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아비>(2005), <바깥은 여름>(2017)의 소설가 김애란이 2020년대의 한가운데를 지나며 8년 만에 소설집을 엮었다. 2020년대는 코로나19 팬데믹과 함께 시작됐다. 세계는 경기부양을 위해 돈을 풀었고, 이 돈은 가상화폐와 부동산으로 몰렸다. <성탄 특선>의 (<침이 고인다>(2007) 수록) 성탄 특수에 모텔을 구하지 못해 떠돌던 연인들과, 자취집에서 고립감을 느끼던 <너의 여름은 어떠니>의 청춘도(<비행운>(2012)) 2020년대를 함께 지났을 것이다. '방'의 문제에 눈이 밝은 소설가는 여전한 감각으로 한국인으로 산다는 것의 속시끄러움을 포착한다.
사회에 어느정도 진입한 이들은 좀 더 능숙해진, 때가 탄 눈으로 세계를 본다. <홈 파티>의 파티 호스트 '오대표'는 '계산이 정확하신 분'이고, <숲속 작은 집>의 남편 '지호'는 '어려서부터 몸에 밴 귀족적 천진함'이 있는 사람이다. 그들의 미감에 머무는 서사적 윤기를 알아채기도 하고, 그들의 천진한 잔인함을 구분할 수도 있는 위치에서 인물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김애란다운 가차없는 눈으로 스스로를 본다. 2020년대를 함께 지나는 독자는 그 시선으로 스스로를 평가하게 된다. 물가가 싼 이국에 탄소발자국을 흩뿌리며 휴양을 가서, 착취적인 1세계 시민이 되고 싶지는 않지만 팁 3천원에 내가 너무 '호구'가 되는 것 같아서 쪼잔해질 때의 복합적인 부대낌이 김애란의 소설을 읽는 내내 살아난다.
전쟁 경험에서 '강남'까지 도달한 박완서의 소설을 읽을 때 느끼는 멀미를 김애란의 소설에서 읽는다. 김애란은 다섯번째 소설집을 엮으며 '여러 계절을 나며 사람과 풍경이, 시절과 가치가 변하는 걸 보았습니다'라고 작가의 말에 적었다. <좋은 이웃>에 인용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8)이 말하는 '가치'와 2020년대는 얼마나 먼지 감각하며 우리가 선 자리를 들여다보면 좋겠다. 2025년, 우리는 김애란의 시대에 살고 있다.
- 소설 MD 김효선
이 책의 한 문장
그리고 나는 손에 든 책을 보고야 비로소 종일 나를 사로잡은 깊은 상실감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집을 잃어서도, 이웃을 잃어서도 아니었다. 우리가 정말 상실한 건 결국 좋은 이웃이 될 수 있고, 또 될지 몰랐던 우리 자신이었다는 뼈아픈 자각 때문이었다. 그 낯선 당혹 앞에서 나는 손에 쥔 책을 다시 어느 자리에 두어야 할지 몰라 불 꺼진 현관 앞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2021년 어느 가을밤이었다.
전작들에서 기술 발달에 따른 미래의 변화를 완벽하게 예측했던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의 신작. AI의 무섭도록 빠른 발전이 매일같이 인류의 삶을 바꿔놓고 있는 지금 이 시점, 그의 미래 예측이 시의적절하게 도착했다. 이번 책에서 그는 우리 앞에 훌쩍 다가온 새로운 세계에 대해 말한다.
20년 전 <특이점이 온다>에서 기술의 혁신이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허물 것이라 주장하여 세계적인 논란을 일으켰던 그는 이번 책에서 자신의 주장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하며 논지를 이어간다. 기계와 결합한 인간은 이제 무엇이 되는 걸까? 수명, 노동, 산업, 부, 권력, 복지, 안보... 우리의 모든 것은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 것인가. 커즈와일은 인류라는 종의 미래를 그린다.
