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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송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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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신앙의 자리>

저자의추천 작가 행사, 책 머리말, 보도자료 등에서 저자가 직접 엄선하여 추천한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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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개
1.
칼뱅은 성경을 “하나님이 주신 안경”이라 비유했다. 그 안경을 써야만, 흐릿하게만 보이던 창조의 질서와 구속의 이야기가 비로소 또렷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오늘날의 많은 예배와 성경 공부는 각종 명품 안경들을 성찬대 위에 정갈하게 늘어놓고선 ‘참 좋다’며 감탄만 할 뿐, 정작 그것을 쓰고 세상으로 나아가려 하지는 않는 모양새다. 성경은 낭독되지만, 세상은 여전히 흐릿하고 무의미하게 읽힌다. 이때 크리스토퍼 왓킨은 묻는다. “그래서?”(So what?) 저자는 바로 이 오래된 신앙의 습관을 근본에서부터 다시 흔든다. 성경이라는 안경을 감상의 대상에 머물게 하지 않고, 직접 착용하여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신학적 장치로 되살려 낸다. 그는 성경이라는 거대한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우리 사회와 문화, 그리고 우리 자신의 실존을 새롭게 읽고 해석할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현대의 철학과 정치, 일상과 언어를 복음의 칼날과 은총의 빛 아래서 비틀고, 흔들고, 마치 세례를 주듯 다시 조율해 낸다. 성경의 이야기와 이미지, 패턴이 오늘날의 문화 논쟁에 전복적으로 개입하는 실제 사례들이 이 책에 가득 담겨 있다. 저자는 ‘성경적 비판 이론’을 통해 지배적 문화 내러티브의 결함을 예리하게 드러낸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과 도덕적 이상, 삶의 깊은 직관’에 얼마나 어긋나는지를 신학적으로 진단하고, 성경이 어떻게 그것을 넘어서는지 보여 준다. 이 책은 단지 성경을 변호하는 변증서가 아니다. 오히려 성경 그 자체가 세상을 분석하고 꿰뚫는 새로운 사유의 도구로 기능한다. 아우구스티누스와 본회퍼, 체스터턴과 리쾨르 등 다양한 전통의 사상가들을 넘나들며, 왓킨스는 양극단 사이에 갇히지 않고, 성경이 제시하는 독창적 통찰 곧 ‘대각선화’의 길을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 무엇보다 이 책은 기독교가 너무 익숙해진 이들에게조차 낯설고 신선한 시선으로 복음을 다시 보게 한다. 마치 C. S. 루이스가 “나는 해가 떴다는 사실을 믿듯 기독교를 믿는다”고 고백했듯, 이 책은 성경의 빛으로 세상을 새롭게 인식하게 한다. 한마디로, 이 책은 칼뱅의 ‘안경’ 비유를 독수리의 시력처럼 예리하게 실천적으로 구현한 드문 역작이다. 성경이라는 렌즈를 통해 우리는 문화를 깊이 탐구하고 비판할 수 있으며, 그 문화에 무비판적으로 휘둘리거나 흡수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이 책을 덮고 나면, 당신의 눈이 아니라 당신의 시선이, 아니 당신이 바라보는 세상 자체가 바뀌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2.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7월 28일 출고 
이 책은 저자의 목회적 여정과 제주라는 독특한 땅에서 쌓아온 깊은 영적 통찰을 생생하게 펼쳐 보인다. 제주 바람처럼 강렬하면서도 부드럽게, 교우들의 일상에 스며들며, 칼뱅의 ‘적응’ 신학을 통해 이 땅에 맞는 복음의 언어를 새롭게 빚어냈다. 저자가 제주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 체득한 영적 여정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독자들은 평범한 순간에도 하나님의 세심한 손길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은 단순한 기도 지침서가 아니라, 삶 속에서 하나님을 마주하게 하는 깊이 있는 동반자다. 바로 곁에서 ‘함께 가자’고 손 내미는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을 독자에게 선사할 것이다.
3.
