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검색
헤더배너
상품평점 help

분류국내저자 > 인문/사회과학

이름:권서용

최근작
2025년 9월 <육조단경>

권서용

부산대 철학과 박사 졸업하다. 전공은 인도철학, 인도불교철학, 동양철학이다. 미래의 철학자들인 원효, 지눌, 서산, 경허, 다르마키르티, 에크하르트, 화이트헤드, 비트겐슈타인 사상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저 역서로는 『스스로 건너다』, 『다르마키르티와 불교인식론, 『인식론평석:지각론, 『다르마키르티의 인식론평석:종교론』, 『철학으로서 불교 입문』 등이 있다. 현재 다르마키르티사상연구소 소장이다.  

대표작
모두보기
저자의 말

<육조단경> - 2025년 9월  더보기

불교인식 논리학에는 사구부정(四句否定)이라는 논증방법이 있다. 이것은 존재에 관해서 그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몇 번이고 부정을 거듭하여 유와 무의 견해를 명백하게 해 주는 해체의 논리이자 변증법적 문답법이다. 사구분별(四句分別) 혹은 사구비판(四句批判)이라고도 한다. “사구(四句)란 우리의 ‘생각’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네 가지 방향의 판단을 의미한다. 그 어떤 대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 우리가 내릴 수 있는 판단은 네 가지를 벗어나지 못한다. 제1구, ‘이다, 있다(有)’라는 긍정(정립), 제2구, ‘아니다, 없다(無)’라는 부정(반정립), 제3구, ‘이기도 하면서 없기도 하다,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亦有亦無)’라는 긍정 하면서 부정하는 것(긍정종합), 제4구, ‘이지도 않고 아니지도 않다,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非有非無)’ 라는 긍정하지도 않고 부정하지도 않는 것(부정종합) 이다. 이 사구부정의 논리는 초기불교 아함경전(阿含經典)에 유래한다. 즉 붓다는 다음과 같은 14가지 질문은 깨달음에 이르는 것을 돕는 실천적 물음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형이상학적 질문이라 하여 침묵하였다는 것이 14무기이다. 이것은 시간·공간·자아·사후세계라는 4개의 범주로 나누어져 있다. 시간에 대하여 제1구, 우주는 시간적으로 영원하다. 제2구, 우주는 시간적으로 영원하지 않다. 제3구, 우주는 시간적으로 영원하기도 하고 영원하지 않기도 하다. 제4구, 우주는 시간적으로 영원한 것도 아니고 영원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공간에 대하여 제1구, 우주는 공간적으로 유한하다. 제2구, 우주는 공간적으로 무한하다. 제3구, 우주는 공간적으로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 제4구, 우주는 공간적으로 유한한 것도 아니고 무한한 것도 아니다. 자아에 대하여 제1구, 자아와 육체는 동일하다. 제2구, 자아와 육체는 동일하지 않다. 사후세계에 대하여 제1구, 여래는 육체가 죽은 후에도 존재한다. 제2구, 여래는 육체가 죽은 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제3구, 여래는 육체가 죽은 후에는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 제4구, 여래는 육체가 죽은 후에는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시간·공간·자아·사후세계에 대한 인간의 생각은 네 가지 방향으로 판단되는데, 이 모두가 참된 판단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 14무기의 취지이다. 이러한 사구부정의 논리로 논리로부터의 해탈과 논리에 의한 해탈을 추구한 사상가는 용수이다. 그의 주저 『중론』 제1 「관인연품」 서두는 다음과 같은 사구로 구성된다. 제1구, [일체 존재는] 생성하는 것도 아니고 또한 소멸하는 것도 아니다. 제2구, [일체 존재는] 상주하는 것도 아니고 또한 단멸하는 것도 아니다. 제3구, [일체 존재는] 같은 것도 아니고 또한 다른 것도 아니다. 제4구, [일체 존재는] 오는 것도 아니고 또한 가는 것도 아니다. 제1구는 일체 존재가 어디로부터 무엇인가로부터 생성한다는 판단과 생성한 것은 반드시 소멸한다는 판단에 대한 부정이다. 제2구는 일체 존재가 영원히 소멸하지 않고 항상 머문다는 판단과 그 어떠한 존재도 순간적으로 소멸한다는 판단에 대한 부정이다. 제3구는 일체 존재는 하나 혹은 같은 것이라는 동일성에 대한 판단과 그 어떠한 존재도 다수 혹은 다른 것이라는 차이성에 대한 판단에 대한 부정이다. 