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시인이자 당대 최고의 비구니스님으로 칭송받고 있는 일엽(一葉) 스님을 어머니로, 일본의 최고 명문가 오다 도켄의 후손인 오다 세이조(太田淸藏)를 아버지로 세상에 태어났다.
그러나 부모님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때문에 고독한 날들을 보냈지만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화백과 일본 최고의 인물화가 이토 신스이(伊藤深水)에게 사사하면서 도쿄제국미술학교를 졸업하였고, 모정에 대한 갈증을 그림으로 승화시켜 석채화의 대가, 일본 화단의 거목으로 자리 잡았다. 일당의 그림은 자연애와 강렬한 채색을 통한 감정표현에 성공했다는 평을 듣고 있는데, 그 화폭에 그려진 자연은 다름 아닌 어머니인 것이다.
그가 출생의 비밀을 알기까지와 모정에 목말랐던 어린 시절, 젊은날의 사랑, 그리고 휘몰아치는 20세기 초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느꼈던 애증(愛憎)은 대하소설 그 이상이다.
이러한 경험 속에서 인생을 관조(觀照)하였고, 결국에는 환갑을 넘긴 나이에 불가에 귀의하여 더욱 그림을 통한 인생과 수행을 통한 인생을 결합시키면서 인생의 의미를 노래한다.
일당 김태신은 2014년 12월 25일에 세수 93세, 법랍 27세의 일기로 영면하였다.
지금도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나는 늘 외로웠다. 부모가 그리웠고, 특히 모정(母情)이 그리웠다. 중학생이 되어 겨우 어머니가 수덕사에 있다는 비밀을 알고 찾아 갔을 때, 어머니 스님은 나에게 ‘어머니라고 부르지 마라’ ‘나는 세속의 인연을 끊고 산에 온 스님이다’라고 냉랭한 말 한 마디만 했을 뿐이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림에 몰두하는 것 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욱더 열심히 그림을 그렸고, 그림을 그리면서 항상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머니가 산에 살고 계셨기에 산수(山水)를 그리면서 어머니를 생각하곤 했다. 산에는 어머니가 계시고, 그 어머니는 관세음보살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나이 미수(米壽)에도 나는 산수를그리면서 그 속에 살아 계실 어머니를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