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과 용서라는 말을 생각하며 몇 년을 살았다. 세상살이가 어렵듯 미워하는 일도 용서하는 일도 쉽지 않다는 것을 몇 년 사이에 배웠다. 그 사이에 나는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다.
가진 게 없이 살다 보니 몸은 부지런한데 글은 게을러 나를 아끼는 사람들의 근심을 많이 샀다. 그분들의 근심이 이 시집의 근간일 것이다. 감사드린다.
시집을 세 권만 내면 번듯한 인생이란 생각을 한 지 10년이 지났다. 벌써 두 번째를 내고 있으니 칠 할은 잘 지나온 셈이다. 하지만 남은 한 권이 만만치 않으리라.
아직도 시를 잘 데리고 살 자신이 없다. 나를 떠나지 말기를. 애원하며 애원하며 창밖 빗소리 듣는다. 다 고맙고 또 고마울 따름이다.
오래된 꽤나무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혀 자라는 학교에서 살았습니다. 아이들은 엘레지 꽃처럼 봄 교문을 들어섰다가 산 노을을 맞으며 교문을 나섰습니다. 그 속에서 만난 빛나는 이름들. 혼자 제비꽃 피는 꽃밭에 앉아 그 이름들을 불러 보았습니다. 하나같이 제 마음 어디 깊은 곳에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꽃처럼 피었다가 졌습니다. 아름다운 아이들. 지금은 아이 엄마가 되었고 청년회장도 하는, 먼 도시의 어느 노동 현장에서 훌륭한 지구를 지키고 건설하고 있을 아이들. 그 아이들의 이름을 이 시집에 담고 싶었습니다. 다 담기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 담으려고 했습니다. 그뿐입니다. 고맙고 또 고마울 따름입니다.
2025년 봄, 봉평에서
죽음으로 이별하는 일이 잦다. 그래도 이별은 익숙하지 않다.
그대의 얼굴은 아련하고 흐려지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 미혹한 내가 두렵기도 하다.
세상이 내 뜻대로 되지 않으니 화가 나지만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기로 한다.
나무를 경배하고 꽃을 숭배하면서 또 몇 년을 살아 보기로 한다.
시집을 세 권 내기로 했는데, 이 시집이 마지막이다. 여기서 마치면 좋겠다.
아내와 두 아이가 고맙다.
다들 평화롭기를, 무고하기를 빈다.
2023년 가을
시는 내게 오는 것인가. 내가 시를 부르는 것인가. 마당가에 우두커니 앉아 저무는 서쪽 하늘 산능선 엉크런 공제선을 건너다보며 하염없이 앉아 시를 기다릴 때, 시는 영영 내게 오지 않는다.
시는 내 몸이 묵은 김치를 퍼낸 단지 같을 때 온다. 헛헛하고 마음이 '한데'에 나앉은 듯할 때 문득 그 멀건 얼굴을 들이민다. 그러고는 무슨 말을 하는 듯하다가 사라진다. 그 말의 언저리를 잡으려다 쏙 벗어놓고 가버린 껍질을 겨우 잡고 그 속이나 들여다본다. 뭔가 있을 듯하여 그 속을 살피다 희미한 얼룩을 보고 나면 시가 다녀가신다.
그래서 내가 쓴 시는 늘 헛다리짚기 같고, 나오는 것 없는 감자밭 고랑을 물집이 잡히도록 호미로 파 뒤지는 일 같고, 사마귀 강냉이를 따다 껍질을 벗기는 일처럼 허망하기 그지없다. 그 허망함이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지도 모를 일이다.
궁벽한 산골에서 세상에 몇 마디 말도 못 걸고 살아서 그런지 나는 늘 주눅들고 어설프고 무식하기 짝이 없다. 서울 가까이만 가도 걸음이 빨라지고 자꾸 두리번거리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귀가 멍하고 방향을 잡지 못해 자주 멈춰 서서 해의 위치와 시계를 봐야 한다. 한 이틀 서울에서 자고 나면 몸에서 쇳소리가 나는 듯하여 좀도적처럼 짐을 꾸려 새벽 어스름 속에서 차를 타거나 심야버스를 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 시에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나 서울에 대한 증오가 없다. 그 속에 들어간 적이 없으니 그 속을 모를 뿐이다. 내 시에는 섶을 따라올라가 줄기 끝마다 상원사 동종 닮은 꽃을 해마다 다는 더덕이 숨어 있고, 간격을 잘 맞추어 심어 그 꽃이 순한 도라지밭이 있고, 청양고추가 삼열로 늘어서 보는 사람 속을 확 달굴 준비에 여념이 없는 앞마당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