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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저자 > 문학일반

이름:맹문재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63년, 대한민국 충청북도 단양

직업:시인 대학교수

최근작
2025년 9월 <정말 그럴 때가 있을 겁니다>

저자의추천 작가 행사, 책 머리말, 보도자료 등에서 저자가 직접 엄선하여 추천한 도서입니다.
이 분야에 11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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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개
1.
허문화 시인의 시 세계를 이루는 토대이자 주제는 모성을 바탕으로 한 가족애이다. 여성은 임신, 출산, 육아, 자녀교육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모성애를 경험하는데, 시인은 그것을 가족 사랑으로 확대하고 심화한다. 모성이 본성적이라면 가족애는 사회적이다. 따라서 모성의 가족애는 사랑의 본성이 환경 조건 속에서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중략) 허문화 시인의 가족애는 가문을 내세우는 전통적인 가족주의와 다를 뿐만 아니라 여성의 임신이나 출산이나 육아와 관련된 범주를 넘는다. 개인적인 것은 물론 사회적인 것이어서 다층적이고 복합적이다. 또한 여성으로서 갖는 운명 인식이 아니라 사회적 존재자로서 정체성과 주체성을 견지한 것이다. 따라서 시인의 가족애는 자본주의 체제에 함몰된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이기적 개인주의를 극단적으로 긍정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하는 가치가 되는 것이다. (중략) 가족애의 개념은 친족 관계에 있는 구성원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허문화 시인의 인식은 그 범주를 넘는다. 모성의 정서적 친밀감과 소속감으로 사회 구성원과 연대한다. 개인적인 차원에 국한하지 않고 사회 공동체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시인이 “알바천국에 알바만 있고 천국은 없다는 것을/취준생이 되면서 알게 된”(「통계에 잡히다」) 것이나, 직장을 잃자 “아내와 딸들의 얼굴이 명치끝 통증”(「잃다」)을 느끼는 것이 그 모습이다. 우리 사회의 취업 문제와 실직자의 아픔을 가족애로 알려주는 것이다. 시인은 “봄날 당근밭에서 아이들 등록금을 캐냈고/이모작 콩밭에서 두 아들 결혼자금을 타작했던/생산의 텃밭”(「산업단지 OUT」)이 산업단지의 회색 시멘트로 덮이자 주민들과 함께 맞선다.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로 살처분된 동물들을 안타까워하며 “다른 생을 위해 묻힌/익명의 숨탄것들”(「순장」)을 품는다. 콘크리트가 능멸하는 바람에 강물이 흐르지 못하는 상황을 “내 어머니의 자궁은/하루하루 타들어”(「저 강의 불임」) 간다며 환경 문제도 가족애로 제기한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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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윤의 작품들은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구체적이면서도 자연스럽게 표현하면서 탄탄한 구성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수상작인 <동네에서 같이 살기>는 사마귀조차 귀한 인연으로 여기고 “동네에서 같이 살”려고 하는 대상애(對象愛)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점점 이기적 개인주의에 함몰되어 공동체의 가치가 무너지는 현대사회의 상황에서 작품의 주제 의식은 의미가 큽니다. 고명숙의 <운명의 기도>는 갑인(甲寅)생으로 살아온 자신의 삶의 의미를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차원으로 인식한 점이 눈길을 끕니다. … 생사의 처지나 미래의 존망에 대한 화자의 간절한 기도는 자신을 위한 것이면서 동시에 모든 사람들로 이루어진 나라를 위한 것입니다. 시인의 공동체적 운명애(運命愛)는 지극히 숭엄하기에 기꺼이 동참합니다.
3.
오기화 시인의 작품들에서 비는 중심 제재로 시 세계를 확장하고 심화하는 역할을 한다. 비는 시인의 세계 인식과 감정의 대상이다. 시인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비에 투사하거나, 비의 이미지나 형태를 자신에게 불러와 동화한다. 시인은 비의 기운을 갖기도 하고, 비의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비의 목소리를 편하게 듣기도 하고, 비의 난폭함에 아파하기도 한다. 비를 상상력뿐만 아니라 일상의 존재로 긍정하거나 부정하면서 운명처럼 껴안는 것이다. (중략) 시인은 근원적인 비를 시의 내용으로 채우고, 시의 형식으로 재생한다. 비의 존재를 시의 서정으로 품고, 시의 서사로 만든다. 시의 어휘로 채색하고, 시의 호흡으로 변주한다. 결국 시인은 비를 융합적으로 또는 변증법적으로 인식하며 사랑하는 사람의 시와 삶을 노래하는 것이다.
