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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종교/역학

이름:김기석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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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지구를 살리는 말씀>

저자의추천 작가 행사, 책 머리말, 보도자료 등에서 저자가 직접 엄선하여 추천한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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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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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끊임없이 사람들을 고립시키고 외롭게 만듭니다. 그런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사람들을 이어주고 함께 걷게 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거룩한 삶이 아닐까요?
2.
분주함이 신분의 상징이 된 세상에서 우리는 수많은 정보를 접하며 산다. 명멸하는 정보들 사이를 서성이는 동안 사유의 능력은 줄어들고 영적 평안함도 사라지고 있다. 파편화된 시간 경험은 삶의 통전성을 무너뜨리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순례의 목표를 망각하게 만든다. GPS를 통해 길을 찾는 것처럼 믿음의 사람들은 하늘에 길을 물으며 산다. 물음에 대한 답은 명료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언어를 인간이 다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끼어든 소음이 하나님의 음성을 삼켜버리기도 한다. 시대의 소음 속에 살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하는 것이 믿는 이들의 과제이다. 많은 이들이 자기의 욕망 혹은 거짓된 자아로부터 발화된 내적 음성이나 이미지를 하나님의 계시로 받아들인다. 이런 곤경에서 벗어나려면 영적인 분별력이 꼭 필요하다. 분별력은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배워야 하고, 훈련해야 하고, 삶 속에서 적용해야 한다. 영성 신학자이면서 현장 목회자인 정재상 목사는 바로 그런 목회적 필요에 응답하여 이 책을 썼다. 이냐시오 성인의 <영신수련>을 길잡이로 삼은 이 책은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분별해야 하는지, 그것을 통해 영적인 성장을 이루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그런 영적 성장의 열매는 무엇인지 소상히 밝히고 있다. 영적인 혼돈이 지극한 한국 교회에 선물과도 같은 책이라 생각한다.
3.
성에 낀 창가, 흐린 불빛 아래 앉아 시린 손을 호호 불며 시를 쓰던 지바고를 생각한다. 그리고 말씀의 지층을 탐사하면서, 곱씹은 말씀 한 자 한 자를 명징한 언어로 옮기느라 골똘했을 한 사람을 생각한다. 『메시지』의 행간에는 각고의 세월 동안 그가 흘렸을 눈물과 탄식, 기쁨과 감동이 배어 있다. 그 행간까지도 읽으려 한 번역자들과 편집자들의 노고도 눈물겹다.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은 현대인을 가리켜 ‘메시지를 잃어버린 메신저’라 했다. 그런 현대인들에게 이 한 권의 책은 우리가 잃어버린 혹은 잊고 있는 본래적 삶을 되찾도록 도와줄 것이다. 성경의 세계와 깊이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창을 얻은 기분이다.
4.
성에 낀 창가, 흐린 불빛 아래 앉아 시린 손을 호호 불며 시를 쓰던 지바고를 생각한다. 그리고 말씀의 지층을 탐사하면서, 곱씹은 말씀 한 자 한 자를 명징한 언어로 옮기느라 골똘했을 한 사람을 생각한다. 『메시지』의 행간에는 각고의 세월 동안 그가 흘렸을 눈물과 탄식, 기쁨과 감동이 배어 있다. 그 행간까지도 읽으려 한 번역자들과 편집자들의 노고도 눈물겹다.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은 현대인을 가리켜 ‘메시지를 잃어버린 메신저’라 했다. 그런 현대인들에게 이 한 권의 책은 우리가 잃어버린 혹은 잊고 있는 본래적 삶을 되찾도록 도와줄 것이다. 성경의 세계와 깊이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창을 얻은 기분이다.
5.
세상은 끊임없이 사람들을 고립시키고 외롭게 만듭니다. 그런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사람들을 이어주고 함께 걷게 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거룩한 삶이 아닐까요?
6.