- 과학 MD 김경영
추천의 글
‘특이점’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담고 있는 인류학적인 상상의 끝을 넘어, 우리 삶의 가장 깊은 단계를 정면으로 응시하길 원한다면 이 책을 잡아라. 맹목적인 낙관도, 무력한 비관도 아닌, 본질적인 통찰의 시선으로 다가올 세상을 준비하는 최고의 방법이 여기에 있다. - 궤도, 과학 커뮤니케이터
왼쪽 청력이 약한 '나'를 위해 누나는 늘 내 왼편에 서 주었다. 그런 누나는 여름 방학에 친구와 놀러 갔다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우리의 마지막 순간이 싸움이었다는 사실은, 누나와 나만 아는 비밀이었다. 누나 방에 들어갔던 날, 누나가 아끼던 카우보이모자에서 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나가 시키는 대로, 서랍 속 누나의 노트를 펼쳤다. 누나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기로 하고 방을 나섰다.
누구나 살아가며 사랑하는 가족, 아끼는 친구 혹은, 소중한 반려동물과의 이별을 겪는다. 그 이별이 남긴 슬픔을 껴안고 살아야 할까, 아니면 벗어나기 위해 애써야 할까. 주인공 '강산'은 누나가 하지 못한 일을 대신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누나와 함께했던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며 이전에는 몰랐던 누나의 모습을 서서히 알게 된다. 그리고, 누나의 사람들과 누나를 추억하며 함께 애도의 시간을 갖는다. 이 책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아이가 슬픔에만 갇히지 않고, 한 걸음 성장해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누군가를 떠나보낸 모든 이에게, 조용히 건네는 위로의 이야기이다.
- 어린이 MD 송진경
도립 호지로 고등학교에는 독특한 전통이 있다. 매년 5월 열리는 창립 기념 문화제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장소인 옥상을 희망한 단체는 평화적이면서도 명확하게 승패가 갈리는 게임으로 대결하고, 우승한 단체에 옥상 사용권이 주어진다. ‘바보(愚)와 연기(煙)는 높은 곳을 좋아한다.’라는 속담에서 유래한 ‘구엔(愚煙) 시합’. 올해 결승에는 학생회의 오픈 카페 ‘킬리만자로’와 1학년 4반의 카레점 ‘가람마살라’가 진출해 있다. 2년 연속 구엔시합에서 우승한 학생회 대표의 상대는 어딘가 허술해 보이면서도 유유자적한 1학년 신입생 이모리야 마토, 결승 시합의 종목은 ‘가위바위보로 계단 오르기’다. 단, 45개의 계단 가운데에는 양측 참가자가 임의로 설정한 ‘지뢰’가 설치되어 있고, 그 지뢰가 설치된 계단에 멈추면 10계단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익숙한 놀이에 추가된 변형 규칙, 그리고 서로의 허를 찌르는 심리전이 펼쳐진다. 과연 축제의 왕좌 옥상을 차지할 단체는 어디일까. 그런데, 이게 이렇게까지 진지하고 치열해야 할 일일까.
일본 4대 미스터리 랭킹을 제패하고 대중소설이 받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상을 수상하며, 나오키상 후보까지 포함하면 총 11개의 상에 이름을 올린 기념비적인 작품. ‘가위바위보로 계단 오르기’를 시작으로 카드를 뒤집어 짝 맞추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처럼 익숙한 놀이를 바탕으로 변형된 규칙들이 적용되어 치열하고 감각적인 두뇌 배틀을 펼친다. 겉보기와는 달리 승부에 강한 이모리야 마토는 학교 축제 자리 선정을 위한 게임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이후 새로운 상대와 새로운 게임을 거듭해 가고, 차례차례 강자들을 쓰러뜨린 이모리야의 앞에 예상치 못한 최강의 상대가 나타나는 구조는 소년 만화의 왕도적 전개와 닮았다. 젊은 나이와 특유의 스타일 덕분에 ‘헤이세이 시대의 엘러리 퀸’이라 불렸던 작가는 이 작품으로 ‘레이와 시대의 최고 재미’라는 새로운 수식어를 얻었다. 치열한 두뇌 배틀 속에서 주고받는 전략과 전술, 수읽기와 심리전이 전하는 압도적인 재미.
- 소설 MD 박동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