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과 문학』 한국어판 간행에 즈음하여
검열은 사라지지 않는다. 차별과 계급, 다수자와 소수자, 유산자와 무산자가 존재하는 한, 검열은 사라지지 않는다. 검열하는 주체가 정치권력 그 자체인 경우도 있지만 내면화된 권력, 권력의 환상인 경우도 있다. 내가 나 자신의 표현을 검열하는, 그러한 분열과 갈등이 생겨나는 때도 있다. 서구 근대를 모방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 일본에서, 검열은 1910 년 전후에 엄청난 폭력을 휘두른 뒤, 다음에는 부드러운 압박을 가함으로써 강약을 뒤섞은 언론 통제로 변모하였다. 1920 년대에는 한국을 비롯한 식민지에 더욱 폭력적으로 대응하면서, 종주국 내부에서는 자유를 누리게 하는 척하며, 테이블 아래에서는 칼날을 준비하였다. 검열의 제국은 수 많은 층위와 편차를 안고 있었고, 1930 년대에 이르러 그것이 서서히 표면화되었다. 그 시기, 표현자들과 언론인 그리고 출판계가 각각 목적을 달리하면서도 내무성과 공방을 거듭하였다.
그렇다면 일본의 패전 이후, 검열은 해제되었는가. 대답은 ‘ 아니오’이다. 미국 점령군이 새로운 검열의 주체가 되었고, 1952 년 이후 일본은 검열관 없는 검열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바깥에도 안에도 검열은 없다고 확신함으로써, 행복한 낮잠에 빠지며, 잠재하는 검열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문학은 긴장과 갈등을 끌어안음으로써 강해진다. 검열관을 앞에 두었을 때, 문학은 문학으로서의 빛을 발할 수 있었다.
반대로 해방 후 한국은 어떠한가. 검열과의 치열한 공방은 여전히 오랫동안 이어졌다. 그 희생의 기억은 문학을 더욱 날카롭게 연마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그러나 도리어 검열관 없는 검열이야말로 앞으로 새로운 과제가 될 것이다. 낮잠에 빠지지 말고, 영속하는 검열을 끊임없이 의식하는 것. 권력의 복잡한 시스템을 밝혀내기 위해서도, 문학은 지극히 중요한 감지기가 될 것이다.
2026년 5월
고노 겐스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