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슨 월드』 번역 작업에 참여하게 되면서 전부 다는 아니지만 〈심슨 가족〉을 즐겁게 시청했습니다. 디즈니플러스 구독을 해놓고서도 별로 못 보고 있었는데 이번에 많은 도움이 되었네요. 이미 알고 있었던 주연들 외에도 다양한 캐릭터들을 만났고, 〈심슨 가족〉이 얼마나 풍부한 서사인지 실감했습니다. 잊고 있었던 1990~2000년대 사건과 인물들을 새삼 떠올리며 문화적 타임캡슐로서의 가치를 느끼는가 하면, 미국 정치와 역사를 종횡무진하는 패러디와 풍자에 감탄하기도 했습니다.
그 풍부한 문화적, 사회적 레퍼런스를 따라가는 것은 쉬운 작업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한국 독자들에게 그 시절 미국의 사회상과 분위기를 짧은 글 안에 녹여내는 것은 벅차면서 아슬아슬한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워낙 열성팬이 많은 작품이라 참고할 자료는 풍부했습니다. 다양한 해석과 이야기가 저장되어 있는 커뮤니티들과 심슨 가족 위키피디아, 그리고 여전히 활발한 레딧 게시판도 있으니까요. 한국에서 나온 대중문화 콘텐츠가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게 그리 오래되지 않다 보니, 이렇게 미국적인 창작물이 미국을 넘어 전 세계에서 오래도록 향유되고 있다는 게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그 비결은 단순히 재치나 유머, 독창성보다도 만들어진 하나의 세계를 수십 년씩 유지하고 이어갈 수 있는 뚝심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웃사이더>는 단순히 불우하고 예민한 사춘기 소년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적 위치나 나이와는 상관없이, 누구든 자신이 '아웃사이드'에 있다고 느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작가의 말대로, 어떤 형식을 하고 있든 간에 '내부와 외부'에 관련된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청소년들은 자신의 위치에 대해 더 민감한 만큼, 외부자로서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을 더 많이 지니고 있다. 중산층을 향해 진선 코스를 허덕허덕 달려가며 그 밖을 바라보지 않는 어른에게는 닫혀 있는 가능성이다. 아이들이 인터넷을 비롯한 매체가 전시하는 유행과 배금주의의 틀 안에 섣불리 갇히지 않는다면, 그들에게는 기성 세대의 빈약한 사회적 규격을 훌쩍 뛰어넘는 외부가 열릴 것이다. <아웃사이더>가 1950년대부터 지금껏 청소년 소설의 스테디셀러로 남아 있는 의미가 여기에 있을 터이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왜 동성애 서사의 다수는 비극일까? 동성애자가 이성애자보다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성애자라고 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불가능할 리는 없다. 더구나 등장인물과 소비층이 청소년인 경우라면 더욱 긍정적인 모델을 제시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첫사랑은 블루』를 옮기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주인공 사이먼이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가지고 괴로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성애자가 ‘정상’인데, 혹은 세상을 살아가기에 더 편한데 왜 나는 동성애자인가 하는 고민 같은 건 그에게 없다. 오히려 사이먼은 이성애의 ‘정상성’ 자체에 의문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