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먼 여행 아주 먼 여행을 떠났습니다. 중국에서부터 인도까지 10만 8000리를 삼장 법사 일행을 따라 부처님을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 아름다운 마을, 무서운 숲 속, 불타는 사막, 으리으리한 궁전, 높고 얼어붙은 산길이 있는 여러 나라를 지나갑니다. 그 속에는 친절한 사람들도 있지만 삼장법사를 잡아먹으려는 요괴들이 길목마다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앞에 산 너머 또 산, 강 건너 또 강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아름다운 경치와 친절한 사람들 그리고 따스한 잠자리와 맛있는 음식들이 준비되어 있는지 모를 일이구요. 누군가는 고생 끝에 목표한 여정을 완성할테고, 누군가는 왔던 길로 돌아서거나, 정이 가는 곳에 머무르기도 할테지요.
우리의 여정이 시련과 설렘과 아름다움과 실수와 두려움과 후회로 겹겹이 쌓여있고, 그런 여러가지의 사건과 감정들이 끝없이 반복된다는 것을 알만한 사람이라면,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것으로 미운 것은 미운 것으로 힘든 일은 힘든 일로 기쁜 일은 기쁜 일로 느낄 수 있는 용기도 있는 사람일테지요. 실제의 여행이던 인생의 은유로서의 여행이던 우리가 만나게 되는 순간들을 생생하게 느끼면서 또한 그 순간에 머무르지 않는다면 아마도 우리는 길고 긴 여정을 마침내 완성할 것입니다.
<신밧드의 일곱 번의 여행>은 아이들 놀이같은 책입니다. 밤, 바다, 달, 배, 보물, 괴물 그리고 끝없는 여행은 우리들 모두의 꿈 속에 살아있는 매혹적인 이미지들입니다. 우리들 꿈 속에 숨어있는 모험과 낭만의 이미지들을 찾아내, 마치 어린이들의 놀이처럼, 허풍 섞인 뒤죽박죽 모험담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때때로 도시가 삭막하고 갑갑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자연이나 전원에서 느끼지 못하는 자유로움, 경쾌함과 같은 도시 공간 자체의 아름다움이 있다. 반짝거리는 커다란 유리창, 힘을 보여주는 철골구조의 빌딩들, 성공을 약속하는 커다란 사인보드들, 속도를 느끼게 해주는 소음들.
문득 늘 다니던 지하철역의 이름들이 낯설게 느껴졌을 때, 손에 쥔 지하철 표를 만지작거리다 그 탄력을 즐겼을 때, 이어폰을 꽂고 고개를 흔들어대던 어떤 학생이 입은 티셔츠가 마음에 들었을 때, 지하철 노선도가 몬드리안만큼 멋지게 보였을 때, 지하철 터널 속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 빛 등 이름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말없이 움직이면서 느낀 도시 속의 감각에 집중하여 이 책을 만들게 되었다.
(2003년 5월 15일 알라딘에 보내신 작가코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