4.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3월 18일 출고 
플라스틱이 무혈 입성한 바다, 플라스틱의 배설구가 된 바다, 플라스틱의 독설에 미쳐가는 바다, 플라스틱의 폭력에 비명도 못 지르고 실신한 바다, 플라스틱의 피고름이 튀는 바다, 플라스틱의 맹공에 목맬 준비를 하는 바다…… 전숙 시인은 아픔으로 몸부림치는 바다를 살리기 위해 플라스틱의 학대를 전면적으로 고발하고 있다. 플라스틱을 만들어 지구의 암적 존재가 된 인간에게 궁극적으로 맞서는 것이다. 푸른 바다가 “푸른빛을 잃고 죽음이 일상”(「산호의 푸른 변방」)화된 상황에 대한 시인의 경종처럼 고래, 거북, 상어, 북극곰 등 바다의 생명체들뿐만 아니라 인간도 생존을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모든 생명체의 젖줄인 바다를 죽이는 플라스틱 오염을 직시하고 그 심각성을 세상에 알린 전숙 시인의 시들은 한국 시단에서 생태환경시의 필요성과 그 의의를 뚜렷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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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국 시인은 물의 존재성을 인식하고 사회학적 상상력을 그지없이 확대하고 심화한 시 세계를 이루었다. 오월의 강, 만 개의 불을 켜는 물, 악보를 그리는 빗방울, 코피를 씻은 찬물, 들고나는 어의도의 물때, 생을 데려가는 물 등에서 보듯이 물은 대지에 온몸을 밀착시키고 나아간다. 시인은 느리섬에 닻을 내린 할매와 어머니, 낡은 구두의 아버지, 두 고랑만 더 캐자며 남자에게 밥 덜어주는 여자, 아파도 아프지 못하고 기어가는 벌레들, 난리 때 죽은 사람들, 여순의 화약 냄새, 전태일, 김남주, 조태일 등을 물처럼 품으며 생애를 걸었다. 나아가 물의 기운을 날개처럼 키워 창공으로까지 날아올랐다. “하늘에 뼈 묻을 사내들”(「최용덕」)처럼 고향이자 일터이고 정의와 자유의 터전인 하늘에 발자국을 찍으며 동백꽃 같은 희망을 피운 것이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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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최현숙의 시 세계를 움직이는 ‘사랑’은 몸 안에 유전된 것이기에 흙냄새가 나고, 초록색을 띠어 외롭지 않다. 쉽게 부서지지 않는 손금 같은 운명에 흔들리면서도 나무처럼 바람 속을 걷는다. 숲이 숲속에서 숨결을 나누듯이 사람 속에서 온기의 품을 전한다. 이쪽에서 피고 저쪽에서 진다고 해도 서로 마주 보면 꽃이 되듯이 시인의 사랑은 슬픔을 감당하는 별처럼 어둠 속에서 빛난다. “한 가지를 위해 아홉 가지를 잃어버리는 다짐”(「기다리겠습니다」)으로 마른 손끝에 등불을 켜는 그 사랑이 통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메마르고 무서운가? 아침이 오면 문을 나서듯 시인은 당신을 멀리할 이유가 없다고, 오늘 함께할 존재는 당신뿐이라고 지문 묻은 약속을 잊지 않고 꽃씨를 뿌린다. “캄캄한 새벽으로 오는 아침은 더 맑고 단단하다”(「인연」)는 것을 의심하지 않고 나팔꽃 같은 사랑을 부르는 것이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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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희 시인의 시집은 전 부치고 갈치 조리고 인삼 대추 등을 넣고 끓이는 삼계탕으로 고소한 냄새가 난다. 소를 빵빵하게 넣은 복만두가 수북하고, 엄마의 명약인 돼지고기콩나물밥이 두레상에 차려져 있다. 소문난 호두과자며 밥알 뜬 식혜, 짭조름한 간장, 토란국, 된장찌개, 보리밥…… 그 음식들을 만들고 나누는 착하고 인정 많은 식구들과 이웃들로 시집은 복작복작하다. 시계꽃을 피우는 아버지, 쌀값과 등록금 걱정에 꽃놀이 한번 못 가면서도 장독대에 정화수 사발 올려놓고 육 남매의 안녕을 비는 엄마가 보인다. 촌수 먼 친척들까지 불러모아 푸지게 치르는 큰올케, 작다리 목도장으로 어린 동생을 진학시키는 큰오빠도 있다. 엄마가 만든 오므라이스를 알밤 본 다람쥐처럼 달려와 먹는 아이들, 돈암동 417번지 이웃들, 신창동 옆방의 딸들, 청주 한 씨 여자, 평미레질하는 고 씨…… 그들의 응원을 받으며 시인이 “뙤약볕 아래 양 소매를 걷어 올린 채/오타를 뽑아”(「피사리」)낸 시집은 풍성하고 푸짐하다.