제4구는 일체 존재가 운동하여 오는 것이라는 판단과 운동하여 가는 것이라는 판단을 부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구의 판단을 통해 일체의 존재는 생멸(生滅)·단상(斷常)·일이(一異)·래출(來出)이 불가능하다, 즉 일체가 공(空)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용수는 사구부정을 통해 운동을 부정한다. 『중론』 제2 「관거래품」의 서두이다. 제1구, 이미 간 것은 가지 않는다. 제2구, 아직 가지 않은 것은 가지 않는다. 제3구, 이미 간 것과 아직 가지 않은 것을 떠나서는 제4구, 지금 가고 있는 중인 것도 가지 않는다. 이미 간 것은 이미 갔기 때문에 가지 않는다. 아직 가지 않은 것은 아직 가지 않았기 때문에 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 가고 있는 중인 것은 가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 이미 간 것과 아직 가지 않은 것을 떠나서는 즉 이미 간 것은 이미 갔기 때문에 가지 않으며, 아직 가지 않은 것은 아직 가지 않았기 때문에 가지 않는다. 이 둘을 떠나서 어떻게 지금 가고 있는 중인 것이 갈 수 있는가? 존재의 실상은 무상한 것이다. 그런데 무상한 것을 간다, 가지 않는다와 같은 술어로 기술한다고 해도 그 실상을 언표하는 순간 어긋난다는 것을 용수는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미 간 것은 시간으로 말하면 과거이며, 아직 가지 않은 것은 미래이며, 지금 가고 있는 중인 것은 현재이다. 이미 간 것은 이미 갔기 때문에 과거는 존재하지 않으며, 아직 가지 않은 것은 아직 가지 않았기 때문에 미래는 존재하지 않으며, 현재는 반은 과거이며 반은 미래이다. 즉 현재는 반은 이미 갔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으며, 반은 아직 가지 않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일체의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라 규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규정하는 순간, 논리적 모순을 범하기 마련이다. 이 사구분별은 과학적 명제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다. 근대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원자이다. 이 원자가 과연 더 이상 분할 불가능한 최소단위인가? (원자를 분할하면 원자핵과 전자로 구분되고,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나뉜다.) 이 물음에 대해 네 개의 판단이 가능하다. 제1구, 원자는 최소단위이다. 제2구, 원자는 최소단위가 아니다. 제3구, 원자는 최소단위이기도 하고 최소단위가 아니기도 하다. 제4구, 원자는 최소단위인 것도 아니며 최소단위가 아닌 것도 아니다. 제1구는 원자의 개념적 정의, 즉 분할 불가능한 최소단위를 긍정하는 판단이다. 제2구는 원자가 물질인 한 분할 가능하기 때문에 최소단위가 될 수 없다고 부정하는 판단이다. 제3구는 원자는 개념적으로는 최소단위이며, 실제적으로는 분할 가능하기 때문에 최소단위가 아니라고 하는 긍정종합판단이다. 제4구는 원자는 실제적으로는 분할 가능하기 때문에 최소단위가 아니고, 개념적으로는 분할 불가능한 최소단위이기 때문에 최소단위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는 부정종합판단이다. 요컨대 원자가 더 이상 분할 불가능한 최소단위라고 하는 정립명제가 참임을 확정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일체는 무자성(無自性), 공(空)이다. “이런 사구비판의 논리는 우리의 일상적 사고방식을 모두 허물어뜨리기에 ‘해체의 논리’라고 부를 수 있고, 반야경의 공사상을 논증하는 논리이기에 ‘반야의 논리’ 또는 ‘공의 논리’라고 부를 수도 있다. 또 초기 불교의 연기사상에 토대를 두고 구사되기에 ‘연기의 논리’라고 부를 수 있고, 사구로 대립하는 극단적 이론들을 모두 비판하는 논리이기에 ‘중도의 논리’라고 부를 수 있으며, 갖가지 개념들은 고요한 열반에 들게 하는 논리이기에 ‘열반의 논리’라고 부를 수 있다. 또한 철학적 종교적 분별의 고통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해 주는 논리이기에 ‘해탈의 논리’라고 부를 수도 있으며, 중도적인 조망을 제공하는 논리라는 의미에서 ‘중관의 논리’라고 부를 수 있고, 논리적 사유를 통해 쌓아 올려진 생각을 논리적 사유에 의해 비판하기에 ‘반논리의 논리’라고 부를 수도 있다.” 김성철, 『중론 논리로부터의 해탈 논리에 의한 해탈』, 불교시대사 이러한 ‘해체의 논리, 반야의 논리, 공의 논리, 연기의 논리, 중도의 논리, 열반의 논리, 해탈의 논리, 중관의 논리, 반논리의 논리’인 사구분별을 대승불교 특히 선불교에서는 사구게(四句偈)라 부른다. 그래서 고래의 불교사상가들은 각 경전의 주제를 압축하는 네 개의 구절을 따로 채취하여 사구게라 이름하여 마음속에 두고서 늘 음미하였다. 