이 책은 마치 천체 망원경이 밤하늘에 숨겨진 별들의 비밀을 드러내듯,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단순한 윤곽이 아닌 그 심연까지 파고든다. 저자는 복음을 피상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거부하고, 그 안에 감추어진 섬세한 진리들을 꿰뚫어 보며, 이미 우리 안에 임한 하나님 나라를 실감하도록 이끈다. 그 하나님 나라는 더 이상 먼 곳에 있지 않다. 성령을 통해 지금 이 자리에서 충만하게 누릴 수 있는 실재임을 강력하게 선포한다. C. S. 루이스가 『영광의 무게』에서 연필 스케치와 실제 풍경의 차이를 비유한 것처럼, 저자는 복음의 ‘굵은 선’ 뒤에 숨겨진 하나님 나라의 ‘원본 그림’을 생생하게 펼쳐 보인다. 복음에 대한 개념적 설명을 넘어서, 실재하는 하나님 나라의 경험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이 책은 ‘이미와 아직’의 긴장을 넘어,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 나라가 성취되었으며, 그 실재를 우리의 일상에서 온전히 체험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 책은 단순히 복음의 이론을 넘어서, 20세기 복음주의 교회의 한계를 뛰어넘고, 우리가 놓쳤던 생수를 성경의 깊은 우물에서 길어 올린다. 교리와 사변의 틀을 깨고, 삶의 한복판에서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살아 움직이고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증언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하나님 나라의 신비와 깊이를 일상 속에서 한껏 누리며, 제자도의 삶을 더욱 열망하게 될 것이다.
4.
삼위 하나님의 상호 내주(페리코레시스)에 ‘코라’(room)라는 방의 언어가 쓰인 걸 고려하면 사실 하나님의 집 신학은 진작 나왔어야 했다. 하나님 나라 신학 렌즈가 허블 우주 망원경을 닮았다면 하나님의 집 신학 렌즈는 가정용 카메라를 닮았을까? 하나님 나라 신학의 메가 트렌드가 자칫 놓치기 쉬운 기억, 공감, 공명, 애착, 소속감, 상호성, 고유성, 급진적 섬김, 공동 통치, 관계의 교점인 사물까지도 이 책은 집과 가족의 언어로 술술 풀어낸다. 이러한 언어가 부재할 때 “인간의 사랑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라는 메시지가 얼마나 쪼그라들지, 저자들의 직설이 매섭다. 하나님의 집은 사람들의 집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주제 하나로 성경의 서사를 정교하고 일관되게 펼치면서도, 저자는 ‘집들의 집’을 놓고 성경과 세속이 벌이는 이야기 각축전을 통해 집에 대해 할 말 없는 신학을 집에 대해 할 말 많은 신학으로 선회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일상의 절반이 넘는 일터의 신학적 중요성에 일찍이 눈을 떴던 저자가 이번에는 나머지 일상까지 채우는 집의 신학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일의 신학에서 은혜를 자연으로 바꾸고 만 비인간화와 소외를 고민했다면, 집의 신학에서는 (온전한 의미로서의) 번영하는 집(flourishing home)이 (제한적 의미로서의) 번창하는 집(prosperous house)으로 뒤틀려 있는 만물의 어긋남을 탐색한다. 공산 치하 동구권의 가난한 목회자 아들로 자라면서 흙먼지 날리는 허름한 교회 사택의 쓸쓸한 작은 방에서 지냈던 저자. 마침내 그가 “성화되지 못한 세상”이라는 전통 신학 용어를 세상의 생명을 위한 신학 시리즈에서 ‘아직 집이 되지 못한 세상’으로 번역해 내는 대목은 어째서 저자를 ‘다리를 놓는 신학자’로 부르는지 알게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선물(munus)이 되어 주는 공동체적(communal) 삼위일체 신학에 일찍이 천착했던 저자가 이제는 서로가 서로에게 집(Home)이 되어 주는 참신한 신학 기획을 “서로 사랑하라”는 가훈으로 성공리에 펼쳐 낸다. 여기에 비가 내리고 눈이 내리듯 하나님의 집이 우리들 집 위에 날마다 내리는 풍경은 덤이다. 그래서였을까? 책을 읽는 내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속 한 문장이 도무지 떠날 줄 몰랐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불쌍히 여겨 줄 곳이 어디 한 군데라도 있어야 한다.” 아무 데도 갈 곳 없던 라스콜니코프가 소냐 단 한 사람으로 인해 어디든 갈 수 있는 존재로 격상되던 ‘펠릭스 쿨파’(Felix Culpa)의 신비! 이렇듯 “종살이하던 집”을 떠나 “새로운 종류의 집을 만들고자”, 신앙의 초점을 집 밖 순례가 아니라 집 안 살림으로 담대하게 바꾼 저자가 만약 심훈의 『상록수』를 알았다면 제목을 이렇게 정했을까? “하나님의 집: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5.
