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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인문/사회과학

이름:정준희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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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북토크] 다가올 미래, AI시대의 창작과 문해력에 대하여>

저자의추천 작가 행사, 책 머리말, 보도자료 등에서 저자가 직접 엄선하여 추천한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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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겁을 딛고 선, 한 인간과 연대하기 TBS만큼 찬란히 성공했다가 완벽히 절멸된 공영방송이 세상에 또 있을까. 불과 몇 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그 모든 일들이 일어났다. 새로운 실험을 위해 함께 했던 사람들을 나는 몹시 아끼고 사랑했으며, 그걸 삽시간에 무너뜨린 인간들의 잔혹함과 방조자들의 비겁함에 나는 치를 떨었다. 1990년에 개국한 TBS는 독특한 지역 공영방송이었다. 사실 공영방송으로서의 TBS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서울특별시 미디어재단 TBS’라는 이름의 독립법인이 된 것이 2020년이니 길게 잡아봐야 고작 5년이다. 그전까지는 ‘교통방송’이라고 불렸고 흔히 말해 ‘시영방송’이었다. 내가 TBS에서 프로그램 진행을 맡고 있던 2020년 무렵만 해도 택시를 타면, 잠시 고민하다가 “기사님 ‘교통방송’으로 가주세요.”라고 말하곤 했다. 2020년에서 2023년까지 딱 3년을 TBS와 일했다. 새로운 종류의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겠다는 취지였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전공한 언론학의 가치를 시민에게 돌려주고 싶었던 것도 있었고, 공영방송 연구자로서, 세계적으로도 대단히 특별한 사례일 수밖에 없는 이 방송사를 통해 제도실험과 참여관찰을 해보고 싶다는 의지가 컸다. 자치정부의 직접적 영향력에서 벗어나 미디어 인력 스스로에 의한 편집권 독립과 제작 자율성을 실천하는 일. 설혹 정권이 교체된다고 하더라도 독립적 미디어 제작은 유지되며, 그 독립성은 시민과의 직접적이고도 끈끈한 결합에 의해 지속되도록 하는 일. 그것을 이룰 수 있다면 연구자로서 꿈에 그리던 ‘진짜 공영방송’을 탄생시키게 되는 것이었으니까. TBS와 함께했던 그 3년 동안 나는 이 꿈이 하나씩 성사되어 가는 모습을 보며 이루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서울시로부터 ‘지원’은 있되 ‘간섭’은 없었다. 누구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고안하려 했고, 그것들 중 상당수는 현실이 됐다. 제작진들은 소박하지만 열정과 재능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겸손했다. 시민과 연결된 감각을 가진 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거대 공영방송인 KBS나 MBC 속에 있을 때에는 얻을 수 없었던 이 경험. 큰 땅에 큰 건물 거대한 설비들 속에서는 내가 기껏해야 ‘도구’가 된 느낌이었다면, TBS의 작은 땅 작은 건물 간소한 설비들 안에서 나는 한 ‘주체’로서 시민들의 의지와 대면했다. 큰 회사들이 사주는 푸짐한 밥을 얻어먹을 때보다, 내 지갑을 열어 질박한 술과 안주를 TBS 제작진들에게 사줄 때가 더 기쁘고 행복했다. 이 행복했던 실험은 3년을 넘기지 못했다. 시장이 바뀌자 ‘간섭’을 하되 ‘지원’은 없는 시스템으로 뒤집혔다. 이유는 단 한 가지.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지닌 편향성이었다. 