『반야심경』​ 색은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은 색과 다르지 않다. 색은 공이요, 공은 색이다.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금강경』​ 무릇 존재하는 형상은 다 허망하다. 만약 모든 상을 상 아닌 줄로 본다면 여래를 볼 것이다.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제5장, 대승종정분) 만약 색으로써 나를 보거나 소리로써 나를 구한다면 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하는 것이며, 결코 여래를 볼 수 없을 것이다.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제26장, 법신비상분) 일체의 유위법은 꿈과 같고 환영과 같고 포말과 같고 그림자와 같다. 이슬과 같고 또 우레와 같다. 응당 이와 같이 돌이켜 보아야 한다.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제32장, 응화비진분) 『열반경』​ 모든 지어진 것은 무상하며. 생성하고 소멸하는 존재이다. 생성했다 소멸했다는 생각마저도 소멸한 그 자리 그 적멸의 자리가 즐거움이다. 諸行無常 是生滅法 生滅滅已 寂滅爲樂 『법화경』​ 모든 존재는 본래 항상 스스로 적멸한 형상이다. 불자들이 이 도를 행한다면 내세에 부처가 될 것이다. 諸法從本來 常自寂滅相 佛子行道已 來世得作佛 『화엄경』​ 마음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같아 능히 세상사를 다 그려 내고, 오온(五蘊)은 모두 마음으로부터 나온 것이어서 그 무엇도 만들어 내지 않은 것이 없다. 心如工畵師 能畵諸世間 五蘊悉從生 無法而不造 만약 사람의 마음작용이 두루 일체 세간을 짓는 줄 안다면 이 사람은 부처를 본 것이며 부처의 진실한 본성을 깨친 것이다. 若人知心行 普造諸世間 是人則見佛 了佛眞實性 만약 사람이 삼세의 모든 부처를 또렷하게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법계의 본성인 일체가 오직 마음이 지은 것인 줄 돌이켜 보아야 할 것이다. 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 『아함경』​ ​ 모든 악은 짓지 말라 일체 선은 봉행하라 스스로 그 뜻을 청정하게 하는 것 이것이 부처의 가르침이다. 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 『원각경​』​ 환영일 줄 알았다면 즉시에 떠나라. 다시 떠날 수단을 찾지 마라. 환영을 떠났다면 그 즉시 깨달음이라 또 다시 깨달을 점차는 없다. 知幻卽離 不作方便 離幻卽覺 亦無漸次 『천수경』​​ 죄는 자성이 없으니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마음이 만약 소멸하면 죄 역시 다할 것이다. 죄가 다하고 마음이 소멸하는 것 둘 다 공하다. 이것을 이름하여 참된 참회라 하는 것이다. 罪無自性從心起 心若滅是罪亦亡 罪亡心滅兩俱空 是卽名爲眞懺悔 『지장보살본원경』​ 내가 이제 지장보살 위신력을 보니 항하사겁 설하여도 다 말할 수 없네. 잠깐 동안 보고 듣고 우러러 예배하여도 인간과 천상에 그 이익 한량없어라 吾觀地藏威神力 恒河沙劫說難盡 見聞瞻禮一念間 利益人天無量思 『무량수경』​ 저 아미타부처님의 본원력에 의해 아미타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극락에 왕생하고자 한다면 모두 극락국에 가게 되고 저절로 불퇴전의 자리에 이르게 된다. 基佛本願力 聞名欲往生 皆悉到彼國 自致不退轉 노무현 삶이란 한 조각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구름이 쓰러짐이다. 구름 그 자체는 실체가 없느니 삶과 죽음 오고감이 그와 같도다.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然 (서산대사) 고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2009년 5월 23일, 유서를 남기고 오신 곳으로 가셨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유서에서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는 서산대사의 해탈송에서 왔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은 다시 2025년 6월 4일 이재명 대통령의 탄생으로 부활한다. 한강 작가는 묻는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육조단경』​의 사구게는 무엇일까? 신수의 오도송 몸은 보리(지혜)의 나무요 마음은 밝은 경대와 같나니 시시각각 부지런히 닦아서 티끌 묻지 않게 할지니라. 身是菩堤樹 心爲明鏡臺 時時勤拂拭 勿使惹塵埃 혜능의 오도송 보리는 본래 없는 나무이며 밝은 거울 또한 있는 대가 아니다. 