아름다운 것이 변질되면 추하게 보인다. 거룩한 것이 타락하면 마성적인 것으로 변한다. 거룩의 경험이 누락된 채 형식만 남은 종교는 생동감이 없다. 오늘의 개신교회가 직면한 위기는 심각할 정도다. 위기는 외면하거나 부정한다고 하여 사라지지 않는다. 정면 돌파가 필요하다. 목욕물을 버리려다 아기까지 버리지 말아야 한다. 김학철 교수는 종교 문해력이 부족한 세대 혹은 시대를 향해 차분하게 말을 건넨다. 그는 묻고, 성찰하고, 연구하고, 해석하고, 그 사유의 결실을 적절한 언어로 담아내는 데 탁월하다.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어느새 상투어로 변한 신앙 용어들 속에 감춰진 심오한 의미가 그의 언어를 통해 명징하게 드러낼 때 가슴이 두근거렸다. 냉소와 우쭐거림 그리고 어둠이 지극한 이 시대를 밝힐 등불 하나를 손에 든 느낌이다. 다시 시작할 용기를 내야 할 때다.
7.
낯선 곳에 가면 사람은 누구나 취약해진다. 그 장소와의 연관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곳을 잘 아는 길 안내인이 동행한다면 긴장감은 설렘과 기대로 바뀐다. 낯익은 장소를 걸을 때 사람들은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이미 알고 있는 곳이기에 별다른 기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낯익은 곳에 숨겨진 낯섦을 보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눈을 통해 보는 순간 세상이 달리 보인다. 성경은 우리에게 낯선 세계인 동시에 낯익은 세계이다. 성경 속 여행을 떠날 때 좋은 길 안내자를 만나는 것보다 더 큰 복은 없을 것이다. 박대영 목사는 그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탁월한 안내자이다. 안내자이지만 실은 영혼의 순례자이다. 그가 조근조근 들려주는 사도행전 이야기를 듣는 이들은 우리가 어떤 세계에 초대받았는지를 자각하게 될 것이다.
8.
성에 낀 창가, 흐린 불빛 아래 앉아 시린 손을 호호 불며 시를 쓰던 지바고를 생각한다. 그리고 말씀의 지층을 탐사하면서, 곱씹은 말씀 한 자 한 자를 명징한 언어로 옮기느라 골똘했을 한 사람을 생각한다. 『메시지』의 행간에는 각고의 세월 동안 그가 흘렸을 눈물과 탄식, 기쁨과 감동이 배어 있다. 그 행간까지도 읽으려 한 번역자들과 편집자들의 노고도 눈물겹다.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은 현대인을 가리켜 ‘메시지를 잃어버린 메신저’라 했다. 그런 현대인들에게 이 한 권의 책은 우리가 잃어버린 혹은 잊고 있는 본래적 삶을 되찾도록 도와줄 것이다. 성경의 세계와 깊이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창을 얻은 기분이다.
9.
리처드 포스터는 구도자의 정체성을 품고, 진지하게 모색하며 결단하고 실천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보여 준다. 겸손은 그 길에 접어든 이들에게 입혀진 흰옷이다. 욕망의 벌판을 달리느라 거칠어진 호흡을 고르고 이 영적인 여정에 동참한다면 조금은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0.
이 책은 성경 ‘안’과 ‘뒤’ 그리고 ‘앞’이라는 세 차원에서 성경의 세계를 우리 앞에 펼쳐 보인다. 그 세계와 진득하게 대면하는 이는 누구나 하나님의 마음에 접속되어 삶의 자세를 가다듬지 않을 수 없다. 삶의 수직적 관계가 날실이 되고 수평적 관계가 씨실이 되어 어떻게 거룩한 삶이라는 것이 직조되는지를, 이 책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11.
이 책은 작품의 알짬인 동시에 배음이라 할 수 있는 러시아적 영성 혹은 종교적 사유를 정밀하게 천착한다.
12.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아프고 아렸다. 보통 사람처럼 살고 싶다는 작가의 꿈은 번번이 좌절되었다. 하지만 저자는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악조건을 빚어 아름답고 존엄한 삶을 창조했다. 그 창조적 전환이 가능했던 것은 그가 사랑했던 사람들과 그를 사랑했던 이들, 그리고 거대한 뿌리인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13.