8.
거대한 자본주의 시장의 욕망과 전략으로 탄생한 인공지능(AI) 로봇과 챗지피티(ChatGPT)가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시대에 노동에 대한 전망은 어떠한가? 시인들은 최저 시급 계약자, 소음성 난청에 시달리는 철근쟁이, 농약값 자재값 등을 빼면 남는 건 나이뿐인 농부, 파도와 바람에 맞서 그물을 끌어올리는 어부를 부르며 묻는다. 철야를 마치고 창백한 얼굴로 귀가한 여공, 폭발 사고로 한마디의 유언도 남기지 못한 광부들, 산재를 당해도 보상받을 수 없는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에게도 묻는다. 시인들의 물음은 이분법적인 전망이 아니라 당위를 추구하는 노동자의 목소리이다. 노동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것인가? 노동할수록 삶의 보람이 더 커질 것인가? 노동자들 사이에 차별 없는 세상이 올 것인가?
9.
“사천 편의 시를 이십 년”(「불 꺼진 집?」) 동안 쓴 강태승 시인은 하얀 허기와 검은 허기, 슬픔의 바탕과 바닥, 이탈과 속탈과 해탈, 사람 속의 사람 등을 끌어안는다. 울화(鬱火) 또는 울화(鬱花), 주름 또는 걱정, 염습(殮襲) 또는 빈집, 화두(話頭) 또는 화두(花頭) 등도 품는다. 슬픔과 기쁨을 당기거나 밀지 않는 것은 물론 삶과 죽음조차 구별하지 않고 근원의 죄를 먹으면서 죄가 없는 나무처럼 바람에 흔들린다. “희로애락은 하나로 묶기 힘들”(「하나로 묶기」)지만, 말 못 하는 짐승도 바위도 사람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마음으로 가족과 노동과 막걸리와 나이테와 신(神)을 깊은 내재율로 노래한다. 시인의 사랑은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별 반짝이고 있는 연꽃”(「정신현상학」)처럼 물에 잠겨 있어도 한 방울 젖지 않는다.
10.
양선주 시인은 사물이나 상황이나 감정 앞에서 호흡을 가다듬으며 서술과 묘사, 서정과 서사의 주체성을 견지하면서 융합을 이룬다. 긍정과 부정, 웃음과 울음, 개념과 실행, 단면과 입체, 침묵과 리듬 등도 끌어안는다. 그리하여 이방인, 유림빌라 203호, 호랑가시나무, 나래수선집 부부, 실비식당, 재봉틀, 이드(Eid), 반쪽의 여인 등은 싱그럽게 빛나고 춤추고 일어서고 색칠하고 멀리 가고 꽉 뭉친다. 지하철 문이 열리자 “사랑하는 사람/큰 마리”가 호흡을 맞춘 뒤 “열차 속으로/한 사람의 거대한 사랑”으로 “들어”(「소녀와 안내견」)가는 것이 그 모습이다.
11.