나름 이름값을 가진 공영방송 연구자로서 내가 말했다. 각자의 주관으로 판단한 편향성 여부로 방송사 하나를 날리는 만행은 세계사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거라고. 편향성을 감히 ‘그들’이 재단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지만, 고작해야 예산 규모 400억 원에 불과한 ‘시민방송’의 목줄을 무려 그 1000배가 넘는 45조 원 예산의 서울시가 쥐고 흔든다는 건 파렴치한 일이라고. 하지만 바로 그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서울시가 돈을 못 주겠다면 직접 나서서 후원을 하겠다는 시민들이 줄을 서고 있었는데도, 시민 후원은 받아 쓸 수 없게 하고, 광고 등의 독자적인 재원 창구는 막아 놓고는, 지원 조례 폐지를 통해 밥줄을 끊었다. 시쳇말로, “가질 수 없다면 부숴버리겠다”는 막장 드라마 대사가 현실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TBS는 거의 모든 이들에 의해 버림받았다. 특정 프로그램의 편향성을 들먹이던 서울시의회와 서울시는 공공자산을 자기 정파의 이익을 위해 활용했다. 이렇게 ‘객관적으로 명백한 편향성’이 더 문제인가 아니면 의견과 평가가 다양할 수밖에 없는 방송 프로그램의 ‘편향성 시비’가 더 문제인가? 이 뻔한 질문에 답을 하는 이가 없었다. 나는 저 뻔뻔한 자들의 명백한 악의보다도 짐짓 정의롭고 공정한 척하는 자들의 냉소적 방조가 더 무서웠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들이밀던 편향성 잣대를 그들 스스로에게 적용했을 때, 그들의 명예와 밥줄은 온전할 수 있을까? 이 뻔한 질문에도 그들은 답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한 즐겁고 아름다웠던 ‘시민의 방송’이라는 실험이 잔혹하게 바스러졌다. 송지연 작가가 이 모든 과정을 고스란히 기록했다. 나는 그의 우직함과 공의로움에 매번 놀란다. 무서웠을 텐데, 괴로웠을 텐데, 분노보다 더 힘든 배신감을 딛고 어떻게 그 자리에 아직까지 서 있을 수 있었던 것일까. TBS 회의실에서 만났던 그는 최초로 정규직 전환을 이뤘던 베테랑 작가였고, TBS 복도에서 마주쳤을 땐 노조위원장이 되어 있었으며, TBS 문제를 다루는 세미나 장과 거리에서 만났을 땐 투사로 변해 있었다. 모든 이들이 등을 돌리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태로 TBS가 버려져 있는 동안, 그는 단 한 번의 물러섬도 없이 호소했고 싸웠다. 그 어느 언론학자보다도 명징한 언어로 TBS의 문제를 규정하고 증언해낸 이 책을 읽으며, 그가 자신의 심장을 꾹꾹 눌러 하나하나의 글자로 바꿔냈음을 보았다. 아무도 기억하려하지 않는 그 처참한 사건들은 이렇게 절절한 피의 기록이 되었다. 그래서, 이제 TBS는 어떻게 되는 건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직도 그 자리에서 버티고 있는 직원들도, 그 싸움을 여기까지 끌고 온 송지연 작가 스스로도 감히 무언가를 예상하거나 기대할 수 없을 테다. 잠시 중단되었던 ‘시민의 방송’의 꿈을 이어가려 한들 옛 친구들이 다시 모일 수 있을까? 설혹 새로운 실험이 전개될 수 있다고 하여도, 또 새로운 폭군이 등장하여 더 처절히 짓밟히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그 잘난 현업자들의 비겁함과 언필칭 전문가들의 거드름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을 텐데?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알겠다. TBS의 남은 구성원들이 어떤 꿈을 꾸건, 그들에게 어떤 미래가 펼쳐지건 송지연 작가만큼은 여전히 우직하고 공의로울 것이다. 이런 비릿함을 참고 견뎌낸 이라면 그 어떤 흉포함 앞에서도 스스로를 잃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나는 그런 송지연 작가와 함께 멋지고 발랄한 ‘시민 지향의 프로그램’을 언제고 만들어볼 생각이다. 그게 이 바닥을 사는 사람들의 자존심이자 기쁨이니까.
2.
