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다.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1982년부터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윤리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1995년 『심상』을 통해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는 『아내가 있는 풍경』 『때가 되어 별이 내게 오고』 『나무를 껴안다』가 있다.
나는 1953년 4월 17일(음력)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습니다.
나는 1995년 황금찬, 박동규님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心象』을 통해 등단하였습니다.
등단하기 전 1993년에 제3문학사에서 『아내가 있는 풍경』을 출판하였습니다. 이 시집은 주로 아내를 소묘한 시들로 채워졌는데, 쾌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1994년 여성잡지인 『Queen』 3월호에 4페이지에 걸쳐 특집 기사를 싣기도 하였습니다.
이 시집과 등단에 고무되어 나는 1996년에 대교출판사에서 『때가 되어 별이 내게 오고』를 출판하였습니다. 2006년에는 시선사에서 『나무를 껴안다』도 출판하였습니다. 글쎄 무어라고 말해야 좋을까요. 이 두 시집은 그 후 여러 번 읽어보고 스스로 반성을 많이 하였습니다. 메시지도 약하고, 그렇다고 문학적으로 승화된 것도 아니고, 제 자신이 부끄럽고 초라했습니다. 나의 시상과 시적 표현들을 남들이 먼저 발표할 것 같아 조바심으로 서둘러 낸 시들이 시퍼런 칼날이 되어 자신을 마구 찔러댔습니다. 나는 피를 토하고 쓰러졌고 그래서 시집을 낸다는 것에 커다란 두려움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시 쓰기를 멈춘 것은 아닙니다. 나는 공개적으로 시 활동을 활발하게 하지는 않았지만, 이곳 계룡산과 금강을 중심으로 공주, 대전, 논산 시인들이 모여 활동하는 을 중심으로 꾸준히 시에 대해 고민해왔습니다. 1995년부터 시작한 이 모임의 창립 멤버이며 아직도 남아 있는 두 명 중의 하나이니까 시 쓴지가 결코 짧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역사에 비해 내실은 장담할 수 없습니다. 내 시는 아마 내 테니스 실력과 비슷한지 모르겠습니다. 테니스를 한 지는 3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동네 테니스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한 번도 큰 대회에서 우승한 적이 없었으니까요.
이번에 용기를 내어 네 번째 시집을 상재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나의 정년퇴임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나는 1982년 공주사범대학 윤리교육과에 전임강사로 부임하여 이제 정년을 맞게 됩니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절을 공주사대에서 보낸 셈입니다. 퇴임을 하면서 우연히 두 권의 책을 준비했는데 그중 하나는 『왜 사람이 죽는가』라는 쾌 무거운 철학 서적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이 『오래된 오늘』이라는 시집입니다.
시 쓰기는 사실 나의 전공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 작업은 내가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는 일이고 또 나를 쓰러지지 않게 지켜준 버팀목이기도 합니다. 나는 40대 후반에 큰 혼란을 겼었습니다. 외적으로는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자마자 과분한 행운으로 대학에 몸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내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서강대학 철학과에서 나는 서양영미분석철학을 전공하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공주사대 윤리교육과 전임교수가 되어서는 서양윤리학과 교양수업을 주로 하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나 개인적으로 나의 전공을 심도 있게 연구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분석철학에 대한 흥미도 떨어지고 또 계속해서 학문에 매진할 수 있는 자신감도 상실되어 갔습니다. 사실 언어를 분석하는 현대철학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서양언어에 능통하면서도 논리력, 분석력과 함께 서양철학 전반에 관해 깊은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시골에서 혼자 그것을 담당하기에는 참으로 벅찼습니다. 또 나는 그렇게 차디찬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을 혐오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면 이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직업이 해결되니 새로운 고민이 생겼습니다. 그때 나는 프랑스 현대 철학자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철학과 문학의 만남. 사르트르는 대단한 철학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딱딱한 논리적 언어 대신에 문학적 언어로 표현하였습니다. 또 꼭 프랑스는 아니지만 독일의 니체나 덴마크의 키에르케고르를 보십시오. 내가 여기 공주 금강 가에서 가야 할 길은 바로 그런 철학자의 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 시를 써 보자. 그래서 시는 나의 흔들림을 막아주는 하나의 방편이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시는 논리와 이성을 추구하면서 빠졌던 삭막한 사막 같은 삶을 건져내어 치유해주었습니다. 촉촉한 감성적 삶과 문학의 카타르시스는 우리에게 생기를 줍니다. 그래서 나는 시로써 중년의 정신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고마운 시를 나는 제대로 대접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독립투사처럼 목숨을 걸고 시를 쓰지 못했습니다. 고양이가 쥐잡듯이 일념으로 시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나의 시는 철학도 아니고 문학도 아닙니다. 나의 시는 물 빠진 저수지처럼 천박하고 또 대패질하지 않는 원목처럼 거칩니다. 그러나 나는 시에 아첨하거나 대중이나 문단권력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나는 조금 게으르게 그리고 다른 사람의 평가에 그리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으면서 소걸음으로 시를 써왔을 뿐입니다.
이런 고질병은 쉽게 고쳐지지 않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여 나를 제발 용서해주세요. 술을 먹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술중독자처럼, 나는 시가 익기 전까지는 아니면 시가 먼저 말을 걸어오기 전까지는 절대 시집을 내지 않겠다고 나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깨고 오두방정을 떨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수로 나의 시집 『오래된 오늘』을 사신 사랑하는 독자분들이시여! 오늘 이 시를 읽으시고 제발 눈물을 닦고 오랜 고통이 치유되시기를 바랍니다.
2018년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