이윤 시인은 큰 나무와 작은 나무 사이에 자리 잡은 영산홍 집 한 채를 햇살처럼 발견한다. 사월과 오월 사이에 핀 장미꽃 같은 그리움으로 이별과 기다림 사이에 서서 한 사랑을 그린다. 이쪽 풍경과 저쪽 풍경 사이에 두 개의 풍경이 담기는 것을 알기에 끊어질 듯한 현실과 멀어져가는 이상 사이를 어린 왕자처럼 걷는다. 하늘과 바다 사이에 한 이불을 덮은 시간과, 길과 길 사이와 물과 물 사이와 우수와 오수 사이에 안팎 없이 존재하는 시간을 따른다. “땅을 걷는 길은 하늘을 거쳐야 하고/하늘로 가는 길은 땅을 거쳐야 한다”(「수로왕릉역에 간다」)라는 인식으로 사이의 시학을 추구하는 것이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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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순 시인은 지루하고 썰렁한 바람의 공사장을 단단하게 채우는 해당화나 통보리사초나 갯메꽃을 눈부신 언어처럼 바라본다. 아까시나무 꽃비가 햇살처럼 날리는 날에는 인적 드문 동네를 돌며 주름 깊은 얼굴들의 안부를 살핀다. 쥐똥나무꽃이 내는 향기를 맡으면서 웃음과 아픔을 함께 나누었던 인연들을 떠올린다. 쉽게 뽑히지 않은 긴 울음의 시간을 버텨온 꽃 앞에서 누구나 견뎌야 할 시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울어서 꽃 피우는 일이라면 기꺼이 봄이 되겠다”(「속눈썹 겹꽃」)라고 여기고 바람의 세기와 방향을 읽으면서 꽃의 자리를 찾아간다. 한 천년쯤 견디어낼 수 있는 바위 같은 꽃의 집 한 채 지으려고 긴 울음의 문턱을 넘는다.
13.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한국 현대시를 꽃피운 기적 같은 시집이다. 김소월은 이별의 노래로 사랑의 운명을 일깨워주었다. 나라 잃은 민족인들의 아픔과 슬픔도 대변해주었다.
14.
살아 있는 나무들이 정일관의 시집을 가득 채운다. 아까시나무는 오월의 비탈길이 캄캄한 어둠에 밀리지 않기 위해 환한 꽃을 피우고, 벚나무는 길을 건너다가 치인 고양이를 꽃잎으로 덮어 꽃무덤을 만든다. 가시가 삐죽한 엄나무는 당당한 자태로 풍성한 잎들을 이고, 오래된 느티나무는 은은한 잎사귀로 달빛을 받는다. 봄나무는 사람들의 팔을 잡아당기며 가지를 늘리고, 겨울나무는 뼈만 남았는데도 외투 한 자락 걸치지 않고 별빛을 모은다. 큰 나무는 몸을 구부리고 팔을 내밀어 넓고 깊은 그늘을 내고, 모과나무는 작고 못생긴 모과를 툭 떨어뜨려 지상을 향기로 물들인다. 바람은 수소문해서 나무들을 찾아오고, 별빛은 나무의 마음을 살리기 위해 밤하늘에서 빛난다.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 말고/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유언」)라는 시인의 말은 문을 열고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문을 닫는 한 생애의 힘이 된다.
15.
조정애 시인은 초춘호(初春號) 침몰 사고라는 역사적인 시간을 현재의 시간과 연결하는 시 세계를 추구하고 있다. 시는 음악과 마찬가지로 본질적으로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행동을 주로 다룬다. 따라서 그림, 조각, 건축 등은 본질적으로 공간예술에 속하는 주제를 나타내는데 비해, 시는 조정애의 작품들에서 볼 수 있듯이 시간예술에 존재하는 주제를 추구한다. 조정애 시인의 시 세계를 이해하는 데는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가 제시한 대뇌반구(大腦半球)의 환상선(loop-line)을 참고할 수 있다. 시가 일반적 혹은 보편적 능력을 획득하게 되는 것은 바로 먼 기억과 생각의 환상선을 통해서이기 때문이다. 곧 이성적인 삶이 감각적인 삶으로 편입되면서 신경의 보고가 일관성 있고 보편적이며 인간적인 의미를 지닌 사상과 사고로 변형되는 것이다. 이미지스트들이 입증하듯 환상선을 활용하지 않고도 특정한 유형의 시를 쓰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것은 시각, 청각 또는 촉각 이미지의 보고일 뿐이다. 이미지스트들은 기억이라는 낡은 문을 닫음으로써 감각 경험의 새로운 문들을 열어주는 놀라운 솜씨를 발휘했지만, 근본적인 결함은 보편적인 사상이 결핍된 것이다. 윌리엄 제임스는 현재의 감각적 충동으로부터 행동하는 저급한 신경중추만이 아니라 숙고를 통해 행동하는 인간 두뇌의 반구들을 재현하기 위해 활용했다. 숙고는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구성된 이미지들이며, 느끼고 목격한 바 있는 것들을 재생산하는 것이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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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훈 시인은 열일곱 살 때 공장에서 작업하다가 안전사고로 참혹하게 즉사한 동갑내기 동료를 잊지 못한다. 소규모 공장들에서 일하다가 진폐증으로 작업장을 떠날 때까지는 물론이고 시를 쓸 때마다 그 일에 대한 슬픔과 분노에 목이 멘다. 그리하여 노동자를 살리지 못하는 시는 함부로 쓰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비정규직 노동자, 해직 노동자, 산업재해 노동자, 가난하고 힘없는 노동자를 위한 투쟁의 노래를 부른다. “늙은 국수공장 주인”처럼 “낡은 국수공장 기계를/눈물로/방울방울 어루만진다”(「몸이 몸을 어루만진다」). 깎아지른 절벽에서 바위와 한 몸이 되어 살아가는 나무들과 같은 자세를 갖는다. 위장 폐업으로 문을 닫고 철거한 공장의 공터에 등 돌리지 않고 “노동을 하듯/꽃을 심는다”(「꽃을 심는다」). 생이 다할 때까지 노동의 뿌리를 지키겠다는 시인의 시들은 아프고 슬프지만 간절하고 애틋해서 따뜻하다. 인간답게 살아가려고 노동하는 우리에게 위로와 아울러 연대의 힘을 준다.
