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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이름:정한아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75년, 경남 울산

직업:시인

기타:성균관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최근작
2023년 10월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 (리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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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twitter.com/tempocheresta
저자의추천 작가 행사, 책 머리말, 보도자료 등에서 저자가 직접 엄선하여 추천한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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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슈퍼문이 뜬다고 상상해보자. 어떤 사람들은 옥상이나 높은 언덕에 올라 평소보다 커다랗게 보이는 달을 구경한다. 와아, 정말 커다랗군! 카메라의 배율을 높여 사진을 찍고, 대부분의 경이는 여기에서 멈춘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은 곧바로 언덕을 내려와 맥주를 마시러 가거나 사람들과 어울려 개인적인 감흥을 이야기하는 대신, 달에 사로잡힌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오랫동안 대상에 넋을 잃고 빠져들며, 너무나 집중한 나머지 자신이 달의 일부가 된 것 같은 설명할 수 없는 감각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 실로 어떤 그림이나 풍경은 오랫동안 멍하니 들여다보고 있으면, 대상이 (비록 물리적으로 이동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변이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가령, 강이현의 시 「쥐」를 읽어보자. 이 시에서 화자는 움직이지 않는 쥐를 들여다본다. 이 쥐는 실재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쥐가 없다는 생각 안으로 쥐가 들어온다.” 별다른 사건은 벌어지지 않는다. 벌어지고 있는 것은 화자의 집중된(상상적인) 응시다. 집중한 나머지 급기야 쥐는 어쩐지 조금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동안 쥐는 아픈 쥐였다가, 죽은 쥐가 된다.(어쩌면 처음부터 죽은 쥐였을 수도 있다) 지나간 시간이 죽음을 확정한다. 움직여야 할 것이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시선을 사로잡고, 사로잡힌 화자의 사로잡힌 시간 동안의 감각은 움직임의 가능성과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 사이에 온통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이 확신이 짙어졌을 때, 이 집중의 시공간이─화자의 인식 자체가, 그리하여 이 시 전체가─쥐의 무덤이 되었다는 사실이 공표된다. 때로 ‘부분’에 대한 집중은 나머지 세계에 대한 시각 자체를 바꾸기도 한다. 손이라는 신체 한 부분으로의 초점 확대는 어떤 진실을 드러낸다.(「선물처럼 깨끗한」) 그것은 이전에는 확대되지 않았던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시각에 의한 상호 인지라 부르는 것이 정말로 ‘전체’를 인지하는 것일까? 사실 우리는 모두 ‘얼굴’이라는 한 부분을 통해 개별적인 인간 주체 전체를 인식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이 시는 얼굴로부터 손으로 우리의 초점을 이동시키고, 대상이었던 손을 주체로 전경화한다. 손이 보여주고 손이 들려주는 세계는 고요하고 사실적이다. 거짓말은 얼굴만 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개 상상이 지금-여기와 다른 시공간에 대한 적극적인 희구에서 생겨난다고 여긴다. 이것과 다른 것. 여기와 다른 곳. 그래서 문학-시의 핵심이 상상력이라는 말을 되새길 때마다, 우리는 곧잘 본 적 없는 윤곽과 색채와 형태를 보여줄 무언가가 눈앞에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종종 그 기대는 상상 대신 펼쳐진 공상으로 배신당한다. 강이현의 시는, 상상이 기실, 지금-여기에 대한 방임된 깊은 집중─어쩌면 명상에 가까울─에서 태어난다는 점을 실증한다. 그는 자신이 풍경의 일부인지 아닌지 헷갈릴 때까지 자신의 안팎을 오가면서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포착하려 한다. 그러한 응시는 바라보이는 주변 세계와 대상의 미묘한 움직임과 변화를 현실로 불러온다. 그리하여 때로 주체의 위치를 객체와 뒤바꾸고, 위치한 시공간의 테두리를 벗어나 캔버스를 벗어난 오브제처럼 현실과 연결된다. 시 속에서 화자는 끊임없이 꿈의 안과 밖, 그림의 안과 밖, 일정한 시간의 안과 밖, 자기 자신의 안과 밖을 넘나들며, 그리하여 꿈속에서는 현실을 다 벗지 못한 사람처럼, 현실에서는 꿈에서 다 깨어나지 못한 사람처럼 기이한 감각의 발생을 현시한다. 시종일관 그의 주체는 이 모든 ‘경계-윤곽선’, 특히 유한한 시간 속에 위치한 경계에 관한 것이다. 이, 시간을 시각으로 포착하려는 그의 안간힘 속에서 선 없는 윤곽으로 간신히 경계라 할 것을 가지고 있는 이 모든 존재자들의 세계를, 빠져나갈 수 없는 거대한 캔버스라 생각한다면, “달아나는 풍경을 쫓아가며 나는 풍경의 일부가 되고 있다. 풍경의 연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나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나를 보고 있는 사람을 생각한다. 내가 누군가를 보고 있듯이 알지 못하듯이 나를 풍경 속에서 빼내는 것은 생면부지의 사람이다.”(「여름」) 독자 없이는 빠져나갈 수 없는 시의 목소리가 그렇듯이, 다른 이의 기도 없이는 빠져나갈 수 없는 연옥의 영혼이 그렇듯이 말이다.