《요셉의 회상》은 겉으로는 요셉 이야기 같지만 실은 그의 삶을 이끌어 가신 분의 이야기이다. 아브라함 조슈아 헤셸은 하나님의 선율은 스타카토 식으로 전개되기에 여간 주의하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 책은 하나님의 선율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들려준다. 그 선율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 ‘요셉’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와 연결된다. 그 순간 삶이란 더 큰 이야기의 일부가 되는 것이라는 자각이 찾아온다.
14.
“기도를 흔히 호흡이라 한다. 들숨과 날숨 사이에 생명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살아 있는 한 사람은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기도의 표현은 다양하다. 정제된 언어, 신음, 탄식, 부르짖음, 찬양, 침묵이 모두 기도다. 기도를 들으시는 분, 우리 마음을 살피시는 분에 대한 신뢰가 기도의 뿌리이다. 기도는 일종의 조율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기준음으로 삼아 마음을 조율할 때 우리는 비로소 하늘의 선율을 노래하는 참 사람이 될 수 있다. 단순하고 소박한, 진솔하기 이를 데 없는 언어로 기록된 『예배자의 기도』는 신적 신비와 리듬 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교회력의 흐름을 따라 작성한 이 기도문은 우리가 구원사의 어느 지점을 통과하고 있는지를 일깨워 주는 시간의 매듭이다. 이 기도문을 자기 기도로 삼는 이들은 더 큰 세계와 접속할 수 있는 회로가 자기 속에 생성되고 있음을 자각할 것이다. 분주한 목회 일정 가운데서 이런 기도문을 성실하게 쓴다는 것은 장준식 목사가 영원을 향한 순례자임을 보여 준다.”
15.
거룩할 ‘성’과 날 ‘경’자로 구성된 성경(聖經)은 우리 삶이 혼돈의 심연으로 빠져들지 않도록 지켜주는 수직의 중심이다. 사람들이 성경에는 오류가 없어야 한다고 믿는 것은 그 때문이다. 성경을 읽다가 모순되는 지점을 발견하는 순간 경건한 사람들은 마치 연모하던 이의 비밀스러운 모습을 본 것처럼 민망해한다. 기독교에 대해 반감을 가진 이들은 ‘잘코사니!’ 하면서 공격의 빌미를 삼는다. 민망해할 것도 없고, 쾌재를 부를 것도 없다. 김근주 교수와 권연경 교수의 안내를 받아 성경 속을 거닐다 보면 그 모순 속에 담긴 삶의 심오함에 가닿을 것이다. 교회 밖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기독교인에게도 이 책은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리라 믿는다.
16.
세상 도처에 가득 찬 우쭐거림과 냉소, 혐오와 적대감이 우리에게서 참된 쉼을 앗아간다. 머뭇거림은 무능으로 취급되고 다정함이 유약함으로 받아들여지는 세상은 모든 이를 외롭게 한다. 뿌리 뽑힘, 고향 상실, 안식 없음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표상이다. 환대에 대한 논의가 도처에서 터져 나오는 것은 그런 현실을 반영한다. 그리스도인에게 환대는 윤리적 당위가 아니다. 받은바 은혜에 대한 반응이다. 은총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이루신 공간 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환대의 신학』에서 전개된 환대에 대한 정밀한 신학적 논의는 미궁 속에 갇힌 듯 갈피를 잡지 못하는 오늘의 한국 교회에 건네는 아리아드네의 실이라 여겨진다.
17.