17.
금시아 시인의 작품들에서도 바슐라르가 분류한 물의 상상력이 지배한다. 맑은 물, 봄의 물, 흐르는 물, 깊은 물, 잠자는 물, 죽은 물, 무거운 물, 복합적인 물, 모성적인 물, 여성적인 물은 물론이고 우주의 물, 운명의 물, 슬픔의 물, 그리움의 물, 동백꽃의 물 등으로 변주한다. 난폭한 물을 지배하는 부드러운 물이 작품 세계를 이끌어 시간 의식과 세계인식을 펼치는 것이다. 혈기 왕성한 젊은 날을 “우당탕탕, 소나기가 한낮을 훔쳐”(「완장」)간 것으로, 통증이 심한 어머니의 삶을 “우울한 심기를 봉합하고 방수해도 우기는/어느새 관절을 뚫고 들어”(「비의 관절」)온다고 표현한다. 춘천 대보름 축제로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함성을 “강물이 춤춘다”(「독륜차전(獨輪車戰)」)라고, 삿갓을 쓰고 바랑을 짊어진 채 방랑길에 오른 김삿갓을 바람에 날리는 버들개지로 비유하고 그의 책 읽기를 “바람 한 겹에, 물살 한 장에/유유히 필사”(「비서(飛絮)―김삿갓 1」)하는 것으로 이미지화한다. (중략) 화자에게 진중함을 일러준 호수는 풍경이 아니라 시간의 물이다. 삶의 시간이 스며든 호수는 깊고 무겁고 넓고, 그리고 움직인다. 움직이는 호수는 마중 나온 나비처럼 창문을 두드린다. 두꺼비의 등을 타고 물꼬를 보러 나선다. 은신처가 있는 집을 찾아 물소리가 졸졸 흐르는 길을 따라간다. 절명한 김유정의 문장들이 안타까워 소낙비에 젖으며 꽃점을 친다. 우기에 젖는 동안 사람에 들거나 사람을 들인다. 바람을 흉내 내는 고독을 출렁이는 방죽으로 데려간다. 쓸쓸한 그림자들의 목덜미를 물의 습성으로 간질인다. 징조도 없이 거듭하는 시행착오의 눈물을 닦아준다. 탱자나무 울타리에 촘촘하게 끼인 그리움을 꺼내 물 위에 띄운다. 세상에서 가장 큰 깃발을 물의 기운을 넣고 흔든다. 소멸하지 않고 수백 년 만에 눈뜬 연꽃 옆에 멀고 먼 전략으로 부드러운 시를 심는다.
18.