인간 감정의 뿌리가 하나님에게 있다는 사실을 신학의 영토에서 슐라이어마허가 밝혀냈다면, 문학의 영토에서는 저자가 밝혀내고 있다고 얘기해도 괜찮지 않을까?! 우찌무라 간조 말마따나 日新又日新(일신우일신)! 날마다 새롭게 하루씩 살고 싶어지게 만드는 책. 이제 나는 예전처럼 소설을 급히 읽지도 몰아서 읽지도 않을 것이지만, 그 누구보다 소설을 오래도록 읽고 또 읽을 것만 같다. 아주 천천히. 천국의 시간에서처럼.
6.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우리의 일상적 예배와 섬김, 습관과 성품 속에 그토록 염원해 온 구원과 회복과 치유의 길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책이 우리 가운데 있는 희망을 발견하고 그로부터 교회의 미래를 열어 가는 데 귀한 도구가 되기를 소망한다.
7.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7월 28일 출고 
성경언어는 본시 그림언어다. 그렇다면 신학언어도 그림언어 일 때 가장 성경적일 것이다. 그림들 중 오늘 우리에게 가장 친숙하고 재미를 안겨주는 만화로 신학을 생생하게 그려대니 교리가 쉬워지지 않고 배길 리가 없다. 제네바에 만화방이 있었다면 칼뱅도 하나님 영광의 극장을 갈때 이왕이면 만화경을 써보라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톨레 레게를 말할 필요도 없이 손에 잡히기가 무섭게 라면 부는 줄도 모르고 빠져드니 말이다. 당신이 지금 막 신학책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면 아니 그동안 쌓아 올린 신학책 더미 속에 지쳐있다면 주저없이 이 책을 집어 들라. 아하 체험은 멈출 줄 모르고 신학은 어느새 감미로워지고 교리는 이토록 재미지게 되나니.
8.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7월 25일 출고 
  • 이 책의 전자책 : 14,490 보러 가기
순간의 사람으로 지내온지라 스올의 자리는 고사하고 그 언저리에도 속수무책인 현대 문명 속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원의 사람이 되게 하는 스올의 신비를 자신의 피와 땀과 눈물로 써 내려간 비망록이 예사롭지 않다. 무엇이든 끝까지 가 보지 않은 이는 끝을 말할 수 없는 법. 하지만 저자는 끝의 자리만 아니라 그 너머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소망을 통해 무의미한 끝을 두려워하는 우리 인생의 포물선에 유의미한 신학의 위안을 선사한다. 저자의 처방은 어설픈 밧줄도, 작은 손전등도, 일시적 연고도 아니다. 위대한 교부들 못지않게 진리의 단맛과 신맛, 생명의 부드러운 맛과 톡 쏘는 맛까지 자아내는 이 역작(力作)을 음미하는 자마다 덧없는 번영(prosperity)으로 허기진 땅의 흙먼지와 눈물 말고, 영원한 번성(flourishing)으로 가득한 하늘의 빵과 물을 먹고 마시리라!
9.
1세기와 21세기, 두 지평의 동네 이야기를 공동선 언어로 맛깔나게 풀어내는 저자의 솜씨가 남다르다. 잠시 멈추어 서서 모두를 위해 나와 너에게 맡겨진 은사의 조화에 주목할 때 세상이 감당치 못할 하나님 나라의 실재가 꿈같이 열린다는, 오래된 그러나 진실한 메시지가 듬직하다. “모든 것은 좋든 나쁘든 공동의 것”이라는 루터의 명언을 현장에 천착하여 이토록 실감나게 풀어 간 책이 또 있었을까!
10.
칼뱅의 글결을 잘 살린 번역과 탁월한 편집 덕분에 이 책은 더욱 빛난다. 앞으로 칼뱅 관련 수업에서는 꼭 이 책을 추천할 것이다.
11.
