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려는 말은 다른 사람들에겐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모두에게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는 바로 그 ‘중요하지 않음’으로 인해 누군가에겐 가장 시급한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를 할 때 느끼는 감정은 부끄러움, 나에게만 시급한 이야기를 할 때 느끼는 감정은 외로움이다. 나는 그러한 수치와 고독을 케이팝에서 배웠고, 그 두 감정에 얽힌 케이팝의 문제들을 곧 내 삶의 문제로 인식한다. 그러니 ‘듣는 음악’과 ‘보는 음악’을 구분하자는 나의 주장은 모두를 위한 구호가 아니라 그저 내 삶에 대한 울분이자 자학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