박원희 시인이 제시한 길 중에서 이순(耳順)을 나타낸 작품들이 특히 눈길을 끈다. 주지하다시피 이순은 공자의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말로 사람의 나이 예순 살을 이른다. 공자는 자신의 일생을 회고하며 인격의 형성과정을 육십이이순(六十而耳順)이라고 술회했다. 예순 살이 되어 천지만물의 이치에 통달해 다른 사람의 말을 순순히 들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 것이다. 박원희 시인의 시 세계에는 공자가 술회한 이순의 삶이 여실하다. 모든 해를 살아왔지만 그 경험들에 함몰되지 않고 현재를 살아간다. 걸어가는 길의 끝이 있지만, 퇴로가 없다고 여기고 포기하지 않는다. 주체성을 견지하면서 별을 따라 길을 간다. 원망을 잊은 지 오래고, 불효를 반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부모님의 길을 따른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착한 길과 옳은 길을 걷는다. 삶은 언젠가는 막을 내린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곡예 같은 사랑을 멈추지 않는다. 많은 생명체를 품고 있는 산처럼 시인의 발걸음은 고요하고 넉넉하다. 그러면서도 시끄러운 세상이야말로 무언가 해보고 싶은 것들이 일어나는 터전이라고 여기고 들어선다. (중략) 화자는 떠난 길은 다시 되돌아오지 않겠다는 자세로 나아간다. 삶의 가치를 견고하게 가지고 아무리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않는다.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시간에 함몰되지 않고 창공에서 빛나는 별을 바라보며 걸어간다. 자신이 선택한 길에 방황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외로워하거나 불행하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자식을 위해 최선을 다한 부모님의 길을 새기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려고 한다. 자기를 긍정하는 현재진행형의 사회적 존재자가 되는 것이다.
19.
손한옥 시인의 사랑은 시 세계를 이루는 토대이자 시인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이다. 가족을 비롯해 인연들을 품는 시인의 사랑은 쓸쓸히 비를 맞고 있는 그림자에 우산을 씌어줄 정도로 자애롭다. 사랑하는 사람을 한 오백 년 보고 또 보고 싶어 할 만큼 지순하다. 시마(詩魔)에 씌어 무당이 작두를 타듯이 백 편의 사랑 시를 짓고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사랑한다」) 암송하고, “하늘의 별도 달도 서너 말씩 따가지고”(「구름의 방향」) 오려고 온몸을 헌신한다. 그 지심(至心)으로 몸이 아프기도 한 시인은 사랑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자고 한발 물러서지만, 사랑은 초봄의 뜰 안에 심은 청갓처럼 푸릇푸릇하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삶에서 한 치 앞을 잊고 살아가도록 이끄는 동반자가 된다. 연두색 봄비를 맞으며 움튼 사랑이 어느덧 유록(柳綠)을 지나 시집 곳곳을 초록으로 채웠다. “사랑하는 누구라도 곁에 서면 좋”(「삼복에 겨울 코트」)다고 인연들을 감싸 안는 시인의 사랑은 지상에서 가장 선하면서도 아름답다. 시인과의 동행에서 맨 끝까지 이탈하지 않을 사랑이여, 영원한 도반이여.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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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화 시인의 시들은 길가에 서 있는 나무들처럼 선량하면서도 정연하다. 시는 고상한 정서나 그윽한 사상이 아니라 “일상의 잡다한 것과 닮아 있고/저잣거리 소음과 먼지 속에 섞여”(「발원지」) 있는 존재이기에 고심하는 밤이나 고단한 퇴근길에 싹튼다는 시론을 무결하게 완성한 것이다. 시인은 잡다한 것들을 끌어안고 “시시포스의 돌을 굴려 올리듯/시를 짓는다”(「시시포스의 돌」). 바위를 굴려 올려야 하는 시인의 운명을 고통 속에서도 기쁜 마음으로 감당하는 것이다. 시인이 뒤처져 있는 것들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는 것이 세상에 묻힌 시의 원석을 보석으로 만들어내는 모습이다. 미로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시인의 길을 나무처럼 걸어가고 있기에 시인의 시는 현재진행형이다. 미진한 사랑을 향한 노래도 그렇다.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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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혜 시인은 기억의 넝쿨이 무성하게 뻗어나가 활짝 꽃 피고, 그 꽃들에 연두 나비가 날아오기를 희망한다. 