언론은 최초의 정직한 목격자이자 성실한 기록자이며, 그로써 자유로운 민주정의 필수 요소가 된다. 물론 이것은 언제나 만나는 ‘현실’이 아니라 그저 ‘기대’일 뿐이다. 또 부당한 공격 앞에서 언론 스스로 사용하는 변론이며, 언론학이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정언명령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적어도 12.3 내란 국면에서만큼은 우리 언론이 자신의 이런 존재 이유를 입증했을까? 불행히도 민주적 시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언론학자인 나도 그렇다. 하지만 나는 《시사IN》이라는 예외 사례를 통해 그나마 숨을 쉰다. 내란에 대해 이들이 보여준 단호한 태도와 처절한 기록 의지는 우리에게도 아직 신뢰하고 의존할 만한 언론이 남아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번 내란에 관련된 기억이 흐릿해질 때마다 이 책을 최초의 레퍼런스로 삼으려 한다. 보라, 이렇게 내란이 저질러졌고, 이렇게 우리 민주정은 스스로를 회복하며 갱신해 갈 테다.
3.
이 책의 저자는 의로운 진보를 지향하지만, 내가 아는 한 이로운 보수의 풍모도 갖추고 있다. 이 책을 집어 든 당신은 어떨까? 당신이 진보이든 보수이든, 이웃에게 이로움을 주고, 사회를 더 의롭게 만들고자 한다면 나는 당신과 공존할 수 있다. 부디 이 책이 널리 읽혀, 그런 당신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4.
어떤 ‘사람’에게 온전히 바쳐지는 시를 쓴다는 것, 그리고 그런 시에 대해 추천의 말을 달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몇 편이 아니라 70편을 담은 시집이다. 무엇이 이 시인을 그리로 이끌었을까? 어느 날 어느 곳에서, 그는 나였고 곧 우리라는 강렬한 일체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외면하고 덮으려 했던 자화상이자, 우리 자신에게 바치는 고통과 희망의 헌사! 부디 “시퍼렇게 멍든 하늘”까지 닿기를!
5.
내가 만났던 유정아 작가-교수는 늘 품격 있는 언어와 편안한 발성으로 때론 위트를 발휘해가며 설득력 있게 말했다. 그의 말이 경청에 기초를 두고 있었고, 잘 성찰된 자아상과 적정한 감정이입에 의해 힘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새삼 확인한다. 말을 업으로 삼는 강연자, 토론 진행자, 커뮤니케이션 학자로서의 나는, 이 말하기 수업으로부터 참으로 많은 것을 확인하고 또 배웠다.
6.
기특하다.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을 쭉 지켜본 마음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렇다. 현실이 이렇게 시궁창인데, 소통한다고? 그런데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은 했다. ‘본격 소통 방송’을 표방한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이 동료 집단으로부터 배제되는 고통과 공포를 이겨 내고 시민과 융합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하늘에서 들려오는 감미로운 음성에 취하기도 하겠지만, 하늘은 한 가지 색이 아닌 수천만 갈래의 빛깔이 뭉쳐 있는 거라는 데 절망하면 어쩌나 싶었다. 신기하게도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은 꿈틀대며 암벽을 타고 올랐다.
7.
  • 외로움의 습격 - 모두, 홀로 남겨질 것이다 
  • 김만권 (지은이) | 혜다 | 2023년 12월
  • 18,800원 → 16,920원 (10%할인), 마일리지 940
  • 9.3 (22) | 세일즈포인트 : 7,147
외로움은 종교적 명상의 소재일 수도 있고, 철학적 사유의 주제일 수도 있으며, 문학적 묘사 혹은 과학적 탐구의 대상일 수도 있다. 그리하여 정치철학자 김만권이 다룬 외로움은 처절한 문학이자 정교한 과학이며, 21세기를 사는 우리 인간 존재의 철학을 넘어, 각자도생의 세계를 바꾸어 낼 수 있다는 ‘믿음’을 통해 종교적 영성에까지 다다른다. 그러나 그는 무엇보다도 ‘정치’ 철학자로서, 어린 생명을 이 세상에 오게 한 ‘아빠·엄마’의 정치, ‘형제자매’로서의 정치, 그리고 ‘벗’들의 정치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참으로 친절하고 명징한 언어로 제시한다.
8.
