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3년 영국 케임브리지의 하비(Harvey) 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존 네빌 케인스(John Neville Keynes)는 경제학자이면서 케임브리지 대학교 행정가였다. 어머니 플로렌스 케인스는 케임브리지의 여자 칼리지인 뉴넘 칼리지(Newnham College)를 졸업한 후, 케임브리지 최초의 여성 시의원과 케임브리지 시장을 지냈다.
이튼 스쿨을 거쳐 케임브리지의 킹스 칼리지(King's College)에 진학한 케인스는 수학을 전공하면서 고전·철학·경제학 등을 수강했다. 졸업 이듬해에 국가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케인스는 약 2년 동안 인도에서 공직을 지냈다. 인도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1913년 그의 최초의 저서 《인도의 통화와 금융(Indian Currency and Finance)》을 집필했다.
1908년 가을에 케임브리지에 복귀한 케인스는 1909년 봄 킹스 칼리지의 선임 연구원(Fellow)으로 선출된다. 선임 연구원직의 응모를 위해 준비한 논문은 1921년에 발간한 《확률론(Treatise on Probability)》의 모태가 되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재무성의 근무 위촉을 받아 1918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전비 조달, 정부 재정, 환율 같은 전시체제하의 주요 경제정책 입안과 대외 협상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1919년 1월 영국 대표단의 재무성 대표 자격으로 베르사유 평화회담에 참가했지만 회담의 진행 상황에 실망해 6월에 대표직을 사직한 후, 그해 12월 《평화의 경제적 결과(The Economic Consequences of the Peace)》를 발간한다. 이 책으로 그는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1921년에 발간한 《확률론》에서 논리적 확률 이론을 제시한다. 케인스의 확률 이론은 합리적 확률(rational probability) 이론이라고도 불린다. 확률적 판단의 합리성은 실제의 결과에 비추어 사후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가용 증거를 바탕으로 실행되는 연역적 추론의 논리적 타당성에 의해 사전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1923년 그의 ‘3부작’ 중의 첫 번째인 《화폐개혁론(A Tract on Monetary Reform)》을 출간한다. 여기서 그는 금본위제도로의 복귀를 반대하면서 관리통화제도를 옹호한다.
그의 ‘3부작’ 중 두 번째는 1930년 두 권으로 발간된 《화폐론》이다. 《화폐개혁론》에서 케인스는 전통적인 통화주의 이론,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마셜의 현금 잔고 이론(cash-balance theory)에 근거하고 있으나, 《화폐론》에서 그 전통을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그의 ‘3부작’ 중 마지막 저서인 《일반이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유동성선호 이론의 기초를 《화폐론》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25년에 러시아 출신의 망명 발레리나 리디아 로포코바(Lydia Lopokova, 1891∼1981)와 결혼한 후 ‘미와 두뇌의 결합’이라는 언론의 평에 걸맞은 결혼 생활을 유지했다. 《화폐론》과 《일반이론》의 발간 사이의 기간에는 기존에 발표했던 경제 평론을 모은 《설득을 위한 에세이집(Essays in Persuasion)》(1931), 당대의 정치가들과 과거 및 당대의 경제학자들의 전기를 다룬 《전기 에세이집(Essays in Biography)》(1933) 등을 출간했다. 대공황이 정점에 달했던 1933년에는 《번영을 위한 방법》을 발표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케인스는 《어떻게 전비를 조달할 것인가(How to Pay the War)》(1940)에서 세율을 높이고 노동자들이 정부에 대부하는 형태의 강제 저축을 통해 전비를 조달할 것을 제안했다. 종전이 되어 갈 즈음 케인스는 영국을 대표해 유럽의 경제 질서를 재편하는 작업에 참여했다.
1931년부터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 케인스는 1937년에는 중증의 심장 질환으로 입원하기도 했다. 이후 케인스의 활동은 크게 제약되었다. 1942년 ‘틸턴 남작(Baron of Tilton)’ 작위를 수여받은 후 자유당 상원의원으로 활동했다. 1946년 4월 21일 틸턴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이 에세이들을 쓴 나는 불길한 말을 쏟아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문제가 뒷전으로 밀려나고 정말로 중요한 문제들, 이를테면 인생의 문제와 인간관계의 문제, 창조와 행동과 종교의 문제들이 우리의 가슴과 머리를 지배하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는 희망을 여전히 품고 있다. 내가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경제적 분석을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만약 우리가 줄곧 낙관적인 전제에 따라 행동하며, 그 전제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반면에 비관적인 전제에 따라 행동하면 우리는 언제나 결핍의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 ('책을 펴내면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