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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권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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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거기 두고 온 말들>

저자의추천 작가 행사, 책 머리말, 보도자료 등에서 저자가 직접 엄선하여 추천한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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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과 호호아줌마의 러브스토리 부부가 산골을 찾아온 날은 더운 날이었다. 부부가 돌아가고, 나는 앉은 자리에서 그가 내민 두툼한 원고를 읽기 시작했다. 실로 오랜만의 독서이기도 했지만 어떤 힘이 350쪽 넘는 원고를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내게 했을까. 원영만 황선희 부부를 만난 게 89년, 전교조가 태어나던 해다. 서울 집회에 한 번 가려면 직행 노선을 두고도 시내버스로 군 경계까지 몰래 이동해서, 버스나 기차를 갈아타야만 하던 시절이었다. 그 짐승 같은 시절로부터 어언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더니 30대의 그들도 60대가 되었다. 그런데, 그런데 왜 하나도 서럽지 않은 걸까. 우리도 전임자를 두어 노동조합을 꾸려갈 수 있게 되어 나는 감히 전임을 하겠노라 나섰다. 2001년, 그는 강원지부장이었고 나는 사무처장이었다. 임기를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우리는 도교육청 농성에 돌입해야만 했다. 내가 ‘노동자 원영만, 지도자 원영만’의 진면목을 마주한 건 그때였다. 농성 중에도 한쪽에서는 물밑 교섭이 진행되는데, 교섭 실무를 맡아야 했던 나는 몇 줄의 합의내용이 만들어지면 ‘이 정도면 되겠지’ 하는 자신감으로 그 앞에 내밀곤 했다. 싫다 좋다 즉답 없이,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그는 ‘동지들에게 물어보라.’며 단호했다. 나는 서운했다. 하지만 그 서운함은 자양분이 되어 뒤를 이어 강원지부장 직을 수행하게 했고 지금까지의 나를, 전교조를 지켜내는 힘이 되어 주었다. 그렇게 믿는다. 이 책 <동행, 노동자 부부의 세상 건너는 법>은 황선희 동지의 섬세한 기록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 사소한 일에도 큰 감탄을 쏟아내며 칭찬하는 사람이 ‘호호아줌마’ 황선희 동지다. 화를 잘 내지 않지만 ‘부창부수(夫唱婦隨)란 이런 것이다’를 증명하듯 원칙 앞에 또한 명징한 사람, 조직 활동의 전설인 사람이다. 이 책을 읽는 많은 노동자들이 독후감은 안 쓰더라도 이로써 일기는 꼭 쓰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그것이 곧 민중의 역사이니. 한여름, 그들의 삶을 앉은 자리에서 읽어낼 수 있었던 것은 노동의 힘이었을까. 한 노동자 부부가 기록한 역사를 또 다른 노동자가 읽어주는 연대의 힘 말이다. 그럴 때 노동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이 책은 에세이도 아니고 달콤한 연애소설도 아니지만 읽고 나면 눈물겨운 러브스토리라는 것을, 한 노동자 부부의 대하소설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경건하게 박수치게 될 것이다. 그는 조금 아팠지만 아픔을 견디어내는 자세 또한 그 답다. 무원칙 비원칙에 엄격했던 것처럼 싹둑, 잘라 내리라 믿는다. 더는 아프지 않은 큰 어른으로 남아 험난한 현대사의 나침반이 되어주기를 희망한다. 아니 우리는 이미 푯대가 된 큰 어른 하나 갖게 된 것이다. 노동자의 자기 역사 쓰기란 이런 것이다, 꼼꼼한 기록으로 남겨준 부부에게 고맙고 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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