이란 그곳에 고인 샘물을 길어올리는 사람이 아닐까?
그렇다면 여기에 실린 대부분의 시편들도 내 작은 시의 샘 안에 고인 것들을 그때그때 물 긷듯이 길어올린 것들이리라.
어쩌면 아직도 흔들리는 내 삶 속에서 단 한 줄의 시를 쓰는 것마저도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 고이는 시의 샘물을 부단히 길어올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늘 나를 자극하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탓으로 나는, 비록 온갖 유혹과 절망과 숱한 우여곡절 속에서 거듭하여 상처받고 넘어지면서도 결코 시쓰기를 멈추지 못하는 것이다.
■ 작가 에필로그 중에서
『내 안에 시가 가득하다』이후 햇수로 6년 만에 신작 시집을 묶는다.
요즘의 몇 년 사이에 내 주변에도 많은 이들이 세상을 떠났다. 그런 것을 보면서, 나에게도 마지막 날이 있다는 것을 문득문득 깨닫곤 한다. 그리고 그런 깨달음의 뒤에는 언제나 모든 사물들이 낱낱이 새롭고 애틋해진다. 이제 갓 올라오는 풀잎의 새싹에서부터 우수수 지는 단풍잎, 붉은 저녁놀과 초승달, 희미한 새벽별들에 이르기까지. 새삼 내가 그런 생각을 가지는 것은, 언제인가는 아무래도 그것들과의 영원한 작별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거기에다가, 세월이 갈수록 그런 마음은 더욱 두터워지니 이를 어찌할 것인가. 마치 가극의 대단원처럼, 창밖에 비바람이 치는 소리, 작은 새들이 지저기는 소리, 아이들이 어울려 뛰어노는 소리들마저도 유난히 나를 사로잡고 흔드는 것을..... 그러니 아무도 나의 시 쓰기를 막지 마라.
내가 죽는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