박성제는 전직 사장이라기보다는 마치 종군기자와도 같은 시선으로 MBC와 공영방송이라는 이름의 전장을 추적하고 기록한다. 공영방송을 주기적으로 선혈이 난무하는 전쟁터, 아니 일방적인 학살의 공간으로 만든 것부터가 대한민국 미디어 역사의 참혹한 비극이다. 공영방송을 시민의 논밭으로 바꾸고, 권력의 칼과 총을 녹여 언론인에게 쟁기를 안기라.
9.
  • AI 저널리즘 - 챗GPT 시대, 언론 미디어 산업의 대전환, 2023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 박창섭 (지은이) | 두리반 | 2023년 6월
  • 19,800원 → 17,820원 (10%할인), 마일리지 990
  • 9.3 (3) | 세일즈포인트 : 251
우리는 ‘자동화’ 측면에만 주목하지만 인공지능은 이미 ‘증강’을 넘어 ‘생성’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본문에도 인용된 말처럼, “저널리즘은 부정확한 과학이다.” 이것의 정확성을 ‘증강’시키면서, 독자를 끌어들일 매력을 다시 ‘생성’하는 일. 새로운 저널리즘을 위해 인간과 인공지능이 협력할 필요성을 이 책은 정확하고도 매력적으로 설명한다.
10.
유럽을 배회하던 유령이 이제는 세계를 떠돈다. 두 세기 전에는 공산주의라는 명찰을 달고 있었다면 지금은 자유주의, 민주주의, 그리고 저널리즘의 혼돈이라는 낫을 손에 쥐었다. 저명한 언론학자들이 “개혁이냐, 혁명이냐”를 물으며 선언문을 썼다. 번역자들이 세심히 매만진 우리말 속에서도 절박함과 비장함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사회로부터 탈구되어버린 저널리즘의 이 관절을 어찌 되맞출 것인가? 선언은 그 자체로 개혁이나 혁명을 만들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이 선언은 저널리즘이라는 문화적 제도의 장구한 변화를 여는, 구시대의 조종(弔鐘)을 울린다. 귀 있는 자 듣고, 눈 있는 자 볼지어다.
11.
조작과 확산에 특화된 기술을 타고 온갖 거짓말이 번성하고 있음에도, 표현의 자유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들은 여전히 주저한다. 미욱한 거짓말쟁이 하나 때려잡자고 국가에게 폭군의 칼을 쥐여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선스타인의 이 책을 조금 더 일찍 접했더라면, 규제되어야 마땅할 허위와 악의에 대해 나는 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최악의 거짓말을 도려내기 위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표현의 자유를 신실하게 옹호하는 모든 이들이 나서서 머리를 맞대어야 한다고. 저자인 선스타인도, 독자인 나도, 그리고 번역자인 김도원 기자도 필경 그들 중 하나일 것이다.
12.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7월 10일 출고 
유정아라는 인물 안에, 우아함과 소년스러움이라는, 성별과 나이를 가로지르는 복합적 품성이 병존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이유를 마침내 이 책을 통해서 확인한다. “성(城)안에 살면서 성(性)에 갇혀 있지 않은 만능 마녀”와 그런 “사람(을) 볼 줄 아는 소년”에게 내지른 만세는 아마도 작가 자신의 네 가지 자아상 모두를 향한 환호성이었을 테다. 그/녀의 성(城/性/聲) 안에 가꿔온 도서관과 화실, 정원과 호수를 구경하러 온 여러분 앞에서, 이 소년/마녀는 “손님이 오실 줄 몰라 머리 손질을 못 했다”라며 머쓱하게 그러나 주저 없이 투구를 벗을 참이다.
13.
미디어 정보를 얻고 활용하는 능력은 새로운 세대인 우리 아이들이 기성세대보다 단연 앞섭니다. 그렇기에 미디어 교육은 일방적인 가르침보다는 대화로 푸는 소통이어야 합니다. 서로 다른 세대가 미디어로 서로를 이해하고 즐겁게 소통하며 서로에게 침투하는 제3의 경험, 이것이 진정한 미디어 교육입니다. 『미래를 여는 미디어 교과서』에는 이런 교육을 위한 소중한 고민과 진전이 담겨 있습니다. 어쩌면 이 시대의 교육이란 본디 이런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상상해 봅니다.
