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나이에 무지無知의 한계를 느끼면서 내가 아닌 내가 거울 앞에서 옷맵시를 다듬고 있다.
가식의 매듭을 풀고져 안달이다.
첫 시집 「돼지가 웃을 때는」을 내고서 교만과 아집에 덩실거리던 나를 생각하면 참으로 어처구니 없었다는 생각에 쓴웃음을 짓다가 머리 염색을 하면서 왜?라는 물음표를 던진다
바탕대로 살면 되는데 꾸밈의 획은 왜일까?
지하철을 타도 옆자리에 젊은이가 있으면 혹여 옷깃에 노인네 냄새가 젖어 있을까 조바심을 한다.
나도 가상假想을 그리며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안동에 가면 탈춤을 추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의 표정은 제각기 다른 모양새의 풍경이다.
웃다가 울다가 화가 난 표정도 있다.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에서 한恨풀이를 하고 있다.
나는 나를 가꾸기 위해 걸음걸이 연습을 하고 있는데 변형된 세상을 역주행하며 살겠다고 탈을 쓰고 뜀박질을 하고 있다.
나 아닌 내가 추구하는 詩의 실상은 무엇인지?
숨겨둔 보석은 빛의 가치를 잃는다고, 타인에게 돋보이기 위한 허상이 톱니바퀴를 돌리고 나도 탈춤을 추고 있다.
돋보이게 하려는 망상이라면 맞는 말이다. 껍데기뿐인 나를 보고 모래바람이 덮어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