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노동자 희정이 이번에 향한 곳은 죽음과 애도를 둘러싼 노동의 현장이다. 그가 늘 해왔듯 장례 노동자들에 밀착하여 그들의 노동을 듣고 보고 기록했으리라 짐작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장례 노동을 기록한 것은 맞으나 이번엔 희정 그 자신이 장례 노동자가 되었다. 장례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그는 직접 고인들을 마주하고 그들의 마지막을 함께했다. 그리고 선배 장례지도사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낯설다. 우리가 죽음에 대해 낯설어 하는 만큼이나 장례 노동의 현장은 생소하다. 망가진 시신의 몸을 수습하는 법을 홀로 연습하고 익힌 시신 복원 명장, 남성밖에 없던 업계에서 여성 시신은 여성 장례지도사가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버틴 여성 노동자, 로드킬 당한 동물들을 위해 차에 종이 관을 넣어 다니는 반려동물 장례지도사... 이들에 관한 이야기는 죽음과 삶과 노동을 넘나든다. 노동의 현장이 죽음의 현장이니 어쩔 수가 없다. 생명의 마지막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문장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희정은 늘 감정의 범람 없이 절제된 말투로 자신이 목격한 노동의 존귀함을 말한다. 그는 자신의 일에 예를 갖추는 노동자들의 진심을 샅샅이 발견해낸다. 그래서 희정의 글을 읽을 땐 자주 복받친다. 슬픔이나 감동 같이 콕 집어 이름 붙일 수 있는 감정 때문은 아니다. 그저 진심을 발견함으로써 마음이 같이 진동하는 데서 오는 몸의 반응이다. 노동과 사람에 관한 섬세하고 정직하고 단단한 글, 올해의 노동절엔 이 책을 추천할 수밖에 없다.
- 사회과학 MD 김경영
이 책의 한 문장
시신 복원 명장인 김영래를 만났을 때, 사라진 귀를 만들고 사라진 피부를 덧대는 이야기를 유심히 들었다. 신체 부위 명칭을 하나하나 읊으며 이 역시 복원할 수 있을지 묻고 싶었다. 지나버린 일이라 소용이 없음을 알면서도 묻고 싶었다. 누군가는 마지막을 달리 기억할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했다. 2024년 12월, 김영래와 동료 장례지도사들은 무안국제공항으로 갔다. 누군가의 마지막이 그렇게 달라졌다.
스타니스와프 렘은 20세기 최고의 SF 작가 중 한 명이며, 그의 작품들은 전 세계에 대략 40개 언어로 번역되어 폴란드에서 가장 많이 번역된 작가로도 꼽힌다.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50여 년 동안 과학과 기술,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담은 작품들로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그의 소설을 통해 표현된 주제의 깊이와 스펙트럼의 너비는 그에게 미래학자, 문명학자, 과학 철학자의 타이틀을 붙이는데 주저함이 없게 한다. 그의 끝없는, 무한하게 확장하고 자유롭게 비약하다가 폭발하는 상상력의 충격파는 ‘다른 누군가가 쓴 책’을 비평하거나 안내하는 ‘메타픽션’이라는 형식으로 ‘실재하지 않는 책에 대한 서평’, ‘가상의 이론을 소개하는 가상의 책 서문’을 모아 엮은 <절대 진공>(1971), <상상된 위대함>(1973)을 통해서 유감없이 확인할 수 있다.