14.
숄츠 씨의 ‘말’을 통해서만 접했던 생각을 직접 쓴 ‘글’로 만나는 건 실로 새롭고 흥미로운 일이다. 수필과 기행문 사이를 오가는 이 비교문화적 에세이에는 내게 익숙한 한국의 많은 것들이 일순 이국적인 대상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통찰과 힘이 배어 있다. 그의 글은 상당히 ‘일화적’이고 마치 잘 짜인 액자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하여 나는 안톤 숄츠판 대한민국 천일야화, <코리안 나이트> 속을 걷는다. 여행과 모험의 연속이었다던 그의 삶이 한국이라는 낯익은 공간을 다시 한 번 낯설게 여행하도록 이끄는 책으로 돌아왔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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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책의 전자책 : 10,080 보러 가기
정재철 기자는 자타공인 ‘팩트체크 전도사’라 불린다. 팩트체크라는 용어가 저널리즘 분야의 새로운 수행 양식으로 해외에서 막 움트고 있을 때 그 가치에 대해 일찌감치 주목했고 그것을 우리 맥락으로 옮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만큼 치밀하게 공부했고 치열하게 실천해왔다. 이 책 구석구석에 그간의 역정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좁게는 팩트체크에 대한 전문적 가이드라인으로서, 그리고 넓게는 가짜뉴스 일반에 관련된 대중적 지침으로서 즉각 활용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풍부한 사례 제시에 있다. 저널리즘은 대단히 경험적인 분야다. 이론에 의해 선도되기보다는 현장에서 부딪히는 난제를 실용적으로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이 책에 포함된 수많은 사례는 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가짜뉴스 문제가, 그리고 그것을 퇴치하는 팩트체크 작업이, 한두 가지 원칙만 알면 누구나 능숙히 다룰 수 있는 사안이 아님을 웅변한다. 우리가 코웃음 치는 가짜뉴스, 그리고 매우 질이 떨어지는 기사가 넘쳐나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저널리즘을 조롱한다. 나는 ‘저런’ 가짜뉴스에 속아 넘어가지 않을 거라 자신한다. 비전문가라도 금방 할 수 있는 일을 기자라는 이들이 어설프게 해내고, 심지어 스스로 가짜뉴스를 만드는 데 일조한다고 손가락질한다. 그러나 우리를 파고드는 교묘한 허위조작정보는 검지 두 개로 급조한 십자가를 들이대면 맥없이 허물어지는 삼류 흡혈귀같은 게 아니다. 그런 이들 대다수가 이 책이 언급한 바 있는 ‘유용한 바보’가 돼버리고 만다. 정재철 기자는 그렇다고 해서 사례의 무덤 앞으로 독자를 이끄는 데에서 멈추지 않는다. 세계 유수의 팩트체크 전문기관과 연구자들이 자신의 경험에 토대를 두어 이론화한 여러 원칙을 소개한다. 단순한 소개만으로 그치지도 않는다. 팩트체크 전도사로서 현실과 이론 사이를 부단히 왕복한 결과를 이해하기 쉬운 용어로 정리해준다. 일견 너무 많은 사례에 적잖은 원칙이 제시되다 보니 오히려 혼란을 느낄 독자도 없지는 않을 테다. 하지만 이들 사례를 관통하여 이 책이 제시하는 원칙은 비교적 단순하다. 자신의 구미에 맞게 모종의 감정적 반응을 자극하는 정보는 일단 의심하라. 출처를 살피라. 만약 확신할 수 없다면 판단을 유보하라. 우리는 상황을 파악할 수 없으면 불안해하는 존재다. 가짜뉴스는 그 불안을 파고들어 허위와 감정으로 정보의 공백을 메운다. 우리가 얻는 안심의 대가가 그만큼 치명적일 수 있다는 뜻이다. 전도사evangelist는 자신이 들은 ‘복음福音’을 전파하는 자이다. 복음은 ‘기쁜 소식good news’이다. 무엇이 기쁜 소식이란 걸까? 진리 그 자체일까? 아니다. 진리에 이르는 길이다. 흔히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하지만, 신학자 자크 엘륄Jacques Ellul의 말처럼 “의심을 거친 믿음”이 구원의 기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진리로 향해가는 험난한 도정에 함께 하기로 결정함으로써 구원이 시작되는 것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팩트체크가 우리를 구원해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팩트체크의 필요성을 느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시작이고, 그 울퉁불퉁한 길을 함께 걸어가는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책은 그 초대장이다.
