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고 있는데, 중학생 남자아이가 다가와서 “만져봐도 돼요?” 하고 물었다. 나는 “그럼” 하며 개를 앉게 했다.
소년은 개에게 관심은 있지만 익숙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조심스레 손을 뻗어 머리 윗부분을 손끝으로 톡톡 두드리듯 쓰다듬었다.
“몇 살이에요?”
“다섯 살이야.”
“아직 아이네요.”
“아니야. 벌써 어른이지. 개는 수명이 15년 정도니까.”
“네?”
소년은 손을 멈추고 짧게 소리를 질렀다.
“15년밖에 살 수 없는 거예요?”
진심으로 놀랐다는 게 느껴졌다.
“그럼, 이제 얼마 안 남았잖아요…….”
소년은 이번에는 손으로 머리부터 목까지 정성껏 쓰다듬었다.
“이렇게 큰 개가 죽으면 어떻게 해야 돼요?”
그 개는 수컷 래브라도였는데 몸무게가 나와 비슷했다. 자신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개는 기분 좋다는 듯이 소년의 손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이렇게 큰 개가 죽으면 정말 어떻게 되는 거예요…….”
누구에게 묻는 것 같지도 않은 듯 소년은 되풀이했다.
나는 뭔가 대답하고 싶었다. 예의 바르고 마음씨 착한 이 소년을 어떻게든 안심시켜주고 싶었다. 하지만 내 입에서 나온 말은, 동물 장례식장에 맡기면 괜찮아, 아직 10년이나 남았잖아, 같은 적당히 둘러대는 말뿐이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자신이 쓰려고 하는 책은 이미 누군가에 의해 쓰였다, 라고 하면서, 얼핏 작가에게 부자유스러운 것으로 여겨질 만한 가정을 참으로 매력적인 가능성으로 비약시켰다. 내가 지금까지 맛본 독서 체험 중 가장 행복했던 것은, 아, 지금 읽고 있는 이 이야기는 먼 옛날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비밀의 동굴에 새겨놓았던 것을, 폴 오스터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지금 나에게 들려주고 있는 이야기구나, 하고 느낀 순간이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동굴에 말을 새기는 일이 아니라, 동굴에 새겨진 말을 읽어내는 것이 아닐까, 하고 요즘 생각한다. 그곳에 이미 있는 말을 내가 읽어낼 수만 있다면, 개가 죽고 나면 어떻게 될지에 관한 이야기를 소년에게 들려줄 수 있을 텐데.
이번에 열한 편의 애도의 이야기를 이렇게 소개할 수 있어 감사하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싶다.
수학에 대한 제 지식 수준은 한마디로 동네 소년 야구단의 후보 선수 정도라고 할 수 있어요. 후지와라 선생님은 당연히 메이저리그의 선수겠지요. 이렇게 엄청난 지식의 차이가 있었지만 저는 선생님과 대화하는 내내 한순간도 따분하지 않았어요. 따분하기는커녕 새로운 지평이 잇따라 눈앞에 펼쳐지면서 수많은 질문이 솟아났지요. 이 책을 읽게 될 많은 독자에게도 제가 느낀 가슴 벅찬 흥분이 반드시 전해질 것이라고 믿어요. 우리가 서 있는 세계가 이렇게 아름다운 비밀로 충만하다는 사실을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할 수 있다면 더없이 행복할 것 같군요. - ‘들어가는 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