책의 서문 격인 <절대 진공>에서 렘은 ‘존재하지 않는 책에 대한 서평’이란 결국 ‘진지한 태도로는 소곤거릴 엄두조차 낼 수 없는 말을 웃으면서 소리친 것’이며, 일종의 ‘꼼수’를 부린 것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이러한 서문 격의 서평문조차 렘에 의해 쓰인 픽션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기가 곤란하기도 하다. 무인도에 홀로 조난된 남자가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타인과의 관계, 소설 장르에서 인칭이나 주제를 제거해 버리는 극단적인 실험, 개별 존재의 탄생 가능성을 따지는 확률 이론과 우주의 물리법칙에 대한 의문, 컴퓨터가 창조한 저작의 다양한 분과를 다루는 ‘비트bit 문학’ 등. 광범위하고 다채로운 주제들에 대하여 마치 실재하는 대상을 대하는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가의 글을 보고 있자면, 그가 서평, 서문이라는 제한된 형태로 슬며시 제시한 것들에 대한 궁금증이 넘친 나머지 자연스레 그 책이 실재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 소설 MD 박동명
심장에서 출발하는 글쓰기, '여성적 글쓰기'라는 개념을 창안한 이후, 이러한 글쓰기의 한 예로 <달걀과 닭>, <G.H.에 따른 수난>, <야생의 심장 가까이> 등의 작품으로 국내 독자에게도 깊게 사랑받은 작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작품을 집중해 이야기해온 앨렌 식수가 리스펙토르에게 바친 세 편의 글을 엮었다. 알제리 오랑(Oran)에서 태어난 유대계 작가인 식수는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브라질에서 활동한 유대계 작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언어, 라란자(laranja, 오렌지의 포르투갈어)에 닿을 때까지 '오렌지'를 향해 하강한다. 리스펙토르 작가론에 해당하는 첫 수록작 <오렌지 살기>를 통해 식수는 풍성한 감각을 외줄타기하듯 넘나들며 '글을 쓰는 여자의 은은하지만 도취시키는 맛을'(48쪽) 그 풍요로운 체취를 침이 고이게 그려낸다.
<G.H.에 따른 수난>의 번역자 배수아는 '파편적으로 드러나는 고백과 같은 G.H.의 이야기들은 대부분 그녀의 여성-정체성과 연관된다.' (<G.H.에 따른 수난>258쪽)고 리스펙토르를 소개한다. '몸통 한 가운데가 꺾인 존재는 암컷일 수밖에' (<G.H.에 따른 수난>125쪽) 없다는 소설의 문장에서 배수아는 소설의 내장을 읽어 낸다. 식수는 도시의 구불구불한 내장을 지나치고 나서 '하나의 집, 하나의 거실이 얼마나 많은 죽음을 대가로 치르는지'(<리스펙토르의 시간> 57쪽)를 목도한다. 생명과 죽음을 감각하는 리스펙토르의 시간이다.
여성은 여성 자신을 글로 써야 한다. 그리하여 여성들이 글쓰기로 오게 만들어야 한다. 엘렌 식수, <메두사의 웃음/ 출구> 중
리스펙토르는 오랜 시간 '남미의 여성 카프카'로 소개되었다. 작가론, 작품론으로 이어지는 식수의 리스펙토르론을 드문드문 함께 읽으며 '여성적 글쓰기'와 '자기 자신에 대한 말하기'에 대한 더 많은 대화가 오고가길 고대한다. '두서없는', '한풀이'로 오해받은 여성 당사자의 글쓰기가 언젠가는 클라리시의 시간과 함께 흐르게 될 것을 이 책은 알고 있다.
- 소설 MD 김효선
이 책의 한 문장
어떻게 나 자신을 여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 '여자'는 모든 나라의 오렌지들이 베일을 벗을 수 있도록 대가를 치른 모든 여자들을 부르는 고유명사다.
한국 대중가요 「너였구나」의 감동적인 노랫말과 그림책 작가 하수정이 만나 아름다운 그림책이 탄생하였다. 음악으로 경험했던 가사는 책 속 글로 바뀌어 서정적인 그림과 향연을 이룬다. 그림 속 어린이는 탄생부터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과정들이 밝고 긍정적인 색채로 표현되었다.
작고 작은 생명체가 무럭무럭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기쁨. 내가 사랑하는 수많은 존재들의 얼굴이 스며들어 있는 얼굴을 바라보며 사랑한다고 말하는 일. 감히 내 전부라고 말할 수 있게 된 존재를 떠올리며 가사를 짓고 노래를 부르며 그림책을 읽어줄 많은 양육자들에게 감동을 선사할 그림책.
- 유아 MD 임이지
작가의 말
주원아. 너와 함께한 모든 순간들이 고마워. 너와 함께할 모든 계절들이 가슴 저리도록 소중해. 우리의 처음이 기억 속으로 희미해져 버릴까 봐 써 내려간 이 노래를 듣노라면, 생애 가장 아름다운 그 순간이 새삼 떠오른다. 내가 온 마음으로 사랑해야 할 그저 사랑스러운 존재, 너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