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효용이 무엇일까 여러 번 고민해 보았습니다. 소설, 영화, 웹툰 등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 직업인 사람으로서 응당 할법한 고민이죠. 스스로 여러 가지 답을 만들어보았는데 이 답이 제일 그럴듯했습니다.
이야기는 현실을 잠시 잊게 해주는 술 아닌 술이다.
술을 예로 들었지만, 산책이나 명상 혹은 춤이나 노래도 마찬가지. 우리는 종종 현실로부터 도피할 계기가 필요한데 이야기는 꽤나 효과적인 역할을 해줍니다. 이 책에 담긴 몇 가지 이야기들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 <지옥에서 온 소녀>는 독한 배갈(고량주) 같은 소설입니다. 미래의 어느 날, 북한의 국경도시에서 벌어지는 활극을 그리고 있습니다. 젊다기보다는 앳된 킬러가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 앞뒤로 꽤나 많은 이야기가 이어질 수도 있겠습니다. 끄적거려놓긴 했는데 언제 세상에 나올지는 모르겠네요.
두 번째 이야기 <이상한 해피엔딩>은 괴짜 바텐더가 만든 칵테일입니다. 지난번 ‘너와 나의 미스터리 2’에서도 한 편 선보였던 카카오톡 대화 형식의 초단편 소설.
세 번째 이야기 <우리 집에 왜 왔니>는 쌀쌀맞은 보드카 한 잔. 예전에 발표했던 단편소설을 다듬어 실어보았습니다. 수학여행을 가서나 파자마 파티를 할 때 친구들이 ‘내가 진짜 무서운 이야기 해줄까?’라고 시작하는 이야기들 있잖아요. 그중에서도 약간씩 다른 버전으로 자주 들었던 괴담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제법 섬뜩한 공포소설이 나왔어요.
네 번째 이야기 <똑바로 살아라>도 카카오톡 대화 형식의 초단편 소설입니다. 이 작품집의 표제작이자 가장 긴 분량의 작품으로 넘어가기 전의 막간극. 해장술이랄까요.
다섯 번째 이야기 <체르니 킬러>는 독한 위스키, 그중에서도 싱글몰트가 아닌 블렌디드 위스키 같은 소설입니다. 약간의 로맨스와 피아노, 그리고 과격한 액션을 블렌딩 해보았습니다. 맛이 어떠신가요? 80년대나 90년대를 주름잡았던 액션 배우, 그러니까 지금은 환갑 즈음의 배우를 캐스팅해서 할저씨 액션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싶어요. 누가 떠오르나요?
저에게는 엄연한 현실의 결과물로 나온 이 책이 독자 여러분께는 잠시 현실을 잊을 수 있는 기회가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와 함께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