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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훈1903년 평안북도 태천(泰川)의 유복한 집안 장남으로 태어났다. 1923년 의주공립농업학교, 1926년 평북공립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35년 서울의 보통학교로 옮겨 「서화협회전」 「조선미술전람회전」 등에 참여하며 활동했다. 1945년 봄에 가족과 함께 대전으로 내려와 대전공업학교를 거쳐 1947년부터 대전사범학교에 정착하면서 농촌을 중심으로 조용하고 평화로운 자연환경과 목장, 계룡산의 웅장하고 계절적인 변화의 산용(山容)이며 산록(山麓) 또는 계곡 등 자연미와 풍경미의 정감을 화폭에 담았다. 1949년 제1회 「국전」에서 '목장의 아침'으로 특선, 제2회 「국전」에서도 목장을 그린 작품으로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제4회 「국전」부터 추천작가로 계속 출품했고, 「국전」 초대작가, 심사위원을 역임하는 등 열정적인 활동을 보였다. 1969년, 대전사범학교가 개칭된 충남고등학교에서 사십오 년간의 교직생활을 명예롭게 퇴임하고, 서울로 올라와 수도여사범대학(지금의 세종대)에서 강의했다. 1976년 「국전」에서 '어촌의 광장'으로 초대작가상을 받았고, 그 특전으로 칠십사 세의 늦은 나이에 처음으로 약 삼 개월간 유럽여행을 하였다. 1984년 1월 잔설의 빙판 위에서 낙상, 5월에 팔십일 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85년 유작 백칠십일 점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되었고, 1986년 국립현대미술관 주관으로 회고전이 개최되고 유작집이 발간되었다. 2003년 대전광역시에서 이동훈미술상이 제정되었고, 이동훈기념사업회 주최, 중도일보사와 대전시립미술관 주관으로 2019년까지 17회 수상자가 시상, 전시되고 있다. 1955년 충청남도 교육공로자상, 1958년 충청남도문화상, 1963년 대한민국문화포장, 1968년 한국미술교육공로상을 수상했고, 1985년 대한민국보관문화훈장이 추서됐다. ![]() ![]()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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