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낸다는 건 곤로의 뻑뻑한 심지처럼 스스로 타고 스러지며 다른 생을 밀어 올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제 가슴 깃털을 뽑아 둥지 바닥을 꾹꾹 눌러 깐 어미새의 체온, 말을 목구멍이 아닌 어깨로 삼키던 소년의 등, 첫봄처럼 눈부시겠지요 하고 돌아서던 그 사람의 뒷모습.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온기 위에 서서, 제 온기를 남기며 살아간다.
시는 그 온기를 천천히 더듬는 일이라고 믿는다. 말하지 않아도 곁에 있어 주는 일, 조용히 그 자리에 찻잔 하나 내려놓는 일. 그때 시가 나에게로 왔다.
언제, 왜 받았는지도 모르는 수많은 덤이 인연의 길모퉁이마다 묵묵히 태엽을 되감고 있다. 이 시집도 그 덤들 중 하나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