오늘의 교회 현실을 돌아보면 착잡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장벽 철폐자로 살았던 예수를 믿는다는 이들이 오히려 장벽을 높이 세우고, 모든 고통받는 이들의 품이 되어 주셨던 예수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고백하는 이들이 가시가 되어 다른 이들을 찌르고 있다.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 해야 할 일은 걸어온 거리가 아깝다 하여 내처 걸어가는 것이 아니다. 힘겹더라도 떠나왔던 갈림길로 되돌아가야 한다. 최종원 교수의 『거꾸로 읽는 교회사』는 역사 속에서 교회가 남긴 스무 발자취를 돌아봄으로 교회가 마땅히 가야 할 길을 조망해 준다. 그 발자취는 때로는 부끄러움으로, 때로는 아픔으로 다가온다. 저자는 부끄러움과 아픔을 정직하게 대면할 때 지향을 새롭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시인 나희덕은 길을 잃어 본 사람에게는 멀리서 밝혀져 오는 불빛이 큰 힘이 된다며 “먼 곳의 불빛은/나그네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해준다”고 어느 시에서 고백한다. 이 책이 내게는 ‘먼 곳의 불빛’으로 다가왔다. 우쭐거림과 냉소와 혐오와 불신의 어두운 밤은 결국 지나갈 것이다. 그러나 새날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온몸으로 어둠과 부딪히면서 불꽃을 일으키는 이들을 통해 온다. 암담하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이 책을 다시 펼쳐 볼 생각이다.
18.
  • 신약 수업 - 믿음, 소망, 사랑의 눈으로 읽는 신약성경 
  • 김호경 (지은이) | 뜰힘 | 2025년 3월
  • 27,000원 → 24,300원 (10%할인), 마일리지 1,350
  • 9.7 (6) | 세일즈포인트 : 6,176
성경을 읽는 이들은 많지만 성경이 자신을 읽도록 허용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성경은 시간·공간·인간·천지간에서 이루어지는 신앙적 삶의 날실이다. 날실이 가지런해야 삶의 태피스트리 또한 반듯해진다. 저자는 성경을 읽는다는 것을 하나님의 뜻을 따른 사람들의 고백에 반응하는 것이라 말한다. 바르게 반응하기 위해서는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다양한 시대, 다양한 저자, 다양한 문체로 기록된 텍스트를 일이관지하는 통일성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나무는 보면서 숲은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기 쉽다. 저자는 성경에 담긴 정보와 고백, 상징과 이야기의 숲을 관통하고 있는 유장한 흐름을 마치 조감도처럼 보여 준다. 탁월하다. 『신약 수업』은 일종의 지도다. 지도를 손에 든 이들은 이제 그 지도의 안내에 따라 구체적인 장소를 탐색해야 한다. 성경의 세계를 종횡으로 누비며 구원의 신비에 젖어 들 수 있기를 빈다.
19.
“가장 인간다운 방식으로 가장 성스러운 삶을 살았던 한 인간의 기록을 읽는 동안 독자는 순수한 단독자로 돌아갈 것이다.” 젊은 시절, 시몬 베유는 내게 영혼의 채무였다. 살갗이 벗겨진 것처럼 세상의 아픔과 자극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의 존재는 충격 그 자체였다. 어정잡이로 살고 있다는 자각이 들 때마다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른 이들이 겪는 고통이 살과 영혼 속에 각인되어 자신을 노예라 여기는 사람, 불행으로 인해 사물화된 사람을 사랑과 관용으로 대해 인간의 상태로 되돌리고자 하는 사람, 가장 깊은 신의 사랑이라는 본질에 당도하기 위해 자기를 몰아대면서도 결코 섣부른 위안으로 도피하지 않는 사람, 그리스도께 사로잡혔으나 더 큰 세계와 접촉하기 위해 종교의 틀 속에 들어가기를 꺼리는 사람, 세상의 혼돈에 마음 아파하면서도 눈을 들어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사람. 시몬 베유는 그런 사람이었다. 지금 한국교회는 발치 아래까지 불이 붙었는데도 혼곤한 잠에 빠져 있는 사람과 다를 바 없다. 파수꾼의 나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우리가 시몬 베유를 다시 호명하는 것은 살기 위해서다.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다. 마음에 드리운 욕망의 더께를 걷어 내고 살과 같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회복하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베유에게 종교는 다른 무엇이 아닌 하나의 시선이다. 신을 향해 우리의 시선을 돌리는 것이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구리뱀을 바라보았듯, 우리의 시선을 그리스도께 두고 죄의 중력에 저항하자고 그녀는 말한다. 무얼 하든, 어디에 있든 날마다 우리의 눈을 들어 저 구리뱀을 응시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