2.
이 시집에는 신변잡기를 제거한 거대한 회전식 무대가 있다. 이 무대 위에서 우리는 각본의 작가가 되었다가, 배우가 되었다가, 연출가가 되었다가, 무대 감독이 되었다가 관객이 되었다가,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우주인이 되었다가, 작가를 죽였다가, 관객을 죽였다가, 배우를 죽였다가, 무대를 다 부수고 다시 짓고, 이 모든 일을 되풀이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마주하기 싫어 한사코 피하고 싶었던 자기 자신과 대면하게 된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심문이며, 작가와 독자의 가학적이고 피학적인 역할 놀이에 대한 우리의 무의식적인 향유에 대한 충혈된 의식의 집요한 채찍질이며, 이 심문과 채찍질이야말로 가장 가학적이고 피학적인 창조주-작가 메타포의 궁극적인 동력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거듭 해체하고 다시 직조하는 작업이다.
3.
자기를 찢어 그 찢어짐의 현장을 고통스럽게 전시하고 오직 효과적인 전시에 골몰함으로써 희열을 느낄 수 있었던 이 목소리의 주인에게 그에 가장 걸맞은 상이 돌아가게 된 것을 축하한다.
4.
정확하게 말하고 싶어서 자기의 진심을 파내려가다 보면, 진심은, 진실은, 자꾸만 여러 갈래로 흩어진다. 정확하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부족한 알몸이 부끄러운 마음이 한 몸일 때, 그녀는 갈라진 혓바닥을 근심하고, 두 갈래의 혓바닥은 각기 다른 말들을 시작한다. 술 취한 밤 더러운 술집 화장실 거울에서 마주친 악마 같은 낯선 타인이 두렵지 않다면 당신 자신이 악마일 것이다. 그녀는 말짱한 정신으로 매일 악마와 마주치고 매번 소스라친다. 정확하게 말한다는 것, 정확하게 사랑받는다는 것, 정확한 죽음. 이 진지한 소망들은 왜 멋지게 말하거나 그럴듯하게 말하고 싶은 소망보다 훨씬 중요한가. 우리는 고통을 피하고 싶어서 우선 자기와 타협하고, 자기의 영혼을 보살핀다는 것과 자기애를 혼동한다. 우리는 너무 손쉽게 여러 개의 모순된 자기들에게 관대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아닐까. 자기의 수상한 면모들과 맞닥뜨리면서, 수상한 자기를 학대해서라도 달콤한 거짓말보다는 고통스러운 진실에 생을 내맡기려는,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진지한 고행. 여기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장밋빛 안경을 벗어던지고 날카로운 날빛과 명확한 어둠을 맨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즐길 만한 경미한 우울과 교양을 원하는 오만하고 심약한 속물 따위는 개나 물어가라. 자기 안의 악마를 두려워하는 겸손한 영혼만이 이 책을 펼칠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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