16.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7월 10일 출고 
  • 이 책의 전자책 : 10,400 보러 가기
선거 때만 되면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감感이라 포장하고, 그 감에 과학이라는 상표를 붙여 팔고 다니는 ‘정치 낭인’이 판을 친다. 그러나 두 전문가는 가치를 지향하되 현실 진단에는 냉정함을 잃지 않는다. “옳고 그름이 아닌, 대중의 인식과 투쟁하는 것이 정치다”라는 책 속의 표현에 그 숱한 낭인들 사이로 유독 두 사람이 돋보이는 이유를 알게 된다.
17.
이제 뉴스는 ‘당신만을 위해 준비된 분노’의 다른 이름이 되었다. 기만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증오라는 양념이 더 많이 필요해졌다. 저자가 진단하기에 미디어 종사자들은 무지와 증오를 묶음으로 판매하는 전문가로서 발돋움했다. (…) 우리가 내심 모범적인 저널리즘을 수행할 것이라고 전제했던 미국의 유력 언론들조차 증오 판매에 눈이 멀어 수많은 실수를 저질러왔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보다 더 비극적인 일은 우리나라 언론계의 현실을 이에 대비해 보는 데서 나온다.
18.
  • 광장의 오염 - 양극화 시대, 진실은 왜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없는가 
  • 제임스 호건 (지은이), 김재경 (옮긴이) | 두리반 | 2021년 5월
  • 18,000원 → 16,200원 (10%할인), 마일리지 900
  • 9.6 (9) | 세일즈포인트 : 380
기후변화, 광장, 담론. 이 책의 전언을 요약해주는 세 가지 단어다. 이들은 모두 오염이라는 부정적 현실을 공유한다. 그리고 이 오염은 우리로 하여금 전례 없는 도전, 즉 인류 생존의 위기와 민주적 공동체의 붕괴 위험에 직면하게 한다. 저자가 힘주어 반복하듯, 우리가 비록 서로를 미워한다고 해도 어떻게든 함께 마주하지 않고서는 감당할 수 없을 거라는 ‘위기인식’에 동의한다면, 오염되고 위축돼버린 담론의 광장을 어쩌면 다시 펼쳐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19.
  • 새로운 가난이 온다 - 뒤에 남겨진 / 우리들을 위한 / 철학 수업 
  • 김만권 (지은이) | 혜다 | 2021년 1월
  • 16,000원 → 14,400원 (10%할인), 마일리지 800
  • 9.3 (51) | 세일즈포인트 : 2,685
동서를 막론하고, 공교육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삼촌이 훌륭한 교육자의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이제는 교육자로서의 삼촌은 약해졌을 뿐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사라지고 있다. 김만권 박사의 『새로운 가난이 온다』는 그 희미해진 교육자-삼촌을 우리 곁에 되돌려 준다. 친절하게, 그러면서도 멋스럽게, 인간과 기술, 경제와 사회의 변모를 철학의 눈으로 훑어 정치의 입으로 풀어준다. 이제 안심이다. 내 아이에게도 드디어 다시 교육자-삼촌이 생겼다.
20.
넷플릭스에는 새로운 유전자가 각인돼 있다. 그 유전자 속에는 새로운 종의 계통 발생사가 고스란히 누적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그 ‘변이’와 ‘진화’의 결절점이다. 넷플릭스라는 개체가 아니라 넷플릭스 유전자라는 진화적 계통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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