본래 없는 한 물건이거니와 어느 곳에 티끌이 묻으리오? 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 서산대사는 『선가구감』에서 혜능의 ‘한 물건’을 다음과 같이 주해한다. “한 물건이란 어떤 물건인가? 옛 사람이 게송으로 ‘옛 부처님 나기 전에 또렷이 한 모양의 원이다. 석가도 아직 만난 적이 없거니와 가섭이 어찌 전할 수 있겠는가!’라고 이르시니, 이것은 ‘한 물건이 일찍이 난 적도 없으며 일찍이 소멸한 적도 없다. 그러므로 이 한 물건은 언어로 규정할 수 없고 형상으로도 한정할 수도 없다.’고 한 까닭이다. 육조가 대중에게 ‘나에게 한 물건이 있으니 이름도 없고 문자도 없다. 여러분들은 알겠는가?’하고 고하여 말씀하셨다. 이에 하택 신회선사가 나와서 ‘모든 부처님의 본원이요, 신회의 불성입니다.’고 하니 이것이 육조의 서자가 된 까닭이다. 회양선사가 숭산에서 오니 육조가 회양에게 ‘어떤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라고 묻자 회양선사가 어찌할 줄 모르다가 8년이 지나서 바야흐로 ‘설사 한 물건이라 말해도 맞지 않습니다.’라고 스스로 수긍하여 말하니, 이것이 육조의 적자가 된 까닭이다.” 이 한 물건이 무엇인가라는 스승의 질문에 ‘한 물건’이라는 말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인 줄, 억지로 갖가지 이름과 문자를 세운 줄, 모르고 형상이나 이름, 문자에 얽매어서 알음알이를 내어 ‘부처님의 본원이라 하고 신회의 불성’이라 했기 때문에 신회는 서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반면 부모에게서 나기 이전 나의 본래면목인 이 한 물건에 대해 허망한 생각 일으키면 그 죄는 수미산보다 큰 줄 알고 8년이나 공들이고 난 뒤, ‘설사 한 물건이라 말해도 맞지 않습니다.’고 했기 때문에 회양은 육조의 적자가 되었던 것이다. 사실 『육조단경』은 나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찾는 공부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나의 본래 면목을 찾을 수 있는가? 혜암스님께서 말씀하신다. “우리는 눈으로 밖의 모양을 본다. 그런데 송장도 눈은 있지만 보지를 못한다. 눈 말고 따로 한 물건이 있어서 보고 싶으면 무엇이든지 보고는 있지만, 도대체 무엇이 보고 있는 것인지 아무리 눈을 돌려 살피어 보아도 여기에는 한 모양조차 찾아볼 수 없을 이때, 바로 서쪽에서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와 검은 구름을 벗기고 맑고 밝은 달이 이미 나타난 것이며, 아무리 눈을 돌려 살펴보려고 해도 여기 한 모양도 찾아 볼 수 없는 그 때, 바로 미움과 친함이 이미 없어진 것이며, 아무리 눈을 돌려 살펴보려고 해도 여기 한 모양도 찾아 볼 수 없을 이때, 바로 생사를 이미 해탈한 때이며, 아무리 눈을 돌려 살펴보려고 해도 여기 한 모양도 찾아볼 수 없을 그때, 또한 바로 고해(苦海)를 이미 벗어난 때인 것이다.” 눈은 색깔을 볼 줄 모르고, 귀는 소리를 들을 줄 모르며, 코는 냄새를 맡을 줄 모른다. 그런데 색깔을 보고 있다고 아는 그 놈, 소리를 듣고 있다고 아는 그 놈, 냄새를 맡고 있다고 아는 그 놈은, 눈도 귀도 코도 아니다. 색깔도 없고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는 그 허공의 그 자리가 색깔인 줄 알고 소리인 줄을 알고 냄새인 줄을 안다. 그 색깔도 없고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는 허공의 그 자리가 바로 나의 본래면목이며, 나의 불성이며, 진심이며, 일심이다. 『육조단경』은 그 텅 빈 그 자리를 우리에게 돌이켜 보라고 끊임없이 고언(苦言)한다. 이번 『육조단경』을 번역한 역자들은 수년 째 눈으로가 아니라 마음으로 보고자 하였다. 눈으로 보면 글자만 보이지만, 마음으로 보면 글자 너머 보고 있는 자신의 참모습이 보인다. 우리들은 각자 직장을 다니고 있거나 정년을 하여 새로이 길을 찾고 있는 과정에서 이 『육조단경』을 만났다. 육조는 말한다. 너 마음 청정한 그 자리가 불국토이며, 자신의 본래 모습 보는 것이 곧 부처가 되는 것이며, 너 마음이 곧 부처이다. 나의 본래 마음이 부처임을 눈뜨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육조단경』을 보실 것을 권유 드린다. 끝으로 어려운 출판 여건에서도 이 책의 출간을 허락해 주신 메타노이아 정현정 대표께 감사를 드리며, 복잡하고 엉성하게 제출된 초고를 옥고로 편집해 주신 장윤이 선생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2025년 6월 5일 역자 일동

가나다별 l l l l l l l l l l l l l l 기타
국내문학상수상자
국내어린이문학상수상자
해외문학상수상자
해외어린이문학상수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