시인은 희미해진 기억을 찾아 나래를 펼치고, 무지개 같은 기억을 담으려고 수레를 끌고 언덕을 넘는다. “색조차 기억나지 않는 이별은 밍밍해서 서럽지 않”(「이별의 배경」)다고 노래할 정도로 정열적이다. 시인의 기억은 저녁 같은 어둠을 환하게 지피고, 얼어붙은 길을 오렌지 같은 햇살로 녹이고, 연보 같은 외로움을 연민한다. 한 물결에 생활을 쓴 가족 기록부를 집으로 가져오고, 흑백 사진 속에 들어 있는 창문을 열고 환희의 순간을 맞는다. 검은 웅덩이에 소복하게 쌓여 있는 꽃잎들을 꽃비로 흩날리기도 한다. 얽혀 있는 선 같은 기억을 풀어낸 시인의 시들은 “신이 발에 맞춰 자라나”(「신을 잃어버렸어요」)듯이 생소하다. 봄밤의 꽃 그림자같이 오묘하고도 매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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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화 시인은 이쪽 모서리에서 저쪽 모서리로 제 그림자를 옮기는 나무를 따라 걷는다. 나무의 뒤꿈치를 종교처럼 바라보면서 우물물을 마시고 미용실에 들러 푸념 가진 사람들과 북적거리고 바람의 언덕을 오른다. 자신이 가난한 사람들의 신발이라고 여기고 오래된 아파트 단지를 오르내리며 별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초록색을 칠한다. “가계부를 적다/한풀 더 꺾여버린 여자”(「해바라기는 한번 수그린 고개를 들지 않는다」)의 눈물을 꺼내 비 그친 오후의 마당에 펴서 말리며 거꾸로 매달린 것들을 노래한다. 하늘의 텃밭을 호미로 고르면서 어머니가 좋아하던 별을 한 소쿠리 심고, “노란 밀밭에서 푸른 힘줄을 보이며 밀을 베는 백 년 전쯤의 남자를 만나 그의 아내가 되고 싶”(「푸른색과 노란색」)어한다. 화물차 안에 놓여 있는 목장갑과 먹다 만 찐빵, 저쪽 모서리에서 들리는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발견하고 유등의 불빛이 난로처럼 비추어지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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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희 시인은 달이 파먹다 남긴 캄캄한 밤에 자신은 물론이고 가난한 사람들을 발견한다. 풍요로운 고층 빌딩의 그림자 속에 숨겨진 그들은 한여름이라도 추울 수밖에 없고 아픈 곳도 보여주기 싫어한다. 어둠의 옷을 더 편하게 여기고, 부러지지 않은 희망을 지니고 있지만 뿌리를 키우지 못한다. 시인은 그들의 가난을 외면하거나 자신의 가난에 함몰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키워온 것이 가난이라고 당당하게 노래한다. 가난한 꽃과 가난한 낙엽과 가난한 근로계약서와 가난한 밥을 움켜쥐고 기적 같은 시를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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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선율에 몸을 맡기고 있는 오새미 시인의 시들은 들꽃 향을 실어 오고 연둣빛 속삭임을 들려준다. 하늘을 응시하는 이파리처럼 한들거리고, 구름을 실어 온 나비처럼 햇살을 비춘다. 차가운 눈발을 녹이는 원기를 일으키고, 문양과 설렘 같은 화음을 낸다. 바람의 무게와 질량을 측정하는 저녁이 오면 시인은 가슴속에 담긴 상처와 슬픔과 눈물을 말려 발원지로 만들고 지나온 여정을 색칠한다. 마르지 않은 가슴을 새들의 바느질로 다독이고, 열정의 이름표를 현수막처럼 내건다. 바람이 닿은 시인의 시들은 “세상 밖으로 한 걸음 나아가/뿌리를 내리고 잎을 틔우”(「바람의 겨드랑이를 간질이다」)고, 마침내 무성한 눈망울의 정원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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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림 시인의 시 세계는 나무의 존재학 혹은 나무의 사회학이다. 시인은 바다의 길 끝에 선 어머니와 수렁에서 풀려난 아버지의 생애를 몸을 비운 나무 같다고 여긴다. 목백일홍을 꺼지지 않은 불꽃을 지닌 존재로, 은행나무를 풍성한 수다를 떠는 존재로 바라본다. 헐벗은 채 홀로 선 나무로부터 가난 증명서를 떼기도 한다. 어른들이 무시하고 싫어하는 아픈 아이의 말을 들어주는 가로수에게 고개 숙인다. 나무가 지나온 길을 따라 역사를 품고 광장에서 촛불을 든다. “생전에 빚진 이라면/오직 나무 한 그루”(「옥선(玉蟬)」)라는 마음으로 미시령에 오르자 거친 혈맥을 내보이며 환영하는 나무들, 시인은 그 앞에서 어깨의 높이를 회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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