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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지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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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플라랜드>

지곡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영화를, 서울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공부했다. 독립문예지 『베개 8호』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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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플라랜드> - 2025년 12월  더보기

나는 언제나 스스로가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했다. 이 사라짐은 추상적인 비유나 과장이 아니다. 나는 청소년기부터 자아가 하나로 고정되지 못하고 스위칭 되는 현상을 반복적으로 겪어왔다. 이 현상은 아주 복잡한 양상으로 다양하게 나타나기에 설명이 쉽지 않다. 나는 주기적으로 이전과 아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이 변화는 단순한 패션·스타일의 변화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패션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 지향점, 목소리, 말투, 눈빛, 취향까지 모든 것이 통째로 바뀌기 때문에 격변기 때마다 당사자인 나는 매우 큰 혼란을 겪어야만 했다. 주변 사람들도 내가 다른 쪽으로 전환이 될 때마다 자신이 잘 알던 누군가가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과 같은 기묘한 감각을 느껴야만 했다. 바뀌어버린 나를 아예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고 배신감에 휩싸여 나를 떠나 버린 사람도 있었다. 나 또한 서로 다른 쪽의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해서 스위칭 된 후에는 그전에 가지고 있던 옷과 물건들을 다 버리거나 나누어줘 버리고 새것으로 집안을 가득 채우곤 했다. 분명히 내가 산 물건인데도 그 물건을 샀을 때의 감정과 느낌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서 당장 눈앞에서 없애 버리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게 늘 고통스러웠고 금전적으로도 손실이 컸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내가 사라지는 느낌을 받는다. 가끔 전환기에 거울을 보고 있으면 거울 속이 텅 빈 느낌이 든다. 매 순간 어떤 자아를 연기하는 기분이 든다. 진짜 나는 없고 내 흉내를 내는 인형을 매분 매초 대신 세우고 조종하느라 진이 빠지는 기분이 든다. 내가 만든 자아들은 보통 통합이 되지 않고 서로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사실 나는 제대로 된 견해라는 것을 가진 적이 없다. 내 견해는 손바닥 뒤집듯 바뀔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 극심한 멀미와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시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많아서 하나로 보이는 것들에 대해 아주 긴 시간 동안 생각해 왔다. 시를 쓸 때 나는 여러 명의 목소리를 수집하여 하나로 이어붙인다. 그러다 보면 여러 명의 자아가 하나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시 속의 나는 너무 여러 명이어서 선명한 하나로 수렴된다. 한 편의 시를 완성했을 때 느낄 수 있는 총체적이고 예술적인 통일감은 불안정한 나에게 큰 위안을 준다. 요약하자면 이 시들은 여러 명의 내가 함께 쓴 것들이다. 우리는 각자 합의에 이르지 못했지만 합의되지 못한 목소리들이 각각 이견이 있는 상태 그대로 조합되어 하나의 새로운 무언가가 발생하게 되었다. (2025년 겨울, 지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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