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부모님께 편지를 보내며 생긴 놀라운 변화 -
어릴 적 말을 더듬었던 나는 다른 사람에게 내 생각과 감정을 말로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사람들이 내 감정보다 말을 더듬는 현상에 집중하는 것을 느끼면서였던 것 같다. 하지만 내 감정과 생각을 쌓아두면서 나에게 쉽게 화가 났고 우울했다. 누군가 나에게 닥친 상황에 대해 물어보면 말하기 전에 목이 메고 또 그게 속상해 울었다. 어렴풋이 ‘내 감정이 갈 곳을 잃고 갇혀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 생각했다. 어떻게든 내 감정과 생각을 드러내지 않으면 가슴이 터질 것 같았고 나에게서 무엇인가로 흘려보내야 했다. 그렇게 시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내 감정과 통하는 시인의 시를 따라 썼고 이후, 내 생각과 감정을 담은 나의 시를 썼다. 대학교에서는 교내방송국에 들어가 PD와 작가로서 방송을 제작하고 방송멘트를 썼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혼자서 짧은 소설을 쓰다가 지금은 학부모님께 편지를 쓰고 있다.
처음 학부모님께 편지를 쓰기 시작한 것은 11년 전 양평의 작은 분교에 있을 때였다. 그 때 당시 분교는 보통 초등학교와 다르게 각 교사에게 주어지는 업무가 없었다. 매일 수업이 끝나면 학교에 남아있던 아이들과 축구를 하고 학교 주변 개울에 물고기를 잡으러 돌아다녔다. 아이들과 지내는 일상을 함께 글로 쓰고 같이 읽었다. 아이들이 모두 집에 가고 나면 수업 준비를 하고도 시간이 남았다. 그 시간이 있어 선생님들끼리 자주 모일 수 있었고 학급 활동에 대해 서로 나누고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나눔에서 학부모님께 매일 아이들과 지낸 이야기를 알림장에 적어 붙여주시는 선생님의 활동이 좋아 보였다. 그래서 나도 아이들과의 생활에 대해 편지를 써서 학부모님께 드리기 시작했다. 한 달에 한 번으로 시작한 편지가 2주에 한 번으로, 행사가 많은 기간에는 한 주에 한 번으로 주기가 짧아졌다.
처음에는 뭘 써야 할지 몰라 3시간이 넘게 컴퓨터와 씨름했다.
‘이렇게 써도 될까?’
‘속상한 일을 써도 괜찮을까?’
‘어디까지 내 생각을 드러내야 하나?’
이런 고민과 함께 시작한 편지에 많은 학부모님께서 답글을 적어 보내주시며 힘을 얻게 되었다. 속상한 일에는 위로해 주셨고, 어설프고 어린 내 생각에 격려와 지지의 글을 적어 보내주셨다. 학부모 편지를 보냈다고 알림장에 적은 내용만 봐도 설레고 다음 편지를 기다린다는 응원도 많았다. 그 응원이 지금까지 학부모 편지를 이어오게 한 원동력이다.
그렇게 보내기 시작한 학부모 편지가 어느 덧 11살이 되어간다. 편지라는 형식을 빌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글이 삶에 미치는 엄청난 영향력을 경험하고 있다. 글이 내 삶을 돌아보게 했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게 했다. 교사로서의 교육 철학도 바로 세워야 했고 부족한 지식을 채우기 위해 독서도 해야 했다. 다시 말해 글이 내 삶을 단단하게 붙잡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책은 지금까지 내가 써왔던 학부모 편지 중 너무 오래된 내용을 제외하고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쓴 글을 모았다. 중복되는 내용은 제외하니 살이 많이 빠졌다.
아이들과 함께 만든 학급문집에서만 볼 수 있을 뻔한 학부모 편지가 세상에 나오기에는 꿈에 관한 수업에서 한 제자의 질문이 큰 역할을 했다.
“선생님은 꿈이 뭐예요?”
그 말에 나는 한동안 방황했다. 기껏해야 ‘교장 승진 대열에 끼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내 모습에 좌절했지만 많은 분들을 만나 얘기도 듣고 책도 읽으며 작가라는 새로운 꿈을 가지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학부모 편지를 쓰면서 나의 삶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이다. 지금 이 책을 든 당신은 변화에 한 걸음 다가섰다.
2019. 11
작가가 새로운 꿈이 된 후
아내가 만들어 준 서재에서