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부산에서 태어나 중학교 시절 서울로 이사했다. 배운 것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전문직을 꿈꾸며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사람들이 가장 흔히 걸리는 병증을 다루는 점에 매력을 느껴 내과 전공을 선택했다. 또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도 한몫했다.
1993년 3월에 내과 전문의로서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 개인 의원을 열었고 30년 넘게 같은 동네에서 진료하고 있다. 그러던 중 50대 초반에 우연히 접한 인문학 공부를 통해 병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배웠다. 이 공부를 동네 주민과 나누고 싶어 병원에서 목요일 점심시간마다 ‘목요점심인문학’ 강의를 열고 주민과 친구들을 초대했다. 강의 내용은 진료실에서 접한 다양한 병증과 인문학적 시선이었다. 이를 1년간 진행하면서 나의 공부가 동네 주민에게 확장되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인문학 공부가 나의 일터인 진료실에 스며들게 되었다.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려는 소망으로 이 책을 세상에 내보낸다.
불경인 『금강경』을 인문학적 시선으로 풀어 낸 『대중지성, 금강경과 만나다』를 썼다.
“『금강경』을 통해 내가 화나는 이유가 ‘아상’ 때문임을 알게 되고, 의사라는 직업과 원장이라는 직책이 주는 상에 집착하지 않으니 삶이 다소 편안해졌다. 그런데 나는 이전에도 『금강경』을 무수히 독송했는데 왜 이런 이치를 전혀 몰랐는지 의문이 들었다. 나는 『금강경』을 독송하는 힘으로 어려움을 해결한다는 믿음에만 의지하면서 『금강경』에 적힌 글자를 읽기만 했던 것이었다. 경전 강의를 통해 글자가 전하는 이치를 알게 되니 화가 나는 상황에 부딪힐 때마다 ‘어떤 생각[相]에 사로잡히고 있는지’를 떠올리며 자신을 조금씩 살피게 된다. 그러다 보니 일상의 사소한 짜증이나 번뇌가 줄었다.
처음 『금강경』을 읽었을 때는 ‘선세죄업 즉위소멸’의 글귀에 기대어 이혼 과정을 건너갈 수 있었고, 지금은 ‘아상’을 공부하여 성냄이 줄어드니 삶이 한결 편안해졌다. 저마다 『금강경』을 읽으며 마음에 와닿는 구절은 다를 것이다. 어렵고 뜻을 알 수 없는 주문 같은 말들로 이루어진 『금강경』에 선뜻 다가서기에 부담감이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 시작을 일상적인 경험에 빗대어 풀어 나가는 『금강경』으로 만나 보면 어떨지 제안하고자 한다. 일상에서 만나는 가지각색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에 『금강경』을 처방하는 것이다. 그리고 저마다의 삶 속에서 이미 반짝거리는 보물을 발견하기를 바라는 마음,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중심에 두고 『금강경』을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