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계명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조교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고,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희곡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연세대학교 국문과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는 오영진 영화론과 일기연구인 『우울과 환영』, 『드라마와 민족 표상』이 있으며, 희곡집 《달을 쏘다》, 《김윤미 희곡집》 1-5, 등이 있다.
오영진은 <닥터지바고>의 영화장면처럼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시대를 흐르는 동안 예술가의 영혼은 불에 그을린 상태로 삶을 이어간다. 그는 일제식민지 시기에 일본어로 영화시나리오를 썼고 그 일로 인해 고통스러워했다. 방용구의 증언에 의하면 오영진은 1965년 한일조약이 체결된 후 ‘무거운 병’을 앓게 되었고 결국 그 병으로 이대 정신병원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다.
오영진의 주치의였던 이근후 정신과 의사는 오영진이 마지막 순간에 병원비를 지원받게 되어 기뻐했다고 한다. 이대정신병원의 목욕탕에서 이른 아침 목욕을 하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는데, 우울증으로 한동안 힘들어했던 그가 그날은 오랜만에 밝은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오영진에 대한 자세한 병상기록을 남겨두지 않은 것을 이근후 선생은 안타까워했다. 오영진은 그에게서 사이코드라마를 의뢰받아 처음으로 사이코드라마를 쓴 극작가이기도 했다.
오영진에 대해 증언하는 분들을 만났던 장소는 서로 달랐지만 어떤 우울함과 안타까움이 함께 했다. 서로 다른 세대가 처음 만난 자리에서 어떤 신뢰를 가지고 고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지난 세대의 수난을 공감하는 것인데, 그것은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위치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자의 불안감을 공유하는 것이고,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도, 살아남은 사람도 이후 세대들도 그러한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