거룩할 ‘성’과 날 ‘경’자로 구성된 성경(聖經)은 우리 삶이 혼돈의 심연으로 빠져들지 않도록 지켜주는 수직의 중심이다. 사람들이 성경에는 오류가 없어야 한다고 믿는 것은 그 때문이다. 성경을 읽다가 모순되는 지점을 발견하는 순간 경건한 사람들은 마치 연모하던 이의 비밀스러운 모습을 본 것처럼 민망해한다. 기독교에 대해 반감을 가진 이들은 ‘잘코사니!’ 하면서 공격의 빌미를 삼는다. 민망해할 것도 없고, 쾌재를 부를 것도 없다. 김근주 교수와 권연경 교수의 안내를 받아 성경 속을 거닐다 보면 그 모순 속에 담긴 삶의 심오함에 가닿을 것이다. 교회 밖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기독교인에게도 이 책은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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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 가면 사람은 누구나 취약해진다. 그 장소와의 연관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곳을 잘 아는 길 안내인이 동행한다면 긴장감은 설렘과 기대로 바뀐다. 낯익은 장소를 걸을 때 사람들은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이미 알고 있는 곳이기에 별다른 기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낯익은 곳에 숨겨진 낯섦을 보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눈을 통해 보는 순간 세상이 달리 보인다. 성경은 우리에게 낯선 세계인 동시에 낯익은 세계이다. 성경 속 여행을 떠날 때 좋은 길 안내자를 만나는 것보다 더 큰 복은 없을 것이다. 박대영 목사는 그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탁월한 안내자이다. 안내자이지만 실은 영혼의 순례자이다. 그가 조근조근 들려주는 사도행전 이야기를 듣는 이들은 우리가 어떤 세계에 초대받았는지를 자각하게 될 것이다.
22.
앞만 보고 질주하는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작고 사소하고 여린 것들. 구질구질해 보일 때도 있지만 그 속에도 하늘과 땅, 구름과 바람이 깃들어 있다. 그것을 자각할 때 일상은 기적이 된다. 세상 도처에 널린 기적을 보는 사람, 그를 우리는 시인이라 부른다. 박송이 시인의 눈길을 따라 세상을 두루 살피다보니 눈물겨운 현실조차 아름답게 보인다. 현실의 각박함을 숨기는 아름다움의 환영이 아니라 아픔과 설움까지 감싸 안아 넘어서도록 해주는 치열한 아름다움 말이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한다.
23.
외길을 따라 걷는 일은 단조롭기는 하지만 번뇌는 많지 않다. 갈림길 앞에 설 때는 잠시 망설이지만 결국은 하나의 길을 택해 걷는다. 문제는 사방팔방으로 열린 길 앞에 설 때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기웃거리는 동안 방향감각을 잃은 채 주저앉고 만다. 낯선 세계를 찾아가기보다는 익숙한 길 위에 집을 짓고 머물기로 작정한 것이다. 지금 우리 형편이 그러하다. 예수를 길이라 고백하면서도 그 길을 걷지 않는다.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 때부터인지 신학은 인접 학문과 깊은 대화를 나누거나 논쟁을 벌이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담론 지평에서 신학은 설 자리를 잃었다. 고립과 단절이 심화되면서 신학의 삶의 자리인 교회는 점점 폐쇄적으로 변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150년 전에 태어난 영국 사상가 G. K. 체스터턴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단』이 부정의 방식으로 진리에 다가서는 책이라면, 『정통』은 자기를 사로잡고 있는 신앙의 핵심을 긍정의 방식으로 서술하는 책이다. 저자는 자기의 내면과 세상을 세심하게 살피면서 그 속에 깃든 진리를 탐구한다. 그가 그러한 사유의 모험을 통해 당도한 세계는 기쁨의 세계다. 체스터턴의 책을 읽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가 전개하는 논리의 세계에 익숙해지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그의 안내를 따라 차분히 사상의 광맥을 탐색하다 보면 저절로 마음이 고요해지고, 피상적인 세계 너머에 있는 더 깊은 세계와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세계와 대면하는 순간 우리는 소비사회가 건네는 행복의 환상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행복이 있음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24.
