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춘문예당선. 1985년부터 기자를 하고 있습니다.
시사매체에서 인물인터뷰를 주로 하다가 지금도 국토저널에서 공공단체 기관장 인터뷰를 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생로병사에 관심이 많고, 책 읽고 글 쓰는 일을 좋아합니다. 좋은 글을 읽는 사람은 좋은 사람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한 사람을 바꾸는 건 세상을 바꾸는 일이기도 합니다.
(들어가는 말)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
절망에서 희망을 말하는 우리시대의 지도자
어느 학교의 특별활동 시간이었습니다. 사진반이었는데, 사진담당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돌아가면서 사진을 찍게 했습니다. 학생들은 저마다 아름다운 꽃과 나무, 화단, 조각품들을 찾아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찍은 사진에 대해서 발표를 하였습니다. 빨간 꽃, 노란 꽃, 예쁘게 만들어진 조각품이 찍힌 사진을 들고 학생들은 열심히 발표했습니다.
이건이래서 잘 되었고, 저건 저래서 예쁘고, 노출이 많다느니 적다느니, 초점이 맞았느니...... 그러다가 조그마한 여학생이 자신이 찍은 사진에 대해서 발표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 여학생이 찍은 사진은 작은 나팔꽃 덩굴이었습니다. 아직 어려서 꽃은 피지 않았고, 담 모퉁이에서 아무렇게나 자라기 시작한 그런 것이었습니다. 사진에는 여리디여린 나팔꽃 덩굴이 조금씩 뻗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 여학생은 자신이 찍은 사진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왜 그걸 찍었는지 그저 얼굴이 빨개져서 아무 말도 못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저 아이는 아름다운 걸 모르나봐”, “예쁜 걸 찍어야 사진이지”하며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앞으로 나오셔서 그 조그만 여학생의 머리를 쓰다듬으시고 아이들을 둘러보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애들아, 이 사진을 잘 봐.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이란다. 자신을 화려하게 꾸미지도, 과시하지도 않으며, 남에게 뽐내지도, 비굴하지도 않고,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내고 있는 것. 진짜 아름다움이란 바로 이런 것이란다. 담벼락을 따라 힘차게 뻗어 오르는 나팔꽃 덩굴을 좀 봐. 여리지만 너무나 아름답지 않니?”
우리가 사는 것도 어쩌면 이 이야기와 같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름다운 것을 찾아다니면서도 정말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여느 다른 학생들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이 이야기보다도 못할지도 모릅니다. 아름다운 것을 모를 때 자상하게 가르쳐 주는 선생님이란 존재가 우리에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참 불쌍한 존재들입니다.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아무도 가르쳐주는 사람 없이 스스로 알아내야 하니 말입니다.
많은 곳에서 절망을 이야기합니다. 절망의 시대, 절망의 생활, 절망한 사람...... 그러니 절망을 이야기하기엔 너무 아까운 나날입니다. 벌써 희망을 절망으로 바꿔 불러야 할까요? 우리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담벼락에서 그 여린 나팔꽃 덩굴이 오르기를 멈추지 않는 이상 우리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담벼락에는 언젠가 나팔꽃이 반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소개한 열아홉 명은 지도자들은 남들이 보기엔 화려할지 몰라도 필자가 보기엔 여학생의 나팔꽃 덩굴처럼 여리디여린 삶속에서 순수하게 지도자 역할을 통해 우리사회의 절망에서 희망을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다.
샤를 드 푸코는,
“밖으로 드러나는 행위보다 인간 자신이 먼저임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인생은 무엇을 손에 쥐고 있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믿을 만한 사람이 누구인가에 달려 있음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최대치에 나 자신을 비교하기보다는 내 자신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여러분들과의 만남 자체가 국토저널과 필자 인생의 행운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