교회가 ‘빅 미’(big me)로 행세하던 시절에 푸른 잔디가 깔린 고풍스런 목사관에서 자랐지만 청소년 시기에 신학의 정원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던 헤세나 니체와는 달리, 교회가 ‘리틀 미’(little me)로 신음하던 시절에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자란 볼프는 흙먼지 날리는 허름한 사택 작은 방에 마련된 신학의 정원으로 들어갔다. 복음서가 마구간에서, 서신서가 지하 감옥에서 태어났다면, 이 책은 1970년대 초반 동유럽의 조그마한 청소년 소그룹에 소소하게 뿌려진 씨앗이 2010년대 후반 북미 신학의 요람 예일 신앙과문화연구소 팀의 노고로 화려하게 맺힌 결실이다. 저자들은 이 책이 학술 논문이 아니라 선언문이라고 겸허하게 규정하지만, 이 선언문은 루터와 바울이 21세기에 살았다면 곧바로 써서 우리에게 건넬 법한, 잉크가 채 마르지 않은 두루마리에 가까울 것이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집’에 걸린 과녁을 소홀히 하다 자기 자리마저 잃어버린 기독교 신학의 활을 다시 ‘번영하는 삶’에 정조준할 수 있을까? 하루 종일 물감과 붓을 쓰다듬고 이젤과 캔버스를 만지작거리지만 정작 “참된 삶, 좋은 삶, 살 가치가 있는 삶”이 담긴 풍경화는 그리지 않는 화가를 빼닮은 신학자와 그리스도인 모두를 위한 긴급 처방전이 여기 있다. 두 저자는 신학자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뿌리를 둔 번영하는 삶의 통합된 비전 본연의 음조와 실제 일상의 선율이 종말론적 긴장 가운데서 어우러지게 하는 즉흥 연주자임을 치밀하게 논증하며, 신학을 자칫 녹음테이프나 땅 속에 묻은 보화로 대하기 쉬운 신학교 교정에서 신명나게 라이브 공연을 펼친다. 세상을 사물로 보는 렌즈는 빼고 선물로 보는 렌즈로 갈아 끼우고, 자아가 선호하는 삶 너머의 참된 삶을 과장하거나 축소하지 않고 제대로 보여 주는 교정술이 어찌 이리도 탁월할까! 특별히 신학자는 지식과 하나님과 세상만이 아니라 대화 상대자와 심지어 지적 원수까지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는 저자들의 고언은 초갈등사회인 오늘날을 살아가는 신학도라면 반드시 삼켜 내야 한다. 이 책은 우리가 오래도록 잃어버리고 있었던 사랑, 평화, 기쁨을 어둠과 시련 속에서도 소망 가운데 끝내 찾아내는 신학을 연주하게 할 것이다.
12.
이 책을 읽는 동안 당신은 마치 나니아 옷장에서처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기의 신비로움에 빠져들 것이다. 그리고 어느덧 하나님의 놀라운 세계로 훌쩍 들어와 있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이미 온 하나님 나라를 일상에서 한껏 살아 내고 싶은 모든 이를 위한 이 책은 향후 성경 읽기와 묵상을 위한 ‘불후의 교과서’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13.
볼프는 공동선의 망토를 걸치고 은혜의 지팡이를 든 거인 바울의 어깨 위에 올라타 보라고 따뜻하게 손짓하며 내재와 변혁으로 초대한다. 이 책을 통해 당신은 지난날 일터에서의 비인간화와 소외를 성찰하고, 먼 훗날 하나님 안에서 누릴 인간의 번영을 기대하면서, 오늘 성령의 은사를 따라 일한다는 것의 실존적·변혁적 의미를 음미하게 될 것이다.
14.
볼프의 포도원에 가본 적이 있는가? 그는 관대함을 잃어버린 땅을 개간하고, 이기적인 잡초를 뽑아내며, 은혜의 망대를 허물려는 여우를 쫓아낸다. 『베풂과 용서』는 그의 손에 언제나 들려 있던 쟁기요 괭이다. 이 책의 모든 문장과 문장 사이사이에 맺힌 땀방울을 다 닦아내야, 빛나는 열매들로 그득한 그의 신학 곳간을 들여다볼 눈이 비로소 열릴 것이다. 하나님, 세상 그리고 우리 삶의 모든 여정을 엄밀하고도 섬세하게 펼쳐내는 볼프의 탁월한 솜씨는 진실하고 선하며 아름답기까지 하다. 이 책을 모두 읽기 전에는 그의 다른 저작에 손대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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