외길을 따라 걷는 일은 단조롭기는 하지만 번뇌는 많지 않다. 갈림길 앞에 설 때는 잠시 망설이지만 결국은 하나의 길을 택해 걷는다. 문제는 사방팔방으로 열린 길 앞에 설 때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기웃거리는 동안 방향감각을 잃은 채 주저앉고 만다. 낯선 세계를 찾아가기보다는 익숙한 길 위에 집을 짓고 머물기로 작정한 것이다. 지금 우리 형편이 그러하다. 예수를 길이라 고백하면서도 그 길을 걷지 않는다.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 때부터인지 신학은 인접 학문과 깊은 대화를 나누거나 논쟁을 벌이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담론 지평에서 신학은 설 자리를 잃었다. 고립과 단절이 심화되면서 신학의 삶의 자리인 교회는 점점 폐쇄적으로 변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150년 전에 태어난 영국 사상가 G. K. 체스터턴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는 『정통』에서 자기의 내면과 세상을 세심하게 살피면서 그 속에 깃든 진리를 탐구한다. 그가 그러한 사유의 모험을 통해 당도한 세계는 기쁨의 세계다. 『영원한 인간』은 그러한 사유의 행로가 당도한 세계 인식을 인류 전체의 영적 여정으로 확장하여 풀어낸다. 유려하고 장엄하다. 체스터턴의 책을 읽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가 전개하는 논리의 세계에 익숙해지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그의 안내를 따라 차분히 사상의 광맥을 탐색하다 보면 저절로 마음이 고요해지고, 피상적인 세계 너머에 있는 더 깊은 세계와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세계와 대면하는 순간 우리는 소비사회가 건네는 행복의 환상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행복이 있음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25.
외길을 따라 걷는 일은 단조롭기는 하지만 번뇌는 많지 않다. 갈림길 앞에 설 때는 잠시 망설이지만 결국은 하나의 길을 택해 걷는다. 문제는 사방팔방으로 열린 길 앞에 설 때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기웃거리는 동안 방향감각을 잃은 채 주저앉고 만다. 낯선 세계를 찾아가기보다는 익숙한 길 위에 집을 짓고 머물기로 작정한 것이다. 지금 우리 형편이 그러하다. 예수를 길이라 고백하면서도 그 길을 걷지 않는다.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 때부터인지 신학은 인접 학문과 깊은 대화를 나누거나 논쟁을 벌이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담론 지평에서 신학은 설 자리를 잃었다. 고립과 단절이 심화되면서 신학의 삶의 자리인 교회는 점점 폐쇄적으로 변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150년 전에 태어난 영국 사상가 G. K. 체스터턴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는 기독교 변증가로서 당대의 지식인, 예술가, 문학인들의 사상과 씨름하는 일을 꺼리지 않았다. 『이단』은 그들의 빛나는 성취를 따라가면서도 그들의 한계와 오류를 포착하여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이단’ 하면 사이비 종교가 떠오르게 마련이지만, 체스터턴이 말하는 이단은 우리로 하여금 진리의 깊은 세계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들을 가리킨다. 체스터턴의 책을 읽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가 전개하는 논리의 세계에 익숙해지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그의 안내를 따라 차분히 사상의 광맥을 탐색하다 보면 저절로 마음이 고요해지고, 피상적인 세계 너머에 있는 더 깊은 세계와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세계와 대면하는 순간 우리는 소비사회가 건네는 행복의 환상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행복이 있음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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