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리츠메이칸 대학교 국제관계학부 졸업. 대학 시절 교환학생으로 전남대학교에서 1년 동안 생활한 것이 인연이 되어 25년 가까이 광주광역시에서 살고 있다. 광주환경운동연합에서 근무했고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계기로 탈핵운동에 전념하게 되었다. 2025년 현재, 탈핵신문미디어협동조합 편집위원과 사무국장을 맡고 있으며 영광군에 있는 한빛 핵발전소 대응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 책을 만난 것은 딱 작년 이맘때쯤이었다. 아오키 미키 기자가 그 전에 출판한 두 권의 책도 읽었고 작년 5월 도쿄에서 열린 오염수 반대 집회에서도 그를 만나 잠깐 이야기를 나눈 적 있었다. 작년 11월 출간한 이 책 제목이 너무나 나에게는 와 닿았다. 평상시에 내가 생각하고 궁금했던 의문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스물네 살까지 살아온 나는 특별한 어려움 없이 ‘적당한 풍요로움 속에’ 나름 잘 살아온 것 같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일본이 갈수록 살기 힘든 나라로 전락해 가는 것을 느꼈다. 여러 계기가 있었겠지만 그걸 결정적으로 느끼게 된 것은 동일본 대지진과 그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였다.
후쿠시마 사고가 났을 때 나는 환경단체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전까지는 원전에 대해 막연하게 ‘방사능 때문에 위험하다’는 정도의 인식밖에 없었다. 후쿠시마 사고는 내가 그 동안 근거 없이 믿었던 뭔가가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누려온 평온한 일상이 수많은 모순과 왜곡과 차별 위에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을 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후쿠시마 사고를 경험하고 나서 한동안 일본 사회는 핵 없는 세상으로 향해 가는 것처럼 보였다. 당시 집권했던 민주당은 ‘원전에 의존하지 않는 사회’를 선언했다. 후쿠시마 사고로 전국의 모든 원전이 가동을 멈춘 후 재가동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시민들은 거리에서 ‘재가동 반대’를 크게 외쳤다. 사회에 대해 늘 소극적이던 일본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였다. 2014년 아베 신조 수상이 이끄는 자민당 정권이 재집권하면서 사회 분위기는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갔다. 한때 기울였던 ‘개혁’ 분위기는 희미해져 갔다. 지금은 사회가 점점 더 우경화되어 가는 것을 느끼는 나날이다.
사회가 따뜻하게 품어야 하는 후쿠시마 원전 피해자들은 현재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방사능 피폭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오히려 주변에서 차가운 시선을 받는다고 한다. ‘후쿠시마를 응원하자’라는 구호 속에서 방사능 오염에 대한 언급은 아예 터부시되는 분위기다.
‘후쿠시마는 안전하다’ 캠페인을 펼치는 어용학자는 이공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느 순간 ‘풍문 피해’라는 단어가 인문계 어용학자들 사이에서 회자됐다. 피해자가 있으면 가해자도 있는 법이다. 어용학자들은 방사능 위험성을 호소하는 사람들이나 시민단체를 가리켜 ‘풍문 가해자’라는 말까지 만들었다. 후쿠시마 사고의 진짜 가해자는 사고를 일으킨 도쿄전력이고 원전을 추진해온 일본 정부를 비롯한 핵 추진파들이다. 정작 가해자로 불러야 하는 사람들이 공공연하게 근거 없는 ‘후쿠시마 부흥’을 외치고 있고, 피해를 호소하고 위험성에 경종을 울리는 사람들이 어이없이 ‘가해자’ 딱지를 받게 된 형국이다.
요즘에는 일상적으로 방사능이나 오염수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시민들은 후쿠시마 사고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고, 언론인들은 전하고 싶은 소식을 전할 수 없다. 원전 이권에 붙어서 권력을 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시민을 감시하고 통제하고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런 사회가 진정한 민주사회라고 도대체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일본이 원전을 그만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가 달라져야 한다. 아오키 미키 씨가 쓴 것처럼, 원전에 의존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원전 안전 신화’를 만들고 그 구조 속에서 이익을 얻는 세력들의 연합체를 해체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은 핵 없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길뿐만 아니라 일본을 민주사회로 다시 세우는 길이 될 것이다.
핵마피아는 한국에도 있다. 그런 면에서 일본과 한국이 별 차이가 없다. 한국 사회 또한 이 핵마피아와 싸워야만 한다. 원전을 둘러싼 논쟁은 다각도에서 할 수 있다. ‘안정적인 전력 생산을 위해 원전이 필요하다, 이산화탄소를 내뿜지 않아서 친환경적이다, 전력 국산화를 실현하기 위해 차세대 원자로 개발이 필요하다’는 등 핵마피아들은 세대에 맞게 말을 창조하고 바꾸고 사람들을 현혹한다.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민주주의의 문제다. 이 책을 읽으신 독자라면 왜 원전이 지속 가능하지 않고 그만해야 하는지, 왜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향해 가는 길인지 이해하실 것이다.
탈핵은 멀고도 험한 길이라고 매일 느낀다. 하지만 반드시 인류가 가야 할 길이기도 하다. 나는 그렇게 확신한다. 이 책을 통해 왜 일본이 원전을 그만둘 수 없는가를 살펴보고 한국 사회와 비교해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다.
일본과 한국을 넘어 동아시아, 그리고 전 세계가 하루빨리 핵발전소도 핵무기도 없는 사회를 이루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